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프리랜서 상대로 세무사기를 벌인 세무사 유모(49) 씨가 구속됐다. 국세청은 유 세무사에게 세무를 맡긴 프리랜서들에게 경비사용 내역을 소명하라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1인당 부가된 세금은 최소 수백만 원에서 최다 수억 원. 프리랜서들의 ‘죄’가 무엇이기에 피해자가 아닌 ‘공모자’ 취급을 받는 것일까. 국세청은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징수하려는 걸까.
“수년간 세금을 덜 내거나 과다환급을 받은 것은 부당이익이다.”
올 2월 대한민국 국세청은 보험설계사, 자동차 영업사원, 학원강사, 외판원 등 이른바 프리랜서들에게 지난 5년(2011~2015)간 종합소득세 신고 과정에서 누락된 경비사용 내역을 모두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소득세의 일반적인 국세부과제척기간이 5년인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 국세청으로부터 증빙 내역 제출통지서를 받은 프리랜서들은 최근 5년간 소득액에 대한 실제 비용을 입증해야 한다. 소명자료 제출기한은 2011년 귀속분이 4월 15일, 2012년 이후 귀속분이 5월 15일까지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 소득세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안내문을 받은 프리랜서는 총 4324명, 건수로는 8609건에 달했다(4월 7일 기준). 이 가운데 보험설계사가 3031명(6228건)으로 가장 많고, 학원강사(320명·648건), 모집수당(290명·486건), 외판원(199명·393건), 직업운동가(147명·248건)가 그 뒤를 이었다. 작가, 배우, 화가, 작곡가, 연예보조, 다단계판매, 프로그래머 등 기타 직군도 337명(606건)이나 됐다.
국세기본법에 의하면 이들은 허위증빙으로 인한 신고불성실 가산세(최고 40%)를 내야 한다. 만약 소득이 일정 규모(연매출 7500만 원)를 넘어 회계장부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복식부기의무자가 장부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무(無)기장가산세 20%도 물어야 한다.
복식부기는 회계장부를 만들고 세무를 신고하는 회계 용어. 이번 ‘세무사 스캔들’에 연루돼 국세청으로부터 안내문을 받은 프리랜서 모두가 복식부기의무자에 해당한다. 여기에 이들은 세금을 미납한 날로부터 납부불성실 가산세(일 0.03%, 연 10.95%)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소명하지 못하면 1인당 세금은 최소 수백만 원에서 최다 수억 원을 내야 한다.
‘최대한 환급 보장’의 함정
사건의 전말은 지난해 10월경 세상에 드러났다. 서울지방국세청이 서울 봉천동에서 H회계사무소를 운영하던 유 세무사의 개인 탈세 혐의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던 중 유 세무사가 거짓으로 비용을 계상해 고객들이 세금을 환급받도록 한 정황을 확보한 것이다. 이른바 ‘세무사 스캔들’이다.유 세무사의 사기행각은 공격적이고 과감했다. 그는 2009년부터 보험회사나 자동차 대리점, 학원가 등을 돌며 세금과 관련된 강의를 했고, 회사와 단체계약을 맺어 고객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가 작성한 전단지에는 연매출 7500만 원 이상 소득자인 프리랜서들에게 ‘최대한 환급 보장’ ‘저렴한 수수료’ ‘철저한 사후관리’ ‘서류준비 간소화’ 등을 보장한다는 홍보문구가 쓰여 있었다.
영업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경비를 과다 계상하는 방식으로 기장을 허위로 작성해 프리랜서들이 내야 할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유 세무사가 작성한 프리랜서들(사업소득자)의 소득신고 내역은 금액이 거의 비슷했다. 일례로 보험설계사 김모 씨와 자동차 영업사원 박모 씨의 소득신고 내역 중 ‘접대비’ 항목 금액은 실제와 달리 1960만 원으로 동일하게 책정됐다. 당시 고객들이 소득신고 내역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유 세무사가 세금신고 결과를 문자메시지와 e메일로만 간단히 알렸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별도로 종합소득세 신고 내역을 뽑아보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거였다.
하루아침에 탈세 공범
그러나 이는 불법이고 탈세였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유 세무사를 조세포탈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현재 구속돼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랜서들이 경비 지출 내역을 소명하라는 안내장을 받은 후,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법체계와 일부 납세자의 납세의식 결여, 과당경쟁으로 인한 세무시장 폐해 등을 둘러싸고 격론이 일었다. 세금추징 행정명령이 내려진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프리랜서와 국세청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루아침에 ‘세무사 스캔들’의 공범이 돼버린 프리랜서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대책위는 ‘납세자의 날’이던 3월 3일 서울 수송동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기획재정부 및 더불어민주당 정책협의회도 방문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급기야 4월 8일에는 서울 장충동 동국대에서 대책위 총회 출범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프리랜서들은 “회사가 마련한 세무교육을 통해 유 세무사를 알게 됐고, 세무 업무는 잘 모르지만 세금은 제대로 내야 하니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유 세무사에게 맡겼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 세무사가 합법적으로 절세를 해주겠다고 해서 소득 자료와 보험수수료, 각종 경비 내역 등을 자료로 제출했다는 프리랜서도 상당수였다.
노재수 전국 프리랜서 세무사기 대책위 언론팀장은 “국세청이 세무사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을 소홀히해서 벌어진 일인데, 이를 고스란히 프리랜서들에게 원칙론만 내세워 ‘탈세범’으로 몰아간다. 우리야말로 이번 사태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프리랜서라면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루이틀 한 게 아닐 텐데, 세무사가 탈세하는 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저렴한 수수료’ ‘최대 환급금’을 보장한다는 세무사를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나아가 세금대리 업무를 맡긴 프리랜서들의 책임도 작지 않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세청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하다. 프리랜서들이 수년간 유 세무사에게 종합소득세 환급 업무를 맡겼고, 해당 세무사가 수입과 경비 지출 내역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허위로 작성해 세금을 부당하게 환급받았다는 것이다. 세무 당국은 사실상 프리랜서들이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47조와 소득세법을 세금추징의 근거로 삼았다.
국세청은 무엇보다 ▲과세관청으로서 소명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 ▲정확한 세금을 내는 것은 납세자의 의무라는 점 ▲납세자가 갖고 있던 자료를 통해 세무대리인이 세금을 신고하는 것이므로 보관의무도 납세자에게 있다는 점 ▲과다환급 및 과소납부로 부당한 이익을 얻었으니 불성실 가산세 등을 내야 한다는 점 ▲ 세무사의 과실이 있더라도 납세자의 책임까지 면피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내세운다. 결론은 “탈세를 일삼은 유 세무사가 세무대리를 했으니 프리랜서들도 공범이다. 최대한 소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단순경비율 제도의 허점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먼저 유 세무사에게 세무기장을 맡긴 프리랜서들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보험설계사, 자동차 영업사원, 학원강사, 외판원 등 프리랜서들은 특수고용직 종사자다. 즉 인적용역 사업자로, 법적으로는 ‘3.3%(소득세 3%, 지방소득세 0.3%) 사업소득자’에 해당한다. 직장인과 달리 노동법과 4대 보험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신용카드, 보험료, 교육비, 의료비 등을 공제받지 못한다. 이들은 세금도 직접 신고한다.매년 5월 의무적으로 자신이 납부할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는데, 1년간 벌어들인 소득에서 차량유지비, 출장비, 보험료, 접대비, 판관비, 경조사비 등 각종 비용을 뺀 후 기본세율(6~40%)을 곱한다. 이 때문에 프리랜서들에게는 ‘비용처리’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프리랜서의 특성상 지출에 대해 명확히 비용 증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금거래가 많고 증빙서류가 현금영수증 한 장뿐이다 보니 ‘접대비’인지 ‘생활비’인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경비지출 내역 중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점도 애로사항이다.
보험설계사 이모 씨는 “고객 관리 차원에서 명절이면 농산물을 선물로 보내는데, 감자를 100만 원어치 구입하면 업체에서 택배로 보내준다. 영세사업자인 데다 운임비도 따로 안 받는 마당에 카드로 결제할 수 없으니 보통 현금으로 지급한다. 이런 경우 소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그나마 택배를 이용했으니 그것으로 간접 소명을 한들 세무서 조사관이 이 사실을 인정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이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리랜서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탈세 스캔들’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현행 세법에는 이런 불합리함을 감안한 조치가 마련돼 있다. 단순경비율 제도다. 업종별로 소득구간을 정하고 일정 비율에 따라 특별한 증빙 없이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책위는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반박한다. 사업자의 경우 매출액이 아닌 이익을 기준으로 삼는데, 매출이 늘어도 손해나 지출이 증가하면 과세가 줄어들 수 있다. 반면 특수고용직은 매출이 늘면 비용도 함께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영업사원의 경우를 보자. 고객이 고가의 자동차를 구입하면 이 영업사원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선물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페이백(Pay Back·자동차 구매 시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미리 약속한 보조금을 계약 후 현금으로 추가 지급하는 것) 등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용처를 정확히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비용을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그만큼 세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프리랜서들이 “5년간 증빙자료를 갖춰 신고하라”는 국세청의 행정명령에 “가혹한 처사”라고 토로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가산세까지 내라고 하니 이들로선 그야말로 ‘세금폭탄’이 떨어진 격이다. 대책위 측은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 ▲경비 소명 기간 및 납부 기한 연장 ▲세금 분납기간 연장(현재 분납 9개월 가능) ▲사업과 관련된 소명에 대해 포괄적으로 수용 ▲단순경비율 제도 개선 ▲과세 기한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법적으로 납세 최종 입증의 책임이 납세자에게 있다 해도 유 세무사의 허위 기장으로 피해를 본 것인 만큼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국세 당국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병선 대책위 대표(흥국화재 보험설계사)는 “단순경비율 제도에 허점이 있는데도 이 기준을 적용해 프리랜서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타당한지 따져야 한다. 단순경비율 제도가 현재 상황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국세청의 세금징수는 과하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직 과세, 수술대 오르나
문제는 또 있다. 프리랜서에게 적용되는 현행 세법 복식부기의무대상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다. 프리랜서의 연매출이 7500만 원 이상이라도 실제로는 근로자처럼 출·퇴근하는 등 유사한 형태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슷한 소득을 올리는 근로자와 달리 별도의 ‘납세협력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납세협력비용은 증빙서류 발급 및 보관, 장부 작성, 신고서 작성·제출, 세무조사 등 세금을 신고·납부하는 과정에서 납세자가 부담하는 제반 비용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일부 납세자의 납세의식 결여와 세무사의 부도덕에서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할까. 혹시 납세에 관한 일반 국민의 의식이 달라진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 지난해 12월 박명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납세에 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변화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2299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과세관청인 국세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3.9%를 기록했다.
반면 신뢰한다는 응답은 13.7%에 불과했다. 박 위원은 논문에서 납세 윤리의식을 개선하는 방안 중 하나로 ‘공정한 조세제도의 확립’을 꼽았다. 실제로 이번 사태를 놓고 보면 세무사를 관리하는 세무 당국의 책임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구속된 유 세무사의 경우 앞서 2015년경 세무대리 탈세 행위가 적발돼 국세청으로부터 과태료(650만 원)를 낸 바 있다.
당시 국세청이 유 세무사를 철저히 조사하고 사후관리를 했더라면 한 명의 세무사가 무려 4000명이 넘는 프리랜서를 상대로 세무 사기를 벌이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국세청이 ‘업무 태만’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비단 유 세무사에게 기장을 맡긴 일부 프리랜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크다. 대책위에 따르면 국세청으로부터 세금추징 안내서를 받은 프리랜서 중에는 현재 구속된 유 세무사가 아닌 다른 세무사를 통해 세금대리 업무를 처리한 경우도 포함됐다.
자동차 영업사원 박모 씨는 “현재 2개년도(2013년, 2015년) 경비 지출 내역을 소명해야 하는데, 2013년은 유 세무사를 통해 세무기장을 작성했지만 2015년엔 다른 세무사에게 세금업무를 맡겼다. 국세청이 이번 사태를 조사하다가 일부 고객의 소득세 신고 내역에서 유 세무사가 아닌 다른 세무사들이 비슷한 수법으로 소득세 신고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을 발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조사 중인 사안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일부 세무사의 소득세 신고 허위 작성에 대해 엄중하게 조사해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무사 스캔들이 남긴 것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프리랜서가 속한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불합리한 과세 문제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나온다. 무엇보다 현재 노동시장의 고용 형태가 보험설계사나 자동차 영업사원과 같은 프리랜서 숫자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인 만큼 지금이라도 이들을 위한 납세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이동기 한국세무사고시회장은 “장부를 작성할 때 기장의무를 없애고 추계방식으로 통일한 후 추계한 것보다 비용을 더 사용할 때 추가로 입증해서 인정받도록 하자”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추계방식으로 일괄적으로 세금을 매기면 프리랜서나 세무사들도 국세청 모르게 음성적으로 허위 증빙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허위 증빙으로 새는 세금을 막을 수 있으니 국세청 입장에서도 세수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납세의 의무는 국민의 신성한 의무다. 이는 소득을 성실하게 신고하고 증빙 자료를 제대로 갖추는 것은 최종 납세자인 개인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 소득만을 신고할 수 있도록 비용처리 기준을 합리적으로 세우는 것 역시 과세 당국의 책무일 것이다.
사업 및 근무환경이나 업종이 다른데도 소득에 따른 비용처리 기준이 같다면 형평성에 어긋날뿐더러 세무행정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 국민에게 ‘절세 의식 없이는 절세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이 역시 세무행정의 역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