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 착한 식당을 찾아서 |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 제작팀 지음, 동아일보사, 352쪽, 1만5000원글자 그대로 ‘PR 시대’다. 그러나 특정 상품의 노골적인 노출은 오히려 소비자가 매체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주요인 중 하나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모종의 거래가 이뤄지진 않았는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은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하기도 한다. 상품 광고와 홍보는 갈수록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고, 소비자는 빤한 상술에 속지 않기 위해 주시한다. 이래저래 소비자는 피곤하다.
어찌 보면 채널A의 먹거리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은 대놓고 특정 식당과 먹거리를 소개하는 뻔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식당 주인의 일상, 음식에 대한 원칙과 고집을 감동스럽게 연출한다. 그의 투박하고 거친 손을 클로즈업하며, 심지어 음식 한 그릇을 위해 농사부터 짓는 1년여의 조리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남이 무식하다고 할 정도의 우직함과 고집을 정말 ‘착하다’며 대놓고 칭찬한다.
그것도 모자라 방송에 소개된 식당들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시청자가 그냥 지나쳤을지 모른다며 친절한 문장에 사진까지 곁들여 자세히 소개한다. 누구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쉬운 글로 식당 주인들의 노하우를 따라 하면 우리 식탁이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착한 식당’에 선정된 곳의 리스트, 찾아가는 법, 대표 메뉴의 가격, 주의할 점 등도 일러준다. ‘착한 식당’은 일반적인 맛집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들이 기대한 맛이 아닐 수도 있다고 미리 못 박아둔다. 그러면서 손님이 많을지 모르니 전화로 예약하고, 재료가 떨어지면 헛걸음할 수도 있으며, 음식을 주문해야 조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것을 각오하라고 말한다. 특정 식당을 내세워 독자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품새가 보통 뻔뻔한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청자이자 독자들은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의 뻔뻔함에 많은 박수를 보내줬다. 소비자가 잘 모르는, 먹거리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착한 식당, 착한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응원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여느 시사 프로그램처럼 단순히 유해식품에 대한 고발과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도 아니고, 보통의 맛집 프로그램처럼 푸짐한 먹거리와 복스러운 ‘먹방’ 연출로 절로 군침이 돌게 하는 것도 아니다. 착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에 집중함으로써 그들의 올곧은 방식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식문화를 개선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착한 식당에는 지금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성지순례’는 소비자가 착한 식당을 칭찬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착한 식당을 책으로 엮어낸 것은 우리 제작진이 착한 식당을 칭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고, 자랑하고, 광고해야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착한 식당, 착한 사람들이 생겨날 것 아닌가.
이영돈 |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 진행자 |
New Books문명의 교류와 충돌 | 성해영 외 지음교황 우르바노 2세가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빼앗기 위해 감행했던 십자군전쟁은 실패했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상징하는 이 전쟁은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고 왕권이 강화되는 역사적 계기가 됐지만, 문명교류사로 보면 지중해 무역 활성화와 학문의 수입 등 다방면의 교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이 이슬람과 교류의 물꼬를 텄고 나아가 중국과도 교류하면서 세계경제에 편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명과 비문명’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 ‘중심과 주변’ 등 고전적인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문명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대등한 ‘만남의 과정’을 조명했다. 저자들은 페르시아전쟁이, 이질적인 문명들의 만남이 마치 거울처럼 타자를 통해 나를 자각하고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한길사, 404쪽, 1만8000원신을 찾아서 |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과학과 종교계의 오랜 논쟁인 ‘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신의 실체에서 초자연 현상까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유전학과 뇌과학, 화학, 신경정신학 등 여러 전문 분야를 넘나들며 신과 영적 체험을 주제로 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엮어 두 패러다임의 화해 가능성을 모색한다. 유전적 영향이 개인의 영성에 차이를 가져온다든지,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의 작용과 영적 체험에 유사성이 있다든지, 이런 체험이 뇌의 특정 부위(측두엽)나 뇌파(감마파) 활동에도 연관성이 있다든지 하는 저자의 방대한 취재 결과물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25년 경력의 탐사 전문 작가이자 현재 미국 공영라디오(NPR)의 기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과학적 연구 성과에 대한 객관성을 견지하면서도 ‘믿는 자’들을 향한 애정과 공감을 잃지 않는다.
388쪽, 1만4000원식탁 위의 한국사 | 주영하 지음한국인의 일상인 동시에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여겨지는 한식(韓食)은 언제부터 변함없이 이어져온 것일까. 저자는 한국 음식의 원형을 찾는 것보다 ‘한국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를 알면 그 사회의 역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100년간 한국의 음식 문화사를 들려준다. 설렁탕, 신선로, 자장면 등 메뉴로 오른 음식이 시대에 따라 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탄생과 기원을 미시적으로 추적할 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동이 음식 문화에 끼친 영향을 거시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 속 음식에 얽힌 변화상과 역사성을 통찰한다. 생물학적인 음식에는 물질이 담겨 있지만, 문화적인 음식에는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스트, 572쪽, 2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