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중국 전랑외교 행태에 기본 원칙 양보해선 안돼”

[Special Report |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이현주 前 국제안보대사

  • 최창근 에포크타임스코리아 국내뉴스 에디터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3-08-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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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명전권대사’ 사실상 없어… 본국 교감 후 연출된 것

    • ‘베팅’ 발언은 선 넘어… 중국 외교부도 난감했을 것

    • 정치가 외교를 黨派화, 외교안보 문제 超黨 대처 필요

    • 以夷制夷는 중국 전통, 여야 ‘갈라치기’ 당해서야…

    이현주 전 국제안보대사. [조영철 기자]

    이현주 전 국제안보대사. [조영철 기자]

    “외교(外交)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다.”

    상식적인 격언이지만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언행을 두고 여야가 갑론을박을 벌이는 행태를 보면서 새삼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한국 정치권의 분열 양상을 중국이 이용하고 있다”는 한 중국 전문가의 말도 귓가를 울린다.

    이런 가운데 “학자나 정치인은 ‘졸렌(Sollen·당위)’이라는 최대치를 기준으로 주장하고 비판하지만 외교 현장에선 졸렌과 ‘자인(Sein·현실)’ 사이에서 타협책을 찾는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은 학자가 주장하는 당위에 더 가까운 국익을 취할 수 있겠지만 비강대국은 ‘힘의 현실’에 가까운 지점에서 이익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당위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힘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전직 외교관이 있다.

    ‘졸렌’과 ‘자인’ 사이 타협책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는 서울대 무역학과(현 국제경제학과) 재학 중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와세다대 연수를 거쳐 주(駐)일본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외교부 경제협력1과장,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북한 신포사무소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주미국 총영사, 주중국 공사, 외교부 국제안보대사를 거쳐 주오사카 총영사로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8년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났다.

    북한 체류 경험을 정리한 ‘횃불과 촛불’, 일본의 뿌리 깊은 혐한(嫌韓)의 기원과 전개를 다룬 ‘일본발(發) 혐한 바이러스’ 등 저서, 인터넷에 연재하는 칼럼 ‘이현주의 외교 읽기’를 통해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있다.



    이 전 대사는 “공직을 떠난 사람으로서 정책 제언이나 훈수를 할 자격은 없다”고 전제하며 “외교 현장에서 보고 듣고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외교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며 대담을 시작했다.

    6월 초 싱하이밍 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 여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와 사전 합의하에 이뤄진 연출된 발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외교에선 파견국 국가원수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가 사실상 없어졌어요. 지난날은 본국 훈령(訓令)이나 지시를 받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외교에 관한 전권을 주재국 대사에게 위임했지만, 오늘날은 다르죠. 더욱이 대사가 한국 제1야당 대표와 공관 만찬을 하는데 본국에 보고하고 지시받고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문제는 권위주의 체제 국가 외교관의 ‘오버’입니다. 존재감도 과시하며 상부를 향한 충성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선을 넘었습니다. 상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서 ‘누아르(Noire)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기도 했고요. 싱하이밍의 부적절한 처신이 빚은 촌극인데 중국 외교부도 난감했을 것입니다.”

    싱하이밍의 발언과 그 후 중국 외교부가 보인 행태는 한국 여야를 분리해 이른바 ‘갈라치기’를 구사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관리하는 전형적 법칙입니다. 중국에 적용하면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수도 있죠. ‘중화(中華)’를 자처한 중국은 화이론(華夷論)에 기반한 이이제이를 추구해 왔습니다. 주변 오랑캐끼리 싸움을 붙이는 거죠. 싱하이밍의 언행을 두고서 구한말 감국대신(監國大臣)을 자처하며 위세와 횡포를 부린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떠오른다는 평가도 있죠. 약관(弱冠)에 불과했던 위안스카이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청(淸)과 조선의 불평등한 관계, 위안스카이 개인의 성품과 자질도 있지만 ‘상국(上國) 대인’으로 떠받든 조선인의 행태도 있습니다. 싱하이밍-이재명 사건은 중화 사대주의(事大主義)를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고요.”

    칼럼 ‘이현주의 외교 읽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한국 정치는 외교마저 ‘갈라치기’에 이용한다. 외국의 갈라치기 전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치 지도자들이 갈라치기당하지 않는 ‘고결함(dignity)’을 유지해야 국가 자존심도 지키고 국격을 높일 수 있다.”

    역대 중국대사의 거친 언행의 배경에는 1992년 한·중 수교 문제도 지적됩니다. 임기 만료 1년을 앞둔 노태우 정부가 시간에 쫓기면서 한·중 수교 협상에 임했고 6·25전쟁 참전 유감 표명을 받지 못하는 등 대응수단(leverage)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에 있어 한·중 수교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습니다. 중국에도 한국과 수교는 필수 불가결한 현안이었습니다.”

    ‘벼랑 끝 행태’ 보이는 북·중 대사들

    1988년 장징궈(蔣經國) 사후 총통이 된 리덩후이(李登輝)는 실용주의 외교 노선인 ‘무실외교(務實外交)’와 대만판 수표책 외교인 ‘은탄외교(銀彈外交)’ 기조하에 외교 공간을 확장했다.

    “대만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개하던 공세적 외교정책의 의표를 찌르는 치명타가 한국과의 단교였습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 문제는 한번 정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중국이 공식 사죄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겠지만, 해당 논쟁을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결(未決) 문제인데 미래(未來)에 맡기자’ 정도 이야기는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는 지난날 소련의 ‘크렘린식 외교’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전랑외교는 외교정책이나 기조가 아닌 개별 행위자의 ‘행태(行態)’로 접근해야 합니다. 구(舊)소련·중국·북한 등 공산·전체주의 국가 외교관이나 관료는 상대방에게 ‘강경책’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싱하이밍의 행태에 초점을 맞춰봐도 중국이 공세적 외교정책을 펼치는 속에서 강성 발언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주재국과 외교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국에서 ‘정치범’ 취급받는 것보다는 ‘행정적 실수’를 한 것이 당사자에겐 안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전 대사는 북한 외교 행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하는데, 전술이 아닌 행태가 적확한 표현이라 봅니다. 주어진 상황 조건하에서 표출되는 행태니까요.”

    중국 외교관을 직접 상대한 경험에 비춰서 ‘전랑외교’ 대응 팁이나 조언을 준다면요.

    “상대의 벼랑 끝 행태에 대해서는 기본 원칙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칙을 양보해서 얻을 게 없습니다. 대신 모든 제기 가능한 양자·다자 외교 이슈를 대화·협의 의제로 지속 제기하며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는 직접 상대했던 북한 관리 예를 들었다. “북한 관리는 협상장에서 ‘내일 협상에선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 달라’ 부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협상의 성과가 없어도 상부에 보고하기 편하기 때문이죠. ‘상대방 입장 때문이다’라고 핑계 댈 수 있으니까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은 양보하지 말되 ‘세부 사항은 타협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권위주의 체제하 관리는 매사에 생사가 달려 있으니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죠.”

    그는 구소련을 비롯한 전체주의 국가 관료의 행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은 ‘긴 전보(The Long Telegram)’에서 ‘소련은 이성의 논리가 통하지 않으며 힘의 논리에 민감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등에도 공포에 직면한 인간의 행태와 수동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린 ‘공포’라고 하면 ‘호러(horror)’에 가깝게 느끼지만, 전체주의 국가 구성원들이 느끼는 공포는 다른 차원입니다. 테러에 대한 공포(fear of terror)를 느낍니다. 언제든지 강등·숙청을 당하거나 정치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죠. 전랑외교도 이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현주 대사는 북한과 중국은 관료주의 사회이며 의사결정은 톱-다운(하향식)으로 이뤄지는 구조적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주변국에 패 다 보여주는 여야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 대처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한국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베테랑 외교관으로서 어떻게 보나요.

    “정치가 외교 생태계를 당파화(黨派化)한 결과물입니다. 초당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니 외교도 파벌화될 수밖에 없죠. 일본 유학 시절 현지 학자들은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사색당파의 붕당정치를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붕당정치는 민주주의 정치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요즘은 폐해가 심각해진다고 봅니다. 상대 정파를 사문난적(斯文亂賊) 취급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죠. 사화(士禍)에 버금가는 정치 보복도 하고요.”

    그는 대통령선거 과정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각 선거캠프의 관료·학자 등 전문가 집단 줄 세우기 행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대선 토론에서 내치 문제는 치열하게 다퉈도 외교·국방·통일 문제는 토론 주제에서 제외하는 일종의 ‘합의’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 당선인의 해당 분야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둘 필요도 있습니다. 현 정부와 협의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입니다. 차기 정부 외교 정책 기조는 중요 기밀입니다. 주변국이 주시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비(非)강대국인 한국이 속된 말로 패를 다 보여주면서 외교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방혁신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해 ‘외교안보국방TF’ 구성이 필요합니다.”

    이 전 대사는 정치적·이념적 목소리를 내는 전직 외교관들에 대해서도 “전문 외교관 출신은 이념적·파당적 의견이 아닌 전문가적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정책을 전문가 관점에서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할 순 있으나 특정 이념을 결정론적으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가치외교’를 표방하며 미국·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유대를 강화하고 중국·러시아 등과는 거리를 두는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이 중국이 강경 대응하는 원인이라는 분석은 어떻게 보나요.

    “지난해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외쳤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가치이기도 한 자유와 민주를 강조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치외교’가 특정 국가를 적대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국가 이익을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한국은 비강대국이기에 타국에 가치를 강요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은 없습니다. 주지할 점은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 논법을 응용하자면 ‘미국·일본을 가까이하니 북한·중국을 멀리한다’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답만 있고 풀이 과정 없는 대일 외교

    이 전 대사는 외교관 경력 시작과 마무리를 일본에서 했다. ‘혐한’을 주제로 일본 정치 행태를 분석하는 책도 펴냈다.

    저서에서 일본의 혐한, 우익 문제 등을 지적했습니다. 한일의 미래를 위해서는 한국의 전향적 태도도 필요하지만, 일본의 태도 변화도 필요합니다. 해법은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30년’ 늪에 빠진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천황제(天皇制)’도 문제고요. ‘과거의 좋았던 날’을 그리워하는 일본의 레트로 심리는 오늘날에는 ‘더 나빴던 날’을 그리워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저자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제시한 ‘거시적 관점에서 국가 간 심리 충돌’을 예로 들었다. 달리오의 ‘국가 심리 사이클’은 △1단계 국가와 국민이 가난하고 모두가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 △2단계 국가와 국민이 부자가 됐는데도 여전히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3단계 부자이며 부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4단계 이전보다 가난해졌는데도 여전히 부자라고 생각한다 △5단계 1단계로 심리를 회귀한다 등 5단계로 구성된다.
    한일 갈등은 ‘2단계’에 있는 한국과 ‘4단계’의 일본이 부딪치는 상황이라는 것이 이 전 대사의 분석이다. 그는 외교 현장 경험을 들어 “‘관료’의 위상과 역할이 축소된 점도 첨예한 한일 관계 문제를 푸는 데 장애물”이라고도 했다.

    ‘관료집단 정치적 통제’ 강화를 핵심으로 한 행정 개혁이 문제란 건가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 재임기 각 중앙 성(省)에 1~2인의 부(副)대신, 2~3인의 대신정무관 직(職)을 신설해 관료집단의 정치적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종전에는 대신(大臣·장관 해당) 산하에 1인의 정무차관만 있고 실질 업무는 사무차관이 총괄했죠. 관료가 정치인에게 굴복하게 됐습니다. 외교문제도 정치인이 주도하니 관료 역할이 없어졌죠. 예전엔 외교 실무자끼리 교제도 하고 협의하면서 타협안을 도출하는 등 ‘안장점(鞍裝點)’을 찾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했는데 오늘날은 그 자체가 없어졌어요.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양국 정치인의 ‘이상점(理想點)’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정책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됩니다. 평가해 준다면요.

    “핵심 현안인 일제강점기 징용 보상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수학 문제 풀이에 비유하자면 ‘정답’을 썼는데 ‘풀이 과정’이 빠진 듯합니다. 대일 외교는 단순 외교문제가 아닙니다. 역사 문제에서부터 정치·사회 문제를 포괄하는 이슈입니다.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소홀했다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대사는 한 가지 꿈이 있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은 3·1절이나 광복절 기념사에서 늘 일본이 우리에게 준 고통을 상기시킵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저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날 ‘조선’이라는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해서 고난을 겪게 한 책임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반드시 듣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첫 북한 常駐 공무원, 이현주 전 대사가 경험한 북한

    1997년 8월 4일 이종훈 한국전력 사장이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남·북 간 첫 민간직통회선으로 북한 신포 원전 현장과 통화하고 있다. 뒤편 화상에는 이 사장(왼쪽)과 이현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한국 측 대표의 통화 모습이 보인다. [동아DB]

    1997년 8월 4일 이종훈 한국전력 사장이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남·북 간 첫 민간직통회선으로 북한 신포 원전 현장과 통화하고 있다. 뒤편 화상에는 이 사장(왼쪽)과 이현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한국 측 대표의 통화 모습이 보인다. [동아DB]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는 평양이 고향인 실향민 부친을 뒀다. 가족사로 인해 꾸게 된 ‘북한에 근무하는 첫 외교관이 되고 싶다’던 꿈은 1997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신포사무소 초대 대표를 맡아 북한에 상주하며 현실이 됐다.

    직접 경험한 북한은 어땠나요.

    “북한에 향수(鄕愁)나 정서적 유대감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실제 경험하면서 깨졌죠. 북한에 상주하면서 좌절감과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이른바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면서 실제는 김씨(金氏) 일가의 3대 세습 체제를 만들었으니까요.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면서 디스토피아를 건설한 대표 사례입니다. 중세 사회 같기도 하고요. 중세 유럽에선 성직자-귀족(기사)-농도의 3개 계급이 존재했잖아요. ‘성경’이 유일한 진리 표준이었고요.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상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은 10대 경제 대국 한국에 당당합니다.

    “북한은 두 가지 주제가 뒤섞인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강성대국’이라면서 강자 코스프레를 하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인민의 삶을 보여주며 약자인 척하는 것이죠. 북한은 상반된 두 주제를 무대 위에서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는 천문학적 비용을 사용합니다.

    “북한 주민은 ‘양가(兩價)감정’을 느낍니다. 당장 식량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지배층에 분노도 느끼지만 핵·미사일 강국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자부심도 느끼는 것이죠.”

    북한도 갈라치기 전술을 구사합니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소통하고 남한은 봉쇄하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구사합니다.

    “한국이 ‘내 탓이오’ 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가 대미관계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도(KEDO)에 관여했던 한 미국 관리가 이랬어요. ‘북한의 미국 사랑은 대단하다. 미국과 직접 상대하는 것을 즐긴다. 중국보다 미국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 1990년대 북핵 위기 해결 과정에서 통미봉남이 등장했습니다. 북한은 한국은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 했죠. 북한에 있을 때 북한 관리들로부터 ‘당신들은 빠지라우’ 식의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역할에 소홀한 면도 간과할 수 없고요. 한국이 미국에 북한 핵문제 해결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외교 행태를 보였습니다. ‘최소한의 의견 제시 능력’이 부재하거나 미약했습니다.”

    케도(KEDO)의 경수로 지원 사업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문’은 A4 용지 1.5장 분량입니다. 두루뭉술한 합의가 핵 폐기 협상을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2015년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은 A4 용지 150장 분량입니다. 미국은 유럽이나 중동 문제에 비해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핵문제는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방증(傍證)입니다. 저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아닌 ‘(가칭)한반도에너지개발은행’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봅니다. 은행은 신용 창출 활동을 하고 투자 촉진도 할 수 있죠. 2000㎿ 발전 용량은 당시 북한의 총전력 생산량에 버금가는 수준의 에너지입니다. 이를 이용할 산업개발 계획도 없었고, 송·배전망 건설을 위한 20억 달러 추가 소요 예산도 빠져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처음부터 불만과 좌절감을 표출했습니다. 케도 프로젝트에 대한 북한 내부의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지 않았나 봅니다. ‘경수로의 비극’으로 귀결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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