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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채식 폭력’ 일상화 굶거나, 왕따 되거나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

  • 김미루 |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kmrrrr12@korea.ac.kr

‘反채식 폭력’ 일상화 굶거나, 왕따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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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를 믹서에 돌리면…”

한 채식주의자는 인터뷰에서 “채식을 하면 채식을 지속해야 할 다른 이유들을 더 알게 된다. 가령 (채식을 하면) 정서적 안정이나 평온을 느끼게 된다. 자연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채식으로도 풍미 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채식주의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타인의 육식 습관을 존중한다. 그러나 ‘눈앞의 육류 음식이 어떤 경로로 왔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봤으면 한다. 토마토와 약간의 물을 믹서에 넣어 갈면 맛있는 토마토주스가 된다. 스테이크와 약간의 물을 믹서에 넣어 갈아보라.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육식을 하는 사람은 이런 걸 자신의 위 속으로 넣고 있는 것이다.”

한 과학 칼럼니스트는 “미래의 인류는 야만적인 육식을 중단할 것이다. 육식이 주는 유일한 장점은 특유의 맛과 식감인데,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은 친구나 지인,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문제에 자주 봉착한다. 취업준비생 박모(28) 씨는 최근 점심을 들기 위해 지인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비건인 박씨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종업원에게 “계란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지인은 “채식 같은 건 집에 혼자 있을 때나 하라”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이후 박씨는 이런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상황에 따라 육류를 먹는 플렉시테리안으로 어쩔 수 없이 전향했다. 이는 박씨에게 고통을 준다. 그는 “우리나라엔 음식 가려먹는 것을 안 좋게 여기는 관행이 있다. 식당엔 동물성 재료가 안 들어가는 메뉴가 별로 없다. 채식주의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모(22·여) 씨는 얼마 전부터 채식을 시작하면서 친구와 함께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런데 친구는 자신의 채식 위주 도시락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씨는 “채식 취향을 드러내면 주위 사람이 대체로 언짢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채식인 대부분은 ‘먹을 만한 것이 없는 상황’에 꽤 익숙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견과류 같은 것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비주류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혜수(20) 씨는 중학생 시절 작은 애완용 새를 키웠다. 이씨는 이 새가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안 뒤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됐다고 한다. 그는 고교 시절 페스코 채식을 했는데 이는 큰 불편을 수반했다. 학교 단체 점심 급식에선 매주 수요일 ‘잔반 없는 날’에 늘 고기가 들어간 반찬 또는 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이 나왔다. 친구들은 매주 수요일을 기다렸다. 이씨는 잔반(고기)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예 굶었다. 그래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뻥튀기 과자만 집어 들고…

이씨는 “나 하나 때문에 급식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러나 편견 섞인 말은 참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유난을 떤다” “채식이 몸에 더 안 좋아”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했다.

상황이 이러니 상당수 채식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는 실제 이유를 감춘다. 대신 “요즘 알레르기라서” “아토피에 걸려서”라고 둘러댄다. 5살 때부터 채식을 해왔다는 신소민(25) 씨는 “고기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불가피한 이유를 대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명령조든 설득조든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5월 27일 정오 고려대 녹지구장에서 축제 ‘지야의 함성 : 입실렌티’가 열렸다. 많은 학생이 정오부터 오후 11시까지 쉬지 않고 진행되는 공연에 참여했다. 이들은 끼니를 때울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학생회 측은 참치김밥을 나눠줬고 학생들은 이걸로 허기를 채웠다.

그러나 이 행사에 참석한 새내기 김효정(20) 씨는 남들이 먹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참치김밥 안에는 참치, 마요네즈, 햄, 게맛살이 들어 있었다. 모두 채식주의자인 김씨가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결국 김씨는 쫄쫄 굶었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학과 행사도 김씨의 식생활을 고려하진 않는다. 모든 음식엔 육류가 빠지지 않았다. 뒤풀이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테이블에 일괄적으로 나오는 안주는 주로 제육볶음이나 고기가 들어간 찌개 종류였다. 김씨는 기본 안주로 나오는 뻥튀기 과자만 집어 먹었다. 그러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회비를 내야 했다.

채식주의자인 대학생 조경민(21) 씨도 비슷한 상황에 자주 처한다. 조씨는 언젠가 과 단체 행사에서 “나도 먹을 수 있는 감자튀김 안주를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기적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

채식주의자인 대학생 박유미(21) 씨는 평소엔 동기나 선후배와 거리낌 없이 지내지만 식사 모임엔 웬만해선 안 가려 한다. 박씨는 “나만을 위한 음식을 주문해야 하니 민폐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채식주의자인 대학생 심진희(22) 씨도 “술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물만 연신 마시게 된다”고 했다.

직장에 다니는 채식인도 고기와 술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니 고기와 술이 빠지지 않는 직장 회식이나 학교 동문 모임 같은 데 참여하는 것을 안 좋아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김민성(31) 씨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비건 채식을 시작했다. 졸업 후 한국에서 직장을 구했다. 처음엔 회사에서 인기가 좋았다. 김씨의 식단이 다이어트 식단에 버금간다는 소식이 사내에 알려졌다. 덩달아 채식을 시작한 직원도 생겼다. 점심시간마다 김씨와 함께 건강식을 먹는 무리도 생겼다.

그러나 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문제는 회식 자리였다. 김씨는 저녁 회식에서 “나는 고기를 못 먹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한국의 직장에선 비건으로 도저히 배겨낼 수 없다고 판단해 이미 페스코 채식으로 단계를 하향 조종한 상태였다.

회식 때 선배들은 김씨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자리가 몇 차례 반복된 뒤로 김씨는 사내에서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 먹는 데 왜 불편하게 하냐”는 말도 들어야 했다. 업무상 실수에 대해서도 “유난을 떠는 성격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김씨는 이 직장을 그만두고 외국계 회사로 이직했다. 김씨는 “고기를 안 먹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행동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이모 씨도 회사 회식 때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한다.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자 상사로부터 “애 못 낳는다” “나이 들면 병 든다”는 말을 들었다.

여러 채식인은 채식주의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대신 이들은 같은 채식인과 즐겨 만났다. 채식주의자인 무렌 뭄타미르(26) 씨는 2012년 한국에 온 뒤 서울 신촌에 있는 채식 전문 식당에 취업했다. 전공과 무관한 결정이었다. 그는 “매 끼니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채식인과 어울릴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배제는 배제를 낳고

한 채식인은 육식을 하는 일반인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을 보면 채식을 하도록 설득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란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이아인(21) 씨는 일반인들로부터 “채식을 한다면서 왜 해산물은 먹느냐”는 말을 간혹 듣는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은 자기들끼리 위계를 따지지 않는다. 방향성이 같으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이씨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점을 모른다”고 했다.

김민성 씨는 채식하는 여성을 만나려고 한다. 채식하지 않는 여성과 데이트를 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김씨는 “채식을 하지 않는 것도 자유이지만 사귈 땐 불편한 점이 많다. 채식인을 만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대학교 1학년인 채식주의자 최모(20) 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엔 좀처럼 가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은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사람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최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채식하는 친구들,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편하다.”

김인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배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채식주의자가 비채식주의자를 기피하는 것도 또 다른 배타성”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고려대에 채식주의 학회 ‘뿌리:침’이 결성됐다. ‘비채식인의 인식 개선’이 주된 활동목표라고 한다. 이 학회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채식을 낯설게 여긴다. 비채식인과 함께 채식을 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동금(35) 씨는 “채식인과 비채식인이 서로 배려한다면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했다.

한강의 소설이 말하듯, 우리 사회는 채식주의자들에겐 ‘터프’한 곳이었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강의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신동아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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