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호

가상화폐 역풍

천국과 지옥 오간 투자 체험기

‘가즈아’ 외쳤지만 순식간에 30% 폭락

  • 입력2018-01-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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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안 돼…차라리 그냥 잠이나 잘걸.” 

    1월 4일 오전 1시 30분경 매도한 동전코인 리플(XRP)이 불과 3시간 만에 급등했다. 전날 대비 30% 상승. 역대 최고가에 근접했다. 

    매도하지 않고 잤다면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투자액을 늘려 그냥 묻어뒀다면 한 달치 월세를 벌 수 있었다. 나는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괴로워했다. 그러다 ‘원금 손실을 본 것도 아닌데 너무 자책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가상화폐 투자를 하면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다.

    ‘경알못’의 야심 찬 투자

    필자가 최근 서울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다. [박지혜 제공]

    필자가 최근 서울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다. [박지혜 제공]

    나는 비트코인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첫 투자를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와 심상치 않은 상승세가 주식도 볼 줄 모르는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거래 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수익을 봐도 그만, 손실이 나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소액으로 시작했지만 투자는 투자였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한 정보부터 수집했다.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가상화폐, 즉 코인을 얻는 방법은 3가지다. 직접 채굴, 거래소를 통한 구매, 직거래를 통한 교환이 그것이다. 현재는 두 번째 방법인 거래소를 통한 매수·매도가 가장 손쉽고 안전하다. 물론 첫 번째 방법과 세 번째 방법도 사용되지만, 거래소를 통하는 쪽이 절차도 간편하고 정보도 다양하게 얻을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 

    시중엔 138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가상화폐가 나와 있고, 거래소마다 취급하는 화폐도 다르다. 가상화폐의 대명사 격인 ‘비트코인(BTC)’을 비롯해 리플(XRP), 에이다(ADA), 퀀텀(QTUM), 이더리움(ETH) 등이 요즘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개 가상화폐가 전체 거래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거래소 선택도 중요하다. 각 거래소는 취급 종목과 거래량, 수수료 비율, 보안 정도가 각기 다르므로, 투자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거래소를 고르는 게 좋다. 국내 대표 거래소로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인네스트 등이 있다. 나는 투자 초반엔 거래량이 많은 빗썸을 통해 투자했다. 이후 다양한 종목에 투자해보고 싶어 업비트로 거래소를 옮겼다. 

    거래소를 선택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원 가입이다. 빗썸은 e메일 인증을 거치게 한다. 업비트는 카카오톡 계정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회원으로 가입한 후, 거래 금액을 입금해야 한다. 거래소는 전용 가상계좌나 일회용 가상계좌를 열어주는데, 본인 명의로 입금해야 한다. 이전에 거래소에 가입하는 데엔 나이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정부가 본격적인 규제에 나서면서 1월 1일부터 미성년자는 이용이 금지됐으며, 거래 실명제 도입을 위해 가상계좌 신규 발급도 일시 중단됐다.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의 가상계좌 이용도 불가해졌다. 정부 규제가 잇따르자 가상화폐 투자 열풍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됐다. 

    정부 발표 이후의 가상화폐 투자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나는 새로운 종목에 더 투자했다. 이 종목들은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종목이자 가상화폐 시장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르는 코인들이었다.

    새벽 3~4시까지 들락

    필자가 투자한 한 가상화폐 종목의 거래 현황.

    필자가 투자한 한 가상화폐 종목의 거래 현황.

    가상화폐 투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카더라’ 식 분석이었다. 소위 ‘리딩방’에 ‘고급 정보’가 오가기도 했지만, 이 역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 상당수는 익명이었다. 결국 실제 투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좌우되는 셈이었다. 

    인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박모(26) 씨는 코인 투자에 나섰다가 350만원을 잃었다. 2017년 6월 200만 원을 투자한 리플이 폭락한 후 한동안 거래를 하지 않던 박씨는 비트코인이 2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오르는 것을 보고 650만 원에 1코인을 구매했다. 이후 730만 원에 비트코인을 매도해 예전의 손실을 어느 정도 복구했다. 

    이어 그는 이더리움클래식을 구입해 마침내 ‘플러스 400만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거래소를 바꿔 다양한 화폐에 투자했는데, 이 직후 이 화폐들이 폭락했다. 그는 당황해 코인을 전부 팔았다. 결산해보니 350만 원 손해로 나타났다. 코인 투자자들은 박씨와 같은 경우를 ‘패닉 셀(시장 변동에 당황해 매도하는 행위)’이라 한다. 박씨는 “손실이 크진 않았지만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후 박씨는 코인 투자에서 손을 뗐을까? 아니다. 그는 절치부심한 끝에 5개 코인에 분산 투자해 지금 150만 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투자에 쏟은 시간이나 정신 노동을 생각하면 큰 수익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가상화폐는 주식과 다르게 24시간 거래되고 변동 폭이 아주 크기 때문에 정신과 육체의 피로가 심하다”고 말했다.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수익률 30%이던 나의 가상화폐 투자 실적은 이후 수익률 0%로 내려앉았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한 지인의 말만 듣고 투자한 종목에서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이 종목은 투자하자마자 가격이 급락했다. 그러나 나는 성급히 매도했다 리플 때처럼 땅을 치고 후회할까 봐 버티기에 들어갔다. ‘차분히 지켜보자, 분명 반등한다’는 희망을 안고 하루 종일 파란색 그래프에 대고 ‘가즈아(가자를 늘려 쓴 코인 투자자들의 은어)’를 외쳤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K학원에서 일하면서 코인 투자를 거의 부업 삼아 하는 장모(43) 씨는 단기로 코인 투자를 할 때도 거래 동향을 세심하게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상화폐 투자는 사행성이 심한 편이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하루 5~10% 수익은 충분히 낼 수 있다. 가상화폐의 전망은 밝다. 지금의 가상화폐 형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다음 세대에는 종이 화폐를 대신할 뭔가가 있어야 한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가상화폐 도입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이 투기라고 규제만 하면 가상화폐 부분에서 뒤처질 것이다.” 

    상당수 투자자는 장기 투자가 아니면 아주 짧은 시간에 단타로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 규제는 코인 가격 등락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 투자자는 지금 정도의 규제로는 가상화폐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꺾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가상화폐의 시장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정부가 투기 요소를 줄이면서 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는 모험적으로 사들인 한 종목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손실을 가까스로 복구했다. 투자를 종료하고 현금화해보니 약간의 수익이 나 있었다. 그러나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 투자는 중독성이 강하고 유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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