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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고립된 영국 ‘해가 빨리 지는 나라’로?

‘브렉시트 쇼크’ 현장취재

  • 런던=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영국에 고립된 영국 ‘해가 빨리 지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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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고립되고 싶지 않다”

영국에 고립된 영국 ‘해가 빨리 지는 나라’로?
“우리는 EU를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배너를 들고 행진 중이던 타티아나 수아레즈(43) 씨는 “EU를 떠나든 남든 장단점이 다 있다. 나는 영국을 사랑하고, 런던을 사랑한다. 모든 유럽인이 나와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콜롬비아 출신 영국인 스페인어 강사인 그녀는 18년간 런던에 살고 있다고 했다.

‘브리버스(BREVERSE IT, 영국의 투표 결과를 뒤집어라)’라고 적힌 배너를 든 케이티 토슨(59) 씨는 “탈퇴 캠페인은 거짓 공약이었음을 사람들이 이제야 깨닫고 있다. 이번 선거는 무효다”라고 외쳤다. 초등학교 음악 교사인 아이린 마하니(55) 씨는 왜 잔류에 투표했느냐고 묻자 “얼마나 멋진 질문인가”라면서 “왜냐하면 우리는 유럽인이니까”라고 답했다.

“나는 평생 유럽인으로 살아왔다. 유럽과 함께 가고 있다. 유럽연합으로 인해 지난 60년간 세계 평화가 유지됐다. 무역, EU뿐 아니라 지구상 어디에서든 누구든 이곳에 와서 살 권리가 있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도록 해왔다. 영국에만 고립되고 싶지 않다.”

재투표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마하니 씨는 “투표 결과를 따르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52대 48은 너무 근소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재투표가 이뤄지거나 의회에서 재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카디프에서 온 안과의사 라크 데스터는 피자 박스 뒤에 ‘평화, 사랑, 유럽~통합(Peace, Love, EUnity)’이라고 쓴 배너를 들고 있었다. 그는 “만약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는다 해도, 영국인 모두가 브렉시트에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럽의 이웃에게 알릴 것이다. 우리는 유럽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오후 3시께 해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바람이 과연 어디까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2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렉시트 결정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국민투표’라는, 유명 소설가 이시구로 가즈오의 글을 게재했다. 영국 정부는 재투표는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410만 명이 재투표를 청원해 하원은 9월 5일 이에 대한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는 원래 법적으로 효력은 없고, 정부가 참고용으로 시행한 것이다.



2. 뉴몰든 퍼브에서 만난 탈퇴파
웨스트민스터 광장 시위대와 대척점에 있는 탈퇴파들의 층은 다양하다. 노년층과 지방 거주자, 소외된 백인 노동계층, 보수적 지식인 등 처지마다 제각기 탈퇴를 주장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든 이가 동의한 하나의 핵심 구호는 선명했다.

‘우리나라 통치권을 되찾아오자(Let′s take back the control of our country).’

그동안 영국이 스스로 자국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인가. 브렉시트에 찬성한 컨설턴트 마이클 지포드 씨가 그 이유의 일단을 설명했다. 그는 1973년 영국의 EU(당시는 European Community) 가입 국민투표에선 찬성했던 이다.

“영국은 EU 공동 시장에 가입하기 위해 투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EU의 목표가 정치적, 재정적 통합으로 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당시 EU 가입을 원한 영국인들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지포드 씨는 EU가 바나나 형태나 진공청소기의 최대 전력, 백열전구 세일 금지 같은 것까지 규정하는 기관이라며 EU가 점점 관료화됐다고 주장했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영국 법관들이 내린 결정을 계속 뒤집었다. 예컨대 영국은 죄수가 감옥에 있을 때는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데, 유럽사법재판소가 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EU에 임명되는 핵심 관료들은 임무가 막연하고, 직무나 성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면서도 처우는 매우 좋은 편이다. EU의 2만3000여 직원 가운데 5분의 1 이상이 연간 14만2000파운드(약 2억1500만 원)를 받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고 2년 전 일간 ‘더 텔레그라프’가 보도했다.

“1980년대 대처 총리가 영국을 흔들어놓은 이후 영국 정부, 비즈니스와 문화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내 생각엔 나라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는 영국 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EU는 중간이나 처진 회원국의 속도에 영국을 맞추느라 영국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작용을 해왔다. 따라서 영국이 EU 간섭 없이 스스로 법과 세금, 삶의 방식을 정할 수 있어야 하고, 영국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부자 나라에 인재 빼앗겨”

보수당 국회의원 크리스 그레일링은 브렉시트 찬성파다.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기고에서 ‘EU 탈퇴는 영국에 번창할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우리는 거대하고 풍부한 문화 자산을 물려받았으며, 전 세계에 강력하고 활기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늘 개척정신이 강했으며,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능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런던 서남쪽 한국 동포가 많이 사는 뉴몰든의 한 퍼브에서 만난 마거릿 콕스 킹스칼리지런던대 명예교수도 탈퇴파다. 지금은 작고한 남편이 전 노동당 의원으로 EU 가입 당시 EU 의원에 추천까지 됐더랬다. EU 가입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로 탈퇴를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하고 40년 이상 IT 교육 분야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EU의 부자 나라들이 인재를 흡수해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자유 이동에 관한 EU 정책은 동유럽과 남유럽 가난한 나라에서 서부와 북부 부자 나라로 ‘우수 두뇌와 전문가 유출’을 야기한다. 3주 전 불가리아에 갔을 때도 그곳 학자와 관리들이 ‘불가리아가 EU 멤버가 되면서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서구로 떠나 불가리아가 서구를 따라잡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콕스 교수는 이민자 문제를 언급하며 영국의 인구밀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영국 인구는 6300만 명으로 인구밀도는 ㎢당 256명. 503명인 한국에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EU 국가 중에선 매우 높은 편이다.

“이민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자원을 늘려야 한다. 런던 남부 서리카운티의 경우 지금 당장 중학교가 8개나 필요하다. 이민자 자녀들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의 재정도 한계가 있으니 적정 수준으로 이민자를 받아야 하는데, EU 안에선 우리 스스로 그것을 결정할 수가 없다.”

결국 이런 생각이 브렉시트의 또 다른 주요인이 됐다. 국민투표 전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이민자수는 정부가 예측한 10만 명보다 훨씬 많은 33만5000명이었다. 이 통계가 불에 부은 기름이었다.

3. 잉글랜드 북부 웨이크필드의 이주민들
브렉시트 이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탈퇴에 투표한 과반은 세계화 속에서 자신들이 늘 루저(패배자)라고 느끼는 소외된 영국인들이다. 그들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지역으로 몰려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표 결과를 보니 잉글랜드 중북부 돈카스트(69% 탈퇴), 웨이크필드(66.4%)에 그런 이들이 사는 듯했다. 돈카스트는 철강도시였다가 몰락한 뒤 제과업이 성하면서 소비도시로 변했고, 웨이크필드는 여전히 섬유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이들 지역은 또 우익 궐기 지역이다. 인근에 EU 잔류 캠페인을 벌인 조 콕스 의원 살인사건이 일어난 버스톨이 있다. 콕스 의원 지역구인 바틀리앤드스펜은 커클리스 투표구로 54.4%가 탈퇴에 투표했다. 애초 이보다 더 탈퇴 여론이 높았지만, 콕스 의원 사건 이후 잔류파가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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