2016년 8월호

사드의 정치학

朴대통령은 ‘사드 찬반’ 대선구도 원한다?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6-08-04 15: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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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朴과 재대결 나서
    • 국민의당, 安 버리고 孫 잡는다?
    • 중국, ‘한국 친구들’ 표현 쓰며 압력
    박근혜 대통령과 국방부는 7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서두른 흔적이 역력하다.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국내 정치 맥락에서 보자면 이유는 단 하나, 내년 대통령 선거뿐이다.

    지난 4·13총선에서 180석 압승을 노리던 박근혜 대통령이 어이없이 패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에 금이 갔다. 조기 레임덕 조짐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한다.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만이 임기 말 레임덕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퇴임 이후의 평온을 보장받는 길이기도 하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반대하고 나선다’는 점을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예상했을 터다. 바라는 바다. 우리는 찬성에 서고 상대방은 반대에 서는 것이다. 편이 둘로 갈린다. 이것이 여권엔 최고의 선거구도라고 본 것 같다. 자기편 운동장으로 적을 불러들여 싸우는 오래된 전략.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은 지쳐갈 것이고 조급해질 것이다. 그때를 노려 최후의 일격을 날리면 그만이다.



    김종인의 노회한 반응

    실제로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 카드를 던지자 야당들이 들고일어났다. 예상한 그대로다. 미끼를 덥썩 문 것이다. 정의당이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섰다. 6석의 정의당은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38석의 국민의당도 반대하고 나섰다. 4월 총선을 앞둔 지난 2월, 사드 군산 배치설이 불거졌을 때 이미 반대하고 나선 그들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정의당보다 의석 수가 많긴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비할 바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서야 하는데, 김종인 대표는 노회했다. 곧바로 미끼를 물지 않고 입질만 하다 비켜갔다. 첫 반응은 ‘배치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반미 감정 등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권 본능이 여전한 우상호 원내대표는 달랐다. 배치 자체도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무기 자체의 실효성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반대에 방점을 둔 반응을 보였다. 그 결과 더민주당의 첫 공식 논평은 김종인 대표의 의견이 조금 더 반영된 형태, 곧 ‘졸속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그러나 실익 있는 사드 배치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로 나왔다.

    이후 더민주당은 내분에 빠졌다. 당내 주류인 친노무현·친문재인 세력과 86그룹 등이 반대론을 적극 제기하면서다. 하지만 7월 1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찬성과 반대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더민주당의 ‘사실상 오너’인 문재인 전 대표가 나섰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결정’이라면서, ‘재검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방점은 역시 재검토, 곧 배치 결정 철회에 둔 발언이다.

    그런데 이 발언을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일소에 부쳐버리고 말았다. “재검토하라고 한다고 그게 재검토가 되겠느냐”며 “이미 장소까지 다 정해졌는데 방법이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더 나아가 “문 전 대표 발언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말까지 남겼다. 그래도 오너는 오너다. ‘사실상 오너’가 직접 제시한 ‘사실상 당론’을 전면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더민주당은 7월 14일 오전 우상호 원내대표 중심으로 사드대책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도 반대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때를 놓칠 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낚싯대를 잡아챘다. 7월 14일 오후에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한 것은 물론,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지금은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야당들을 다시 한 번 자극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 시기가 당초 예상과 달리 내년 말쯤으로 미뤄질 것이란 소식이 흘러나왔다. 지난 2월 한미 당국이 사드 공식 논의 프로세스에 접어들 때만 해도 내년 초에 배치될 것이란 관측이었다. 내년 말, 2017년 12월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달이다. 그래서 그 시기 배치를 전제로 날짜를 역산해 올해 7월에 발표하기로 결정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은 철저하게 대선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질 수는 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왜 사드 배치에 대해 사실상 당론을 제시하고 나섰을까. 2017년 대선에선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에게 또다시 지기 싫다는 경쟁심도 작용하는 듯하다.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대권을 빼앗겼다는 의식이 강하다.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이 없었더라면 이겼을 것이라는 전제다.

    4월 총선 당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인재영입 1호로 받아들인 것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인재영입 20호로 받아들인 것도 이런 ‘박근혜 콤플렉스’ 때문인 듯하다. 대표직도 내려놓고 의원직도 내려놓은 채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잠행을 이어가던 그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장문의, 또 깨알 같은 의견서를 내놓은 것도 결국은 박 대통령에 대한 경쟁심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김종인 대표와 친노·친문 세력의 견해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교통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대표직을 사퇴한 사람이 당내 논란에 대해 더 큰 분란을 유발할 수 있는 발언을 내놓는 것은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었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이지만, 4월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친박 일색으로, 더민주당은 친노·친문 일색으로 변모했다. 이것은 내년 대선 역시 201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로 치러질 것임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건 또 다른 인물이건 친박계의 주도로 차기 대통령이 만들어지길 원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 측도 이런 박 대통령의 의도를 읽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 결정에 기민하게 대처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그 방향이 올바른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김종인 대표처럼 조건부 찬성으로 가면서 싸움을 피해가는 게 옳은지, 문 전 대표처럼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정면승부를 거는 게 옳은지 현 단계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더민주당이 문 전 대표의 의견을 끝까지 따라줄지도 미지수다. 더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 체체에서 ‘안보 정당’을 기치로 일련의 우향우 행보에 나섰다. 안보에서 정통 우파에 가까운 김종인 대표를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다. 김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 결정 당시 북한 궤멸론을 주장해 보수 세력조차 깜짝 놀라게 만든 바 있다. 그런 그의 행보를 용인해온 게 더민주당이다. 지금 다시 좌향좌를 한다면, 이제까지 공을 들여온 우향우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변수를 고려할 때 더민주당은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하거나 성주군 배치에 반대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보다는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의 불통 문제를 정권 차원의 문제로 부각해 내년 대선에서 정권 무능론 또는 정권 심판론으로 연결시키는 동시에 사드의 위해성을 강조함으로써 성주 군민, 더 나아가 대구·경북 지역 민심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과 결별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손학규 러브콜

    요즘 사드 배치에 대해 가장 문제 제기를 많이 하는 대권주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다. 안 전 대표는 7월 10일 종합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반대 의사를 피력한 것.

    물론 국민의당은 지난 4월 총선 당시에 사드 배치 반대 방침을 밝혔다. 군산에 사드 배치를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돌 때다. 그 지역을 텃밭으로 삼으려던 국민의당으로서는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북이나 경남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건부 찬성으로 돌아설 여지가 이번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반대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더욱이 더민주당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국민투표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며 공격적으로 치고 나왔다. 국민의당은 본래 안보에서는 더민주당보다 더 오른쪽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왼쪽에 선 격이다. 왜 그럴까.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안철수 전 대표가 자진 사퇴한 이후 국민의당에서는 박지원 비대위 대표 겸 원내대표가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푸는 데 전력투구하는 상황이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박 대표는 검찰과 법원을 지속적으로 압박함으로써 구속을 막고 기소 형량을 줄이려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결정은 그래서 호재였다. 이것이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본능적 판단에 따라 박 대표는 7월 8일 배치 결정 발표를 1시간 앞둔 오전 10시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면담하고 반대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를 신속하게 언론에 알리는 기민함을 보였다.

    홍보비 리베이트 파문으로 인한 지지율의 추가 하락은 일단 막아냈지만, 텃밭인 호남에서 지지율이 더민주당에 역전당한 상황은 가능한 한 빨리 극복해야 한다. 안 전 대표와 박지원 대표의 거침없는 ‘좌향좌’는 바로 이런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 개인 차원에서의 위기감은 더 크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더민주당 내에서 누리는 만큼의 확실한 지위를 국민의당 내에서 누리지 못해서다. 국민의당 내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은 여차하면 안철수 전 대표를 빼고 갈 생각도 할 것이다. 당장 박지원 대표부터 손학규 전 고문을 향한 러브콜이 예사롭지 않다. 안 전 대표만으로는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선수’를 손 전 고문으로 교체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안 전 대표에게 중요한 것은 대권주자로서의 지지율이다. 사드 논란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려보겠다는 의도가 살짝 엿보인다.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를 박근혜 대 안철수 구도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지지율은 물론 반등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폭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중도와 보수 세력 중에는 사드 배치 찬성론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민 여론 파고든 중국

    요즘은 외국 정부들도 영악해졌다. 한국 내부의 여론 동향까지 살펴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민첩성을 발휘한다. 정교함과 민첩성이 조금 떨어지는 우리 정부가 번번이 협상에서 실속을 놓치는 까닭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중국, 러시아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에 신속하게 반대 의사를 피력하면서도 이 점을 파고들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한국 ‘친구들(朋友們)’이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냉정하게 생각하기를 희망한다’며 사드 배치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다. 러시아 정부는 한국과 미국을 ‘파트너’로 지칭하며 옳지 않은 선택을 하지 말 것을 호소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친구들’ 또는 ‘파트너’라는 표현은 한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국민 여론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우리 정부도 중국과 러시아 국민 여론을 겨냥한 해명과 설득을 내놓아야 하지만, 아직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래서 한미 당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사전 통보한 것이기도 하다.

    사전 통보 이전에 우리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국민 여론에 호소할 논리를 개발했어야 하고 실행 준비를 마쳤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논평이 나오는 순간 곧바로 온라인·오프라인 홍보전에 들어갔어야 한다. 만약에 그것을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홍보전에 돌입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 러시아와 물밑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관철해 나가고 싶다면 중국에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남중국해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과 관련해 중국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이 판결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독도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일본으로서는 더욱더 이번 판결에 고무됐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우리의 이어도 과학기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바 있다. 중국이 이번에 당한 경험을 토대로 이어도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로 가져가면 우리가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정부는 이번 남중국해 판결에 대해 ‘판결에 유의하면서 이를 계기로 남중국해 분쟁이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외교 노력을 통해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다소 애매한 논평을 내놓았다.



    쫓길 필요 없다

    일단 기조를 잘 잡았다고 본다. 앞으로 과제는 이것을 어떻게 사드 배치에 대한 양해로 연결해 나갈 것이냐다. 물밑 접촉으로 중국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는 북한 김정은의 방중을 양해해주는 것, 그리고 북핵 해결과 관련해 중국에 대해 부담을 주는 기조를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러시아는 사드에 중국만큼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물리적으로 사드의 탐지 범위 밖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러시아의 반대를 무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우리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채무 탕감이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구소련 시절 빌린 대외 부채 상환에 열심이다. 석유, 가스, 원자재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대외 부채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노력이다. 서방 진영의 채무를 매개로 한 외교 압박을 피해보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옛 소련 시절 우리나라로부터 빌려간 돈은 14억7000만 달러다. 이 가운데 무기 등 현물로 받은 것이 2003년 기준으로 4억6000만 달러 상당이다. 노무현 정부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협의로 이자를 비롯한 6억6000만 달러를 탕감해줬다. 그리고 남은 원리금이 15억8000만 달러다. 러시아 정부는 조만간 이 부채를 상환하려는 계획인데, 이와 관련해 이자 탕감과 같은 배려를 해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고 초읽기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방정식을 빠르게 풀어가되, 쫓겨서는 곤란하다. 국내 정치적 변수로 국제 정치적 변수를 치고, 그 역으로 치는 기지도 발휘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포기하고 이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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