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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만나 친구로 늙어간다

남과 북의 두 戰士 김신조·이진삼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적으로 만나 친구로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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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 중에 벌써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겁니까.

김신조 그런 셈이죠. 내 동료들 잡는 작전에 나를 투입한 건데, 누가 나를 감당하려나 보니까 특공대장이 오더라고. 작전을 같이 해보니 형님이 특수훈련받은 나하고 (실력이) 똑같은 거예요. 이런 악질이 남조선에도 있구나! 형님이 내 옆에 딱 달라붙어 걷는데, 수갑은 풀어주더라고.

이진삼 내가 수갑 풀어주라고 했어요. 둘 다 방탄조끼도 안 입었어. 겁이 없었지(웃음).

김신조 그때 내 심정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이던 사람들을 쫓는데…. 그때 형님한테 “대위님, 나를 살려줄 겁니까” 하고 물으니까 “살린다, 약속 지킨다” 하더라고요. 형님이나 되니까 수갑을 풀어준 거예요. 다른 사람 같으면 겁나서 그러지도 못했어. 형님을 믿었습니다. 자수한 마당이니 작전에 더 열심히 임했어요.





“머리 내밀고 나왔으니 自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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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9월, 609 방첩대장실에서 이진삼 방첩대장이 작전에 앞서 유서를 쓰고 있다. [사진제공·황금물고기]

▼ 자수? ‘김신조는 생포(生捕)됐다’고 들었습니다. 정부 기록에도 그렇게 돼 있고요.

 

1월 22일 ○ 02: 25, 제30사단 잠정 1개 중대와 5분대기조를 인왕산 하단에 배치, 적 퇴로차단, 제30사단 92연대가 독립가옥에 은신한 무장공비 1명 생포(김신조)

 - ‘對非正規戰史 Ⅱ 1961~1980’(국방군사연구소, 1998) 43쪽 



이진삼 30사단 걔들이 총질하고 굉장했습니다. 그때 김신조에게 “나오면 살려준다”고 했거든. 아우가 수류탄 한 발을 들고 있었으니 자폭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떨어뜨렸어. 그러고는 손들고 나온 겁니다. 맞지? 그러니까 자수지, 체포가 아니야.

▼ 색출작전을 해서 자수를 유도했다면 ‘체포’ 아닌가요? ‘체포’와 ‘자수’의 의미가 그렇게 다릅니까(표준국어대사전은 생포는 ‘산 채로 잡음’, 체포는 ‘형법에서,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구속을 가하여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일’, 자수는 ‘범인이 스스로 수사기관에 자기의 범죄 사실을 신고하고, 그 처분을 구하는 일’로 정의한다).  

이진삼 완전히 달라요. 상대를 체포했다고 해야 군인들의 공이 서지, 상대가 자수했다면 공이 안 서죠. 나는 자서전에 ‘김신조가 자수했다’고 썼잖아요. ‘자수(自首)’는 머리를 스스로 내민다는 뜻입니다. 자수했으니까 작전에 적극 협조한 거고. 덕분에 (작전이) 2주 만에 끝난 겁니다.

김신조 김일성 수령님을 위해 자폭하려고 했는데…수류탄 고리 하나 뽑으면 끝나는 건데 “나오면 살려준다”는 말에…. 손들고 나온 거예요. 명백한 자수입니다.  

▼ 그런데 정부는 왜 ‘체포’라고 발표한 겁니까.

김신조 자녀는 부모를, 국민은 정부와 군대를 믿고 삽니다. 북한에서 31명이 지령을 받아서 청와대까지 왔으니 국민이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더구나 그때는 우리 국력이 이북보다 약했으니까, 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렇게 발표한 겁니다.

이진삼 나도 군인이었지만, 군인을 군인답게 보이게 하려고 ‘체포’라고 한 것 같아.  

김신조 정부가 그렇게 한 것도 이해가 돼요. 이 얘기는 평생 묻고 가려고 했는데….

▼ 사실이 아니라면 그때 왜 안 밝혔습니까.

김신조 허…참, 그때 내가 약자입니다. 협조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이진삼 아우님, 입 좀 축이며 말해.



“가족까지 매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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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한 김신조가 사살된 간첩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동아일보]


▼ 현장을 지켜본 이 장군께서 문제를 제기하지 그랬습니까.   

이진삼 난 체포, 자수란 말이 나오는 것도 몰랐어요. 작전하느라 바빴으니까.

김신조 형님은 군인입니다. 군인은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언론에도 몇 차례 얘기했지만 증인이 없으니 ‘주장’에 그쳤습니다. 속내를 자서전 원고에 써놨는데 정보기관에서 반대해 ‘자수’란 말이 빠졌어요(자서전에는 ‘투항’으로 표기됐다-편집자).

도면에 청와대 내부 구조와 인원 및 화력 배치 등을 그려 가며 설명했더니 경호실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시 남한의 경비 상태가 그 정도였으니 내가 투항한 것으로 발표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 남은 나라도 생포된 공비로 알려져야 했다.

-김신조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동아출판사, 1994) 173쪽   



이진삼 아우님이 자수해서 우리 작전을 도왔는데 체포했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지금도 군 기록에는 체포한 걸로 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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