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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정몽준 향해 칼 빼들었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도쿄·LA·서울 숨바꼭질 인터뷰

  • 글: 이형삼 hans@donga.com

“나는 왜 정몽준 향해 칼 빼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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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월5일 오전 나리타공항 커피숍. 냅킨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어렵사리 격한 감정을 추스른 이 전회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때 죽었는데, 그후에도 아들들(정 명예회장의)이 나를 계속 흔들어대는 거라. 아주 부관참시를 합디다. 어디다 발령을 냈다 말았다 하질 않나, 소송을 걸질 않나, 형제 간에 싸움질을 하지 않나…예전엔 명예회장 앞에서 차려자세로 말도 잘 못하던 사람들이 아버지 몸이 불편하다고 저럴 수가 있나 싶더군요. 몇 달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다가 회사를 나왔습니다. 30년 동안 훌륭한 분을 모시고 원없이 일했으니, 비록 끝이 좀 안 좋긴 해도 나가게 됐을 때 미련없이 나가자고 정리했죠. 마침 텍사스에 사는 아들놈이 ‘왜 그렇게 마음고생하고 계세요. 바람이나 쐬고 가세요’ 하는 거예요. 쉬면서 책도 좀 읽고, 영어도 배우고, 곧 태어날 손주도 볼 겸 해서 바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벌써 2년이 지났네.

그 동안 책을 한 200권쯤 읽었어요. 신문, 잡지도 열심히 봤고. 영어가 짧아 ‘월스트리트저널’ 하나 읽는 데도 대여섯 시간씩 걸리긴 하지만요. 그러다 찌뿌드드하면 운동화 꺼내 신고 나가서 조깅도 하고…. 한국과는 연락을 완전히 끊었죠. 그렇게 사니 돈도 많이 안 들고 속 답답할 일도 없어요. 소송이 두 건 걸려 있는 게 좀 꺼림칙했지만, 저야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별 일이야 있겠나, 결국은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고 마음 편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LA에 갔다가 우연히 한국 TV 뉴스를 위성방송으로 보게 됐어요. 정몽준씨가 대선에 출마했는데 유력한 후보라는 겁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더구나 정후보가 무슨 토론 프로에 나왔는데, 누군가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물으니까 ‘금융감독원이 조작한 게 아니냐’ 운운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누구 대신 감옥에 갔는데…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떡하나…진실은 영원히 덮이는 거죠. 순간 손주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도 훗날 할아버지를 주가조작범으로 알 것 아닙니까.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내 문제는 내가 푸는 수밖에 없다, 나 혼자서라도 마이크 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바로 입을 열고 싶었지만, LA에는 한국 기자가 많이 나와 있지 않아 폭발력이 작을 듯했다. 생각 끝에 자료수집차 일본에 다녀오는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이 도쿄에 특파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회장이 연루된 두 건의 소송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형사소송과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 대납금 반환을 요구하며 제기한 민사소송이다.

1998년 4월부터 11월까지 현대증권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으로부터 2200억원을 끌어들여 현대전자 주식을 변칙 거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 이 사건으로 이익치 전회장은 2심에서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후 상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민사소송의 사연은 이렇다. 1997년 현대전자는 외자 유치를 위해 현대증권을 주간사로 선정, 현대투자신탁 주식 1300만주를 주당 13.46달러에 캐나다 왕립상업은행(CIBC)에 팔면서 3년 후 주가가 적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16.96달러에 되산다는 계약을 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이 전회장의 손실보전 각서를 믿고 이 계약에 지급보증을 섰다가 2000년에 2460억원을 물어줬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와 현대증권, 이 전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지난 1월 재판부는 세 피고가 총 피해액의 70%인 1718억원을 공동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다시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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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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