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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대선 삼국지

홍준표의 ‘척당불기’(기개가 있고 뜻이 커서 남에게 얽매이지 않다)

권력의지는 크나 모래성을 쌓다

  • 김재욱|‘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저자 kajin322@hanmail.net

홍준표의 ‘척당불기’(기개가 있고 뜻이 커서 남에게 얽매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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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 3, 4월호에는 각각 진보 진영의 문재인과 안희정을 다뤘다. 현재의 지지율만 놓고 본다면 안철수를 다뤄야 하나 안철수는 전통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후보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호에는 보수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인 홍준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침내 각 당의 대표주자가 정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이 결전을 벌이게 됐다. 4월 10일 현재까지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면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선두권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가 뒤따르고 있지만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있다. 문재인, 안철수 양강구도에서 보수 진영의 대표주자인 홍준표 후보가 대선에서 완주해 얼마만큼 표를 획득하느냐에 따라 본선 승자가 갈리는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의 탄생 과정부터 살펴보자. 



경비원의 아들이 대통령 후보로

1989년 전두환의 형 전기환은 노량진수산시장을 소유하고 있던 재일동포 노상욱을 협박해 시장의 경영권을 강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직 대통령의 형을 수사한 검사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소속 홍준표(洪準杓)였다. 이후 홍준표는 몇 건의 굵직한 권력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슬롯머신 업계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던 박철언을 구속했다. 1995년에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데,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 검사의 모델이 홍준표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후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게 된다.

“한나라당은 오늘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줬다. 현대 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 사채로 머리채 잡혀 길거리 끌려 다니던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보여줬다.”(2011년 7월 5일 오마이뉴스)



이처럼 홍준표는 가난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검사가 됐고, 집권여당의 당 대표가 된 데 이어 도지사에 선출된 사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대에 영웅으로 회자되는 사람 중엔 어려움을 견디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이가 많다.

그러나 옛 영웅과 홍준표의 행적을 비교해보면 내용에서 차이가 난다. 난세의 영웅은 줄곧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지만 홍준표는 검사가 된 후 비교적 쉬운 길만 골라 갔다. 정계 입문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으로 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정치를 하려면 여당에서 해야지. 아무 소리 말고 신한국당으로 입당해라.”(이동형의 ‘와주테이의 박쥐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홍준표는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승승장구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송파(갑) 지역구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래 제16대(보궐), 17, 18, 19대 총선에서 동대문(을) 지역구에 출마해 모두 이겼다. 이후 2012년 당시 경남지사였던 김두관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가하기 위해 지사 직에서 사퇴하자 홍준표는 경남지사에 출마해 당선됐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졌고, 홍준표는 어렵지 않게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저격수’와 ‘막말 정치인’

강직하다고 해서 반드시 야당으로 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따라서 홍준표가 신한국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굳이 비난할 이유는 없다. 여당은 아무래도 자신의 소신을 상대적으로 좀 더 현실화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홍준표의 행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앞서 밝힌 것처럼 홍준표는 1989년 ‘노량진수산시장 사건’과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면서 ‘강직한 검사’의 이미지를 얻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홍준표는 권력을 ‘잃은’ 전두환의 형 전기환을 수사했고, 김영삼 정권에 반기를 들었으나 역시 권력을 ‘잃은’ 박철언을 수사해서 ‘정치 보복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특히 슬롯머신 사건에는 박철언뿐 아니라 김영삼의 측근들도 연루돼 있었는데 이들은 쏙 빼고 박철언만 수사했다. 게다가 박철언은 현재까지 뇌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박철언은 무엇 때문에 벌을 받았을까. 측근들의 ‘증언’이 전부였다. ‘증거’ 없이 ‘증언’만으로 박철언은 벌을 받은 셈이다. 이를 두고 홍준표는 이렇게 말했다.

“뇌물 사건의 80%는 증거 없는 사건이다.”

엄정하게 수사하고 기소해야 하는 검사가 ‘증거 없이도 잡아들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찌되었건 남는 건 기록이다. 일개 검사가 권력의 몸통과 한 판 싸운 것만으로도 대중은 홍준표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홍준표가 정치를 시작한 이후의 행적을 살펴보자. 홍준표는 정계 입문 첫해, 제15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운동원한테 2400만 원의 활동비를 주고 허위로 지출보고서를 꾸민 혐의로 기소된 후 당선 무효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검사 시절의 ‘강직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언제부터인가 대중은 홍준표에게 ‘저격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홍준표는 특정인을 향해 송곳 같은 말로 주목을 받았는데 대체로 보수 진영은 환호했지만 진보 진영은 ‘막말하는 정치인’이라며 폄하했다.

“김영삼 대통령 집 앞에는 주차할 곳도 없어요. 전직 대통령, 살고 계시는 현황을 한번 살펴보세요. 지금 노무현 대통령처럼 아방궁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이동형의 ‘와주테이의 박쥐들’)

홍준표의 말이다. 이뿐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몇 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가 거짓임이 들통나자 “야당의원이 그 정도 말도 못하냐?”고 한 말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된다. 정치적 라이벌에 대해 저런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다고 인정해주기로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상황은 용납하기 어렵다. 2012년 홍준표는 방송국에 출입하면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경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불러놓고 왜 기다리게 하느냐. 이런 데서 방송 안 하겠다.……넌 또 뭐야. 니들 면상을 보러 온 게 아니다. 너 까짓게.”(2012년 11월 15일 한겨레신문)

이 순간 자신의 아버지가 경비원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일까. 2011년, 홍준표는 삼화저축은행 불법 정치자금 유입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 한 여기자가 홍준표에게 질문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그걸 왜 물어봐? 너 진짜……너 맞는 수가 있다. 진짜 나한테 이러기야? 내가 그런 사람이야?……(야당이) 내 이름 거론했어? …… 내가 그런 사람이야? 버릇없이 말이야.”(2011년 7월 14일 프레시안)

이에 대해 ‘한나라당 측’이 사과를 했지만 도지사로서 도민들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도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홍준표의 행적을 살피다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동탁의 장수로 동탁이 여포의 손에 죽자, 용맹하지만 지략이 부족한 여포를 멀리 유인해 손쉽게 황제가 머물던 장안을 점령하고 권력을 차지한 이각(李傕·?~198)이다.


권력의 공백 노려 자리를 차지하다

192년, 왕윤은 여포를 이용해서 황제를 끼고 권세를 휘두르던 동탁을 죽였다. 동탁을 따르던 무리들도 모조리 색출해서 죽이거나 감옥에 가뒀다. 동탁의 부하인 이각은 섬서 지역에 나가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복귀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각의 진영에는 뛰어난 참모 가후가 있었다.

“왕윤이 섬서 지역 사람들을 죽이러 온다고 소문을 내십시오.”

소문을 듣고 섬서 사람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각의 군대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소리 질렀다.

“왕윤은 너희들을 죽이려 한다.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가! 우리 편이 되어 왕윤을 죽이자!”

이렇게 해서 이각은 10만 대군을 거느리게 됐다. 이각은 군대를 네 부대로 나눈 다음 황제가 있는 장안성으로 진격했다. 여포는 용맹했지만 머리가 좋은 장수는 아니었다. 이각은 여포를 유인했다. 맞서 싸우다가 도망을 가고, 다시 멈추기도 하면서 여포의 약을 올렸다. 여포가 쫓아오면 싸우는 척하다가 또 도망쳤다. 이러는 사이 이각의 나머지 부대가 장안성을 점령했다. 여포는 용맹했지만, 앞뒤에서 적군을 만났고, 무엇보다 병력 수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단신으로 도망쳐버렸다. 이렇게 이각은 쉽게 수도를 점령했고, 황제까지 손아귀에 넣어 권력을 장악했다.

홍준표가 무주공산이 된 경남에 입성해 도지사가 된 일이나, 2016년 탄핵 국면에서 주장을 잃어버린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된 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때 김두관이 사퇴하지 않았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더라면 홍준표가 현재와 같은 위세는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각의 군대는 장안을 공격하면서 동탁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왕윤과 그의 가족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각과 그의 동료 곽사는 동탁이 그랬던 것처럼 황제를 끼고 권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에 황제는 이각의 세력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몰래 서량태수 마등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각을 치라고 명령했다. 마등은 기세등등하게 장안으로 진격했으나 가후는 이각에게 지구전을 하라고 권했다. 두 달이 지나자 멀리서 원정을 온 마등의 군대에 군량이 바닥나 어쩔 수 없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크게 이겼다.

이각은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 황제가 미웠지만, 황제가 있어야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각은 황제와 황후를 별궁으로 옮겨놓고 조카 이섬에게 감시하게 했다. 이섬은 황제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주지 않아 황제와 주변 신하들이 며칠씩 굶곤 했다. 참다못한 황제가 이각에게 사람을 보냈다.

“쌀과 소 뼈다귀를 조금만 보내달라. 신하들에게 먹이려 한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으면 됐지, 뭐가 부족해서 고기까지 달라고 하시오!”

그러고는 일부러 썩은 고기와 물러터진 음식을 보냈다.

정치가 또는 행정가로서 홍준표의 대응방식과 비교해보자.

“전교조, 일부 종북세력, 이에 영합하는 반대세력과 일부 학부모단체들이 연대해 무상급식을 외치고 있다.”(2015년 4월 3일 경향신문)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어릴 때 수돗물을 먹었다.”

여기에서 무상급식의 시시비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복지와 하등 관계가 없는 ‘종북’을 끌어들이고, ‘재정 부족’으로 인해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면서 자신은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미국 출장 중 골프를 쳐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동료와 권력투쟁

황제를 별궁에 모셔놓은 이각은 동료인 곽사와 권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둘은 몇 달 동안 장안에서 시가전을 벌였고, 이 와중에 무고한 백성들만 죽어나갔다. 이각의 참모인 가후는 이런 상황을 크게 우려했다. 이대로 가면 이각의 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가후의 속내를 알아차린 조정의 신하는 황제한테 가후를 만나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가후는 황제 명의로 편지를 써서 우선 서량병과 강족(羌族)으로 구성된 이각의 주력부대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이각의 세력을 서서히 약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황제는 이각을 안심시키기 위해 대사마 벼슬을 내려주었다. 이각은 이 모든 게 무당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부하 장수한테는 상을 내리지 않고 무당한테만 후한 상을 내렸다. 부하 장수들은 사기가 꺾였고, 이들 중 한 명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이각한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전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에서 이각은 장제(張濟)라는 사람에게 공격을 당해 황제를 빼앗긴다. 황제는 장제에게 장안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옛 도읍지인 낙양으로 돌아갔다. 황제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이각과 곽사는 잠시 싸움을 멈추고 황제를 추격했다. 이때 황제는 조조를 불러들였다. 이각과 곽사는 조조 진영의 하후돈, 전위, 조인, 허저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크게 패해서 겨우 목숨만 구해 산적 무리 속으로 도망갔다. 조조는 부하 장수를 보내 이각을 죽였다. 곽사는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홍준표의 원래 이름은 홍판표(洪判杓)였는데 ‘세상 사람의 표상’이라는 뜻을 지닌 ‘준표(準杓)’로 개명했다고 한다.(2009년 1월 13일, 주간경향) 성명학에 밝은 사람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이름을 바꿨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일까. 어찌됐든 홍준표는 현재 보수 진영의 대표주자로서 일전을 앞두고 있다.

살펴본 바대로 홍준표는 비록 쉬운 길을 택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이각처럼 2인자 또는 비주류로 활동하면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다. 앞서 그의 정치를 하는 태도를 다소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이 역시 홍준표가 정치하는 방식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져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온 점은 그 자체로 인정할 만하다고 하겠다.

끝으로 이각은 결국 패망했지만, 주장 동탁이 죽자 곧바로 권력을 장악해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다. 홍준표 역시 이각처럼 주장이 사라지자 즉시 그 자리를 차지해 보수 진영 유권자를 어느 정도 결집하는 데에는 성공한 듯하다. 그러나 본선에서의 상대가 조조로 변신한 문재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김재욱



● 1972년, 경북 봉화 출생 
● 동국대 한문학과(학사), 교육대학원(석사)
● 고려대 국문학과 한문학 전공(박사, 한국한시, ‘목은 이색의 영물시 연구’)
●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고전철학 자문
● 現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 
● 저서 ‘삼국지인물전’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외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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