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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시론

벤치마킹에서 벤치메이킹으로 거듭나라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한 제언

  • 글: 金鎭炫 전 서울시립대 총장·한국무역협회 객원연구원

벤치마킹에서 벤치메이킹으로 거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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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한국경제에 걱정하고 심지어 비관할 만한 요건들이 없는 건 아니다. ‘5년 뒤엔 뭘 해 먹고 살 수 있을지’, 깊은 한숨을 내 쉬고 있는 기업인이 많다. 중요한 것은 단기자본거래이익에 집착하는 외국인이 낙관하느냐 비관하느냐, 집권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광고시장 원리에 따라 춤추는 언론이 뭐라고 하느냐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안전과 평화와 생존 발전에 기여할 경제적 조건은 어떤 것인가, 또 한국인의 삶에 가장 충실한 경제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IMF나 무디스나 S&P나 월 스트리트에서 보는 조건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선진국이 돼야 하는 이유는 선진국이 잘 살아 부러워서가 아니다. 국가목표나 사회공동체의 비전설정에 있어 레토릭(수사학)이 좋아서, 듣기 좋아서가 아니면 집권자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선진국이 되겠다는 나라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선진국이 되지 않으면 생존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선진국이 돼야 하는 나라가 있다. 스페인이나 남미는 선진국이 안 된다고 해도 국가의 생존과 안보에 지장이 없고 국민들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 현재를 참으라면 거부한다. 동남아의 많은 나라도 선진국이 절실한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나 대만, 스위스나 핀란드, 폴란드, 한국은 반드시 선진국이 돼야 하는 나라들이다. 자기 힘에 비해 너무나 강대한 세력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가 그러하다. 힘에 있어 세계 4대 강대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지구상에 유일한 지정학적 조건의 나라이며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제조업센터’와 일본이라는 세계 최고의 ‘생산기술센터’ 사이, 가윗날에 낀 지경학적 조건 때문이다.

또 세계는 지금 민족국가시대를 넘어 세계화시대, 초국경시대를 달리고 있는데도 우리는 민족주의의 가장 원시적 출발점인 민족통합조차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지 않으면 생존과 평화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다. 때문에 반드시 선진국, 그것도 적어도 스위스 정도의 초일류 선진국이 돼야 하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경제분석 기술꾼들에겐 한국의 부패가 두 대통령과 또 다른 두 대통령 아들이 감옥에 갈 정도라도 다른 신흥시장국가에서 돈벌이하기보다는 유리할 것이다. IMF나 세계은행 전문가들의 판단에는 한국의 정치혼란이나 노사갈등 정도는 내전중인 나라들보다는 훨씬 양호하게 보일 것이다.

이들에겐 대한민국이 4강과 겨루고, 더불어 살아야 하고, 경제적 코스트를 넘어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국가적 민족적 과제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단기분석틀 밖에 있거나 하위변수에 불과하다고 볼지도 모른다.

이들에겐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 좋은 시장이 된다고 계산할 뿐 왜 한국인, 한민족, 대한민국의 국가적 민족적 인간적 목표는 반드시 초일류 선진국인지를 의식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가 왜 부패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가, 왜 낭비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가, 왜 지도자들의 거짓말과 탐욕과 독직을 응징해야 하는가, 왜 저축과 절제를 그리고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가족해체, 사치, 허영, 폭력을 징벌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런 행태와 심리와 과시들이 선진국,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지체시키기 때문이다.

월 스트리트와 달라야 하는 낙관과 비관의 기준

우리는 지금 단군 이래 가장 잘살고 있다. 중진국 수준에 머물러도 괜찮은 국가의 운명이라면 이런 정치, 이런 기업, 이런 대학, 이런 부패, 이런 낭비로도 경제성장을 낙관해도 좋다. 그러나 선진국, 초일류 선진국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는 지금 비관적인 조건과 구조가 너무 많다.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와 연구자들은 1인당 1만달러의 국민소득 중 단순계산으로 반만 소비하고, 반은 4강 외교와 통일비용에 쓰고 저축해야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외국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국내교육과 문화환경도 열악한데 우리보다 약 20배나 국력이 높은 미국의 대학과 박물관과 예술관에 왜 ‘원조’를 해야 하는가를 경제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소득수준에서 선진국에 훨씬 못미치는데도 다른 빈국들에 선진국 못지 않은 인도적 원조를 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 술 한 병 마시는 소비를 절약해 북한 민둥산에 나무 한 그루를 더 심는 투자로 대체해야 하고, 나보다 더 잘사는 R&D 종사자들에게조차 더욱 연구에 정진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늘려주어야 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모방으로 따라가기만 했던 ‘우리도’가 아니라 IT, BT, NT, ET와 주요 제조·서비스기술의 일부에서는 세계를 리드하는 ‘우리만’의 독자적 기술을 창조해 내야 한다.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삶, 안전, 평화, 발전에 가장 충실한 세계시스템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가장 충실한 세계통화, 무역, 에너지, 교통, 환경, 이동(Migration) 시스템은 무엇일까를 스스로 벤치메이킹 해야 한다. 그런 후 이른바 현재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이끄는 노력을 해야 한다.

수준이 높은 외국전문가들의 분석기법과 예측모델에 의한 한국경제 평가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또 그 차원에서 면밀히 분석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다. 우리 자신의 국가적·민족적·인간적 과제와 목표, 비전, 전략의 범주에서 판단하고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음을 비우면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과학엔 국경이 없으나 과학자에겐 국경이 있다는 진부한 말을 굳이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우리 자식들에게 평화와 안전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이 땅에 사는 지식인, 정책결정자들이, 자신의 도덕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가을잎 떨어지는 자연을 바라보며 독백해 보기 바란다.

신동아 200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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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金鎭炫 전 서울시립대 총장·한국무역협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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