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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세대는 모른다, 수시가 얼마나 속 터지는지

[이동수의 투시경] 청년들이 ‘정시 확대’ ‘사법고시 부활’ 요구하는 이유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3-08-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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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의 강 건너지 못한 건 민주당 아닌 한국 사회

    • ‘킬러 문항’은 곁가지, 본질은 결과 납득 어려운 ‘수시’

    • 특정인 자녀만 다른 경기장에서 뛰게 만든 정성평가

    • 정시, 고시가 부모 개입 덜하지만… 교육 현실부터 바꿔야

    • 교육이 계층 세습 도구로 활용되는 한 달라지는 건 없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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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중순, 교육과 관련한 두 번의 파면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 또 다른 하나는 제도다. 전자는 조국 전 서울대 교수, 후자는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수능 고난도 문제다.

    서울대 교원징계위원회는 6월 13일 조 전 교수에 대한 교수직 파면을 의결했다. 그가 자녀 입시 비리와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지 3년 5개월 만이다. 서울대 측은 기소 한 달 뒤인 2020년 1월, 그를 교수직에서 직위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징계 절차만큼은 장기간 보류해 왔다. 공소사실만으로 혐의 내용을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1심 판결을 지켜보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때문에 징계를 미룬다며 오세정 당시 서울대 총장이 주의 처분을 받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6월 13일 서울대 교원징계위원회가 조국 교수를 파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아DB]

    6월 13일 서울대 교원징계위원회가 조국 교수를 파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아DB]

    사회적 파장이 워낙 컸던 사건인 만큼 학교 측도 징계를 결정하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징계위가 파면을 의결했다고 사안이 완전히 종결된 것도 아니다. 조 전 교수는 불복했고, 징계가 확정될 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과가 어떻든 2019년 자녀 입시 비리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국 사태가 일단락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조 전 교수와 달리 ‘킬러 문항’에 대한 파면은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교육부총리에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논란이 확산하자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됐다. 며칠 뒤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다. 해당 지침이 이미 올해 초 발표된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도 대선 때 공약한 것이라는 얘기는 의미가 없다. 논란의 시발점이 윤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점에서다.

    기회의 공정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현 정부 여당은 누구보다 조국 사태를 맹렬히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킬러 문항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 예컨대 스타 강사들의 고액 연봉 문제나 사교육업계의 ‘이권 카르텔’ 의혹 등을 보면 그들이 조국 사태라는 거대한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킬러 문항에 대한 비판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점에서다. 조국 사태와 킬러 문항 논쟁은 전혀 다른 시간과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 뿌리는 같다. 바로 한국 사회가 대입으로 대표되는 입신양명 기회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다.



    조국 사태의 핵심은 조 전 교수 부부가 자녀의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입시 과정에 개입해 스펙을 만들어준 걸로 요약된다. 사태의 여파는 컸다. 딸의 입시 비리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여전히 복역하고 있다. 올해 2월엔 아들 입시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이 추가됐다. 조 전 교수 역시 올해 2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그의 가족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했다.

    조국 사태는 그의 가족 못지않게 민주당, 더 나아가 진보 진영에도 큰 생채기를 남겼다. 그가 2010년대 초반 ‘멘토’로서 워낙 큰 족적을 남겼던 까닭이리라. 문재인 전 대통령마저 “마음의 빚”을 지게 한 그는 진영의 아이콘이었다. 그를 비판하는 것은 곧 반역이었다. 누군가는 당에서 뭇매를 맞고 쫓겨났고, 이 문제에 대해 반성한 초선 의원들은 당내 지지자들로부터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정의당은 심상정 전 대표 스스로 “정치 20년 하면서 가장 뼈아픈 오판”이라고 했을 정도로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다. 무엇을 하든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들의 도하(渡河)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문제는 조국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진일보했는지다.

    조국 전 장관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표창장 위조 같은 노골적 범죄는 빼더라도, 이른바 관행의 이름으로 행해져 온 것들이 자신에게만 천인공노할 범죄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딸의 단국대 의대 연구팀 논문 제1저자 등재 논란이 그렇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난해 5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2000년대 초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갑자기 고등학교에서 논문을 쓰는 천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그들이 대학에 진학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학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들은 “부모의 욕심으로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는 것이다. 조국 사태를 앞장서서 비판했던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마저 자신의 논문에 고교생을 공저자로 올린 사실은 조 전 장관만의 문제는 아님을 보여준다. 그간 입시제도 논란에서 표출된 청년들의 분노도 이 지점을 향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 교육이 주입식 암기 교육 위주였다는 데 반기를 들 사람은 거의 없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그러한 교육 방식에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게 꼭 나빴다고 할 수만은 없다. 특히 산업화 시절 주입식 암기 교육은 우리가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그들을 추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학교에서 언어·수학·외국어 능력을 두루 갖춘 인재가 쏟아져 나왔고, 기업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채용해 즉각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합격 이유 설명 못하는 ‘수시’ 전형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위상이 달라짐에 따라 교육 또한 대대적인 변화를 꾀해야 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가 아니었다. 선진국의 우수한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모방하기만 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우리가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인재 양성 방식의 변화가 요구됐다. 그저 영어 단어를 달달 외우고 수학 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 과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다.

    교육이 사람마다 다른 역량을 존중하고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동시에 불평등이 심화함에 따라 점수로 측정되지 않는 개인의 환경이나 자질도 두루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대학입시는 단순히 시험 성적만 측정하는 정량 평가에서 학생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 배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정성 평가로 중심축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시’는 그 대표 상품이었다. 2002학년도 대입에서 28.8%에 불과하던 수시전형 비율(정시 71.2%)은 확대를 거듭해 2007학년도엔 절반(51.5%)을 넘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입학사정관제가 대폭 확대됐다. 이 제도가 각종 논란으로 폐지된 뒤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탄생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수시전형이 70%(2018년 73.7%)를 넘어섰다. 이 같은 변화는 비단 대학입시에 그치지 않았다. 로스쿨·의학전문대학원 등이 생겨난 것도 이즈음이었다.

    예비고사·학력고사 세대는 모른다. 수시라는 게 얼마나 속 터지는 전형인지를. 사람들은 으레 내용과 배경을 두루 살피는 정성 평가가 수치로 가치를 측정하는 정량 평가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성 평가의 문제는 누가, 왜 합격했는지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시험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제도는 평가 기준이 동일하다. 개개인의 역량 또한 점수로 치환되기에 웬만해선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지 않는다. 반면 정성 평가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제시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청소년기 개인의 꿈과 잠재력이란 필연적으로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모가 어떤 환경을 제공하느냐, 무슨 경험을 하게 해주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아프리카 여행을 한 뒤 국제기구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의대 연구실에서 인턴을 체험하면서 의대 진학에 도움 될 만한 스펙을 쌓기도 한다. 학종을 비롯한 수시전형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는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누구나 하기 어려운 ‘귀한 경험’이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고액의 사교육을 시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국 사태가 청년 분노케 한 핵심 이유

    6월 21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6월 21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사교육이 같은 경기장에서 자기 자녀를 더 유리하게 만드는 일종의 아이템 같은 것이라면, 입학사정관제 등 정성 평가에서 일어난 편법들은 아예 자기 자녀만 다른 경기장에서 뛰게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정시 확대, 사법고시 부활 등을 거듭 요구하는 건 결코 그들이 경쟁에 익숙하거나 주입식 암기 교육을 선호해서가 아니다. 능력주의에 심취해 사회적 약자들이 놓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 제도들이 그나마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이 개입될 여지를 줄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모가 관여해 경기 결과를 좌우할 바엔 차라리 체구가 크든 작든, 힘이 세든 약하든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싸우는 게 낫다는 것이다.

    흔히 조국 전 장관의 ‘내로남불’ 때문에 청년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고 생각한다. 표면적 이유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분노는 조금 다르다. 부모만 잘 만나면 부모 지인들의 배려로 고등학생이 학술지에 논문도 쓰고 정부 기관에 인턴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현실, 그렇게 얻은 스펙으로 명문대나 의전원에 진학해 사회지도층 자리에 남들보다 쉽게 안착할 수 있는 현실이야말로 조국 사태 당시 청년들을 분노케 한 핵심 이유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국 사태 이후 정시 비중 확대를 언급한 건 최소한 그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는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쓴 조귀동 작가는 현재 20대 청년들이 겪는 불평등이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부모 세대, 즉 1960년대생 사이에서 이전 세대(1950년대생)보다 훨씬 긴밀한 경제자본, 인적자본, 사회자본의 결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 진학률이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1980년대에 좋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일자리를 얻었고, 사회에 진출한 뒤엔 저마다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조국 사태는 그 네트워크가 자녀 교육과 계층 대물림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었다. 얼마 전 물의를 빚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직원 자녀·친인척 특혜 채용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조국 전 교수가 내년 총선에 출마할지, 한다면 당선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출마 여부가 진보 진영에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키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조국 사태가 남긴 여파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큰 사건을 경험한 우리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입시제도는 그대로이고, 교육이 계층이동 사다리가 될 거란 기대도 언감생심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교육비를 유발한다는 킬러 문항 몇 문제 없앤다고, 그런 문제로 떼돈 벌었다는 ‘사교육 카르텔’을 혁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또 다른 유형의 입시 과정과 새로운 사교육 업체·강사들이 그 빈자리를 메울 뿐이다. 그러니 대학교수들도 못 푼다는 킬러 문항에 열을 올리고 호들갑 떨 필요 없다. 교육이 계층 세습의 도구로 활용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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