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건설사 몸 사리게 두면 집값 급등한다”

[부동산 인사이드] 尹 정부가 주택 공급 늘려야 하는 이유

  •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8-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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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 공급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가 한발 물러선 정부

    • 업황 악화에 주택 사업 꺼리는 건설업계

    • 시장 침체·공급 부족=집값 급등 초래 수순

    • “정부, 주택 공급 확대 정책 밀어붙여야”

    • 공급 부족 걱정 이르다는 분석도

    부동산시장 침체로 주택사업 수익성이 악화돼 건설사들은 주택 공급 확대에 미온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이 줄어들면 향후 집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공급 확대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전경. [뉴스1]

    부동산시장 침체로 주택사업 수익성이 악화돼 건설사들은 주택 공급 확대에 미온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이 줄어들면 향후 집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공급 확대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전경. [뉴스1]

    “2030년까지 공급과잉까지 우려될 정도로, 매년 56만 호 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다.” (지난해 1월,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향후 5년 동안 27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 서울에는 지난 5년간 공급된 주택보다 50% 이상 많은 주택이 공급될 것이다.” (지난해 8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정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원인으로 꼽히는 건 ‘주택 공급 부족’이다. 문재인 정부는 각종 규제로 부동산시장을 억누르느라 정작 주택 공급은 뒷전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뒤늦게 3기 신도시 등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했지만 당장의 집값 상승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정권 막바지엔 주택 공급량이 적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과 향후 과잉이 우려될 정도로 주택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때마다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대선캠프 시절부터 대규모 주택 공급을 부동산 정책 가운데 최우선 순위로 강조해 왔다. 실제 정부 출범 이후 내놓은 첫 부동산 정책도 향후 5년간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급한 주택 257만 가구보다 많은 규모다.

    지난해 8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윤석열 정부 첫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원 장관은 “향후 5년간 270만가구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지난해 8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윤석열 정부 첫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원 장관은 “향후 5년간 270만가구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시장 나아져도 웃지 못하는 건설업계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주택 공급 정책에 대한 관심이 급속하게 식었다. 경기침체, 급격한 금리인상 등으로 주택시장이 차갑게 식은 와중에 대규모 주택 공급은 되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요가 급감하는데 대규모 주택 공급이 지속될 경우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고 건설사들이 재정난에 빠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올해 초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 ‘부동산시장 동향 및 리스크 요인과 정책 과제’를 통해 정부의 270만 가구 공급 계획이 적절한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계획보다 공급을 더 줄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23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주택시장 침체 흐름에 맞춰 주택 공급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270만 가구 공급 계획을 추진하되 시장 상황에 따라 공급 시기를 조절하겠다는 방침이다.

    주택 공급 정책보다는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서다. 올해 초 내놓은 1·3 대책이 대표적이다.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용산구를 제외하고 규제지역을 일제히 해제하는 등 과감한 정책을 추진했다. 가파르던 집값 하락세가 잦아드는 효과를 봤다.

    주택시장은 나아졌지만 건설업계는 여전히 웃지 못하는 상황이다. 건설사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건설사 줄도산을 떠올리고 있다. 몸을 사리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최근 고금리 등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쉽게 나아지지 않은 데다가 원자잿값도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주택사업을 영위하기엔 쉽지 않은 환경이 이어졌다. 시장은 과잉공급이 아니라 공급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5월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5개월간 전국 주택 인허가 수는 12만7534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6% 더 줄었다. 5년 평균에 비해서는 16.8% 줄어든 규모다. 인허가 이후 진행하는 주택 착공 규모는 반토막이 났다. 5월 누계 기준 전국 주택 착공 수는 7만7671가구다. 전년 동기 14만9019가구보다 47.9% 감소했다. 최근 5년 평균과 비교해도 56.7% 감소한 수치다.

    건설사들의 주택 건설 수주도 크게 줄었다. 대한건설협회 ‘월간 건설경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건설사들의 주거용 건축(주택) 수주액은 15조2142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26조5040억 원보다 42.6% 급감했다.

    통상 아파트 입주가 인허가 기준 3~5년 뒤, 착공 기준 2~3년 뒤에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흐름이 지속할 경우 향후 주택 공급난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최근 주택시장 침체기를 지나 수요가 다시 증가할 경우 집값 급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수익성 악화→공급 감소→집값 급등

    이런 흐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나타난 바 있다. 주택시장 침체가 발생하자 건설사들이 수주액을 크게 줄였고, 이후 수년 뒤 공급 물량이 줄어들며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책 실패로 인해 투기 수요까지 증가하자 공급이 더욱 부족해졌고, 집값은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을 꺼리는 이유는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데 있다. 우선 시장 자체가 좋지 않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소 회복하는 흐름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여전히 많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865가구다. 4월(7만1365가구) 대비 3.5% 감소하며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지난 20년 평균 6만2000가구보다는 여전히 더 많은 수준이다.

    최근 미분양 주택 감소가 부동산 시장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설사들이 분양 자체를 미룬 결과 시장에 나오는 공급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올해 5월 누계 기준 전국 공동주택 분양 수는 4만667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9만6252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분양 자체를 안 하니 미분양 주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7월 들어 쌍용E&C, 성신양회 등 주요 시멘트업체들이 가격을 속속 인상하고 있다. 아파트 공사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6월 27일 경기 의왕시 소재 한 시멘트 공장 전경. [뉴스1]

    7월 들어 쌍용E&C, 성신양회 등 주요 시멘트업체들이 가격을 속속 인상하고 있다. 아파트 공사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6월 27일 경기 의왕시 소재 한 시멘트 공장 전경. [뉴스1]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자잿값이 급등해 공사비도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해 11월 148.6에서 올해 4월 151.3으로 올랐다. 이 지수는 2015년 가격을 기준점(100)으로 계산한다. 3~4년 전만 해도 3.3㎡당 400만~500만 원 수준이던 아파트 공사비는 최근 700만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권 경우 900만 원대 전후로 굳는 분위기다. 여기에 7월 들어선 쌍용E&C와 성신양회 등 주요 시멘트업체가 추가로 가격을 올리는 등 공사비는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성 악화를 우려한 건설사들이 이른바 ‘알짜 사업장’에서 발을 빼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DL이앤씨는 경기 과천시 과천주공10단지 재건축 수주에 참여하지 않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이 단지는 올해 도시 정비 대어로 꼽히며 DL이앤씨와 삼성물산이 치열한 수주전(戰)을 벌일 것으로 여겨지던 곳이다.

    공사비 인상으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조합이 시공사 계약을 해지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6월 17일 부산 부산진구 촉진2-1구역 재개발조합은 임시총회를 열고, 시공사 GS건설과의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GS건설이 3.3㎡ 공사비로 987만 원을 제시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본 공사비는 2015년 계약한 공사비(549만5000원)보다 두 배 가까이 더 오른 가격이다.

    6월 26일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재개발조합도 GS건설과 대우건설, SK에코플랜트 등 시공단과의 계약 해지 안건을 가결했다. 2월 시공사단이 공사비를 3.3㎡당 445만 원에서 641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데에 따른 결정이다.

    “시장 침체할수록 더 공급해야”

    경기가 침체하고 미분양 주택이 증가하는 시기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줄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빈집이 쌓이고 있는데 계속 집을 짓는다면 사정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때일수록 공급 기반을 더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김성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수년간 이어진 주택가격 상승은 낮은 금리, 다주택자 시장 진입 등 다양한 사유가 있겠지만 공급량 부족이 큰 원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일정 수준 공급량 유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사업부 팀장은 “정부는 단순히 시장이 침체한다고 공급을 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미리 세워둔 공급 계획을 지속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주택 공급 타이밍이 맞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이어 “집값이 오르더라도 주택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라는 시그널을 정부가 지속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근래엔 주택 구매 수요자가 적어 미분양 주택이 쌓여 있지만 국내 주택 수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이와 같은 주장에 근거를 더한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보급이 부족하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4.2%를 기록하며 2020년 이후 2년 연속 하락했다. 전국 기준 주택보급률은 102.2%다. 서울과 수도권(96.8%)은 상대적으로 주택이 부족한 상황이다. 1000명당 주택 수를 봐도 서울은 402.4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462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값 하락세가 멈추고 반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주택 공급난에 대한 우려에 더 힘을 싣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1% 오르며 상승 전환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오른 건 2021년 12월(0.25%) 이후 17개월 만이다. 상승세는 경기, 인천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이 문재인 정부 때와 같은 집값 급등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실물경기가 아직 나아지지 않은 데다가 금리도 여전히 높은 편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대세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다만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주택 수에 비해 여전히 수요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한다.

    건설사들이 사업을 축소한 기간이 아직 길지 않다는 점에서 당장 공급난을 걱정하는 건 다소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차차 미분양 주택을 줄여가다 조만간 시장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공급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앞으로 시장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공급 물량이 늘 수 있다”며 “최근 몇 개월간 인허가 및 착공 감소로 다소 공백이 있기는 하겠지만 아직 지방에는 미분양 주택 규모가 상당한 만큼 공급 부족을 걱정할 만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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