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지뢰제거 DMZ, 인민군 남침루트가 될 것인가?

  • 이정훈·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08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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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뢰 제거는 기술적으로나 안전상으로나,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의선이 복원된 후의 우리 방어 대책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대미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방어대책 보완을 서두른다면 경의선 복원은 통일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안보 전문가의 의견을 좀더 신중히 듣는다면 김대통령은 정전체제를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가 독선으로 흐른다면….
    경의선 복원을 계기로 비무장 지대(DMZ·DeMilitarized Zone)와 민간인 통제구역에 매설돼 있는 지뢰 제거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의선 일대의 지뢰 제거는 정전 체제를 뒤흔드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사계(斯界) 전문가들은 “지뢰를 제거하면 북한이 쳐들어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 아니냐?” “과연 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느냐?” “지뢰 제거 후의 방어 대책은 있는가?” 등의 주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뢰 제거는 잘해야 본전”

    군인들도 지뢰 제거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적인 토론일 경우 대부분의 군인들은 “지뢰 제거는 북한군에 남침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경의선 복구는 비무장 지대를 관할하는 UN군사령부와 미리 의견을 조율하지 않고 추진되었고, 전시(戰時)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군(한미연합사)으로부터도 사전에 완전한 동의를 받지 않고 추진되었다” “이렇게 서둘다 지뢰가 터져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면 하루 아침에 모든 원성이 군부로 쏟아진다. 정치인들의 주장으로 시작된 사업인데, 그 책임은 군부가 뒤집어 쓰게 될 것 같다” “지뢰 제거는 잘 해야 본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군인들도 공적인 자리로 돌아가면 “(지뢰 제거와 노반공사를 맡은) 육군은 안전하게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시민은 물론이고 군인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하는 경의선 복원과 지뢰 제거는 과연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것인가? 경의선 복원과 지뢰 제거를 둘러싼 논쟁은 안보는 물론이고 통일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아주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한국 사회에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경의선 복구와 지뢰 제거 문제를 심층 분석해보기로 한다.

    먼저 지뢰를 제거하면 북한이 쳐들어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 아니냐는 논쟁부터 살펴보자. ‘경의선 복원을 위한 지뢰 제거는 인민군의 남침 통로를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지난 9월4일 지만원박사(池萬元·육사 22기)가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한 강연회에서 거론하면서 표면화됐다. 지박사는 6공과 문민정부 시절 군사 비리를 맹공격한 인물.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쪽에서는 그의 의견을 경청해 정부를 비판한 적이 많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지박사의 연설은 지뢰 제거에 부담을 갖고 있는 군부의 속내를 대변한 측면도 있어, 곧 바로 주목을 받았다(지박사 발표문은 그의 홈페이지 www. systemclub.co.kr로 들어가면 읽어볼 수가 있다).



    “대통령까지도 의심해야”

    육군 대령 출신인 지박사는 “개성-문산 축선에는 지뢰·대(對)전차 장애물·영구진지·대규모 병력이 밀집돼 있어 유사시 남침하는 인민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철로와 도로를 뚫어주면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방어시설이 의미를 잃게 된다. 서울은 불과 5시간 이내에 점령되고 5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미국인과 일본인이 인질로 잡힐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5만 자국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북한과 전쟁을 벌일 수 있을 것인가? 전선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군은 총 한방 쏴보지 못하고 포위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의선 복구를 땅굴과 비교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20여 개의 땅굴에 대해 걱정해왔다. 땅굴에서는 시간당 5000여 명의 중무장 병력이 솟아나올 수 있으므로 20여 개 땅굴이라면 시간당 20여만 명이 침투할 수 있다. 반면 서부전선에 비상이 걸려 한국군이 완전 군장을 하고 진지에 도달하는 데는 4∼8시간이 걸리고, 동부전선에서는 10∼15시간이 걸린다. 이때는 이미 땅굴에서 나온 인민군이 한국군 진지를 넘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다음일 수 있다.

    경의선과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지뢰를 제거하면 이는 수천 개 땅굴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군사력의 이동을 가능케 해준다. 1조원을 맴도는 예산이 들어가고 수백 명의 병사가 희생될 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하다는 것인가? 이는 성주가 적장에게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길을 닦아주고, 성문을 열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6·25 전사를 다시 읽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시(6·25개전 초기) 국방부는 김일성이 지휘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데도 국방부는 승전보만 방송했다. 그러다 포성이 가까워지자 놀란 서울 시민들이 한강으로 달려나왔다. 이러한 시민들에게 국군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방송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강 다리를 폭파해 다리 위에 있던 수천 명의 시민을 희생시켰다. 9만8000여 명이던 당시 한국군 중에서 불과 2만2000여 명만 한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한강다리를 폭파하라고 지시한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것은 역사의 미스터리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때를 연상케 한다.”

    연설 결론부에서 지박사는 “안보는 단 1%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주제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까지도 의심해야 한다”라고 못박았다.

    지박사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이는 박용옥(朴庸玉) 전 국방차관이다. 박 전차관은 ‘경의선의 군사적 가치 논란’이라는 제목을 단 9월8일자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철도와 고속도로는 후방지역의 병력과 물자를 대규모로 전장(戰場)으로 수송하는 병참선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며, 철도와 고속도로는 전투지역이 아니라 후방 지역에서 이용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는 ‘철도와 고속도로는 평지보다 높게 건설되기 때문에 (전투지역에서) 이곳을 이용하다 적의 기습을 받으면 이탈이 용이하지 않다(평지로 내려와 숨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뜻). 따라서 기계화부대는 전술적으로 철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적 기계화부대는 속도전이나 전격전을 펼치기 위해 고속도로를 이용해 빠르게 진격해 올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그들은 (고속도로에서 평지로의 이탈이 어려워) 아군 공격 헬기와 전투기의 양호한 표적이 될 것이다’라는 설명으로 지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경의선과 같은 중요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군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측은 살포식 지뢰를 대규모 보유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군사 보안 측면과 남북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군사작전 문제가 지나치게 공론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결론지었다.

    박 전차관의 글에서 주목할 것은 ‘살포식 지뢰를 대규모로 보유할 것이다’라고 한 부분이다. 보통 지뢰는 병사들이 땅에 매설하는 ‘매설식 지뢰’인데 반해, 살포식 지뢰는 155㎚포 등을 이용해 적 기계화부대의 기동로 앞에 대규모로 살포하는 지뢰다. 살포식 지뢰는 이 기사 후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복원된 경의선이 유사시 인민군의 공격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非山非野의 개활지

    이번 사업은 지도에서처럼 ‘경의선 복원’과 한강변을 달려온 자유로와 통일대교에서 이어지는 ‘신(新)국도 1호선 건설’ 두 가지다(판문점을 향하는 원래의 국도 1호선은 통일대교에서 신국도 1호선과 갈라진다). 경의선과 국도 1호선, 그리고 신국도 1호선은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으로 둘러싸인 완만한 구릉지대를 지나고 있다. 평화시라면 이러한 비산비야(非山非野)지대에서는 최적의 경제 행위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유사시가 되면 이곳은 하루아침에 참혹한 전쟁터로 돌변할 수가 있다.

    6·25전쟁 때 일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인민군 1사단은 105전차여단 예하 203전차연대와, 인민군 6사단은 105전차여단 예하 206전차연대와 짝을 이뤄,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이끄는 국군 1사단 지역으로 쳐들어왔다. 인민군 105 전차여단은 소련제 T-34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개성에 포진해 있던 전성호(全盛鎬) 대령의 국군 1사단 12연대를 압박했다(당시 개성은 38선 이남 지역이었다). 그러자 12연대는 견디지 못하고 개전 당일 개성을 포기하고 임진강 철교를 건너 문산 쪽으로 후퇴했다. 12연대가 건너온 임진강 철교가 이번 경의선 복구 작업에서 군과 철도청의 작업 영역을 나누는 분기점이 된 ‘자유의 다리’다.

    12연대가 철교를 건너오기 전에 장치은(張治殷) 소령이 이끄는 국군 1사단 공병대가 임진강 철교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가 12연대가 건너오자 즉시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그런데 도화선이 끊어졌는지 임진강 철교가 폭파되지 않았다. 초장부터 당시의 방어작전계획 ‘육본 작전계획 38호’는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민군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인민군에도 한국군만큼이나 영리한 지휘관이 있다. 인민군은 그들이 남침을 시작하면, 국군 1사단이 임진강 철교를 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값비싼 전차가 임진강 철교에 올라섰을 때 국군이 철교를 파괴한다면 인민군으로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임진강 철교 쪽으로는 6사단 보병 부대만 내려보냈다. 인민군 6사단은 포병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간단히 임진강 철교를 넘어 버렸다.

    비슷한 시기 역시 전차 부대를 앞세운 인민군 1사단은 김익렬(金益烈) 대령의 국군 1사단 13연대가 포진해 있는 임진강 상류지역인 고랑포(1호 땅굴이 발견된 곳) 쪽으로 쳐들어왔다. 이곳의 임진강은 수심이 얕아 전차가 쉽게 건널 수가 있다. 13연대도 견디지 못하고 문산으로 후퇴해 왔다. 고랑포 쪽에서부터 인민군 전차가 쳐들어오자 문산에 합류한 1사단은 다시 파주로 후퇴했다. 인민군은 국군이 방어선을 치기 쉬운 경의선(임진강 철교) 쪽으로는 전차를 선두로 투입하지 않았으나, 상대적으로 전차의 진입이 쉬운 고랑포 지역에는 먼저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국군 1사단의 패배는 경원선이 지나는 의정부 축선(경원선 축선)을 맡고 있던 국군 7사단(사단장 劉載興 준장)의 붕괴와 함께 서울 함락으로 이어졌다.

    인민군이 경의선이 아니라 그 옆길로 기계화부대를 투입해 문산을 장악한 것은, 경의 축선을 꼭 경의선 자체만으로 봐야 하는가란 문제를 발생시킨다. 경의 축선을 경의선 그 자체로만 본다면 인민군 기계화부대는 경의선으로 침투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경의선을 포함한 좌우의 개활지대로 본다면, 인민군은 경의 축선으로 기계화부대를 침략시킨 것이 된다. 지박사가 말한 경의 축선은 ‘광의의 경의 축선’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후 국군은 인천에 상륙해 계속 북진하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된다(1·4후퇴). 이때도 인민군과 중공군은 ‘광의의 경의 축선’을 따라 서울을 점령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정전 후 한미연합군은 광의의 경의 축선 일대에 두터운 방어망을 구축했다. 군사분계선(MDL:Military Demarcation Line)에서부터 민간인 통제선 후방 수십㎞ 지역에까지 지뢰를 매설하고, 전방 도로 곳곳에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했다. 도로가 대전차 장애물로 막히면, 인민군 전차는 얕은 하천을 따라 내려올 수가 있다. 때문에 하천에도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마지막 방어선으로, 서울 북방에 거대한 ‘방벽(城)’을 축조하였다. 이러한 방어망 중에서 가장 값이 싸면서도 효과가 탁월한 것이 지뢰지대다. 사실 지뢰는 지난 50년간 남한의 평화와 발전을 보장해준 최고의 효자였다.

    이러한 지뢰지대를 뚫기 위해 인민군은 땅굴을 팠는데, 그중 두 개가 광의의 경의 축선상에서 발견됐다(현재까지 발견된 땅굴은 모두 네 개다). 하나는 6·25전쟁 때 인민군 1사단의 남침로였던 판문점 동쪽 고량포에서 발견된 1호 땅굴이고, 다른 하나는 복원될 예정인 경의선 바로 서쪽(인민군 6사단이 남침해 온 곳 부근)에 있는 3호 땅굴이다.

    한미연합군은 이 지역 방어를 위해 병력 배치도 현저히 늘렸다. 6·25 개전 때는 1개 사단이 배치돼 있었으나, 지금은 1개 보병군단과 1개 기계화군단을 배치해 놓고 있다. 경의 축선 최전방에 배치된 보병군단이 이번에 지뢰 제거 작전을 맡게 된 ‘광개토군단’(1군단·군단장 鄭重民 중장)이다. 인민군도 경의 축선에 1개 보병 군단과 1개 기계화군단 1개 전차군단을 배치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개토군단에는 비록 6·25전쟁 초기에는 패전했으나 이후 북진 때 최선두로 평양에 입성하고, 1·4후퇴 후 서울을 재수복할 때도 가장 먼저 서울에 들어간 역전의 ‘전진사단’(1사단)과 월남전에서 맹위를 떨친 ‘백마사단’(9사단) 등이 모여 있어, 한국군 최강의 군단으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광개토군단이 궤멸되면 그 뒤에 있던 기계화군단이 광의의 경의 축선을 무대로 인민군과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 기계화군단마저 무너진다면 마지막으로 수도방위사령부가 서울을 지킨다. 광의의 경의 축선에 무려 3개 군단(수방사도 군단에 해당)을 배치한 것은 이곳이 비산비야 지대로 돼 있어 방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의 축선은 의정부를 지나는 경원 축선보다 훨씬 거리가 짧아 최단시간 내 서울을 점령하는 루트가 될 수 있다. 전략가들이 경의선 복원 등을 위한 지뢰 제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전략가의 말이다.

    “전쟁에는 양동(陽動·demonstration)과 양공(陽攻·feint)을 포함한 모든 속임수가 동원된다. 예를 들어 기동전을 벌일 때 제1파 기갑 부대는 50% 이상을 고물 자동차 위에 전차 껍데기만 씌운 가짜 전차로 구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군 공격 헬기는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어, 가짜 전차를 향해 값비싼 미사일과 대전차포를 집중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군 화력이 소진되고 나면, 적은 2파나 3파 공격 때부터 진짜 전차를 대규모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유사시 인민군은 경의선이나 신국도 1호선으로는 가짜 기갑 부대를 내려보내고, 광의의 경의 축선으로는 진짜 기갑 부대를 내려보낼 수도 있다. 작전은 공자(攻者)가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므로 ‘복원한 경의선으로 인민군이 내려올 것이다’ ‘아니다’로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부터 주목할 것은 경의선이 복원된 후의 종합적인 방어 대책이 마련돼 있느냐다.”

    “작계 5027상의 검토가 없었다”

    6·25 전쟁 전에 육군이 ‘육본 작전계획 제38호’라는 방어작전계획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 한미연합군은 ‘작전계획 5027’로 불리는 방어작전계획을 갖고 있다. 98년 개정된 작계 5027은 북한군의 도발로 전쟁이 일어나면(우리 측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이다) 한미연합군은 방어작전 제3단계인 ‘격멸(擊滅)’에서부터 휴전선을 뚫고 반격을 거듭해, 반드시 이북 정권을 소멸시킨 후 전쟁을 중지한다는 것을 목표로 규정해 놓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계 5027도 지뢰지대가 인민군의 기습남침을 지체시켜 준다는 것을 전제로 짜여 있다.

    그렇다면 국군은 작계 5027을 강화(개정)해놓고 지뢰지대를 열어주는 것일까? 정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98년 이후 작계 5027은 개정된 사실이 없다. 작계 5027은 국군의 작전계획이기에 앞서 미군(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이므로, 미군의 동의 없이는 우리 마음대로 개정할 수도 없다. 때문에 적잖은 전략가들은 “군사적인 면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경의선 복원 등을 추진하면, 작계 5027은 육본 작전계획 제38호처럼 휴지가 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실제로 지뢰 제거 작업을 할 육군에도 대단한 부담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월6일 뉴스 브리핑에서 육군 참모차장 선영제(宣映濟) 중장과 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 이상태 소장 등은 “육군과 합참은 지뢰지대 개척과 그후에 일어날 수 있는 전면전과 국지전 등 모든 상황에 대비한 작전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지뢰 제거 작전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진행될 것이다”는 말을 수차 반복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육군에도 전략가들이 있다. 지뢰 제거를 하면서 경의선과 신국도 1호선 지역에 대한 방어 대책을 세워 놓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작전은 모든 것을 역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에 하나 이 지역으로 인민군이 내려온다면 그날로 인민군은 궤멸될 것이다”라는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철도청은 문산역 북쪽에 있는 철도 중단점에서부터 자유의 다리까지의 경의선을 복선으로 복원하고, 육군은 자유의 다리에서부터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옛 장단역 청사까지의 경의선을 단선으로 복원한다. 철도청 공사지역은 군사작전 지역이 아니라 문제될 것이 없지만, 육군 공사구간은 미군의 협조가 필요하다. 자유의 다리가 걸려 있는 임진강에서부터 남방한계선까지의 민간인 통제구역은 한국군 관할 지역이다. 한국군 합참은 평시(平時)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으므로 평시인 지금, 합참은 육군의 광개토군단에 지뢰 제거 작전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사 도중 남북 상황이 극도로 악화돼 전시(戰時)가 선포되면, 광개토군단은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합참은 전시와 평시에 어떻게 지뢰제거 작전을 펼칠지에 대해 한미연합사와 충분히 논의해 두어야 한다.

    군사분계선(MDL)에서 남방한계선 사이의 비무장지대는 UN군사령부가 관할하는데, UN군사령부의 역할은 한미연합사에 위임돼 있다. 때문에 한국 합참의장(曺永吉 대장)이 한미연합사령관(UN군사령관) 토마스 슈워츠 대장으로부터 허락을 얻어야 광개토군단은 비무장지대에서 공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 내에서의 공사는 한미연합사령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슈워츠 한미연합사령관은 미 합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품의했다는데, 미 합참은 클린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따라서 경의선 복원은 클린턴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따라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 인민군뿐만 아니라 미국이 반대해도 경의선과 신국도 1호선 연결 공사는 마무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경의선 복구는 물론이고 복구된 경의선 등 광의의 경의 축선이 인민군의 남침로로 사용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UN사)의 협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 군단 위치 변경 모른 한미연합사

    복원된 경의선이 인민군의 남침로로 사용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면, 한미연합군은 전방에 배치된 인민군의 동태를 손금처럼 들여다 보아야 한다. 한미연합군은 미 국방정보본부(DIA)에서 운영하는 ‘열쇠구멍(Key Hole)’이란 별명을 가진 K-12 및 K-14 군사위성이 찍은 사진으로 북한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군사위성이 북한 상공을 지나는 시간을 충분히 계산해낼 수 있으므로, 미 군사위성이 접근하는 시간대엔 군사 행동을 숨길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북한을 정탐하는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오산에 있는 미 7공군 제5정찰대대가 운영하는 고공정찰기 U-2가 바로 그것이다. U-2기는 지대공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는 고공으로 침투해 북한 전역을 촬영한다.

    한미연합군이 이렇게 북한군의 동태를 추적하고 있는데도 이따금 결정적인 구멍이 뚫리곤 한다. 한 군부 소식통은 “올해 상반기 최전방에 있는 두 개의 인민군 군단이 위치를 맞바꾸었는데 미 군사위성과 U-2기는 전혀 그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 인민군 군단이 위치를 맞바꾼 것은 과학 장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비합법적인 방법(공작원 침투나 북한에서 우리에게 협조하는 인물의 협조 등등)을 통해 뒤늦게 알아냈다. 인민군은, 대규모인 군단 병력을 군사위성과 U-2가 침투하지 않는 시간대에 비밀리에 이동시킨 것이다. 한미연합사는, 군사위성은 그렇다쳐도 인민군이 어떻게 U-2기의 침투시간까지도 알아냈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고 말했다. 한국군은 물론이고 미군마저 인민군의 동태를 실시간대로 다 추적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과연 경의선 복구 등을 위해 지뢰를 제거해야 하는가란 근본적인 의문을 일으킨다.

    복원된 경의선 등은 북한에도 부담스러울 수가 있다. 우리가 복원된 경의선 등이 인민군의 남침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듯이, 인민군 역시 경의선을 한미연합군의 북침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한 국군과 UN군은 개성-문산 축선을 통해 평양을 공격했다. 1950년 10월8일 임진강을 건너 평양 공격에 나선 부대는, 미 1기병사단과 25사단, 영국군 27여단 그리고 국군 1사단(전진부대)이었다.

    미 1기병사단은 개성에서부터 금천-한포리-평양으로 이어지는 국도 1호선을 따라 중앙으로, 미 25사단은 개성-백천-해주-재령-사리원을 거쳐 좌측 라인으로, 백선엽 대령이 이끄는 국군 1사단은 고랑포에서 구화리-시변리-수안을 거치는 우측 라인을 따라 평양으로 진격했다.

    이 공격에서 국군 1사단은 10월19일 미 1기병사단보다 40분 먼저 평양에 입성했다.

    경의 축선이 평양 함락 루트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우리만큼이나 경의선 복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모 정보기관 출신 인사는 “경의선 복원은 전쟁에 버금가는 치열한 남북 경쟁이다. 경의선 복구 속도와 안전성 여부는 남과 북의 실력차를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한이 이 경쟁을 포기해 ‘링’(경의선 복원 등)에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 경쟁에서 여유있게 이겨 북한이 개혁 개방을 향한 길에서 U턴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부터는 두 번째로, 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지뢰 제거 장면은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캄보디아나 코소보 지역에서 들려오는 대인지뢰 희생자에 대한 소식은 지뢰 제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주고 있다. 때문에 지뢰 제거에 투입되는 광개토군단 예하 공병여단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지뢰제거 작업에는 금속탐지기나 탐침을 들고 지뢰를 찾는 ‘구닥다리’방식을 전혀 쓰이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은 비무장지대는 물론이고 민간인 통제구역도 대부분 지뢰밭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는 이미 지뢰가 제거된 논이 즐비하고 민간인이 사는 마을이 있다. 남방한계선(철책선) 바로 밑에까지 논이 펼쳐진 곳도 많다. 이러한 마을과 논에서는 경운기는 물론이고 콤바인·트랙터 등 무거운 농기계가 돌아다니고 있다. 이번에 복원되는 경의선과 새로 닦는 신국도 1호선 사이에도 ‘통일촌’이라는 마을이 있고 지뢰 안전지대인 논이 펼쳐져 있다.

    광개토군단 공병여단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서 경의선 4.1㎞와 신국도 1호선 5.1㎞를 공사하는데, 이중 상당지역은 이미 지뢰가 제거된 안전지대다. 지뢰밭은 잡초지나 수목지역, 늪지역 등 농경지가 아닌 일부 지역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대부분 지뢰를 매설할 때 지뢰의 종류와 개수·지점 등을 표시한 매설 지도가 남아 있어, 어렵지 않게 지뢰를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전 전후에 미군 헬기가 무지막지하게 지뢰를 뿌렸다는 것은 잘못된 소문일 수 있다. 헬기에서 지뢰를 뿌리면 낙하시의 충격 때문에 터져버린다. 하늘에서 떨어뜨려도 터지지 않는 것이 살포식 지뢰인데, 살포식 지뢰는 1950년대엔 개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지뢰 매설 지도가 없는 일부 미확인 구간만 주의하면 지뢰 제거 공사는 어렵지 않게 달성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국민들은 6·25 전쟁 때 계곡에 매설된 지뢰들이 50년 동안 산비탈에서 흘러내린 흙에 덮여 더욱 깊이 묻혔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경의선 지역은 비산비야의 야트막한 구릉지대라 국민들이 상상하는 것 같은 깊숙한 골짜기가 없다. 깊숙한 계곡은 산악 지대인 동부전선에 많은데, 산악지대엔 지뢰보다는 크레모어로 주로 방어전을 펼친다(지뢰를 많이 매설하지 않는다).

    6단계로 지뢰 제거

    경의선 복구를 위한 지뢰 제거가 발표됐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미클릭’이나 K-1 지뢰제거 롤러 등 지뢰지대 개척장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미클릭(MICLIC)은 ‘지뢰 제거 선형(線形) 폭약’이란 뜻을 가진 영문 Mine Clearing Line Charger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100m쯤 되는 긴 줄에 폭약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들어 있다. 이 화약(선형 폭약)을 로켓에 넣어 발사하면 로켓에서부터 전방 100m 지점까지 일자로 ‘줄줄이 폭약’이 놓이게 된다. 로켓을 안전지대로 옮기고, 이 폭약을 폭파시키면 좌우 7m씩 도합 14m 지역에 있는 지뢰 95% 이상이 파괴된다.

    미클릭은 짧은 시간에 상당히 넓은 지역의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만, 수목이 울창한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수목 지대에서 발사하면 미클릭이 나뭇가지에 걸려 지뢰가 아니라 나뭇가지가 폭파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한 것이 K-1 지뢰제거 롤러(roller)다. K-1 지뢰제거 롤러는 한국형 K-1 전차의 양쪽 무한궤도 앞에 800㎏짜리 롤러를 다섯 개씩, 도합 열 개를 붙인 장비다. 이 롤러를 붙이고 K-1 전차가 전진하면, 롤러 무게에 눌려 땅 속에 있던 지뢰가 터져버린다. 이 롤러는 특수하게 만들었으므로 대인지뢰는 아무리 밟아도 깨지지 않고, 대전차지뢰는 다섯 발 이상 밟아야 깨지게 된다. 따라서 평지에서는 미클릭을 터뜨리고, 수목지대에서는 K-1 지뢰제거 롤러를 밀고 다니면 대부분의 지뢰를 제거할 수가 있다.

    그러나 광개토군단 산하 1공병여단(여단장 朴炳熙대령)은 미클릭과 K-1 지뢰제거 롤러보다 훨씬 더 안전한 지뢰 제거 방법을 제시했다. 1공병여단 병사들은 방탄조끼를 입고 1㎝ 두께의 철판으로 만든 엄폐호 안에서 여섯 단계로 작업을 진행한다. 제1단계는 병사가 엄폐호에 숨어 엄폐호에 뚫린 구멍으로 길이 14m쯤 되는 나무막대를 지뢰지대로 집어 넣는 것이다. 나무막대는 충격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막대에 밀려 지뢰가 폭발해도 병사들은 적은 충격을 받는다. 나무막대가 풀과 수목 그리고 돌이 뒤섞인 지뢰지대를 뚫고 들어가 무사히 ‘길’을 내주면, 이를 빼내고 나무막대와 같은 굵기의 PVC 통을 집어 넣는다.

    PVC 통 안에는 다이너마이트가 들어있는데, 철제 엄폐호에 있던 병사들을 대피시키고 이 통을 폭파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작업은, 로켓 대신 PVC통으로 미클릭을 지뢰지대로 밀어넣는 것과 같다. 육군의 실험 결과 PVC통 폭발만으로도 대전차지뢰는 100%, 대인지뢰도 거의 대부분 파괴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2단계는 콤프레서를 이용해 PVC 통을 폭발시킨 지대로 ‘고압 공기’를 발사해 흙먼지 속에 파묻힌 지뢰가 있는지 찾아본다. 이어 고압 살수차로 ‘물대포’를 쏴서 미수거 지뢰가 있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지뢰가 발견되면 병사는 유압 크레인이 들어주는 방탄 버켓(bucket·물통이라는 뜻인데, 흔히 말하는 ‘바께스’의 원단어가 이것이다)을 타고 들어가 수거하거나, 폭약을 장전해 폭발시킨다(병사는 전혀 땅을 밟지 않는다).

    3단계는 수목 제거로, 병사가 유압크레인이 들어준 버켓을 타고 PVC통 폭파 지역에 들어가 절단된 수목에 로프를 걸어주면 M9 ACE 전투도저(불도저와 같다)가 로프를 당겨 수목을 안전지대로 끌어낸다. 이어 4단계에서는 1㎝ 두께 철판으로 운전석을 보호한 굴삭기(포크레인)가 톱니처럼 생긴 버켓(흙을 퍼담는 부분)의 발톱으로 PVC통 폭파지역의 흙을 긁어 지뢰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본다. 굴삭기 버켓의 발톱 길이는 20㎝이므로 지표에서 20㎝까지를 뒤질 수 있는 것이다.

    5단계는 M9 ACE 전투도저로 땅을 30∼50㎝ 깊이로 밀며, 또 한번 숨은 지뢰를 찾는 것이다. 1공병여단 관계자는 이 다섯 단계를 거치면 대인지뢰와 대전차지뢰는 거의 100% 제거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6단계에서는 공군 EOD팀(폭발물 탐지반)과 폭발물 탐지견이 PVC통 폭파지역에 들어가 폭발물이 있는지 다시 한번 탐지한다. 공군 EOD 장비는 지하 5m에 있는 쇠붙이까지 탐지하므로, 이 과정에 지뢰는 물론이고 땅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불발 항공 폭탄도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지뢰 제거가 끝나면 5개 대대로 구성된 육군 건설단이 지뢰가 전혀 없는 흙을 싣고와 지표에서부터 5m 높이로 쌓은 후 침목과 레일을 깔아 경의선을 복구하고, 아스팔트를 깔아 신국도 1호선을 닦는 것이다.

    정중민 광개토군단장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서의 지뢰제거는 북측의 지뢰 제거 속도에 맞춰 진행한다. 북한은 공사를 하지 않는데 우리 측에서만 공사를 밀고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북한과 합의가 이뤄지면 이어 비무장지대 안에서의 지뢰 제거와 경의선 복구에 들어간다. 비무장 지대에는 한미연합군뿐만 아니라 인민군이 매설한 지뢰(목각지뢰)도 많을 뿐 아니라, 지뢰 매설 지도 자체가 없는 곳이다.

    비무장지대 작업시 ‘이곳은 남북군의 화력이 밀집된 예민한 지역이라는 점’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 예민한 지역이므로 PVC통을 이용한 폭파 방법은 사용하기 곤란하다. 때문에 독일제 무인 지뢰제거기인 ‘리노’와 ‘마인 브레이커’ 그리고 유인 지뢰제거기인 ‘카일러’(독일제)와 MK4(영국제) 등을 도입해 북한의 작업 속도를 봐가면서 착수한다. 이 장비들은 혼자서 직경 20㎝ 굵기의 나무를 절단해 가며 지하 25∼50㎝ 깊이에 있는 지뢰까지 제거한다. 이러한 장비가 작업을 끝낸 곳은 공군 EOD 팀을 투입하는 6단계로 바로 전진한다.

    비무장지대 작업시 작업장을 이탈한 우리 병사가 인민군 정찰대에 납치된다든지 하는 뜻밖의 상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광개토군단은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예하 특공연대 병력을 차출해 공병단을 보호한다. 정중민 광개토군단장은 “이번 사업은 무조건 안전이 최우선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공사시기도 연장하는 등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CCW 발효로 스마트 지뢰 탄생

    세 번째는 경의선 복원 이후 방어 대책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복원된 경의선이 가져다 주는 경제적인 이득과 별도로, 자유주의 사상이 유입되는 통로가 된다면, 북한은 경의선을 차단하기 위해 무력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 핵이나 미사일 위기를 다시 일으켜 전쟁 일보 직전으로 상황을 끌고 나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복원된 경의선과 신국도 1호선에 지뢰를 다시 묻을 것인가? 북한은 지뢰를 다시 매설할 수 있어도 CNN 등 세계 언론에 완전 노출돼 있는 우리는 다시 매설하기가 힘들게 된다.

    지뢰에는 사람이나 동물을 희생시키는 대인지뢰와 전차와 트럭을 무력화하는 대전차지뢰가 있다. 현재 휴전선 일대에 묻혀 있는 대인지뢰에는 M14 발목지뢰(일명 플라스틱 지뢰)와 M16 도약지뢰가 있다. M14 발목지뢰는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 있어 금속탐지기로 잘 탐지되지 않는데, 터지면 무릎 이하만 절단시켜 ‘발목지뢰’ 혹은 ‘플라스틱 지뢰’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M16 도약지뢰는 밟으면 사람 키 높이까지 튀어 올라 터지기 때문에 50m 이내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희생되는 강력한 대인지뢰다.

    대전차지뢰에는 M15 대전차지뢰와 M19 대인지뢰가 있다. 그러나 대전차 지뢰들은 사람이 밟으면 터지지 않고 트럭이나 전차 등이 밟아야 터진다. 150∼200㎏ 정도의 무게가 가해져야 터지므로, 지프가 밟으면 터질 수도 있고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작금 캄보디아나 코소보 북아프리카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인지뢰, 그중에서도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M14 발목지뢰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M14 발목지뢰 피해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지뢰들은 뇌관을 구성한 쇠가 썩거나 화약의 물성(物性)이 변할 때까지는 ‘말 없이’ 땅 속에서 살아 있으므로 ‘벙어리 지뢰(dumb mine)’라고 한다. 벙어리 지뢰는 전부 병사가 땅에 매설하는 것이므로 ‘매설식 지뢰’라고도 한다.

    벙어리 발목지뢰에 의한 피해가 잇따르자 호주·뉴질랜드 등 전쟁 위협이 거의 없는 나라의 사회단체들이 대대적으로 ‘무기는 전쟁중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아 남아서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무기를 추방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이 호응을 얻자 호주와 뉴질랜드·캐나다 정부 등은 ‘비인도적 특정 재래식 무기 제한 협약(CCW)’ 체결을 추진하는데, CCW에는 발목지뢰를 포함한 모든 벙어리 대인지뢰는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CCW 가입 운동이 일어나자 벙어리 발목지뢰 때문에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이 뜻밖에도 반대를 하고 나섰다. 이러한 나라들은 “비록 우리 민간들인이 희생되고 있지만 벙어리 지뢰가 없으면 우리는 국가를 방위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미국도 군사작전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가입을 반대해 CCW는 10여년 동안 표류했다. 그러다 캄보디아 등에서 발목지뢰에 다치는 민간인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자, 96년 4월 UN은 “UN 회원국은 각국의 비준 절차가 없어도 의무적으로 CCW에 가입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CCW가 10여 년 표류하는 동안 미국과 영국의 지뢰 제작회사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능해지는 ‘스마트 지뢰(smart mine)’를 개발했다. 스마트 지뢰의 가장 큰 특징은 시한폭탄처럼 사전에 입력시켜 놓은 시간이 되면 내부에서 간단한 폭발이 일어나 지뢰 성질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이 지뢰들은 보통 발사된 지 5∼7일 지나면 자폭한다. 두 번째는 땅을 파서 매설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뿌린다는 점이었다(살포식 지뢰). 스마트 지뢰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어 하늘에서 살포돼 땅에 떨어져도 터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살포된 스마트 대인지뢰가 도로나 운동장에 떨어지면 눈에 띄므로 적군은 금방 수거할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스마트 지뢰에는 아주 ‘스마트한 재능’이 추가되었다. 즉 땅에 떨어지는 즉시 지뢰 몸통에서 가느다란 실이 열 십(十)자 모양으로 나와 10m씩 뻗어나가게 했다. 이 실은 양복을 짤 때 쓰이는 실만큼 가늘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이 지뢰는 물론 몸통을 밟으면 터지지만, 이 실을 발에 걸고 일정한 힘 이상으로 당겨도 폭발한다(이 실이 바람에 날릴 때는 터지지 않는다). 때문에 도로나 운동장에 떨어져도 쉽게 주우러 나갈 수 없다. 더구나 한밤중이나 풀섶에 떨어졌다면 아예 접근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벙어리 대인지뢰는 그 지뢰가 매설된 곳만 위험했으나, 스마트 대인지뢰는 반경 10m가 위험지역이 되었다(CCW와는 별도로 지난 해 3월1일 스마트 대인지뢰를 포함한 모든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이 발효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오타와 협약에 가입하지 않을 계획이어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살포지뢰 거의 없는 국군

    대전차지뢰도 스마트화하면서 엄청나게 발전했다. 벙어리 대전차지뢰는 전차 무한궤도나 트럭 바퀴로 밟아야만 폭발했다. 때문에 무한궤도가 밟지 않는 한가운데 있으면 터지지 않았다. 그런데 스마트 대전차지뢰는 무한궤도가 밟을 때는 물론이고, 양 무한궤도 사이에 있거나, 아예 전차 옆에 있어 한쪽 무한궤도만 가까이 지나가도 터져버린다. 한마디로 자기 감응능력이 있는 것이 스마트 대전차지뢰인 것이다. 이러한 스마트 지뢰(살포식 지뢰)는 CCW의 제한 사항을 만족시키고 있다.

    스마트(또는 살포식) 대인-대전차지뢰는 헬기에서 뿌리거나, 야구선수들이 쓰는 피칭머신처럼 생긴 살포기로 하나씩 던져 뿌릴 수 있다. 최근에는 155㎜ 포탄의 탄두부에 가득 넣어 발사하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이러한 155㎜포탄이 지표 가까운 곳에 이르면 탄두부가 찢어지면서 스마트 지뢰가 산지사방으로 뿌려진다(포 발사시 살포지뢰).

    헬기를 이용한 살포는 헬기가 적 사격에 격추될 위험성이 있고, 살포기는 살포 속도가 너무 늦다는 것이 약점이다. 하지만 155㎜ 포탄을 이용한 포 발사식 살포지뢰는 안전하면서도 가장 빨리 지뢰를 뿌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포 발사식 살포 지뢰는 살포식 지뢰의 대명사가 되었다.

    급속한 속도로 진격해오는 적 기동 부대의 전후 좌우에 포 발사식 살포지뢰를 뿌려 포위해 버리면 적군은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이때 적군이 미클릭 따위를 보유하고 있다면 뿌려진 살포지뢰를 파괴하고 전진할 수가 있다. 또 이 지뢰들이 자폭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전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단 몇시간만 진격을 중지해도 곧바로 거센 반격을 받는다.

    휴전선을 넘어온 인민군 기동부대가 살포지뢰에 갇혀버리면, 국군은 공군 전투기와 항공작전사령부 예하의 공격 헬기 그리고 포사격 등으로 순식간에 인민군을 궤멸할 것이다. 이러한 전투가 바로 현대지상전의 총아인 입체고속기동전이다. 그리고는 살포지뢰가 자폭할 때를 기다려 작계 5027에 따라 휴전선 너머로 북진(격멸)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은 155㎜포 발사식 살포지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국군도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155㎜포 발사식 살포지뢰를 소량 도입했다. 그러나 살포지뢰의 보존 수명은 10년이므로, 이 살포지뢰는 수명이 다한 상태다. 때문에 현재 국군이 보유한 살포지뢰는 ‘K형 살포기’로 살포하는 살포지뢰뿐이다(그나마 K형 살포기와 살포지뢰도 올해 들어 보급되었다).

    3년 전부터 지뢰 살포와 제거를 담당하는 공병은 포 발사식 살포지뢰 보유를 주장해왔으나, 국방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군부가 충분한 방어책을 마련해 놓고 경의선 복구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살포식 지뢰가 없다고 해서 북한군의 남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항공작전사령부가 보유한 공격헬기와 포병, 그리고 아군 전차부대로 기습하는 인민군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은 살포식 지뢰의 살포다. 포 발사식 살포지뢰는 (주)한화에서 제작을 끝낸 상태라 국방부가 사업 승인만 내리면 즉각 공급할 수 있다.

    이처럼 경의선 복구를 위해 추진된 지뢰 제거는 완벽한 안보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미군과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작계 5027을 강화하며, 살포지뢰 확보한다면, 경의선 복구는 ‘해볼 만한 시합’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러한 현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다. 한 전략가의 지적이다.

    “도둑은 어느 집에 돈이 많으냐부터 살피는 게 아니라, 어느 집을 털었을 때 안전하게 빠져 나올 수 있느냐부터 살핀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도 통일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통일 과정에 오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통일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군이나 외교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김대령은 군이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가며 대북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안보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다른 분야에서 만점을 받았더라도 안보 분야에서 실패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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