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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나라 사랑, 효도, 나눔 이걸 잊으면 가치 없는 삶일 뿐”

고종 황녀 故 이문용 여사 양아들 권송성 씨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나라 사랑, 효도, 나눔 이걸 잊으면 가치 없는 삶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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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근혜 구속영장실질심사 날 국립묘지 찾아 울었다”
  • ● 골드 어워드상, 마틴루터킹상, LA명예시민상 수상
  • ● “아이들 잘돼야 나라 잘되는 법” 후원 이유
  • ● ‘나라사랑’ ‘효도’ ‘나눔’ 전파에 여생 바칠 것
오너가 아닌 이상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는 건 축복이다. 권송성(77) 씨는 그런 점에서 축복받은 사람이다. 지금도 국보디자인, 동부전기산업, 동아전기부품, 아태산업개발, 한양건설 등 5개 회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과거 현대, 대우, 성원, 백강 등 수많은 건설사에서 회장, 고문으로 모셨을 정도로 건설업계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그가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쉰 살이 되던 1990년경부터였다. 전에는 전북 전주에서 운수회사와 서비스회사를 운영했다. 늦은 나이에 뛰어든 건설업계에서 여든이 다 되도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권 회장은 “운이 좋아서”라며 겸손해했다.

“제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와 인연을 맺은 회사마다 하는 일이 잘됐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믿고 쓰려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 점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권 회장은 경쟁이 치열한 건설업계에서 탁월한 공사 수주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 인연을 맺은 분들과 좋은 인연을 쌓다 보니 인맥이 넓어진 덕분이죠. 하지만 공사는 인맥보다 신뢰가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좋은 건물을 만들어주고, 낭비를 줄여 회사 수익을 높여주고, 부하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챙기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기자가 권 회장을 만난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권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해마다 정치후원금을 보낸 열성 지지자다. 그의 당선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것은 물론, 2012년 대선 전날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당선을 위해 기도했을 정도다.



한마음병원 이사장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요.
“신세를 진 일이 한 번 있어요. 제가 양어머니로 모신 분이 있는데, 고종황제의 딸인 이문용 여사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온 후 양어머니께서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1980년에 한마음병원 이사장이던 박근혜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한마음병원은 서대문구 충정로 종근당 건물 뒤편에 있었어요. 박근혜 이사장은 흔쾌히 양어머니를 만났고, 병원장을 불러 직접 진찰도 받게 해줬어요. 그 후 양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약도 보내주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후에도 인연이 이어졌나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 기일마다 국립묘지를 찾았는데, 그때 종종 만났죠. 생신 때는 꽃을 보냈어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보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낸 것은 돌려보냈다는데 제가 보낸 것은 늘 받았어요. 따로 만난 적은 없고요.”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 기일을 챙기는 이유는.
“두 분을 존경하기 때문이죠. 박정히 대통령은 어쨌든 보릿고개를 없애고 우리를 이만큼 잘살게 해주신 분 아닙니까. 육영수 여사는 전주에 있는 나환자마을을 직접 방문하셨는데, 환자들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비명에 돌아가신 후 40년 넘게 찾아뵙고 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의 눈물

-그렇게 지지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지금 구치소에 있습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 1월 1일, 그리고 대통령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던 3월 30일에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어요. 내 마음이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순국영령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사죄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디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가요.
“현충원에 묻힌 분들은 나라 위해 목숨까지 바친 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현실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 대통령이 그렇게 될 때까지 보좌를 잘못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거니까, 선열들 뵐 면목이 없었죠.”

-보좌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는데.
“제가 청와대에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벽돌을 쌓을 때 99개를 제대로 쌓았더라도 하나를 잘못 쌓으면 다 무너지게 되는 법입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 항상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연을 띄울 때도 연줄을 풀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상황을 잘 판단해 국정을 운용해야 합니다, 국민은 대통령이 따뜻한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주길 원하고 있습니다라고요.”

“편지에 그런 말을 쓴 것은 최순실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냐고 묻자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집사 일을 했던 분과 형님동생처럼 지냈는데, 그분에게 들은 게 있다”고 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미소만 지었다.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째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말하고 싶고, 둘째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지지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부모와 형제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으면 싶은가요.
“가장 중요한 게 안보를 지킬 수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 사심 없이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진보와 보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합 대통령이었으면 좋겠고요.”



리퍼트와 개고기

몇 년 전, 그의 이름 석 자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2015년 3월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괴한에게 피습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개고기를 들고 찾아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러 온 분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가만있을 수 없잖아요. 수술 후엔 개고기가 좋다고 생각해 직접 만들어 가져갔죠. 대사 부인도 애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미역도 함께 준비했고요. 그런데 신문 보도를 보니 리퍼트 대사가 애견인이라며 큰 실례를 한 거라고 하더군요. 몰랐어요. 알았다면 그렇게 안 했죠. 그래서 내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대사관에서 대사가 편지를 잘 받았다고 연락해 왔어요.”

그의 행동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삐딱하게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순수한 동기였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자신의 회갑연에 들어온 돈 전액을 미국 정부에 기부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 사건 때도 사비를 털어 적십자를 통해 성금을 보냈다.

“미국은 6·25전쟁 때부터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나라 아닙니까. 그런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데 외면할 수 없었죠.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죠.”

그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일까. 미국 정부는 2015년 오바마 대통령 명의로 ‘골드 어워드(Gold Award)’를 그에게 수여했다. 2016년에는 마틴루터킹재단에서 마틴루터킹상을 수여했을 뿐 아니라, LA시에서는 명예시민상을 수여했다.

“미국 최대 행사가 초대 대통령 워싱턴 기념일과 킹 목사 기념일이라고 하더군요. 킹 목사 기념일에는 LA시에서 40만 인파가 모이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서 카퍼레이드를 하기도 했어요. 이때 태극기를 목에 걸고 시가지를 돌았죠.”

그는 책상 서랍에서 태극기를 꺼내 보였다.

“당시 목에 걸었던 태극기입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는 물론 10년 넘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태극기를 목에 걸었어요.”


이춘상 자녀에도 학자금 지원

-태극기를 목에 거는 이유는.
“애국심 때문이죠. 국민이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게 도리입니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 36년 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겪었고, 6·25 때는 동족끼리 전쟁을 해서 많은 생명을 잃었어요. 지금도 남북이 갈려 있고, 남한도 진보 보수로 분열돼 있는 게 가슴이 아파요. 나부터라도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은 상상 이상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자녀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제창한 후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연히 국가적인 행사와 사고가 일어나면 외면한 적이 없다. 2015년엔 아내 칠순잔치에 들어온 돈 전액을 당시 교통사고 피해 여성을 돕다가 사망한 특전사 정연승 상사 유족에게 전달했다. 또한 1년간 생활비도 지원했다. 2013년엔 서북도서를 수호하다 숨진 장병들을 위해 해병대에 성금 1000만 원을 쾌척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기리고, 그 유족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러지 않으면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겠습니까.”

권 회장은 성금 전달과 함께 ‘사후(死後) 안구 기증’도 약속했다.

“나라를 지키다가 시력을 상실한 분들이 밝은 빛을 되찾는 데 내 눈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거죠.”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성금을 보냈고, 2002년 경의선 철로 연결공사가 합의되자 남북협력기금 1000만 원을 통일부에 쾌척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자 성공을 기원하며 1000만 원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국민 건강을 위한 연구에 써달라며 서울아산병원에 1000만 원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건 박근혜 전 대통령도 모르는 사실일 겁니다. 십수 년 동안 박 대통령을 보좌하다 대선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도 나라를 위해 일하다 사고를 당한 거잖아요. 그래서 이 보좌관 아들에게 학자금을 후원하고 있어요. 올해 고3인데, 저를 할아버지라 부릅니다.”



월급 절반 이상 기부

순국 유가족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돈을 아끼는 법이 없다. 그는 1970년대부터 평생 월급의 일부를 떼어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제가 부자여서, 개인적으로 뭘 바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콩 한쪽도 나눠 먹자는 마음에서 하는 거죠. 특히 아이들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그 애들이 잘되면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돼야 나도 잘되는 거니까요.”

-총 몇 명이나 후원했는지.
“헤아릴 필요도 없고, 세어보려 한 적도 없습니다. 도와줬다는 사실 그 자체를 잊어버리려 합니다.”

-후원한 사람 중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면.
“외환위기 때 수업료 42만 원이 없어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소문해서 도와주기 시작한 소년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소령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장교 임관식 때 제게 모자를 씌워주는 데 마치 월계관을 쓴 기분이 들더군요.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후원금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월급의 절반 이상이 후원금으로 나갈 때도 있습니다. 전주에 살 때에는 월급만으론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로 우유배달을 하며 나환자촌 아이들을 도왔어요. IMF외환위기 때부터 나라 전체가 힘든데 나만 고급차를 타는 게 죄스러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낀 기름값으로 후원을 더 할 수 있게 됐죠.”


황녀의 양아들

-가족들이 반대하진 않았나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아내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많이 베풀어야 복을 받아 더 많이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이 나이까지 월급을 받는 것도 그동안 나누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아내와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식들은 대학 졸업 시켜주고, 결혼해서 집 사줬으면 됐지, 더 바라면 안 되죠(웃음).”

-나눔을 실천하며 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열일곱 살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았어요. 다들 죽는다고 했죠. 그때 간절히 기도했어요. 내가 살아나면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나라를 위해 일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겠다고. 그리고 기적적으로 건강이 회복됐어요. 그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황녀 어머니께서 제게 늘 ‘착하게 살아라, 남이 힘들 때는 도와주며 살아라, 자기만 위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나누고 사는 게 사람의 도리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실천하는 거죠.”

권 회장은 인터뷰 내내 “베풀면 그만큼 돌아온다”는 말을 강조했다. “베풀면 하나님이 채워줍니다. 저도 착하게 사니까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 오늘까지 돈을 벌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도움을 준 분들 중에는 봉사와 나눔으로 맺어진 인연이 많아요.”

그에게 나눔의 삶을 일깨워준 양어머니 이문용(1900∼1987) 여사는 고종황제의 마지막 딸로 알려져 있다. 왕실 족보에 정식으로 오르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74년 그의 삶을 다룬 드라마 ‘황녀’가 방영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고종과 궁녀 사이에 태어난 양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결혼한 남편이 작고하는 등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더구나 전쟁 중에 북한으로 갔던 시동생이 남쪽으로 내려와 만난 사실을 머슴이 신고해 감옥에 가게 됐어요. 감옥에 있는 사이에 재산이 다 사라졌고요. 빈 몸으로 출소한 것을 당시 전북도지사가 주선해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전주 경기전에 기거하게 했죠. 그 소식을 듣고 제가 매일 찾아가 집도 고쳐드리고 반찬도 해다 드리며 모시면서 모자의 연을 쌓게 됐죠.”

그는 “지금도 양어머니가 꿈에 나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며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향기

권 회장은 요즘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다. 국민에게 ‘나라 사랑’과 ‘효도’ ‘나눔’ 이 세 가지를 전파하는 일이다.

“나라 사랑이 거창한 게 아닙니다. 대중목욕탕에서 혼자 돌아가는 선풍기를 꺼서 전기를 절약하고, 거리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줍는 것도 나라 사랑입니다. 이런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사회를 만드는 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고향 전북 정읍에서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며 나라 사랑 정신과 나눔, 효의 필요성을 강연할 계획이라고 한다.

“향기로운 꽃은 거지도, 권력자도, 심지어 살인자도 좋아합니다. 인간미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힘이 있을수록 배려하고 인간미를 보여주면 그 사람이 더 빛나는 법입니다. 온 국민이 인간미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미력하나마 제 노후를 바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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