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인터넷과 한국인

  • 입력2006-08-11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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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사용 인구 1800만.
    •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인터넷은
    • 한국인의 삶과 의식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1.가상공간의 인간관계/ 인터넷 동창회는 왜 위험한가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실 실장

    ●neticus@orgio.net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는 단순한 ‘정보의 바다’에 머무르지 않는다. 건조한 디지털 정보들의 데이터베이스쯤으로 여겨지던 사이버스페이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인생사의 희로애락이 얽혀 흐르고 만남과 헤어짐이 거듭되는 또 하나의 ‘관계와 교류의 장’이 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창안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현실계에 이은 제2의 생활 공간으로 자기 진화를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소유냐 관계냐

    물론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원리, 다른 성격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에선 지금까지 사람들이 펼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인간 관계가 전개된다. 가장 큰 특징은 그곳이 비물질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흔히 비트(beat)의 세계와 아톰(atom)의 세계로 대비해 말하듯 사이버스페이스는 비물질적 ‘비트’로 구성된 가상의 전자공간이다. 현실세계에서는 물질의 ‘소유’가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지만, 비물질적 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소유’란 무의미하다. 비트는 무한 복제를 거듭하며 흘러 다니는 것이지 결코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비트가 어떠한 경로를 거치면서 흘러 다니는가의 문제, 즉 ‘관계’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속하는 그 순간 ‘소유 위주의 사회’가 아닌 ‘관계 위주의 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점(點)’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전통사회의 인간관계는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사람들 간의 면대면 접촉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면의 관계’였다. ‘면의 관계’는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다시 ‘선의 관계’로 바뀌었다. 쭉 뻗은 철로와 도로 그리고 전화선이야말로 비대면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던 ‘선의 관계’의 상징물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선의 관계’는 ‘점의 관계’로 대치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관계망은 과거의 그것처럼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고정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접속 종료와 함께 사라지는 인스턴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비정형적인 하이퍼링크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자공간 속의 관계망에서 ‘선’은 무의미하다. ‘선’이 제거되면 남는 것은 ‘점’이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인간관계는 개개인이 하나의 점, 즉 노드(node)가 되어 유연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점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K씨가 채팅에 빠진 날

    평범한 30대 가정주부 K씨는 요즘 한창 인터넷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초보자가 그렇듯 K씨가 즐겨 찾는 곳은 채팅 사이트다. 이른 아침이지만 채팅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대기실을 잠시 둘러보는 사이에도 K씨에겐 대화 신청 쪽지가 쉴새없이 날아든다. 여성 네티즌의 수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채팅방에서 여성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남성들의 무관심에 익숙해진 ‘아줌마’ K씨에겐 이들의 ‘환호’가 남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K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대화명을 지닌 이(아마도 남성으로 추정되는)의 초청에 응해 대화방에 들어선다.

    “안녕?”

    “네, 안녕?”

    “영화 좋아해요?”

    “그럼요. 니콜라스 케이지 팬이에요.”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한국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다짜고짜 ‘영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채팅이라면 어떤가? 그곳에선 이런 식의 대화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채팅을 처음 해봤다는 사람들의 느낌은 한마디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배타성이 강한 현대인들에게는 모르는 사람과 아무런 부담 없이 만나 손쉽게 대화를 주고받는 이 소통 방식이 놀라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연령 성별 학력 계층 지위 등과 같은 사회적 배경에 대한 규정이나 편견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지배하는 현실세계의 제반 조건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원하는 모습대로 창출해 보이는 신통술까지 부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이다.

    사실 채팅에서 개개인의 사회적 배경과 맥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익명의 베일 뒤에 숨어 단지 ID와 대화명만으로 만나는 상황인만큼 실제 모습은 얼마든지 가공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어떠한 감정을 교환하고 있는가’이다. ‘영화 좋아하느냐’는 식의 첫마디가 자연스레 통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채팅 과정에는 참여자 개개인뿐 아니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조차 선형적인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채 개별적인 점의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그 관계는 대부분 지극히 우연적이고 일시적이며 비정형적인 형태를 띤다. 이런 의미에서 채팅은 가장 가상현실적인 인간 관계의 통로다.

    토론방으로 간 K씨

    K씨는 요즘 맘이 편치 못하다. 새로 장만한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에 신청하지도 않은 부가 서비스 요금이 합산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애초 계약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이동통신 회사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날 K씨는 채팅을 통해 알게 된 L씨로부터 비슷한 상황의 소비자들이 모이는 사이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게시판에는 K씨가 가입한 이동통신 회사의 서비스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글이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서명, 항의문 올리기, 불매운동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오고 있었다.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낀 K씨는 게시판에 자신의 사연을 글로 올리고 서명운동에도 동참한다. 게시판을 나오면서 K씨는 자신의 즐겨찾기 목록에 이 사이트 주소를 올린다.

    채팅이 당사자끼리만 공유하는 은밀한 관계라면 게시판이나 토론방 같은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는 개방성을 지향한다. 또한 채팅방에서 만들어지는 일회적이고 비정형적인 인간관계와 달리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는 지속적이고 정형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들은 서로 얼굴을 모를 뿐 아니라 공동체 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게시판과 토론방은 사이버스페이스를 여행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논쟁하면서 자신들만의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인간관계는, 그것이 공적인 것이건 사적인 것이건 철저히 정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사이버스페이스가 ‘관계 위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정보 역시 고정된 데이터베이스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유연한 정보가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주가의 등락은 특정 기업에 대한 고정적인 정보보다 투자자 사이에서 흘러 다니는 소문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휴대전화 구입에 있어서도 광고나 매뉴얼보다는 이용자들의 체험담이 훨씬 유용한 정보가 된다. 이처럼 정보의 가치는 컨텐츠가 아니라 사물과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사실 게시판과 토론방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다. 때로는 자신에겐 큰 의미 없는 정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참여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 공간은 지식과 경험의 거대한 창고가 되고, 개별적 정보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무엇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인간관계의 새로운 원리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곳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정보 교환과 커뮤니케이션이 전자우편 위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게시판이 그런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 아마도 의사소통 제도의 후진성이 한몫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는 특정 현안을 이해 당사자 간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이를 다수 대중에게 공개하고, 여론화하고, 나아가 집단행동을 통해 풀어가려는 속성이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게시판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의 공유와 이를 매개로 개방적 인간관계가 형성될 기반이 잘 갖추어졌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관계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K씨 동호회에 가입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K씨에게 더이상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 동안 채팅 사이트와 게시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던 K씨도 마침내 사이버스페이스 한귀퉁이에 자신의 안식처를 마련했다. 모 커뮤니티 사이트의 영화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한 것.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다. 어딘가 집단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이 생긴다. 오늘은 동호회 가입 후 처음 맞는 번개(오프라인 모임) 날. K씨가 좋아하는 니콜라스 케이지 신작 영화를 단체 관람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나올까?” K씨는 장롱 문을 열고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고른다.

    현실세계에서 공동체를 규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지리적 거리다. 가족 지역사회 등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가 지배적이던 전통사회에서는 물론, 학교나 직장과 같은 게젤샤프트(이익사회) 중심으로 재편된 근대 이후에도 대부분의 공동체는 지리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는 지리적 한계를 초월한 세계다. 인간관계도 당연히 탈공간적으로 형성된다. 이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다. 공통의 가치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와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는 개방적·호혜적 성격의 가상공동체가 구현되는 것이다.

    가상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채팅방이나 게시판에 드나드는 사람들에 비해 소속감이 높으며 멤버도 어느 정도 고정돼 있다. 때문에 지속적이고 안정된 인간관계 유지가 가능하다. 이들은 일정한 멤버십을 형성하고 컴퓨터 커뮤니케이션(CMC)과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단순한 정보 교환의 차원을 넘어서 우정을 나누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등 관계를 발전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공동체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켜 주는 대안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인터넷 동창회 붐은 대안적 공동체 모델에 역행하는 가장 한국적 형태의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유난히 ‘연줄 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은 관심사 중심의 탈공간적 가상공동체보다는 기존 오프라인 공동체의 온라인적 확대·강화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그것도 날로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 사회에서 강한 연대감을 갖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강한 연줄 의식은 공유와 상생이 아닌 대립과 배타의 인간관계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계의 눈초리를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윤웅기

    ●군법무관·사이버법률 칼럼니스트

    ●cyberlaw@hanmail.net

    신라 호국대찰이었던 황룡사 동쪽, 경포산업도로변 소나무 숲속에 폐허로 남아 있는 도림사지에 얽힌 이야기 하나.

    신라 48대 경문왕(861~874)은 즉위 후 갑자기 귀가 길어지자 모자를 이용, 밤낮으로 귀를 감추고 살았다. 왕비도 눈치를 채지 못한 이 일을 모자를 만드는 복두장이 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왕은 그에게 ‘절대로 귀에 대한 말을 하지 말라’고 다짐을 두었다.

    복두장이는 ‘절대 해선 안 될 말’을 속에 감추고만 있다가 결국 울화병에 걸리고 말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어느날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행여나 누가 들을세라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고는 거기 대고 고함을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후로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소리가 들려 신라 백성들의 귓가에 윙윙 울려 퍼졌다. 놀란 경문왕은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대신 산수유를 심게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경문왕은 이 정도는 괜찮다 싶었던지 그대로 두었다는 옛이야기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욕으로 도배된 글을 자신의 신원도 밝히지 않고 올린다든지, 배틀넷이나 온라인 게임상에서 대전중인 상대방을 인신공격하는 사례는 이젠 점잖은 축에 속한다. 최근 신문지상에 보도된 일부 네티즌들의 ‘근거 없는’ 비방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하나.

    딸이 불륜을 저지른 엄마를 인터넷에 공개 고발한 사건. 당사자인 광주동부경찰서 여성파출소장 김모(42) 씨가 남편에 의해 간통혐의로 고소당하면서 인터넷상에서는 친딸이냐 아니냐를 비롯한 갖가지 의혹과 억측이 꼬리를 물었다. 이에 김경위는 8월 11일 서울경찰청 홈페이지 ‘열린 광장’에 ‘친딸에게 공개 고발당한 여자의 진술서’란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당일 오후에만 조회건수가 1000회를 넘어설만큼 네티즌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 진술서에서 김경위는 ‘아들을 둔 이혼남이었던 남편과는 고3 때 제자와 스승으로 만나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후 딸을 임신, 혼인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남편은 지난 80년부터 줄곧 폭력을 행사해 왔으며 여러 번 외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속사정을 밝혔다. 이어 그와 관련된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면서 김경위에 대한 네티즌들의 폭력적 발언에 지나친 점이 없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둘.

    7월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국가대표 정기평가전에서 일부 한국 관중이 중국 관중에게 집단폭행을 당하고 태극기까지 찢겼다는 이른바 ‘베이징 훌리건 사건’ 관련 글이 인터넷에 회자되면서 외교 마찰로까지 비화될 뻔한 사례다.

    이 글은 일본 닛칸스포츠지의 모리야마라는 기자가 쓴 ‘한국은 주권국가인가’란 칼럼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는데, 외교통상부가 확인한 결과 이 신문에는 모리야마란 이름의 기자가 없으며 그런 기사가 실린 적도 없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일본 닛칸스포츠는 한중전에 기자를 파견한 사실조차 없다는 사실을 확인, 고의적인 조작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셋.

    인터넷에 일본의 DNP006이란 그룹이 ‘한국은 24시간 노인네들이 벽에 똥 묻히고 다니는 곳이라고 알면 돼/지금 내 옆에 한국인이 있다면 저 멀리 후지산까지 도망갈 거야…’라는 등의 가사를 담은 ‘Fxxuckin Country Story’란 노래를 통해 한국을 비하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노래를 소개한 사이트를 방문해보니 ‘없는 사이트’라고만 나올 뿐 확인할 수가 없었다. 소니뮤직재팬의 한 관계자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가수며 실존인물이라면 무명의 언더그라운드 가수 일 것이라고 전하면서 조작 가능성도 제기했다.

    위와 같이 인터넷 게시판 등에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감정적 글들이 익명으로 유포되면서 말이 더해져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인터넷이 신문·방송과 같은 공개 전 편집과정이 전혀 없이(인터넷 게시판 관리자들은 내용에 대한 사전 편집을 하지 못하므로) 직접적으로 네티즌 간에 뻥 뚫린 언로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말의 시장과 ‘실명’의 가치

    인터넷의 이러한 개방성이 기성 매체인 신문·방송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진정한 ‘말의 시장’을 여는 데 기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경문왕 시절의 복두장이가 죽은 지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우리에게도 말의 자유가 실현된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굳이 도림사까지 찾아가지 않고도 자신의 노트북에 언제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친 뒤 엔터 키를 누를 수 있게 됐다. 이 얼마나 빠르고 쉬운가.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chaos)을 야기하고 있다. 구한말 서구식 시장자본주의가 밀려 들어왔을 때와 같은 상황이 말의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난무하고 있는 폭로, 비방, 명예훼손은 그와 같은 혼란의 와중에 나타난 역기능들이다.

    이곳 역시 시장인만큼 각각의 ‘말’에는 필연적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여기서의 가격은 ‘책임’을 뜻한다. 아직은 누구도 선뜻 그 말의 공정가를 논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구한말 우리 돈과 일본 돈 사이에 매겨졌던 어처구니없는 교환비율처럼 ‘경제적 착란’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오프라인에서 쓰인 기자의 글과 익명의 네티즌의 글을 놓고 이를 동등하게 평가하거나 오히려 후자의 글이 더 생생하고 ‘사이버적’이며 그러므로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라 쉽게 판단해버리는 태도 등이 바로 그러한 가치혼란의 예다.

    앞으로 말의 시장이 차츰 성숙해지면 익명의 글과 실명 글에 대한 가치 매김이 차별화될 것이다. 물론 시장의 가격체계는 시장 자체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과도기적 시장에서 횡행하는 가격 사기, 품질 사기, 독점 등의 폐단에 대한 법률적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시장이 좀더 빨리 질서(cosmos)를 잡아가도록 울타리를 칠 필요는 있지 않을까.

    경문왕의 지혜

    법원은 지난 5월29일, PC 통신 하이텔의 가수 박지윤 팬클럽 회원 함모 씨가 하이텔 이용자 안모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에 대해 최초로,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다른 사람을 근거 없이 비방한 이용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최근 경찰청도 특정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집중 공격하는 ‘사이버 훌리건’에 대한 집중 단속을 공표했다. 조직적인 게시판 공격과 근거 없는 비방, 특정인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스토킹 등에 대해 형법상 업무방해(제314조), 명예훼손(307조), 모욕죄(311조) 등 관련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해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피해를 본 사람이나 기관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유도하기로 했다. 정보통신업체와 연계해 인터넷 자유게시판의 회원제, 실명제 운영을 독려하는 동시에 음해성 게시물 등을 묵인, 방조한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서도 형사상 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병행해 대응할 방침이라는 뜻도 밝혔다.

    오프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나 형법이 보호하는 인권의 하나인 개인의 인격과 명예의 존중이라는 대명제는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익명성은, 사이버상의 삶에서 개개인의 네티즌에게 다양한 자아정체감을 실험할 수 있게 해주는 등 독자적 가치를 가진 21세기의 신인권이라 하겠다. 이를 고려할 때 법원과 경찰의 사이버 폭로에 대한 대책들은 자칫 이제 막 시작된 인터넷의 ‘말의 시장’을 폐쇄된 PC 통신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경문왕은 자신의 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복두장이를 비밀누설죄를 적용, 처벌하는 대신 도림사 대나무를 베어냈다. 베어내기만 했다면 그는 근대사의 언론 탄압 대통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나 경문왕은 그 자리에 다시 산수유를 심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당나귀 귀’라는 인신공격적 발언이 ‘길다’라는 사실적 표현으로 순화되자 그대로 내버려(Let it be) 두었다.

    이러한 선조의 지혜를 인터넷에 도입해 보면 어떨까.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은 면전이나 신문방송을 통한 일방적인 말의 흐름을 그 법률의 기초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신문·방송(대나무밭) 대신 심어놓은 인터넷(산수유밭)에는 상호작용이라는 역동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터넷의 익명성을 비방의 근원으로 보아 근절하는 데에만 힘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순기능을 적절히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익명으로 글을 쓰려는 자는 전자우편 등을 통해 그 글 속에 등장하는 타인에게 사전 공지를 하고 게시판 운영자는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것을 제안한다. 어떤 글의 내용에 대해 관련자의 주장과 반론권이 상호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 글을 보는 자들은 양쪽의 의견을 동시에 접함으로써 숙고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상대방에 통지되지 않은 익명의 글은 게시판 관리자가 거부하거나, 또는 통지되지 않은 일방적 글임을 표시하는 태그를 달아 보는 이로 하여금 정보의 정당한 ‘가격’을 매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인터넷상의 폭로가 어느 정도 순화된 다음 비로소 시장에 그 가격 조절 기능을 맡기는 것이다(Let it be) .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 산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한국의 네티즌들에게 도림사지 산수유 밭에 올라 신선한 바람 한번 쐬어 볼 것을 권한다.

    이한기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사회팀장

    ●hanki@omynews.com

    지난 7월3일 MBC와 서울시경,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장문의 호소문이 올라왔다. ‘법(法) 위에 군림하는 기자(記者)’라는 제목의 이 호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금세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당시 A4 용지 4장 분량의 이 글이 어떤 파괴력을 가졌을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 글의 작성자는 남대문경찰서에 근무하던, 정년을 3년 남겨둔 김아무개(54) 경사였다. 호소문 내용은 “지난 7월1일 새벽, MBC 보도국 최아무개(28) 기자가 만취한 상태에서 남대문서 형사계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며 “이 일로 자신을 비롯해 3명의 형사가 억울하게 전보 조처됐다”는 것이었다.

    소위 ‘남대문서 MBC 최 기자 사건’은 7월4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보도되면서 수많은 네티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관련 기사의 페이지 뷰가 수만 건에 달했고, 독자 의견 또한 수백 건에 달했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이미 인터넷의 바다 위에 띄워진 배가 됐고, 네티즌들의 입김은 그 배를 몰고 가는 바람이 되었다.

    사건 초기, “만취한 기자가 행패를 부려 어쩔 수 없이 수갑을 채웠다”는 형사들의 주장과, “형사들의 불손한 태도에 항의하던 중 수갑이 채워져 저항 차원에서 소란을 피웠을 뿐”이라는 취재 기자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이 사건은, 당시 형사계 피의자 보호실에 있던 제3자들의 일치된 증언이 잇따라 제기됨에 따라 최 기자의 과실로 판명됐다. 지난 7월13일 MBC 쪽에서 최 기자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 조처를 내림으로써 ‘남대문서 MBC 최 기자 사건’은 거칠게나마 진위가 판가름난 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신세대 기자의 구세대적인 취재 관행과 구세대 형사의 신세대적인 저항 방식으로 눈길을 끌었던 ‘남대문서 MBC 최 기자 사건’은 인터넷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자칫 과거의 관행처럼 큰 파장 없이 묻혀버렸을 것이다. 또한 ‘경찰과 기자’의 관계상, 오프라인에서는 진위가 밝혀지기 힘든 사안이었는데 온라인에 공개됨으로써 예상 밖의 진척을 보였다.

    권력의 힘을 빌려 자신의 부도덕성을 숨기려다, 사건 진상이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경우도 있다.

    지난 8월5일 새벽 2시, 국회 고위 공무원인 김아무개 씨가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종로구 안국동 한식집 여주인 이아무개 씨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길 가던 시민들의 신고로 종로경찰서에 연행돼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사건 발생 이틀 후인 8월7일 오전 10시30분, ‘고발자’라는 필명을 가진 네티즌이 한 인터넷 신문 게시판에 이 사건에 관한 글을 올렸다. 고발자는 제보 글을 통해 “김씨가 사건 당일 이씨의 가게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고, 잠시 밖으로 나온 이씨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씨를 폭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보 글에 따르면 “가해자 김씨는 이씨에게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갖자며 괴롭혀왔고, 결국 이날 ‘충돌’을 빚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힘이 세다

    이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된 과정도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한 인터넷 신문 게시판에 올려진 고발자의 제보는 ‘확인 취재’를 필요로 하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해당 사이트 운영자에 의해 반나절 만에 삭제됐는데, 그 사이 제보 내용을 접한 다른 인터넷 신문사 리포터가 기사화하는 바람에 ‘햇볕’을 보게 된 것이다.

    한 시사주간지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던 가해자 김씨는, 폭행 사건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이런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한편 사건의 파장을 줄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렇지만 김씨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사건은 인터넷에 다시 공개됐고, 김씨는 형사상의 처벌말고도 공무원 규정에 따른 별도의 조처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획일적인 학교 건물만큼이나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복장과 헤어스타일 등까지 ‘똑같을’ 것을 강요받아왔다. 일부 학생들은 N세대답게 획일화된 두발 규제에 맞서 싸우는 도구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26일 서울 명동 조흥은행 앞 삼거리에서는 얼굴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하거나 머리카락을 물들인 10여 명의 고교생이 “우리는 3cm 인생을 거부한다”며 침묵 시위를 벌여 눈길을 끌었다.

    두발 규제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 학생들의 첫 활동은 인터넷을 통해 시작됐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발 규제 철폐 운동은 아이두, 채널텐 등 10대들이 만든 웹 사이트 운영자 주축 단체 ‘청소년연대 with’가 주도하고 있다. 해당 웹 사이트를 통해 8월9일 현재 5만2600여 명이 인터넷 서명을 했으며, 관련 글만도 9000건 가량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중순 인터넷에서 받은 1차 서명자들의 민원을 청와대와 교육부에 접수했고, 교육부에는 이 문제에 관한 공청회를 요청한 상태다. 또한 두발 규제 실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인터넷방송에 띄울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교육당국이나 학교, 교사로부터 일방적으로 ‘규제’당할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에서 학생들은 N세대의 강점을 살려 인터넷을 통한 규제 철폐 운동에 나선 것이다. 만년 약자인 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학생들의 사이버 연대만큼은 뜨겁다.

    소비자운동의 새 장

    소비자를 ‘물’로 보거나 ‘봉’으로 취급하는 기업들의 행태에 제동을 거는 데에도 인터넷이 한몫을 하고 있다. 지난 7월10일에는 한국통신 운영 쇼핑몰 ‘바이앤조이’에서 판매한 이탈리아제 구찌 벨트가 위조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한 차례 논란을 빚었다.

    ‘가짜 구찌 벨트 사건’은 지난 6월 인터넷 사이트 ‘불만공화국’에 접수된 제보로 촉발됐다. 이후 불만공화국 쪽은 이탈리아에 있는 구찌 본사에 진위 논란을 빚은 벨트를 보내 판정을 요구했고, 7월1일 구찌 본사에서 “문제의 벨트는 위조품”이라는 감정서를 전자우편으로 보내오면서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바이앤조이와 불만공화국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대기업 운영 온라인 쇼핑몰 판매 제품이 가짜였다는 주장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제기되고 그 진위를 증명하는 과정에도 국제 전자우편이 사용되는 등, 그야말로 논쟁의 도구로 인터넷이 철저하게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임에는 분명하다.

    또 다른 예 한 가지. 부산에 사는 김아무씨(28)는 S화재로부터 ‘자동차보험에 들면 제주도 무료 여행 상품권을 보내준다’는 전화를 받고 보험 가입 뒤 여행권을 받았다. 그러나 보험사가 제공한 여행권은 항공, 숙식, 교통편 등을 모두 지정된 곳만 이용해야 하는 등 제약조건이 너무 많았다. 우롱당한 느낌을 받은 김씨는 지난 6월 이런 사실을 인터넷 소비자 상담 전문 사이트인 ‘소비자사랑모임(소사모)’에 고발했다. 결국 소사모의 중재를 통해 S화재로부터 정중한 사과와 함께 5만원 상당의 주유권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개별 소비자들의 불만이 인터넷 사이트에 제보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열린 공간이라는 인터넷의 속성상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들의 불만 표출은 그 어느 분야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internet)은 말 그대로 ‘컴퓨터 네트워크를 서로 연결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속성 탓에, 하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네티즌들 사이에서 핫 이슈로 부각되면 짧은 시간 안에 집단화하는 네트워크(network)의 성질과, 남녀노소는 물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실시간으로 교감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성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세상을 비추는 마술거울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의 권력 관계는 사회적인 관습이나 고정된 선입견에서 자유롭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오프라인과는 달리 조건 반사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신속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권력관계의 전복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권력관계의 전복이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합리적인 결과로 도출되면 좋겠지만, 반대의 결과를 낳을 개연성도 크다. 또한 익명성의 방패 뒤에 숨은 네티즌들의 의견은 때로 오프라인보다 더욱 왜곡된 ‘감정의 바람몰이’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에 올려지는 ‘익명의 무고’조차 오프라인 권력관계에서 철저히 소외된 개인이나 그룹의 반작용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온라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프라인의 거울이란 점에 동의한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상호 윈-윈 게임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은정

    ●사이버문화연구실 수석연구원

    ●igaluk@chollian.net

    아날로그 시간으로 1년이 디지털 시간으론 1개월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시간대가 공존하는 시대에 문화지체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디지털 세계에 적응한 사람들은 아날로그 세계를 답답해하고, 아날로그적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세계는 팔색조 같은 머리와 피어싱(piersing:귀와 코, 배꼽과 혀에 구멍을 뚫고 장식을 넣는 것)을 단 야밤 폭주족만큼이나 생소하고 낯선 동네다.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컴퓨터 전자상거래 용어도 모자라 이제는 ‘사이버’라는 접두어를 달고 나타난 디지털 문화현상까지 이해해야 새 천년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매체마다 떠들어댄다. 사이버리즘, 사이보그, 사이버테러, 사이버섹스, 사이버성폭력, 사이버결혼식, 사이버 훌리건…. 이런 신조어들 앞에서 우리가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그저 ‘가상’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이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는 ‘또 하나의 현실’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다 보면 현실과는 전혀 다른 속성이 잡힐 듯 말 듯 감질나게 자기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패거리문화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세기의 인간과 문명을 전망하는 미래학자들 이야기에 따르면, 혹은 이른바 ‘N세대’ 논자들 이야기를 따르자면, 디지털 문화의 속성은 철저한 개인주의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팽배, 그로 인한 사회성 결여와 사회 전체의 결속력 약화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또다시 ‘패거리문화’라니? 그렇다면 결국 사이버스페이스 고유의 속성은 애초 없었던 것이고 현실과 동일한 문화가 속속 구축되어 가고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학교폭력 응징(?) 나선 사이버 폭력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맞은 것은 사이버스페이스를 제 집 드나들 듯하는 사람들 또한 현실문화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이고, 틀린 것은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에 현실과 유사한 문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이버공간에서의 패거리문화는 분명 현실세계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서도, 디지털이라는 세포막을 통과하게 되면 현실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로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초 천리안, 하이텔 등 굵직한 통신망 자유게시판에 한 어머니의 ‘탄원서’가 올라왔다. 주장은 이랬다. ‘모 극우단체 지도급 인사를 아버지로 둔 폭력서클 여중생과 그 친구 두 명이 건방지게 굴었다는 이유로 딸을 집에 끌고 가 코뼈가 내려앉고 정신병원을 몇 개월씩 다니게 할 정도로 가혹한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가해학생은 부모의 공덕(?)으로 봉사활동 5일이라는 지극히 경미한 처벌을 받았고 오히려 피해자인 딸은 전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이나 부모의 이야기가 통신공간에 심심찮게 등장하긴 했지만, 이 사건의 경우 가해학생의 아버지가 극우단체 임직원이고, 그 이유 때문에 학교측이 공정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에서 다른 경우보다 네티즌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여기까지는 서론이다. 폭력을 가한 학생들이 폭력서클 ‘패거리’였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사건으로 인터넷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는 과정에 나타난 네티즌들의 반응에서 또 하나의 폭력적 패거리문화의 양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통신망에 오른 지 불과 이틀 만에 이 사건을 고발하고 항의를 접수하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이 사이트는 총 네 개의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욕설게시판’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육두문자가 가해학생에게, 그리고 그들 부모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게시판 문화라는 것이 그렇다. 어떤 한 사람이 게시판 용도에 맞지 않는 욕설 일색의 글을 올리면 처음에는 ‘여기는 그런 글을 올리는 곳이 아닙니다’류의 글과 ‘내 맘이지’로 시작하는 욕설 글이 거의 비슷한 빈도로 올라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다른 욕설게시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게시판은 걷잡을 수 없을만큼 욕설로 도배가 되어버린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욕설게시판을 따로 마련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이 기사게시판과 학교폭력 관련 토론을 목적으로 만든 자유게시판에까지 욕설을 올리기 시작했다. 두 게시판은 곧 욕설게시판, 아니 욕설 경연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여러분 좀 자제합시다’, ‘그 정도로 심한 욕을 꼭 해야만 합니까’류의 글은 ‘반동’으로, 혹은 가해자 아버지의 편을 드는 ‘극우’로 매도당했고 몇몇 사람은 경쟁적으로, 아니 오히려 협동적으로 인터넷에서 가해자의 신상기록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폭로전을 감행했다. 드디어 일부 가해학생의 본명과 사진, 학생 아버지에 대한 신상기록을 입수한 사람들은 ‘바로 이 X들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다시 다른 통신사 게시판에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내 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응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여학생이 다니던 학교 홈페이지를 박살내버리자는 선전포고(?)와 함께 곧 동조자들의 지지글이 올라왔고 순식간에 그들은 하루 수백개의 글로 학교홈페이지에 융단폭격을 가해 서버를 마비시켰다. 이제 그 사이트는 현실의 패거리문화(이 사건의 경우 아버지의 인맥과 사회적 지위로 가해학생이 보호받았다는 점에서)를 성토하고 학교폭력을 고민하는 장이라는 기능을 잃고, 쌍방향성과 익명성이라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속성을 스트레스 해소와 인신공격의 허가증으로 간주한 새로운 패거리들의 전초기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실 속 ‘패거리’들이 지연 학연 등의 연고주의와 탄탄한 조직력, 끈끈하고 지속적인 인간관계로 뭉치는 것과 달리 사이버 패거리는 일시적이고 우연적으로 만나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세를 규합한다. 여기서 최소한의 정보란 ‘너와 내가 목표하는 바가 같다’는 동류의식이다. 사이버공간은 이러한 동류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아울러 텍스트에 기반한 의사소통 공간이라는 점에서 패거리 형성이 쉬워진다.

    그렇다면 ‘텍스트 기반’이 왜, 어떻다는 것일까. ‘맥락 단서 결핍론’이란 이론을 잠시 살펴보자. 최근 화상채팅이 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정보교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텍스트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문자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은 면 대 면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판이한 느낌을 준다.

    일본 어느 학자가 말했듯 익안(匿顔)의 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단서라곤 그저 상대방이 쳐 올리는 몇 마디 말이 전부다. 이를 두고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맥락단서의 결핍 상황’이라 부른 것이다. 이처럼 맥락단서가 적은 상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 결핍된 맥락단서들을 보충하려는 행태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런 행태 가운데 하나가 스마일리(표정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문자부호) 사용이고, 다른 하나는 과도한 자기표현이다.

    과도하게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은 생략하고, 논조는 더욱 분명하고 강해지며, 흑과 백을 분명히 가리는 어조를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한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견해가 분명하게 드러나면 적군과 아군 경계도 명확해지고, 일단 편이 갈라지면 단지 그 사안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동질감과 동류의식을 느끼게 된다. 거기다 ‘뭉쳐야 산다’는 우리 사회의 아날로그 교훈까지 겸비되면 또 하나의 ‘패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프라인 싸움이 온라인으로

    앞서 든 학교폭력 사례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므로 이 패거리들이 앞으로 어떤 행로를 취하게 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이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안정된 하나의 그룹, 예컨대 안티학교폭력 동호회로 거듭나게 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체되고 말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형태의 패거리 문화를 소개해야겠다. 일시적인 패거리를 형성했다 논쟁이 잦아들면 자연 해체되는 것이 인터넷 패거리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내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결과 하나의 구체적 조직으로 거듭난 사례도 있다. C통신의 한 동호회가 그런 사례다.

    어느 통신사나 페미니즘 관련 동호회 한두 개쯤은 있게 마련이다. C통신에도 페미니즘 동호회가 있었다. 가끔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남녀차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반페미니스트들이 동호회 게시판에 욕설을 퍼붓고 자신의 주장을 새된 말로 도배하는 행각이 반복되곤 했다. 그런데 작년 말 군가산점 문제가 터졌을 당시의 양상은 그때까지와는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개인적 공격을 감행하다 자주 나타나는 특정 인물들끼리 팀을 이루더니 곧이어 ‘페미니즘의 폭력을 거부하고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한 남성의 모임’을 표방한 새 동호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두 사례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 특정 사안에 대한 동류의식을 갖게 되고,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의 현실원칙을 인터넷에 그대로 적용해 성공한 온라인 기반 패거리유형에 속한다. 반면 다음에 볼 패거리들은 오프라인에서 형성된 패거리의식을 온라인으로 고스란히 옮겨왔다는 점에서 앞서 살핀 두 패거리문화와는 양상이 다르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와 특정 교수들에 대한 무차별 비방에 시달려온 동국대는 앞으로 교내 모든 컴퓨터에 신분증을 꽂아야 게시판 접속이 되도록 조치했다. 연세대도 지난 6월 말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일시적으로 폐쇄해야 했다. ‘모 대학보다 성적이 낮은 학교’라는 등의 비방 글이 일시에 수백 개씩 올라오는 훌리건 폭격에 시달린 때문이었다.

    훌리건의 공격 대상은 대학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정보 포털 사이트인 ‘중국마을’은 중국 훌리건의 습격을 받았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친선축구경기 직후 ‘너희가 중국 해커의 위력을 아느냐’는 글이 게시판에 뜬 다음 무려 200여 건의 한국 비판 메시지가 올라온 것이다. 이들은 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에까지 침입해 게시판 글 1000여 건을 지우는 등 피해를 주었다. 의사·약사 간 갈등이 고조되자 천리안·유니텔 등 PC통신 게시판들이 서로 비난하는 수준 이하의 글들로 시끄러운 적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왕에 있던 자신의 패거리의식을 강화시키는 데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만나 공동의 행동을 취하는 패거리는 서로에 대해 ‘공동의 목표’를 가졌다는 정도의 동류의식이 있을 뿐 현실세계 패거리처럼 밤새워 술을 마시고 도원결의를 다지는 ‘끈끈함’이나 한국사회에서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밀고 당겨주기 의식’은 애초에 없다. 따라서 그 양상은 극렬해도 결속력 측면에서는 현실의 패거리주의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현실에서 형성된 패거리의식을 온라인에 이식한 경우에는 확실한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온라인에서 경쟁집단과의 대결국면은 오프라인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아울러 오프라인에서 확실한 패거리의식을 가진 집단일수록 온라인에서의 한판 승부에서도 승리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

    개인주의와 연줄 경쟁의 충돌

    그렇다면 왜 이들은 개인적으로 접속하고 정보가 교류되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사이버공간에서 ‘뭉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 앞서 말한 대로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술적 측면이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네티즌들이 사이버스페이스에 진입할 때 현실의 옷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흔히 우리 나라를 ‘연줄’의 사회라고 한다. 사회 곳곳에서 학연 지연 혈연으로 대표되는 연고주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공적 영역은 때때로 사적 영역의 논리에 지배당한다. 결국 실력이나 개인 의지보다는 그가 속한 집단의 권력 규모, 사회적 영향력이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독재문화와 봉건적 자본주의 속에서 실력 경쟁이 아니라 연줄 경쟁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슬로건이 우리 생활세계 곳곳에 침투해 있다. 아이들조차 “우리 아빠는 과장이야. 너희 아빠는 뭐니?”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다. 이것이 사이버스페이스로 고스란히 옮겨가, 순화된 형태로는 ‘온라인으로 인맥을 만들어줍니다’, ‘온라인 동문회를 통해 우정을 확인하세요’라는 문구로, 폭력적인 형태로는 ‘자, 우리 함께 뭉쳐 OO게시판을 박살냅시다’에 동조하는, 그야말로 ‘반디지털적 디지털문화’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그것이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인 것을. 하지만 아직도 가능성은 있다. 이 가능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시 사이버스페이스로 회귀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가치와 기존 가치가 교차하고, 접목하고, 대립하는 역동적 공간이다. 그곳에서 형성되는 각양각색의 문화는 그 다양성이라는 하나의 특성만으로도 화석화된 오프라인 패거리문화를 희석시킬 여지를 가지고 있다.

    386세대를 자처하는, 한 정보통신 전문지 기자의 이야기에서 가능성을 찾아보자. “달라지긴 달라졌어요. 예전엔 누구 인터뷰 가면 어디 출신이냐, 본이 어디냐, 몇 회 졸업생이냐, 이런 질문이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이 인터뷰해온 것 보면 그런 항목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잔소리를 하면 이렇게 되묻더라구요. ‘이 사람이 벤처기업 CEO로 성공한 얘길 쓰는데 그런 질문이 왜 필요해요?’”

    조정문

    ●한국전산원 전략개발부 연구원

    ●ccm@nca.or.kr

    올 4월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인터넷 이용률은 37.15%에 이른다. 이처럼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가히 혁명이라 할 만한 변화들이 속속 일어나고 있다. 한 사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가족공동체 역시 무풍지대일 수는 없다.

    회사원 최아무씨. 요즘 그는 아내의 행동에 부쩍 마음이 쓰인다. 귀가가 늦다거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늘 불만에 차 있던 아내의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진 것. 초고속 통신망에 가입해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부터다. 최씨는 혹 아내의 인터넷 채팅이 외도로 발전되지 않을까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인터넷은 채팅이나 전자우편을 이용한 인터넷 외도(internet adultery)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전자공간의 익명성으로 인해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이것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져 결혼생활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사설탐정 단 가렛은 자신이 의뢰받은 가사사건의 15%가 인터넷 채팅으로 인한 혼외정사 건이며, 그 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낯선 이와의 사랑(Falling in Love with Strangers)’이라는 책의 저자인 퀸넬 박사도 온라인에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감출 수 있고,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일들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으며, 환상과 호기심의 여지가 많아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온라인 채팅은 남성보다는 사회생활 기회가 제한된 여성에게 더 유용한 만남의 장이 된다.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자. 과거 가족공동체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친밀감을 쌓는 주요한 행사였던 결혼·장례식·생일·명절들마저 서서히 온라인 쪽으로 그 장을 옮겨가고 있다. 미래의 어떤 시점이 되면 온라인 가족행사는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리한 변화는 현대인의 바쁜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유익하나 친족간의 유대관계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크다.

    물론 정반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전자우편이나 영상전화를 이용하면 직장, 공부, 병역의무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과도 얼굴 마주하듯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 헤어졌던 가족이 인터넷을 매개로 재회했다는 사연이 간혹 신문 사회면에 실리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족보(www.kyungju-kim.pe.kr)를 찾거나 홈페이지를 운영함으로써 가족간의 유대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렇듯 인터넷은 가족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요인과 강화시키는 요인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의 이중성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인터넷은 한마디로 의사소통의 혁명이다. 전화와는 달리 음성뿐 아니라 문자·영상·그래픽 등을 전송할 수 있고, TV와는 달리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인터넷에서는 상대방이 부재중에도 게시판이나 이메일을 이용, 정보를 나눌 수 있다. 그로써 엄청난 양의 정보와 자료의 동시교환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과거에는 시간·공간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했던 거래(transaction)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인터넷이 구성원간 의사소통 도구로 사용될 때는 가족공동체가 강화되겠지만, 가족이 아닌 제3자와 소통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면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각기 다른 세 가지 관점에서 해석해보자.

    첫째, 의사소통 혁명으로 촉발된 개방성과 합리성의 추구가 ‘비합리성’에 기초한 가족공동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의 증대는 이제껏 감추어져왔던 많은 것들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우리 행동도 점차 합리성과 효율성을 좇아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 ‘논리’보다는 ‘감성’에 기초한 가족공동체는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으로 부모의 권위를 내세우거나 아내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사고,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쉽게 헤어지지 못해 고통받는 부부 관계, 내 식구엔 지나치게 관대하고 타인에겐 지나치게 엄격한 가족이기주의,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혹은 ‘핏줄이 제일’이라는 혈연중심주의…. 이렇듯 비합리성을 고집하는 가족공동체는 점차 유지가 어려워지고 결국 붕괴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이혼율과 인터넷의 상관관계

    둘째, 전자 의사소통의 등장으로 인한 가치관 변화를 들 수 있다. 인터넷에선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훨씬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한 인간관계는 또 다른 인간관계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당위’보다 만남의 효용과 기능성만 고려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사회학자인 이근무 교수는 컴퓨터 네트워크로 조성된 집단을 가족 등 인격적 관계인 1차 집단, 이해관계로 맺어진 2차 집단에 이어 ‘3차 집단’이라 명명하며, 스위치를 켜고 끄는 데 따라 생성소멸하는 단명의 일시적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친밀감을 공유할 수 있는 독특한 공동체라 설명했다. 즉 가깝긴 해도 영속성이 없고, 깊이 사귀지만 언약이나 충성의 맹세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원초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가 일상생활에 확산될 경우 사람들은 끈적끈적하고 몰입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보다 자유롭고 가벼우면서 단기적인 관계를 선호할 수 있다. 이런 가치관의 등장은 가족공동체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개성·자유·자율을 보장하는 가족 형태가 환영받게 되리라는 예상이다. 자칫 ‘구속’이 되기 쉬운 결혼보다 독신이나 동거 생활을, 일단 결혼한 후에도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개방결혼의 형태를, 또 상대가 절실히 필요치 않을 때는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인스턴트 결합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추세는 이미 수치를 통해 얼마간 증명이 되고 있다. 1990년에는 4만6000건이던 이혼이 1998년에는 9만8000건으로 증가했다. 부산시의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대졸학력 여성의 42.9%만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단독가구 수가 1975년 전체인구의 4.2%에서 1995년에 12.7%로, 올해엔 15%가 넘으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한 부모자녀관계의 변화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정보문화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73.3%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반면, 50대 이상은 단지 4.9%만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컴맹’ 부모와 ‘컴도사’ 자녀 간에는 전통적인 권위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위가 약화되는 만큼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존도도 낮아질 것이다. 가족구성원간 의사소통망도 조부모-부모-자녀로 이어지는 일자형, 혹은 부=모-자녀로 이어지는 Y형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호혜적 삼각형 내지 원형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위 및 남편에 대한 아내 의존의 영속성과 항구성을 토대로 하는 가부장적 가족공동체에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과 전통 가족공동체의 와해를 꼭 불안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다. 변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밀감과 물질적·심리적 안정을 주고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그 자체는 쉽게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핵가족의 배타성, 즉 가족 지상주의식 일상생활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독신으로 지내며 다양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공동체를 결성하거나, 유사한 취미나 가치관을 지닌 가족들끼리 커다란 ‘공동가족’을 만들어 사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가족도 선택하는 시대

    예를 들면, 부모 형제 자매가 아니면서도 하나의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버가족인 ‘천리안 통신한가족동호회(go fam)’. 1998년 초 만들어져 현재 300여 가족회원이 가입해 있는 인터넷모임 ‘가족(family.sarang.net)’, 나우누리의 ‘온라인 가족모임(go family)’과 하이텔의 ‘사이버 패밀리(go sg1070)’ 등이 그것이다. 인터넷 모임 ‘가족’을 운영하는 함형오 씨에 따르면, 이곳 회원들은 다른 도시의 ‘가족’을 방문해 잠자리를 제공받거나 집안 경조사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고받는 등 ‘유사 가족’ 같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구성원 상호간의 친밀도와 상호 부조의 미덕은 전통적 가족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전통가족처럼 혈연, 상대방에 대한 구속, 의무, 위계적 관계, 의존, 몰입 등은 발붙일 곳이 없다. 오로지 개인의 선택, 자율, 수평적 관계, 개방성 등에 기초해 있을 뿐이다.

    물론 새로운 방식의 가족 생활도 완벽한 제도라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가족구성원간의 응집력과 감정적 교류가 약해져 서로 고립되고 원자화된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전통 가족제도에서는 가족집단이라는 인위적이고 때로는 강제적인 틀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 상실되더라도 공통체적 느낌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새로운 가족관계에선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유대를 동시에 확보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 균형을 잃으면 공동체적 유대의 상실이라는 대가 속에 개인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우려되더라도 우리 나라처럼 강한 응집과 몰입을 특징으로 하는 혈연중심적 가족관계로 인해 가족이기주의, 정실주의, 족벌주의, 그리고 가족배타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변화로 인한 해보다는 득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유동적이고 불안한 현대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가족구성원간 사랑의 나눔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이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가족과 사회 간 조화 속에서만 가족구성원간 사랑이 사회안정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출현이 예상되는 새로운 가족공동체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적극 발굴하여 이를 올바르게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모두가 함께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휴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rihyoo@seri21.org

    PC게임방에는 정확히 두 세대가 있다고 한다. 스타크 세대와 스탁 세대. 스타크 세대란 컴퓨터 게임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스타크래프트(Star Craft)’를 하기 위해 게임방을 찾는 이들을, 스탁 세대란 주식, 즉 스탁(stock)에 관한 정보 수집과 투자를 하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세대 구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스탁 세대가 점차 스타크 세대와 같이 인터넷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스타크래프트’ 열풍 초기만 해도 어른들은 그것을, 마땅한 놀거리를 갖지 못한 젊은이들이 용케 찾아낸 일시적 분출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에 노출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제 어른들도 그 놀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의식적 참여라기보다 ‘서서히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는 표현 정도가 맞을 것이다. 그 놀이들은 인터넷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유혹을 느낄 만큼 남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첫째 매력이고, 오프라인에선 경험할 수 없는 재미가 가득하다는 것이 둘째 매력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얻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전에 나온 컴퓨터 게임들이 주로 사용자와 컴퓨터 간의 대결 구도였음에 반해 스타크래프트는 타인과의 게임이라는 요소가 부각돼 있다. 상대는 내가 아는 이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게임을 통해 ‘내 컴퓨터 본체’라는 공간적 제한을 벗어나 인터넷의 네트워크 기능을 십분 이용한 공간 도약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의 마력

    공간 도약의 매력은 엄청나다.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을 하는 경우에는 게임이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웬만큼 익숙해지면 다음 진행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게임에서 상대방의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만큼 김빠지는 일도 없다. 그래서 컴퓨터와 상대하는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타인들과 경쟁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항상 같은 사람과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터넷을 통한 놀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열세인 줄도 모르고 허풍을 떨며, 또 어떤 이는 상대가 약한 줄도 모른 채 제풀에 게임을 포기해버린다. 이러한 ‘의외 상황’의 가능성이 사람들을 인터넷 게임으로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카드나 화투를 이용한 게임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진짜 도박판처럼 포커 게임을 하거나 이른바 ‘고도리’ 게임을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여러 개 개설돼 있다. 사행성은 있지만 실제 돈이 아니라 사이버 머니를 걸고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못 진지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스스로 정한 캐릭터처럼 생활하는 ‘리니지’란 네트워크 게임이 문제가 됐다. 사람들은 게임 속 실력에 따라 무기, 생활용품 등을 구입할 수 있고 다시 그것들을 이용, 게임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점수는 노력에 따라 조금씩 쌓이는데 해킹을 통해 다른 사람의 ‘전리품’을 자기 캐릭터의 것으로 슬쩍 옮겨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게임의 인기가 높아 이 전리품들에는 현실적인 ‘가격’이 매겨져 실제로 각종 거래 행위가 이루어져 왔던 터라, 결국 그 해커는 절도죄로 경찰 신세를 지게 됐다. 인터넷 게임의 중독성과 ‘현실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 게임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은 종류가 무궁무진해서 다양한 연령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드 게임이나 화투 게임은 사실 어느 정도 연령 이상이면 우리 나라 사람 대부분이 즐길 수 있는 형태다. 현실에서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판 벌이자’고 할 수 없지만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실제로 포커 게임이나 ‘고도리’를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캐릭터들의 신상정보를 클릭하면 40대 남성, 30대 주부 등, 10대 청소년 등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게임 이외에도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과 퀴즈 게임을 벌이는 사이트,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이트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터넷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가 게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르는 모든 영역에서 독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와 음악은 이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빠른 영역이다.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상영하는 사이트들은 이미 어엿한 비즈니스 모델로 인정받아 성업중이다. 회원가입비를 내거나 아니면 영화 한 편당 얼마씩의 비용을 지불하고 인터넷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 ‘왕건’을 보다

    조금 더 실험적인 몇 개의 사이트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인터넷으로 상영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관람하는 사람들 마음대로 영화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이른바 쌍방향영화(interactive movie)까지, 다양한 방식을 시도중이다.

    인터넷은 음악이라는 영역에서는 또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프라인 음악 시장을 온라인 쪽이 무섭게 먹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MP3라는 압축파일을 통해 인터넷에서 유통하는 방식이 CD나 카세트테이프에 담는 ‘전통적’ 방식을 대체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인터넷을 통한 배급 판매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무단복제의 가능성과 이에 따른 저작권 처리 방식이 정립되지 않아 기존 유통방식과 공존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MP3는 놀랄 만큼 빠른 시간에 CD와 카세트테이프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방송국(웹캐스팅사)은 “하루 하나씩 설립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아직 개념이 생소한 멀티미디어 시대도 이미 지나고 이젠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맞춤 미디어’, 즉 뉴 미디어 시대가 열렸다고도 한다. 단순히 여러 장르의 미디어 컨텐츠를 묶어 제공하는 것(멀티미디어)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 그대로 재구성(뉴 미디어)해 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방송은 가장 미래지향적인 미디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방송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기존 방송국에서 개설한 인터넷 방송국에서는 정규 프로그램을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공간에서 다시 시청할 수 있도록 재방영한다. 그래서 미처 보지 못한 ‘왕건’이나 ‘순풍산부인과’를 시청하려는 직장인들로 점심시간, 인터넷 방송국 라인은 항상 북적인다.

    신규로 인터넷 방송을 개설한 사이트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네티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예 인터넷 방송국용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이트부터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성인물, 요리, 패션 등 특수 분야 프로그램만 집중 방영하는 사이트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기술적 문제로 인해 종합방송국을 표방한 곳은 전체의 21%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음악 전문 방송이 대부분이다.

    ‘웹 라이프스타일’의 도래

    인터넷은 여가를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무작정 여행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먼저 교통편,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여행지를 택한다. 그런 다음 숙박시설 정보를 검색해 예산과 취향에 맞는 장소를 정한다. 인터넷을 통하여 예약 가능한 곳이라면 주저 없이 마우스를 클릭한다. 물론 이때 할인이나 각종 보너스 등 인터넷 예약에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상품 제공자의 일방적 정보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곳을 방문했던 이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게시판이나 동호회 사이트를 뒤져 수집하고 반영한다.

    최근 들어 여가와 관련된 인터넷 정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항공권에 대한 것들이다. 항공권 구입은 너무 다양한 요금 체계로 인해 과연 어떻게 구입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각 인터넷 여행사에서 구매자의 조건에 맞는 항공권을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가고자 하는 국내외 여행지의 숙박시설, 교통 관련 정보까지 일괄 제공한다.

    인터넷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여가와 엔터테인먼트 활동에 끼치는 영향도 점차 커질 것이다. 어쩌면 인터넷이 없는 여가나 오락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한 사이트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그만큼 고급 정보와 신나는 놀거리 또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웹 라이프스타일(Web Lifestyle)’이 정착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정철영

    ●국회의원 보좌관·출판기획가

    ●teledemo@assembly.go.kr

    ‘거대 담론’이 끝나자마자 인터넷 붐과 맞물려 ‘침대 담론’이 성행하고 있다.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경제·사회 구조의 전반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섹스라이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초창기의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인터넷을 성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이른바 ‘섹티즌’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넷조사 전문기관인 인터넷메트릭스는 지난 6월 한 달 동안 50만 명 이상이 접속한 포르노 사이트는 13개였고, 이중 접속자 수가 100만 명 이상인 사이트도 3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00만명 이상 접속한 사이트는 전혀 없고, 50만명 이상 접속 사이트만 7개였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증가세다. 또 전체의 32%가 여성이고, 연령별로도 20대(38%)와 30대(25%)가 가장 많아 사용자층이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

    물론 ‘야후’, ‘심마니’ 등 유명 검색 엔진에서 섹스 관련 단어가 최다 검색어의 위치를 내준 지는 오래다. 하지만 이런 ‘의외’의 결과는 유명검색 사이트에서는 자체 필터링을 통해서 섹스관련 사이트를 걸러내고 있기 때문에 검색 결과가 신통치 않고, 또 ‘Sex Korea’ 같은 사이트처럼 한글 성인 사이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공하는 다른 검색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네티즌들의 외면 때문일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 성문화에 대한 논의는 개탄 일색이었다. 청소년의 무분별한 성표현물 접촉, ‘몰래 카메라’ 같은 악성물의 범람, 사이버 성폭행 빈발 등 부정적 요소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꼭 청소년들을 조기성애화, 과잉성애화, 폭력성애화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남성 성범죄자들이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우범지대만도 아니다. 인터넷은 점차 보통 성인남녀의 섹스라이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것 또한 꼭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중·후반, 가정용 비디오플레이어의 보급과 ‘문화영화(포르노물)’ 붐은 단조로웠던 한국인의 성생활에 다양성을 더해 ‘제1차 밤생활 혁명’이라 부를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의 인터넷 붐이 한국인의 섹스라이프에 끼친 영향은 과거 ‘문화영화’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날의 20∼40대 중에는 인터넷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성표현물을 ‘모방학습’함으로써 한층 색다른 성기교를 시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모방 학습’의 열기

    인터넷이 여성의 성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은 배제된 채 남성 중심적으로 유통돼온 노골적 성표현물을 성인용 웹사이트를 통해 접촉할 수 있게 됐다. 또 인터넷은 게시판, 전자우편, 문자채팅 등 비대면(非對面) 커뮤니케이션이 기본 방식이다. 이는 여성들이 성적 수줍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성적 요구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게 훈련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단련된 여성들은 ‘화상 채팅’이나 ‘사이버 섹스’처럼 한결 적극적인 성표현을 시도한다.

    최근 발표된 ‘사이버 성폭력 의식 및 실태조사’를 보면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 실제 성행위까지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남성 7.9%, 여성 5.2%로 집계되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섹스 적극주의자들이 된 남성과 여성들은 ‘제2차 밤생활 혁명’이라 불러도 무방할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표현물의 ‘글로벌 스탠더드화’

    영화 ‘거짓말’의 사법처리 유보나 ‘감각의 제국’, ‘에나벨 청 스토리’ 허용 등 지난 1∼2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특히 영상 성표현물의 허용 수위는 크게 확장되었다. 영상 표현물의 사전검열제가 있던 80년대에는 여배우들의 가슴 노출에서 유두 노출까지 허용되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다. 그에 비해 90년대 후반부터는 둔부 노출, 측면 누드, 후면 누드의 제한이 빠르게 돌파되더니 이제 음모가 노출될 수밖에 없는 정면 누드와 성기의 ‘해부학적 재현’, 성교의 사실적 모사라는 ‘최후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또 동성애나 사도마조히즘, 페티시즘 등의 주제가 공식 문화에서 다루어질 정도로 표현 영역도 넓어졌다.

    이것은 효율적인 검열이 거의 불가능한 인터넷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터넷을 통해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절대 불허되던 노골적 성표현물이 유입되고 또 이에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자, 공권력은 ‘개인정보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질서 확립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하는 등 통제와 검열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노골적 성표현물의 광범위한 유통·수용 및 그에 따른 대중의 개방적 태도를 한 축으로 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 등 검열 기구에 포진한 ‘도덕적 우파’들을 또 한 축으로 하는 양 흐름간의 긴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둘러싸고 형성된 이 대치 전선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사회에서의 성표현물 허용 기준이 과거 ‘미풍양속 보호’ 수준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로 조금씩 넓어져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적 지향성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아무리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동성애자나 성전환 욕구를 가진 사람은 일정 비율로 존재하고, 얼핏 ‘변태 성욕’의 무풍지대로 보이는 우리 사회에도 페티시즘, 사디즘, 마조히즘, 과다성욕증, 마찰도착증(frotteurism), 노출증과 관음증 등의 욕구가 표출된 사건이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또 이런 ‘변태’ 성애자만이 아니라 ‘정상’ 성애자들도 성적 흥분을 얻는 요소는 제각각이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에게 섹시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풍만한 둔부, 타이트한 스타킹을 착용한 다리, 겨드랑이에 난 털 등 에로틱한 자극을 받는 부위나 행위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이런 성적 취향을 성표현물을 통해 충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성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서구 사회에서는 잡지만 하더라도 ‘종합’ 성인지는 몇 종 안되고 궁둥이 전문지, 가슴 전문지, 가죽복장 전문지, 사디즘 전문지 등으로 세분돼 팔린다.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중년이 되어서야 우연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성 정체성을 뭐라 꼭 짚어 표현하지 못하다가 동성애를 담은 성표현물을 보고서야 그것이 ‘동성에 대한 욕구’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성에 관한 정보가 좀더 공개적이고 다양했더라면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성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은 서구 사회와는 다른 독특한 일을 한다. 바로 성인 비디오나 잡지를 대신해 자신의 진정한 성적 지향성, 즉 그를 사로잡고 있는 욕망을 찾아주고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소프트한 것부터 인간의 심부에 숨겨져 있는 가장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것을 담은 것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표현물이 범람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자각하게 된다.

    사도마조히즘 동아리의 등장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발견한 개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사이버커뮤니티를 만들어간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그 취향이 독특하고 페티시한 것일수록 쑥스러움이 크고 사회적 평판도 걱정이 된다. 이럴 때 개개인이 익명성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고, 지리적 제약을 넘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또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인터넷은 성적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데 최상의 장소가 된다.

    커뮤니티 위주로 운영되는 사이트와 방문객 위주로 운영되는 사이트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이트 개설자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주된 이용자가 성인이고, 회비가 없거나 ‘헌금’ 방식이며, 게시판 위주로 운영되고, 취급하는 주제가 특정한 것이며, 이용자가 컨텐츠 제공자를 겸하는 조건을 갖춘 사이트는 커뮤니티적 성격이 강한 성인 사이트다. 이런 사이트로는 지난 1월에 운영자가 구속되면서 폐쇄된 ‘섹스관련 종합정보(3xdom)’(검찰 발표에 따르면 300여 개의 게시판과 대화방, 24만 여건의 음란한 글, 조회건수 500만이었다고 한다), 근친간을 다루는 소설 위주로 출발했고 동호회적 성격이 강한 ‘야설의 문’ 등이 있다. 포르노에 관한 종합 정보 안내 사이트인 ‘소라의 가이드’ 등은 커뮤니티와 웹 사이트를 겸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진짜 커뮤니티적 성격을 지닌 곳은 동성애나 사도마조히즘 등 모임의 주제가 특정한 곳들이다. 한글로 운영되고 있는 이런 커뮤니티는 10개 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이버섹스 시대의 도래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익숙해질수록 통신 속도를 비롯한 인프라의 수준, 공권력의 사법적 대응 방식, 저작권 보호 추세에 탄력적으로 적응해간다. 최근 진행중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웹의 퇴조와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급증이다.

    인터넷에서 섹스 자료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과거 가장 보편적이던 홈페이지 서비스 위주의 웹은 운영자가 다수의 유저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일(一) 대(對) 다(多)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이에 비해 게시판이나 커뮤니티는 전형적인 다(多) 대(對) 다(多)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초고속통신망이 일반화되면서 이제 인터넷은 점차 개인들이 직접 연결해 1 대 1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도구로 변하고 있다. 아직은 조악한 수준이지만 화상이 교환될 수 있는 채팅, MP3 음악파일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는 ‘넵스터’나 ‘소리바다’, 채팅하면서 수백 메가 용량의 파일도 교환할 수 있는 ICQ, 업로드와 다운로드의 일정 비율을 정해 운영하는 FTP 등은 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서로 필요한 것을 직접 1 대 1로 교환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저작권 문제가 있는 음악이나 영화 자료, 음란성 문제가 있는 성인 자료들은 홈페이지를 통한 유포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바로 이와 같은 1 대 1 교환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의미심장한 변화다. 지금까지의 인터넷 사용자가 방송을 수신하는 단말기처럼 일방적인 수용자에 가까웠다면 앞으로는 전화 사용자처럼 1 대 1 커뮤니케이션에 더 익숙한 이들이 되어갈 것이다. 이는 인터넷이 단지 자료를 주고받는 차원이 아니라 사이버섹스의 도구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아직 한국의 인터넷은 거칠고 공격적이다. 여성들에게 인터넷은 공격적인 ‘수컷’들이 하룻밤 파트너를 찾아 광분하는 공간으로도 보일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초고속통신망을 깔아놓은 정부로서는 유익한 정보가 아닌 온갖 불법적 자료와 욕구가 난무하는 ‘초고속불법망’으로도 보일 것이다. 흉기가 될 것이냐 이기가 될 것이냐. 쉬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kevin@seri21.org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크게 3번의 혁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7000년경의 농업혁명, 1760년대의 산업혁명, 그리고 오늘날의 디지털 혁명이다. 혁명이 발생할 때마다 의식주에서 각종 관습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출현하였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인터넷은 이제 우리의 모든 생활을 바꾸어놓기에 이르렀다. 전업주부들도 인터넷 배우기에 여념이 없고 컴퓨터가 2대 있는 집도 꽤 된다. 정당의 전당대회도 인터넷으로 투표한다. 경찰서 피해자진술서도 이메일로 제출하면 충분하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세상의 모든 제품은 ‘디지털화’한다. 포드는 최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자동차의 개념을 재정의한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배기량이 크다거나, 실내공간이 넓다거나, 안락함을 제공한다는 개념은 구시대의 발상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에 사는 현대인은 운전도중 자동차 안에서 외부세계와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개념을 최대한 구현했다. 음성지시 작동장치는 물론 이메일이나 인터넷의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심지어 정지궤도 위성으로부터 일대의 교통흐름 상황을 전달받아 알려주는 비디오스크린까지 갖추었다. ‘바퀴 위의 컴퓨터네트워크’인 셈이다.

    집 안의 화장실에는 변기가 있다. 여기에도 인터넷이 영향을 끼친다. 몸무게, 체지방 및 개인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건강상태를 분석해 주는 것이다. 이를 활용해 필요한 식료품 리스트를 갱신하거나 수집한 정보를 홈 서버에 저장된 가족의 의료 기록에 덧붙인다. 콜레스테롤 검사 결과 등이 즉석에서 의사에게 통보되기도 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다.

    다리 품 팔지 않고 집 사는 법

    전자레인지에 인터넷 기능이 내장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음식물 특성을 스스로 파악, 이메일을 통해 제조회사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조리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은 뒤 알아서 요리한다.

    최근 일본의 부동산 회사인 ‘동양 아렉스’는 이러한 제품개념을 총동원하여 IT 주택을 선보였다. 냉장고의 식품이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주문한다. 휴대 정보 단말기로 목욕물을 데우거나 방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변기가 소변의 당을 측정해 병원에 송신한다. 설비 파손 등 가정용 서버가 송신해 오는 정보에 대해 24시간 지원한다. 주택에 컴퓨터가 들어온 것인지, 컴퓨터 안에 주택이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단순히 제품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주택구매의 패턴도 바뀐다. 집을 구입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 엄청난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장인은 평일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틈틈이 신문이나 잡지를 스크랩하고, 복덕방에 전화해 얻은 정보를 갖고, 주말을 이용해서 몇 군데 둘러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둘러본 곳이 같은 지역에 있으면 다행이다. 강남과 강북을 몇 차례 왔다갔다하는 일도 허다하다. 막상 가더라도 주인이 집을 비워 내부를 못 보는 경우도 있다. 복덕방에서는 어차피 구조는 같으니 다른 층의 집을 보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포기하거나 다음에 오는 수밖에 없다. 한번이라도 집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던 번거로움이다.

    이러한 고통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먼저 인터넷의 부동산 중개 사이트로 들어간다. 지역을 선택하면, 본인이 원하는 사양을 묻는다. 가격은 어느 정도, 방은 몇 개 등등의 검색조건을 입력하면 그에 걸맞은 집들이 추천된다. 주변의 학교 수준은 어떠한지, 주민들의 소득수준은 괜찮은지, 혹시 우범지역은 아닌지 등등의 데이터도 함께 떠오른다. 대상을 몇 개로 압축하고 몇 번 이메일이 오간 뒤 계약하면 그것으로 상황 끝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다리 품을 팔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집을 방문할 수 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도 훨씬 자세하다. 동네 부동산에서야 몰라서, 혹은 고의로 틀린 정보를 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불가능하다. 전세계인이 아무 때나 접속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매도자도 편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침대를 정리하지 않고도 수천 명의 방문객들에게 집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매도자는 사진을 교묘하게 이용해 집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최대한 감추기도 한다. 바로 옆에 폐차들이 있는 공터와 사나운 개가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다. 또 사진이 비가 새 내려앉은 천장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눈가림은 오래갈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불만이 순식간에 유통되기 때문이다.

    ‘입는 컴퓨터’의 등장

    인터넷은 우리의 의생활도 바꾼다. 의류에 인터넷이 연결된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지금 실제로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는 ‘입는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군인이 입고 싸우는 전투복에도 인터넷이 연결된다. 전투병의 위치와 건강상태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된다. 공상과학 소설 이야기가 아니다.

    의류 유통분야를 살펴보면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언뜻 의류는 인터넷 유통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입어봐야 어울리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 등 일부 제조업자들은 “우리는 패션업체이고 고객들은 직접 입어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인터넷 판매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게다가 아직까지 인터넷 구매는 불안하다. 구입처가 명백하다면 반품도 쉽겠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할 경우 반품이 우려된다. 신용카드번호를 알려주기도 싫고….

    자, 이제 의류라는 것을 세분해보자. 옷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위 ‘디자이너스 브랜드’라고 불리는 고가품들. 고급소재를 사용했고, 디자인은 말할 나위 없다. 마케팅 비용도 상당히 많이 지불한다. 정반대에 있는 것이 소위 ‘시장제품’. 정가라는 것이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 정가표에 붙어 있는 가격의 80%까지 할인판매 하기도 한다. 소규모 재봉공장에서 만들며 낱장 판매가 주도한다. 이들 외에 중저가 제품인 캐주얼 토털패션 분야가 있다. 80년대 이랜드 열풍이 불어온 이래 차분히 자기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캐주얼류라면 인터넷이 매력적일 수 있다. 자기 사이즈만 알고 있으면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다. 가격이 매력인 상품인데, 아무래도 인터넷이 가장 싸다. 당연히 상품이 잘 팔린다. 그렇다면 고가의 정장이라 해서 인터넷 판매가 불가능할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고가 의류마저 판매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둔 메이시 백화점의 고위 간부들은 99년 성탄절에 고가의 디자이너 의류가 온라인을 통해 많이 판매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한 맞춤상품도 각광받을 것이다. 1:1 마케팅이 가능해진 것도 결국 인터넷 때문이다. 고객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전송받아 납품하는 시스템도 예상할 수 있다. 의류업체 입장에서는 재고가 줄어든다. 사실 의류시장에서의 이윤은 어느 정도의 재고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원가 대비 판매가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마진율이 35%대에 지나지 않는 것은 바로 재고 때문이다. 얼마나 빨리 납품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고객이 디자이너가 되고 기업은 하청업체가 되는 셈이다.

    식생활은 어떨까. 식품에 디지털 칩이 박히는 것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씹는 인터넷? 과자처럼 생겼는데, 먹으면 위장 속에서 무선으로 인터넷에 접속된다? 아직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인터넷은 우리 식생활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생활 부문에서 나타나는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은 서구화, 편의주의, 그리고 외식문화로 압축할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이 계속 서구화되고 무공해 식품이나 유효기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외식을 즐기는 사람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또한 편리하다면 다소 비싼 제품이라도 눈 딱 감고 구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식품을 구매하는 일은 어떻게 될까. 많은 한국인들은 식사준비 및 식사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생각한다(제일기획의 소비자 태도조사에 따르면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이 40%에 달한다). 따라서 인터넷 슈퍼마켓이 가정주부의 시간을 확실히 절약해 준다면 환영받을 것이다.

    일상 깊숙이 침투한 인터넷

    인터넷 슈퍼마켓. 과자나 라면은 구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생선이나 채소는 어떻게 할까. 식품에도 종류가 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참치는 냉동보관하지 않으면 곧 부패한다. 그렇지만 참치 통조림은 1년 후에 먹더라도 상관없다. 가공단계를 거친 가공식품과 그렇지 않은 신선(新鮮)식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신선식품의 경우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 수요는 항상 발생하지만 공급은 그렇지 못하다. 지역적 요인(기후에 따라 특정 작물이 재배 가능하거나 그렇지 못함)과 계절적 요인(상품마다 잘 자라는 시기가 있음)이 항상 문제로 대두된다. 다른 상품과 달리 ‘부패 가능성’도 문제가 된다. 규격화가 되어 있지 않아 이동거리에 비례해 가격의 격차가 큰 점도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가능하다. 중간 유통마진이 워낙 큰 상품이기 때문이다. 농산물 유통마진은 최고 75%, 평균 50% 이상이다(농산물은 대개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3~4단계의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친다). 인터넷 유통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다. 중간 단계를 없앤 것이다. 이렇게 가격을 대폭 낮춤으로써 사이버공간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 모을 수 있다.

    사람들은 육체 노동은 싫어하지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가끔은 즐거움을 위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직접 요리를 해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여기서도 인터넷은 한몫을 해낸다. 유명 요리인의 사이트를 만든 다음 ‘오늘의 요리’ 코너를 신설하고 그에 필요한 재료를 판매하는 것이다.

    외식도 마찬가지다. 외식을 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음식점 정보를 알아본다. 판매되는 음식종류, 가격, 사진, 약도 등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일부 식당은 예약주문도 할 수 있다. 예약주문 신청서는 음식점으로 전송돼 손님이 도착하면 바로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여기에 등록하면 식당업주는 돈 안 들이고 자그마한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셈이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 생활은 많이 편리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매력적인 가격’, ‘풍부한 선택’, ‘높은 편의성’, ‘맞춤화(customization)’ 등이다. 절감된 유통비용 및 고객대응비용을 반영하여 더욱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한다. 무한대의 전시공간을 지녔다는 웹의 특성을 활용해 선택의 폭을 크게 넓힌다. ‘언제 어디서나’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오프라인에 반영한다. 상품, 서비스, 광고 및 가격의 맞춤화를 통해 나만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한다.

    의생활, 식생활, 그리고 주거생활. 어느 틈엔가 인터넷은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피해갈 길은 없다. 저도 모르게 인터넷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다. 생활방식이 바뀐다. 마치 산업혁명 당시처럼 말이다. 그래서 디지털 혁명이라고 하나 보다.

    유순신

    ●유니코서치 부사장

    ●www.unicosearch.com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인구의 증가로 기존 산업계가 재편되면서 거대한 ‘직업혁명(Job Revolution)’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 환경의 지각 변동과 함께 노동시장에 적용되는 게임의 법칙이 달라지자 직장인들은 혼란과 변화를 겪고 있는 셈이다.

    미래학자들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지식 증가 속도도 빨라져 2005년이 되면 지식기반 사회가 본격화되고, 2020년경이 되면 73일을 1주기로 지식이 2배로 증가될 전망이며, 2050년에는 지금 지식의 1%만 사용 가능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더불어 직업의 생성과 소멸주기도 짧아져 사람들은 일생 평균 5회 직장을 옮기고, 20년 직장 생활 후 다시 재교육기간을 거쳐 남은 20년 동안 제2의 직장생활을 위해 대비하는 것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한다.

    게임의 룰이 달라졌다

    빌 게이츠는 ‘다가올 10년의 변화가 지난 50년의 변화보다 클 것’이라 말했다. 우리 나라 노동시장 역시 작년 하반기부터의 변화들이 지난 10년간 헤드헌팅 시장에서 일어났던 변화들보다 훨씬 더 크고 급박했다. 변화의 중심에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 디지털 혁명이 있다.

    첫째, 대규모 기업들은 사업장을 축소한 데 반해 소규모 사업체가 늘어났다. 끊임없는 인력구조조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필요 인력을 수시 채용하거나 아웃소싱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외부 노동시장을 통한 인력 공급 활성화가 큰 특징이라 하겠다.

    둘째,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 쪽 고용 창출이 활발해졌다. 정규직보다 특정 분야의 임시직, 파트 타임, 프리랜서를 선호하는 쪽으로 노동 환경이 유연하게 변화했다.

    셋째, 근무 환경은 개인을 존중하는 수평적 조직 구조로 바뀌고 있다. 업무의 재미를 강조하고 성별, 나이, 출신 등에 관계없이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반면, 강한 근무 강도를 요구하게 됐다.

    넷째, 인사 환경에 있어서는 회사와 직원 간의 개별화된 근무 계약 형태가 두드러진다. 특히 인터넷/인트라넷(Internet/Interanet)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근무 시간이나 조건, 환경의 탄력성에 따른 근무 형태의 개별화가 이루어졌다.

    다섯째, 20:80이던 개인의 가치가 5:95로 변화한다. 따라서 5%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더 심해지며 지적 자산 가치가 자본 자산 가치보다 크다는 것이 강조된다.

    인터넷 시대의 인재들은 ‘생각은 컴퓨터처럼 명확하게, 일은 게임처럼 즐겁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원치 않는 일은 수억을 줘도 하지 않으며, 자신은 걸어 다니는 회사이고, 고용인이 아닌 주인이며, 비즈니스맨이라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확대될수록 개인 등 작은 단위의 위력이 커진다는 것을 감지하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 개인이 조직보다 우위에 서는 인터넷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 따라서 과거의 전통적 사고와 행동을 거부하고 성공 방법 역시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사고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 몇 달 동안 국내 노동시장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엘리트들이 고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지식 직종으로 대거 이동한 것’이라 하겠다. 잡 마켓(job market) 자체가 수요자 중심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인사시스템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 젊은이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공 모델’을 갖게 됐다. 전문 영역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특정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 e-프리랜서, 남다른 재능과 끼를 발휘하면서 여러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갖는 특이 인재, 혼자서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이른바 신지식인…. 이들이 새로운 경제적 영웅들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e-프리랜서와 ‘특이 인재’

    W부장은 8년 동안 대기업에서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걸었다. 동료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고속 승진을 하며 핵심 부서인 기획실장 자리까지 올랐다. 한 그룹에서 너무 오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자신의 경력 개발을 위해 전직을 결심했다. 국내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책임자, 외국계 경영컨설팅사의 컨설턴트, 벤처캐피털사의 심사역 등 무려 서너 군데에서 같이 일하자며 좋은 조건을 제시해 왔다.

    그런데 W부장은 뜻밖에도 위험 요소가 많아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신생 인터넷 벤처 회사의 사장으로 갈 뜻을 굳혔다. 아직은 젊기 때문에 리스크를 즐기며 도전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돈보다 보람을 찾고 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후 6개월간 생소한 분야에서 피나는 고생을 한 덕분에 그는 업계에서 ‘인터넷 전문 CEO’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현재 리모델링이 필요한 인터넷 회사의 임시직 CEO, 인터넷 관련 분야 창업 컨설턴트 등 여러 개의 명함을 지닌 ‘특이인재’로 분류되고 있다.

    머리가 희끗한 전문 경영인이 전자상거래 회사 2곳의 CEO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50대 중반을 훌쩍 넘은 K회장은 20여 년간 유통 분야에 몸담다 8년 전부터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했다. 매주 일요일은 경영을 맡은 백화점을 두루 돌아다니며 직원을 격려하고 저녁시간에는 회식 자리를 마련해 직접 문제를 파악하는 ‘현장감 강한 CEO’로 알려져왔다. 성실성, 치밀함, 뛰어난 기획력의 소유자인 K회장이 그만둔다는 소문이 들리자 이쪽 저쪽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영입하려는 경쟁이 일어났고 결국 그는 두 회사의 경영을 모두 책임지게 되었다. K회장은 요즘 주말도 반납한 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신화를 창출하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다. 그 앞에서는, 인터넷은 젊은이를 위한 시장이라는 선입견은 발 붙일 곳이 없다.

    반면 올 1월, 학업을 중단하고 창업한 L씨는 새파랗게 젊은 사장이다. 예전 같으면 신입사원 대접도 못 받았을 텐데 현재 국내 굴지의 회사에 인터넷 컨설팅을, e-비즈니스를 배우려는 경영자에게 강의를 하며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L씨는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고용인이 아닌 파트너로 생각하며 일한다. 회사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직원들의 노력의 대가이며, 자신과 회사의 성공은 100% 그들의 몫이므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이야기다.

    언론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N씨는 인터넷 회사 COO(Chief Operation Officer)로 영입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 직장에 비해 연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스톡옵션, 인센티브와 회사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전직을 결심했다. 입사 후 3개월이 지나자 같은 업종의 신생 벤처사에서 CEO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최소한 한 회사에서 1년간은 배우는 자세로 있겠다는 소신을 갖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다 회사 내 제2실력자로 알고 있던 자신의 연봉과 스톡옵션이 기술 쪽 핵심 인력보다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벤처 기업에서는 사장이나 임원보다 월급이 많은 종업원이 속출하며 그것은 보상과 평가 기준이 조직 가치에서 노동 가치로 이동했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개인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 조직에 어느 정도 공헌했느냐’가 몸값의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All or Nothing)’라는 게임 룰이 적용되는 디지털 시대의 인재들은 ‘오늘은 남은 생을 다시 시작하는 첫날’이라는 각오로 남다른 자기관리를 한다.

    첫째, 항상 미래를 준비한다. 산업혁명을 능가하는 21세기 인터넷 시대는 개인에게 커다란 위험과 엄청난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변화를 예견하고 경쟁력을 미리 갖춰야만 국제 인력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둘째,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갖춘다. 이들은 마치 부패한 음식은 버리고 신선한 식품들로 냉장고를 채워넣듯 자기 머리 속의 지식 창고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고 가끔씩은 완전하게 뒤집어엎는 포매팅도 한다.

    셋째, 대인 네트워킹을 만든다.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개인 인프라를 구축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외부의 힘을 빌려 보완한다.

    넷째, 빠르게 결정함과 아울러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한다. 자신의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면 명쾌하게 “아니오”라고 외치고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다섯째, 스스로 회사의 주인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경쟁력이 회사의 자산임을 자각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는 당당히 요구한다.

    여섯째, 남과 다른 전략을 갖는다. 능력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이므로 자신을 독특하고 남다른 능력을 지닌 상품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죽은 지식’과 ‘박제된 사고’로는 더 이상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인터넷 시대에 다양성과 개인주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직장인들은 이제 상관과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경력 관리를 위해 일한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성공이 조직의 성공이라는 쌍방향적 사고 속에, 기업 성장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점차 심화되는 인력 격차와 구조 변화 속에서 자신의 지적 자산 가치를 높여 95%를 선도하는 5%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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