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국적에 무심한 키르기스족의 영원한 고향

혜초가 눈물뿌린 험난한 실크로드 '사리콜계곡'

  • 만화가 조주청

    입력2005-05-11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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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에 무심한 키르기스족의 영원한 고향
    길은 거칠고 산마루는 엄청난 눈으로 덮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떼가 들끓는구나.

    새는 날아가다가 깎아지른 산을 보고 놀라고

    사람들은 좁은 다리 건너기를 두려워하는구나.

    평생에 울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눈물을 천줄기나 뿌리도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신라의 고승 혜초가 읊은 오언시다.

    약관에 중국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간 혜초는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구도 여행하고, 돌아올 땐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왔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자 앞을 가로막은 톈산(天山) 산맥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혜초는 이렇게 눈물을 뿌리며 시 한 수를 지었다.

    결국 파미르 고원에서 톈산을 넘어 사리콜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침내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카슈가르에 당도했다.

    그의 나이 20세 때인 727년 가을이었다.

    혜초가 파미르 고원에서 톈산을 넘어 카슈가르까지 오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릴 만큼 톈산은 높고 사리콜계곡은 끝없이 이어졌다.

    톈산을 넘어가는 이 길은 실크로드 중에서도 가장 험난한 구간이었다.

    1300여 년이 지난 지금, 혜초를 겁주던 도적떼는 간 곳 없고 건너기가 두려운 좁은 다리도 자취를 감추고 신장자치구와 파키스탄을 잇는 도로가 이어져 자동차가 톈산을 넘어 다니지만 아직도 길은 험하고 산마루엔 여전히 엄청난 눈이 쌓여 있다.

    위구르족이 신장자치구의 주인이지만, 톈산 아래 사리콜계곡엔 키르기스(kyrgyz)족이 살고 있다. 키르기스족은 원래 시베리아에서 살다가 10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아시아로 이주한 종족으로, 그들의 조상이 먼 옛날 베링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을 때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가 인디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톈산 산맥 너머 그들의 나라 키르기스탄이 있지만, 이곳 사리콜계곡에 살고 있는 키르기스족은 행정구역상 신장자치구 주민으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든, 키르기스탄이든, 신장자치구가 독립을 하여 위구르스탄이 되든, 우리는 상관할 바 없어.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조상들처럼 살아 갈 따름이니까.”

    국적에 무심한 키르기스족의 영원한 고향
    66세 술라이만씨에게는 지붕 위의 옥수수가 중하지 국적이 중한 게 아니다.

    혜초의 발자국이 점점이 박혀 있는 사리콜계곡, 골골이 주름진 민둥산 아래 외딴집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다.

    이 집 가장, 술라이만 노인과 부인 톳티한(60)의 자녀 4남3녀 중 2남2녀는 결혼, 15명의 손자손녀를 두었다. 딸은 시집을 가면 집을 떠나지만 아들은 장가를 가도 세간 나는 법이 없다. 집을 늘려 방을 새로 만든다.

    이곳은 1년 강우량이 우리나라 하룻밤 비에도 못 미치는 지독한 건조지역이다.

    바다가 먼 내륙지방이라 이곳까지 찾아오는 구름도 적은데, 그나마 모든 구름은 톈산에 걸려 산꼭대기에 눈으로 쌓인다.

    건조한 이곳에서는 지붕을 흙으로 편편하게 덮어놓아도 비가 새지 않는다.

    혹서, 혹한에 흙집만큼 좋은 집도 없다.

    집 안은 벽과 바닥이 온통 카펫으로 도배되었다. 바닥 카펫은 그들이 사용하는 것이고 벽을 덮은 카펫은 보온도 하면서 카펫 수집상에게 팔기도 하는 전시용이다.

    이 집에서는 자가용 격인 말 한 마리, 그리고 소 4마리, 양 60마리를 키운다. 매섭게 추운 겨울을 나면 양털을 깎는다. 이 양털을 손질해서 실을 짜고 염색을 하고 카펫을 짜는 일은 여자들 몫이다.

    봄이 되면, 남자들은 양떼를 몰고 몇날 며칠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간다. 봄볕이 눈을 녹이고 풀이 돋아난 곳에 그들은 텐트를 치고 여름을 난다.

    톈산의 겨울은 일찍 찾아와 10월 하순이 되면 양떼를 몰고 집으로 내려온다. 양들은 오동통하게 살이 찌고 털은 길게 자랐지만, 집을 떠나 산에서 양떼를 돌보다 내려온 아들들은 꺼칠하게 말랐다.

    석탄 난로가 후끈후끈 달아오른 집 안에서 발 뻗고 자고,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케밥(양고기), 라그만(국수), 삼사(호박파이), 요거트(발효유)를 먹고 나면 며칠 안 가 희멀겋게 살이 찔 것이다.

    “한 집에서 살다 보면 고부간이나 시누이와 올케간에 다투지 않느냐”고 묻자 이 집 여자들은 일제히 까르르 웃는다.

    그때 꼬마 하나가 바지를 흙투성이로 만들어 들어오자 엄마가 아니라 시누이가 달려가 손바닥으로 조카의 등줄기를 때리고 바지를 벗긴다.

    국적에 무심한 키르기스족의 영원한 고향
    ▶여행안내

    신장자치구 동북쪽에 위치한 우루무치에서 서쪽 끝에 자리잡은 카슈가르까지 침대가 있는 특급버스는 30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필자는 작은 차를 빌려 톈산 자락으로 이어진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데 꼬박 3일이 걸렸다.

    카슈가르에서 실크로드 최악의 난코스였던 사리콜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지금도 험하다.

    중국 국경수비대가 있는 게즈검문소까지는 80km, 위구르족이 사는 신장자치구이지만 이 험준한 계곡엔 소수민족인 키르기스족이 살고 있다.

    그들은 참으로 마음씨가 좋아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따뜻이 맞아주고 음식을 내온다.

    식당이 없기 때문에 사양말고 먹어둬야 한다.

    이곳에 가기 전에 ‘왕오천축국전’이나 실크로드에 관한 책을 읽고 갈 일이다.

    국적에 무심한 키르기스족의 영원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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