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특집| 요동치는 동아시아

“체스판 卒 노릇 안 돼”… 日에 ‘러브콜’ 활로 모색

대만 시각에서 본 美·中 패권다툼

  • 최창근|대만 전문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입력2017-05-04 12: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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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손에 쥔 ‘협상용 칩’
    • 中, ‘경제 보복’으로 대만 압박
    • 美·中 틈바구니 벙어리 냉가슴
    • ‘동병상련’ 韓은 야속한 존재
    2009년 전파를 탄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원작은 대만 CTS의 ‘유성화원(流星花園)’. 평범한 집안 딸 산차이(杉菜)가 귀족학교에 입학해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트렌디 드라마다. 여주인공 산차이로 분한 쉬시위안(徐熙媛)과 재벌 2세 청년 그룹‘F4(Flower 4)’가 등장한다. 산차이는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울지 않는’ 캐릭터다.

    ‘대류(臺流)’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유성화원’의 산차이를 보면 묘하게 다른 대만 여성이 떠오른다. 2016년 5월 20일, 대만 총통으로 취임한 차이잉원(蔡英文). 드라마와 달리 그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국립대만대학, 코넬대학을 거쳐 런던정치경제대학(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년(芳年) 27세에 국립정치대학 교수가 됐으며 정계 입문 후 승승장구해 장관, 입법위원, 부총리, 야당 주석을 거쳐 중화권 첫 여성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다만 총통 취임 후 그의 처지는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 산차이를 떠올리게 한다. 산차이가 ‘F4’에 둘러싸인 것처럼 미국·중국·일본·한국 등 주변 네 나라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대만의 상황도 묘하게 드라마와 포개진다.

    ‘유성화원’에서는 산차이를 둘러싸고 F4가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사랑과 전쟁’이 그렇듯 갈등과 긴장이 반복된다. 대만을 둘러싸고 주변 네 나라는 밀고 당기기를 지속한다. 드라마 속에는 ‘꽃 같은(華樣)’ 남자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에는 ‘스트롱맨’들만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다.


    中, 추가 보복 조치 준비

    대만과 차이잉원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존재는 ‘F1’ 중국이다.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은 2016년 1월 총통·입법원 동시선거에서 압승하며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했다.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차이잉원 총통 취임 이후부터 압박 수위를 높여오고 있다. 민진당이 첫 집권한 2000~2004년 대륙위원회(통일부 해당) 주임위원으로 일한 차이잉원은 양안관계 전문가다.



    그는 급진적인 대만 독립을 추구해 중국·미국과 마찰을 빚은 천수이볜((陳水扁) 집권기의 경험을 교훈 삼아 양안문제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해왔다. 독립과 재통일 문제에서 어느 한쪽도 아닌 ‘현상 유지(status quo)’를 표명한 것이다. 대만 독립을 갈망하는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면서 중국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총통 취임 후 상황은 달라졌다. 차이잉원에게 모호함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중국은 양안문제에 관한 국민당·공산당의 합의인 1992컨센서스(92共識)의 일중각표(一中各表·하나의 중국이나 중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이 각각의 ‘중국’을 대표) 준수를 요구했다. 지키지 않을 경우 전방위 보복이 따를 것이라는 압박도 가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 박신양의 대사를 빌리자면 “왜 말을 못해? 중국은 하나다, 대만도 중국의 일부분이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은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일관하며 애를 태우는 형국이다. 애매모호한 태도의 대만에 대해 중국은 실력행사에 나섰다.

    첫 조치는 경제보복이었다. 2016년 5월 차이잉원 총통 취임 직후 중국 당국의 ‘여행금지령’ 속에서 대만을 찾는 중국 여행객이 크게 줄었다. 연인원 100만 명 이상 급감해 500억 신타이완달러(1조8500억 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대(對)대만 교섭기구 해협양안관계협회장 천더밍(陳德銘)은 2017년 3월 “중국을 상대로 사업하는 대만인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는 것이 기본조건”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중국은 다음 보복 조치도 준비 중이다. 어떤 수단이 되건 대(對)중 무역의존도가 40%에 달하는 대만 처지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무력시위는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대만이 일으킨 장난질…”

    대만도 손을 놓고 있진 않다. 차이잉원은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재임 시절 추진한 ‘남향(南向)정책’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신(新)남향정책’ 추진으로 맞서고 있다. 목표는 동남아시아와 경제·무역·관광 유대관계를 강화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외롭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차이잉원에게 ‘구원의 빛’을 던진 것은 ‘F2’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이단아’ ‘아웃사이더’로 평가받아온 그의 등장은 대만 처지에서는 ‘기대 반, 불안 반’이었다. 트럼프가 양안관계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전부터 “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자주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대만은 기대에 부풀었다.

    첫 만남은 기대 이상이었다. 2016년 12월 2일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와 차이잉원은 10여 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 미·대만 단교 이후 37년 만에 이뤄진 양국 정상 간 통화였다. ‘당선 축하 인사’를 명분으로 이뤄진 통화에서 두 사람은 정치·경제·외교·안보 현안을 주제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아닌 밤의 홍두깨’에 중국은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외교부 공식 성명에서 “차이잉원과의 통화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흔드는 것이다” “총통 호칭을 쓴 것도 용납 못한다”며 반발했다. 대만을 향한 칼날은 더 매서웠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대만이 일으킨 ‘장난질’로 국제사회에 이미 형성된 ‘하나의 중국’ 원칙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쏘아붙였다. 관영지 환추(環球)시보는 괘씸한 대만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주문했다.

    중국의 항의에도 미국의 환대는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당선인 외교·안보 고문 스티븐 예이츠 아이오와 주 공화당 의장이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1987~89년 대만 가오슝(高雄)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차이잉원을 예방했다. 2017년 1월 차이잉원은 온두라스·니카라과·과테말라·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4개 수교국 순방에 나섰다. ‘미국 경유외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가 탄 에바항공 전세기는 1월 7일 텍사스 주 휴스턴 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가오스타이(高碩泰) 주미국 대만대표, 제임스 모리아티 미재대협회(美在臺協會, AIT) 대표 등이 기내 영접했다. 국무부 의전팀은 경찰 모터사이클 10여 대로 차이잉원이 탑승한 전용차를 선도했다. 숙소에는 대만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가 게양됐다. 국가 정상에 준하는 예우였다. 중국은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 전단이 대만을 한 바퀴 도는 무력시위로 응수했다.


    트럼프가 쥔 ‘고액 칩’

    2017년 2월 샤오메이친(蕭美琴) 집권 민진당 입법위원을 단장으로 한 국회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다. 손튼(Susan A. Thornton)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국무부 청사에서 대표단을 맞았다. 대만 입법위원, 고위 관리가 국무부 청사에 발을 디딘 것도 사상 처음이었다.

    결과적으로 대만해협 양안(兩岸)을 뒤흔든 ‘트럼프 풍(風)’은 대만에는 훈풍(薰風), 중국에서 볼 때는 삭풍(朔風)이었다. 대만은 미국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트럼프는 사업가였다. 베스트셀러 ‘협상의 기술’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양안관계에서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가하며 ‘국익 극대화’를 도모한다. 트럼프가 손에 든 에이스 카드는 ‘하나의 중국 정책’, 고액 칩은 ‘대만’이었다. 에이스 카드와 칩을 양손에 쥔 트럼프는 협상의 대가로서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만을 ‘지렛대’ 삼아 중국을 견제할 것을 예고한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역사가 남긴 트라우마

    트럼프가 펼친 첫 카드는 테리 브랜스테드 전 아이오와 주지사의 주중대사 지명이었다. 시중쉰(習仲勳)·시진핑 부자(父子)와 30년 넘는 우의를 지속해온 그는 시진핑의 ‘절친’이다. 친중국파 대사 지명은 시진핑에게 내미는 화해 카드였다. 트럼프의 두 번째 카드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었다. 취임 후 아시아 첫 순방지로 일본을 찾은 틸러슨은 “일본이 제일 중요한 우방, 한국은 파트너”라는 말로 서울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어 한국을 찾은 그는 외교부 장관과의 만찬도 생략한 채 베이징으로 날아가버렸다. 왕이, 시진핑을 연달아 만난 틸러슨은 미·중 관계 발전과 관련해 ‘상호존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양국이 상대방의 ‘핵심이익’을 존중한다는 것은, 미국이 중국의 ‘내정’인 대만·홍콩·티베트 문제, 나아가 남중국해 문제에도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함의(含意)로 받아들여졌다.

    중국 외교가는 틸러슨의 이 표현을 호평했다. 양안관계로 초점을 좁히면 ‘내정문제’이자 ‘핵심이익’인 대만 문제에 있어 미국은 중국의 원칙과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뜻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문제는 4월의 트럼프·시진핑 회담이었다. 틸러슨의 방중(訪中)은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트럼프가 ‘거래의 기술’로 가져갈 최대 이익은 대(對)중국 무역적자 해소다. 취임 전부터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민감한 부분(핵심이익)을 건드리던 트럼프가 ‘협상용 칩’으로 대만을 활용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대만 정가·외교가를 엄습했다. 2017년 3월 20일, 대만 입법원 대정부 질의에 출석한 장샤오웨(張小月)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은 “우리는 체스판의 졸이 될 순 없다. 아니, 돼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장샤오웨는 대만의 대(對)미국 외교창구 북미사무협조위원회(北美事務協助委員會) 주임위원을 지낸 ‘미국통’이기도 하다.

    4월 7일 정상회담을 개최한 트럼프와 시진핑은 ‘공동성명’도 ‘공동기자회견’도 없이 첫 만남을 마무리했다. ‘하나의 중국’ 등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대만 관계 당국은 안도감을 표시했다. 두 ‘스트롱맨’의 첫 대면을 앞두고 대만 국가안전회(NSC)는 시뮬레이션 기법까지 동원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던 터였다.

    고비는 넘겼으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에게 대만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모호성’ 지속으로 인한 대만의 불안은 지속될 전망이다. 미·중 관계 개선은 대만엔 악몽이다. 역사가 남긴 트라우마도 깊다. 1970년대 이래로 미국은 늘 중국과 대만을 양손에 쥐고서 저울질해왔다.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쪽은 늘 대만이었다.

    서막은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의 중국 방문이다. 이 방문을 기점으로 ‘죽(竹)의 장막’이 걷히고 미·중 데탕트 시대가 펼쳐졌다. 키신저의 ‘폴로(Polo)작전’ 3개월 후 ‘대만의 중화민국(中華民國在臺灣)’은 유엔총회 제2758호 결의안에 따라 창설 멤버로 참여한 유엔에서 퇴출됐다.


    북핵 해결하려 대만 버린다?

    이듬해 2월 리처드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마오쩌둥(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를 만난 그는 상하이코뮈니케를 발표했다. 코뮈니케에서 미·중 정상은 대만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전(全) 중국 유일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본토에 귀속돼야 할 일개 성(省)에 불과하다. 대만 해방은 어느 나라도 간섭할 수 없는 중국 내정문제다.”

    6년 후인 1978년 12월 15일, 1979년 1월 1일부로 미·중 수교를 발표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중국 유일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인정한다”고 재차 확인했다. 이후 1982년 ‘8·17코뮈니케(제2차 상하이코뮈니케)’에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3가지 코뮈니케를 통해 ‘새로운 친구’ 중국의 손을 들어준 미국은 ‘옛 친구’ 대만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미·중 수교 직후인 1979년 4월 10일 미국 상·하원은 ‘대만관계법(TRA)’을 통과시켰다. 미국 ‘국내법’ 형식을 따랐지만 대외관계를 규정하는 특이한 법률이다. 법에는 대만으로의 무기 수출과 전략·전술 제공, 미국 내 대만 자산 문제, 단교(斷交) 후 비공식 외교관계 문제 등이 명시돼 있다. 

    1982년 8·17코뮈니케 발표 직전 레이건 행정부는 ①미국은 대만으로의 무기 수출에 관해 기한을 정하지 않는다 ②미국은 대만으로의 무기 수출에서 중국과 사전 협상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③미국은 대만해협 양안 간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④미국은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는다 ⑤미국은 대만의 주권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변경하지 않는다 ⑥미국은 대만으로 하여금 중국과 협상토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6개 조 보장(Six Assurances)’을 천명했다. 흔히 ‘3코뮈니케 1법’에 더해 6개 조 보장은 미국의 대(對)중, 대(對)대만 관계의 기초가 돼왔다.

    트럼프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온 원칙을 뒤흔들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것은 대만의 희망일 뿐, 트럼프의 목적은 중국의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보자는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쉽게 말해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대만 문제를 찔러보면서 “너 어디까지 참을 수 있니?”라고 시험해보는 것이다. “중국, 네가 정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우리는 양안문제가 네 집안 문제(내정문제)라는 건 인정할게”라는 무언의 메시지도 더해진다.

    이렇듯 미국은 대만에 ‘우리는 친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빠져버리는 ‘썸남’ 같은 존재다. 대만으로서는 야속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무대에서 상대적 약소국이 겪어야만 하는 비애다. 트럼프가 ‘이단아적 기질’을 좀 더 발휘한다면 이제껏 이론적 논의만 돼온 ‘대만·북한 빅딜’을 성사시킬지도 모른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만을 포기한다’는 요지의 워싱턴 싱크탱크가 만든 보고서 한 편이 대만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억도 생생하다.



    일본에 求愛하는 대만

    미·중과의 복잡다단한 삼각관계 속에서 대만이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은 또 다른 상대는 ‘F3’ 일본이다. 50년간 대만을 식민 지배한 일본은 1972년 단교 이후 경제·사회·문화적으로 긴밀한 교류를 지속해오고 있다. 중국과 센카쿠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영토 분쟁을 벌이는 일본 처지에서 반중(反中)·친일(親日)·독립 성향의 민진당 정부 출범은 호재다.

    2011년 9월 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타이베이 한 호텔에서 민진당 주석 차이잉원을 만났다. 총리에서 물러나 있던 시기임에도 그의 정치적 위상에 비춰볼 때 파격이었다. 아베는 2012년 12월 다시 총리로 복귀했다. 차이잉원은 2016년 총통이 됐다. 대만·일본의 하모니는 예견된 일이었다.

    차이잉원이 조각(組閣)과 더불어 재외공관장 인사를 단행할 때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셰창팅(謝長廷)을 주일본 대표자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민진당 원로다.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 당명(黨名)도 셰창팅의 머리에서 나왔다. 입법위원, 민선 가오슝 시장, 행정원장, 민진당 주석을 거쳐 2008년 총통 후보로 입후보한 셰창팅의 주일본 대표 임명 자체가 일본을 향한 구애 메시지였다. 그는 일본 부임 전 기자간담회에서 “대만과 일본은 운명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 차이잉원도 임명장 수여식에서 ‘대표’가 아닌 ‘대사’라 호칭하며 힘을 실어줬다.

    일본은 차이잉원 취임 직후 NHK 교향악단을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6월 3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공연은 1971년 2월 이후 45년 만이었다. 공연장에는 아베의 어머니 아베 요코(安倍洋子)가 자리했다. 2017년 3월에는 아카마 지로(赤間二郞) 총무성 부대신(차관)이 ‘공무상’ 타이베이를 찾았다. 그는 단교 후 45년 만에 공식 방문한 현직 최고위 관리다.


    “공짜는 없다”

    아베 내각은 대만의 숙원도 해결해줬다. 1972년 9월, 대만·일본 단교 이후 비공식 ‘대표부’ 역할을 해온 교류협회(交流協會)의 명칭 변경이 그것이다. 종래 명칭만으로는 기구의 성격도 역할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2017년 1월, 협회 명칭은 ‘일본·대만’교류협회로 바뀌었다.

    대만 측 대(對)일본 외교기구인 아동관계협회(亞東關係協會) 명칭을 대만·일본관계협회(臺灣日本關係協會)로 바꾸고, 도쿄 주재 대표부 명칭도 종전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에서 ‘대만’경제문화대표처로 개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대만’ 명칭 사용은 용납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용인하는 명칭은 중화민국, 대만도 아닌 ‘중화타이베이(中華臺北, Chinese Taipei)’다.

    겉보기에 화기애애한 대만·일본의 밀월관계 이면에는 국익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균형추로 대만 카드를 적극 활용한다. 이는 대만 처지에서도 나쁘지 않다. 다만 공짜는 없는 법, 치러야 할 대가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식품 금수(禁輸)조치 해제다.

    2011년 후쿠시마(福島) 대지진 이후 대만은 군마·도치기·이바라키·지바 등 동(東)일본 4개 현(縣) 식품 수입을 금지해왔다. 2016년 11월 대만 위생복리부(한국 보건복지부 해당)는 해당지역 농산물 금수조치 해제를 발표했다. 대만 시민사회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파는 처사’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재통일을 주장하는 국민당 등 야권의 반발도 차이잉원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차이잉원이 공을 들이는 마지막 ‘F4’ 한국은 늘 야속한 존재였다. 한국에는 애증(愛憎)이 교차한다. 한국은 1992년 8월 갑작스레 ‘이별통보’ 후 중국과 수교해버렸다. 언젠가 헤어질 줄은 알았지만 배려가 없었다. 처사도 지나쳤다. 지난날 ‘혈맹’ ‘형제의 나라’로 불릴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에 배신감이 컸다.

    단교 이후 한국이 보여준 처사는 대만을 더 화나게 했다. 철저히 중국 편만 들고 대만은 무시하고 소외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2013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장에 축하사절로 파견한 입법원장과 국가안전회(NSC) 비서장을 행사장 입구에서 쫓아낸 전력도 있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은 늘 중국 역성을 들었다. 대만 처지에서 더 화가 나는 건 살림살이도 역전된 것이다. 한국보다 형편이 나아 ‘형의 나라’라고 자부해왔으나 2006년을 기점으로 경제력에서 뒤집혔다.

    한국과 대만은 동병상련(同病相憐) 처지다. 세계적 경제강국이지만 미국·중국·일본 등 강대국 틈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기대는 처지도 비슷하다. 중국 눈치 보느라 대놓고 가까이 지내기도 힘들다. ‘공통의 식민 모국’ 일본과 관계 개선도 필요하지만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다른 그들을 무작정 믿기도 어렵다.



    한국-대만 관계 개선 중

    단교 후 한국과 공식 외교관계는 회복하지 못했지만 경제·문화·관광 등 비(非)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실질 관계는 개선되고 있다. 2016년 통계 기준으로 한국은 대만의 6번째 수출 대상국이자, 7번째 수입 대상국이다. 관광 부문에서 2014년 상호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중국의 대(對)한국 보복이 시작된 후 중국 관광객을 대신하는 존재가 대만인들이다.

    정치·외교 부문 관계도 개선 중이다. 2014년 7월 부임한 스딩(石定) 주한국대만대표부 대표는 외교부 정무차장을 지냈다. 1992년 단교 이후 부임한 대표 중 최고위급 인사다. 한국의 정치 변동도 대만에는 기회다. 2017년 5월 9일 한국 대선을 앞두고 차이잉원 총통은 집권 민진당 차원의 한국 방문단 구성을 지시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년 발간한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거대한 체스판으로 묘사했다. 그의 관점에서 대만이나 한국이나 체스판의 졸(卒)이기는 매한가지다. 녹록하지 않은 ‘F4’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는 대만의 처지는 한국인에게도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미국우선주의’ ‘보호무역’을 내세운 트럼프노믹스 최대 피해국은 중국에 이어 한국·대만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의미심장하다.‘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 관계에서 우리는 ‘옛 친구’ 대만의 사례에서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최창근
    ● 1983년 경남 고성 출생
    ●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
    ●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원, ‘월간중앙’ 타이베이 통신원
    ● 現 한국외국어대 행정학 박사과정, 동아시아학통섭 포럼 총무이사
    ● 저서 : ‘대만 :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타이베이 :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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