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영화로 읽는 세상

일본화된 미래는 낙원일까?

스칼렛 요한슨의 ‘공각기동대’

  • 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7-05-11 18: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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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일본,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되곤 했다. 리메이크된 작품들은 원작의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는 그대로 살리되 주로 미국인 배우가 나와 미국식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원작의 오라(aura)를 기억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실망한다. 원작이 미국에서 별로 소개된 적이 없으면 미국인 관객들은 그냥 할리우드 영화인 줄 안다.
     
    최근 나온 리메이크 영화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Ghost in the Shell, 루퍼트 샌더스 연출)이 있다. 원작은 오이시 마모루가 마사무네의 만화를 바탕으로 1995년 만든 동명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1995년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2017년 미국 리메이크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1995년의 일본 공각기동대는 일본 자본주의의 자신감을 담고 있다. 1960년대부터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뤘다. 일본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서구 시장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미국의 대중문화 텍스트에도 반영됐다. 1982년 나온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리들리 스코트 연출)에서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고층건물의 네온사인 전체가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이 미소 짓는 장면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는 미래사회엔 일본 자본이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테크노 오리엔털리즘

    그 이후에 나온 할리우드의 공상과학 영화, 코미디 영화, 스릴러 영화(‘로보캅’ ‘디몰리션 맨’ ‘미스터 베이스볼’ ‘다이 하드’)도 일제 기계와 로봇으로 상징되는, 일본에서 유래한 초국적 기업들이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담아낸다.

    이렇게 일본화된 미국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로 간주된다. 기계적인 어떤 곳, 인간적인 감정과 자아가 상실된 곳으로 묘사된다. 미국인들은 이런 비인간적인 일본화된 미래 사회에 대항하는 긍정적인 가치로 서양의 개인주의를 제시한다.



    일본 자본의 해외 진출로 인해 발생한 이러한 일본공포증은 데이비드 몰리와 우에노 도시야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테크노 오리엔털리즘(Techno Orientalism)’으로 불렸다. 이 말의 어원 중 하나인 오리엔털리즘은 18세기 이후 유럽에 대비되는 지금의 중동에 대한 서구인의 기본적 태도를 담고 있다. 산업화와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비약적 발전을 달성한 유럽인의 눈에 중동은 문명이 낙후된 지역으로 비쳤다.



    동서양의 융합은 나쁘다?  

    반면, 20세기 말 등장한 테크노 오리엔털리즘은 일본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서구를 추월할지 모른다는 서구의 근심을 담고 있다.

    테크노 오리엔털리즘 속에서 서양인들은 동아시아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인정하지만 동아시아의 비인간적인 위계 문화가 지배하는 미래는 끔찍한 인간소외로 가득 찬 곳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1995년의 공각기동대는 이런 테크노 오리엔털리즘에 대항했다. 보통 할리우드의 공상과학영화는 뉴욕이나 LA 같은 미국의 대도시를 그리는데, 공각기동대는 홍콩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홍콩을 선택함으로써 첨단의 미래사회가 미국 대도시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영화는 미래 사회의 문제가 일본화된 미래 때문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등장해 인간을 소외시키는 네트워크화한 사회체제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주인공 구사나기 모토코는 두뇌를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가 인공적인 사이보그다.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전의 사이보그는 인간의 신체 능력을 개량한 존재였다. 구사나기 모토코의 인공 신체는 발달된 운동 능력에다 컴퓨터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별도의 통신 장비나 검색 장치가 없어도 모토코는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고 다른 이들과 통신할 수 있다. 모토코는 항상 우울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그녀가 우울해하는 이유나 고민은 작품 속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는 거울이나 물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본다.

    2017년의 공각기동대는 주인공인 미라 킬리언 역을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이 맡아 이목을 끈다. 킬리언은 사이보그 신체를 가지기 전에 구사나기 모토코라는 이름을 지닌 인간이었다. 이는 원작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동기로 킬리언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를 설정한다.

    이 공각기동대는 수술실에 들어서는 킬리언의 시선으로 그녀를 수술하는 의료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와 유사한 그림은 1986년의 ‘로보캅’에서도 등장한다. 로보캅도 사후에 로봇으로 재탄생한 경관 머피의 자아 찾기 서사로 구성된다. 2017년의 공각기동대는 킬리언을 기억을 잃어버린 주체로 정함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찾는 ‘로보캅’이나 ‘토탈 리콜’ 같은 영화와 비슷해진다.



    암흑세계 속 자아 찾기

    킬리언을 비롯한 다국적 수사팀 ‘섹션 9’이 활약하는 2017년 공각기동대의 홍콩은 1995년 공각기동대의 홍콩과는 다르다. 2017년에 홍콩은 동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장소로 그려진다. 영화 속 홍콩엔 증강현실 3D 광고판, 화려한 네온사인, 마천루가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다.

    길거리는 알파벳과 한자가 뒤섞인 혼잡스러운 공간으로, 마약 밀매와 성매매가 벌어지는 위험한 공간으로 재현된다. 이렇게 동서양 문화의 혼합은 허약함, 혼란스러움으로 상징된다.

    이런 디지털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가공의 부정적인 암흑세계)에 대응하는 아날로그적 인간성의 회복은 스칼렛 요한슨의 자아 찾기 서사와 함께 진행된다. 여기서 뜬금없이 일본인 아라마키(비트 다케시)가 서부영화에나 나올 법한 6연발 리볼버로 악당들을 처치한다. 영화의 흐름상 리볼버 권총이 등장할 이유는 없었다.

    아라마키가 이런 총을 사용하는 장면은 미국의 공상과학영화에서도 가끔 나온다. 예를 들어 1991년의 ‘터미네이터2’에서 터미네이터는 서부시대를 상징하는 소품인 윈체스터 장총을 사용했다.

    2017년의 공각기동대에서 동아시아는 네트워크화한 미래 사회여서 위험한 공간이다. 그러나 미국적 가치가 이런 곳에 질서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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