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검사와 스폰서

“순천에서 여자 데려와 지리산 관광호텔에서 검사들과 술판 벌였다”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0-05-18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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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많았다. ‘스폰서 검사’의 불명예를 회복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자만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검찰 주연의 ‘스폰서-브로커’ 사건이 벌어졌지만 관행은 고쳐지지 않았다. 길게 보면 의정부법조비리(1997년)와 대전법조비리(1999년) 사건부터, 비교적 최근 사건만 해도 법조브로커 윤상림 사건(2006년),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스폰서 파동(2009년)까지 모두 그랬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검찰은 확실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고 또 관련자들에게 죄를 물었지만, 검찰 스스로 ‘오랜 관행’이라 부르는 스폰서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검사들의 스폰서였다고 고백한 정OO씨 사건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5월12일, 김준규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에서 특강을 했다. 이날의 발언 때문에 그는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권력과 권한을 견제하는 것은 맞지만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어디서 찾겠습니까.”

    부장검사 되는 게 무서웠다

    당장 국민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검찰과 사이가 나쁜 민주당은 이런 논평도 냈다.



    “국민 정서와 한참 동떨어진 발언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에 대해) 특검을 즉시 실시하고 공직자비리수사처도 설치해야 한다. 스폰서에게 밥과 술을 얻어먹고 금품수수 의혹이 있는 검사 수십 명의 명단이 있는데 깨끗하다고 하니 한심하다. 검찰 총수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검사들이 태연하게 대접을 받는 거 아니냐.”

    김 총장의 발언과 관련, 서울에 근무하는 한 평검사는 기자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김 총장의 발언이 그와 검찰의 진심일 거라고 믿는다. 스폰서 검사 문제가 여러 번 불거졌지만 검찰은 매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진상 규명을 외치던 검사들도 사석에서는 “검찰은 그래도 깨끗한 곳”이라고 입을 모을 때가 많았다. 기자는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번 정OO씨의 고백이 있은 직후에도 검찰의 한 간부는 기자와 사석에서 만나 “정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가 작성한 문건을 잘 보면 10~20년 전 일을 마치 요즘 일인 것처럼 써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보도한 MBC ‘PD수첩’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며 흥분했다. 검찰의 관행을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간부의 얘기를 듣다보니 2007년 삼성 관련 비리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떠올랐다. 김 변호사는 폭로 1년 전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었다. 그는 “부장검사 되는 게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의 얘기는 두고두고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술값, 밥값, 후배들 용돈을 걱정해야 하는 게 싫었습니다. 검사나 수사관들이 출장을 가거나 하면 조금이라도 용돈을 주는 관행이 있어요. 그런 거 잘하는 부장이 능력 있다는 말을 듣는 게 검찰 문화였습니다. (검사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보니 돈을 대겠다고, 스폰서하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선배들이 직접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예비 스폰서들을 만나는 게 죽기보다 싫더라고요.”

    “내부에서 나갔다”

    지난해 7월 검찰은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낙마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인사청문회를 치른 지 단 하루 만의 일이었다. 고가 아파트 구입, 스폰서와의 동반 골프여행 의혹, 부인의 명품 쇼핑 등 도덕성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검찰은 천 내정자의 낙마 이후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데는 소홀한 채 정보유출자 색출에 총력을 다했다. 유출진원지로 지목된 관세청을 내사한다는 등의 얘기도 나왔다. 그렇다면 당시 검찰 청문회 준비팀은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시 청문회 준비팀에서는 이미 천 내정자의 출입국기록, 쇼핑기록 등을 가지고 있었고 스폰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전한다. 문제가 된다는 의견이 준비팀 내에서 다수 나왔다. 어떻게 답변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천 내정자는 태연했다고 한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검찰 간부는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검사와 스폰서

    4월27일 오전 성낙인 위원장 등 검사 스폰서 의혹 진상 규명위원들이 서울고검 회의실에서 열리는 첫 회의를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준비팀에서는) 다 알고 있었죠. 천 내정자에게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고 논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천 내정자는 ‘준비할 필요도 없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낙마한 경우가 없다’면서 말이죠. 그래서 아예 예상 질문에 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딱 걸린 거지. 수원지검장 때 간첩 원정화 사건을 잘 해결한 뒤 청와대 측에서 굉장히 심임을 하게 됐는데, 그래서인지 청문회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안 했어요.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겁니다. 그러다가 막상 벽에 부닥치니 도망치듯 사표를 던져버리고. 검찰만 병신이 된 거지. 처음부터 인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 간부는 당시 이 개인정보는 검찰에서 흘러나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천 내정자의 임명에 불만을 품은 검찰 간부가 흘렸을 것이란 설명. 정보의 구체성으로 볼 때 타 기관에서 흘러나가기 어려운 자료였다는 게 추정의 근거였다. 그는 “사건이 터지는 순간 우리 조직에서 나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시간을 거슬러 2006년으로 올라가면, 광복 이후 최대 법조브로커라는 별칭이 붙었던 윤상림 사건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윤씨는 검찰 스폰서라기보다는 법조브로커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검찰과 법원을 돈으로 관리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넓은 의미에선 스폰서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윤상림 사건 당시 전·현직 검찰 직원들이 곤욕을 치렀다.

    사건 당시 만난 윤씨 주변 인물들은 윤씨의 자택(서울 강남구)에 드나들었던 검찰 간부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었다. 낮이든 밤이든 사람들로 넘쳐났는데 주로 고스톱을 쳤다는 것이다. 전·현직 검사장급 이상 법조인도 여러 명이었다는 게 윤씨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었다. 한 검찰 간부는 당시 기자에게 “나도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OOO 검사장님이 계셔서 놀랐다”고 말했었다.

    브로커 집에서 고스톱

    윤씨는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던 지리산 자락의 한 관광호텔에서도 검사들과 자주 술판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주말에 등산이나 휴가 등을 핑계 삼아 전국(특히 호남지역)에서 찾아온 검사들과 지하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윤씨의 부탁을 받고 이 관광호텔에서 30여 차례 술값을 대줬다고 주장하는 종교인 오OO씨는 이런 얘기도 전한 바 있다. 오씨는 윤씨를 2001년경 당시 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내가 2001년부터 최근(2005년)까지 OOO관광호텔에 족히 30여 번을 갔는데, 갈 때마다 판·검사들이 있었습니다. 많을 때는 4∼5명, 적을 때는 2∼3명이었어요. 가족들과 같이 휴가를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검사들은 보통 부장검사급 이상을 불러서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얘기를 많이 했고 무슨 부탁을 하는 것도 여러 번 봤어요. 서울에서도 술자리를 많이 가졌는데, 판사들과 술을 먹는 자리에서 돈봉투 돌리는 것도 여러 번 봤어요.”(‘신동아’ 2006년 3월호 참조)

    기자는 스폰서 정씨 사건이 터진 후에도 오씨와 한 번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오씨는 윤상림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자기가 술값을 댄 검사들과의 술자리에 대해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OOO관광호텔에서 술을 먹을 때는 종종 순천 같은 곳에서 여자들을 공수해 와서 먹곤 했어요. 3명을 부를 때도 있고 5명을 부를 때도 있고. 원래 그 호텔이 장사가 되는 곳이 아닌데, 윤씨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술판을 벌였습니다. 서울에서도 술을 자주 먹었는데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H검사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윤씨 덕을 많이 봤어요.”

    오씨가 ‘덕을 봤다’고 한 일 중에는 2001년경 H검사의 모친상 때 벌어진 일도 들어 있다. 당시 오씨는 윤씨의 전화부탁을 받고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에쿠스를 장례차량으로 보냈다고 했다. H검사는 그걸로 3일장을 치렀다. 오씨는 “나중에 차를 받아보니 아주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 검사는 고맙다는 인사 한번 안 했다. 운전기사도 딸려 보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밥도 제대로 안 먹였더라. 당시 장례식장에서 윤씨가 거의 상주 노릇을 했다. 윤씨가 일일이 다 전화를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렀는지 모른다. 검사 한 명 모친상에 정치인이며 기업인이 그렇게 많이 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윤상림 사건이 한창이던 당시 H검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로 한참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H검사는 “검찰 선배인 A변호사로부터 윤씨를 처음 소개받았다. 밥을 먹은 일은 있지만 술을 마신 기억은 없다. 장례식 때 빌린 차는 윤씨 소유 차량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윤씨가 관리한 검찰인맥은 엄청났다. 당시 수사팀이 압수한 다이어리에는 전·현직 검사 수백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씨의 한 지인은 “구속되기 얼마 전에도 윤씨가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전도유망한 여검사에게 골프를 가르쳐주고 머리를 얹어준 일로 즐거워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여검사 머리 얹어준 브로커

    ‘스폰서 검사’ 문제를 언급하면서, 1990년대 후반에 벌어진 의정부와 대전에서의 법조비리 사건을 빼놓기는 어렵다. 이들 사건은 말하자면 ‘원조 스폰서 사건’이다. 특히 취재기자의 구속,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던 대전법조비리는 법조사(史)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억된다. 이 사건의 주역이었던 이OO 변호사는 사건이 벌어진 지 몇 년 뒤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선거에도 출마해 화제가 됐다.

    대전법조비리 사건 당시 대전고검에 근무했던 B변호사는 지금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검사 스폰서’를 자임했던 이OO 변호사를 “일반인과는 다른, 엄청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을 가리지 않아요. 사실 고검에서 일하는 검사들의 경우 변호사들이나 스폰서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없어요. 그러나 이 변호사는 달랐어요. 회식 때마다 와서 5분이든 10분이든 인사를 하고 가요. 신용카드를 놓고 가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냥 식구가 되는 겁니다. 당시 대전지·고검에서는 회식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검사 출신이어서 그런가 수사의 허점을 귀신같이 찾아냈어요. 나중에 만나 물었더니 그분이 그러더라고. ‘검찰 수사내용을 가만히 보다보면 허점이 너무 많아서 지려야 질 수가 없다’고 말이죠. 솔직히 좀 부끄러웠어요.”

    “다 잊어버렸는데…”

    기자는 이번 ‘스폰서 검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비리, 특히 법조비리에 너무나 관대했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 쉽게 잊고 용서하는 분위기가 나쁜 습관을 키웠다는 일종의 반성이다. 기자는 그런 사례 중 하나로 1997년 불거졌던 의정부법조비리 사건을 떠올렸다.

    사건 직후인 1998년 4월 대검찰청은 법조비리에 대한 일제단속을 벌여 115명의 변호사를 적발했고 그중 52명을 기소했다. 판사 출신인 K변호사(52)는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 일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3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징계가 결정된 직후 미국으로 떠난 K변호사는 공정거래법 등을 전공한 뒤 2년 후 귀국했고 개방형 공채로 채용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송무담당관(4급)이 됐다. 송무담당관은 공정위 조사여부를 결정하는 공정위 내 핵심보직이다. 그는 공정위를 떠난 뒤에도 공정위 자문위원, 한국소비자원 조정위원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고 2007년에는 공정거래의 날을 맞아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법조비리를 거치며 오히려 법조계 거물로 성장한 셈이다.

    기자는 2004년 말 송무담당관이었던 K변호사와 전화통화를 한 일이 있다. 당시 그는 기자에게 “다 잊어버린 지난 일이다. 유학생활을 거쳐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공정위 측은 그를 특채한 것과 관련, 당시 기자에게 “변호사협회에서 징계를 받은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전문가라는 점을 높이 샀다”고 말했었다.

    물론 한 번의 실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법조비리 전력이 있는 사람을 다른 기관도 아닌 기업의 독점, 공정거래에 대한 조사·처벌권을 가진 공정위에서 뽑아 쓴다면, 그것도 알고 뽑았다면 문제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혹시 이런 경험과 사례가 법조비리에 무감각한 사회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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