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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향한 꿈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⑤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향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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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인원을 증원하는 사유의 하나는 장애사건을 다룰 적정한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인권위의 사건 중 장애사건은 전체의 11%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2001년 11월 25일, 인권위 개소와 동시에 가장 먼저 접수된 진정도 장애인이 제기한 것이다. 그만큼 장애는 인권의 상징성이 높다. 게다가 2007년 3월, 장애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이 법의 제정으로 단순한 차별 금지를 넘어서 활동보조인 제공 등 장애인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보호하고 촉진할 국가의 의무가 가중됐다.

인권위 통계를 봐도 장애사건은 급증 추세다. 근래 들어 인권위의 상임위원 셋 중 한 자리는 장애인이 맡는 전통이 세워진 듯하다. 국회에서 선출된 분까지 포함해 내리 세 분의 장애인, 그중에서도 여성 지체장애인이 상임위원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 국회에서, 그것도 야당의 추천으로 선출됐다.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장애가 드러난 사람과 감추어진 사람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장애인이다.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자연적인 생체리듬을 봐도 사람은 모두 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생을 마감한다. 갓난아이나 죽음을 앞둔 노인은 몸 가눔과 머리 씀이 온전치 못하다. 성인의 경우도 신체 한 부분의 기능이 모자라면 나머지가 공백을 메우기 마련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귀가 밝아지고 손끝이 더욱 정교해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하고 쓰곤 하는 나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라는 종래의 이원론,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장애란 사람들의 ‘차이’일 뿐이다. 인권의 본질은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존속 토막 살해 사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장애인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한쪽 다리가 의족인 반 친구가 있었다. 남달리 근면하고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그는 매일 경남 김해에서 부산 초량까지 시외버스로 통학했다. 당시에는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불구자’ 정도가 그나마 품위 있는 말이었다. 절름발이, 앉은뱅이, 곰배팔이, 벙어리, 소경과 같은 적나라한 용어가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아울러 ‘병신’이라고도 불렀다. 그가 그 먼 길을 힘들게 통학한 이유는 ‘병신’을 받아줄 하숙집이 마땅치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에게 내가 다가간 것은 알량한 서푼짜리 동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언덕배기 내리막 하굣길을 동행하다 의족이 부서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함께 허겁지급 응급처치를 하면서 그의 맨다리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했다. 그날 이후 애잔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반면 그는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예기치 않게 자신의 치부를 내보인 것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본능적인 반응에 분개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새 학년 들어 반이 갈리면서 우리는 더욱 서로 무관한 사이가 됐다. 졸업 후 그는 부산의 의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때까지 서울대학교는 장애인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의대 상급반이던 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패륜아 살인마로 언론에 등장했다. 계모와 함께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한동안 세상을 뒤흔든 ‘김해토막살인’의 주범이다. 노름꾼, 술주정뱅이, 상습폭행자인 아버지의 횡포에 시달리다 못해 나머지 가족의 안위를 위해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시체를 일곱 토막을 내 분산해 암매장했다. 정교한 칼 솜씨가 단서가 됐다. 직계존속 살인, 아무리 인간쓰레기라고 하더라도 ‘아비’를 죽인 패륜아는 자식을 죽인 ‘아비’보다 무겁게 벌하는 것이 우리 형법이다. 자식을 죽이면 보통 살인이지만 부모를 죽이면-시부모, 처부모도 포함된다!- 존속살해가 된다. 일반 살인은 법정형이 5년 이상의 징역이라 상황에 따라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존속살해죄는 사형과 무기징역밖에 없는 일종의 사회적 대역죄다. 대학원에서 헌법을 공부하던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평등권과 신분의 이론을 깊이 파고들게 됐다.

부모 되기는 택할 수 있지만 자식은 되고 싶어 된 게 아니다. 근대 형법의 기초는 ‘인간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신의 책임 아래 행동할 수 있다’는 대전제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자유의사로 선택하지 않은 직계비속(자식)의 신분을 그 반대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불리하게 취급하는 이 법리를 미풍양속의 이름으로 옹호할 수 있겠는가? 칸트의 이론과 일본의 판례를 인용하면서 나는 그를 위한 변론서를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의 접견을 거부했다. 그 후로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동창생 명부에서도 아예 사라져버렸다. 나 역시 애써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 꿈속에 나타난 적은 있다. 유난히도 승부욕이 강하던 부릅뜬 두 눈동자가 그대로였다.

장애도 신분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타고난 운명과 불운을 차별과 배제의 사유로 삼는 것이 옳지 않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장애인의 능력을 의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에 대해 다면적 평가를 실시하면 총합은 별반 차이가 없을 듯하다. 내 옛 친구의 경우도 그랬다. 한쪽 다리가 성하지 않은 대신 그는 무쇠팔뚝이었다. 위압감을 줄 정도로 강건하던 그 팔뚝을 만든 것은 잃어버린 다리가 아니었을까. 그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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