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만해 한용운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2/3
하필 포도주를 바친 까닭

만해는 임에게 바치는 술로 왜 포도주를 선택한 것일까? 먼저 그것이 ‘임에게 바치는 술’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가문학은 곧 ‘임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임에는 전통성이 있다. 근대 이전의 시가에서 임은 대개 임금 또는 애인을 가리켰다. 1910년대 시문학은 국권 상실에 따른 좌절을 ‘부재한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근대시의 중요한 영역을 창조했다. 근대적 주체를 확립하려는 계몽적 기획이 좌절되었을 때, 임은 자아를 확충하고 현실을 자각하며 전망을 모색하는 시적 매개항이었다. 1920년대에 이르면 임은 시인들이 애용하는 관용어의 하나로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확인하고 망국민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효한 장치로 작동한다.

만해의 임에 대해서는 네 가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째는 빼앗긴 조국이나 민족의 정기 등으로 보는 민족적 견해다. 둘째는 중생, 불교적 진리, 무아(無我) 등으로 보는 불교적 견해가 있다. 셋째는 민족적 견해와 불교적 견해 등을 절충한 견해이고, 마지막으로는 생명적 근원, 사랑과 희망과 이상의 상징 등으로 보는 작품 중심적 견해가 있다. 어떻게 보든 만해에게 임은 인간 이상의 성스러운 대상이다. 그런 대상에게 소주나 맥주를 바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 대상에게는 오래전부터 신성한 제의에 사용됐던 술이 어울리고, 그런 면에서 포도주는 제격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포도주는 바쿠스 등의 신과 연관되고, 이슬람교에서 포도주는 낙원에 살도록 선택된 자들만이 마시는 술이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가리켜 “이것은 나의 피니라”고 말한다. 아마도 붉은빛이 피와 가장 비슷한 술이라는 것은 만해가 하필 포도주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포도주’에서 화자가 임에게 바치는 것은 포도주이자 눈물이다. 임을 기다리는 간곡한 심정에서 흘리는 눈물, 그것은 곧 생명의 정수인 피와 다를 것이 없다.

부드러운 여성적 여조 안에 감춰져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신성한 대상에 대한 지극한 경배와 피를 토할 만큼의 간절한 그리움이다. 그러니 포도주를 선택한 것은 만해의 천재적인 시적 감성의 발로다. 만약 여기에 막걸리나 요즘 포도주 대용으로 많이 즐기는 ‘복분자주’ 따위가 들어갔으면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당신’의 발견과 연애편지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만해 한용운의 손바닥과 필적.

시집 ‘님의 침묵’에 임만큼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임을 부르는 ‘당신’이라 말이다. 그런데 임을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부르는 것은 1920년대에는 무척 새로운 현상이었다.

임이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닌 명칭인 데 비해, 당신은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야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임과 같은 극존칭 대상에 대한 호칭으로 당신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로 짐작된다. 이때에 이르러 당신이 존칭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20년을 전후로 당신이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1921년 5월 30일자 동아일보는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2인칭 대명사 경어로 ‘당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외에도 계명구락부는 1921년 ‘성명하경칭어(姓名下敬稱語)’로 ‘씨(氏)’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결의한다. 그들이 ‘씨’와 ‘당신’을 사용하자고 결의했다는 사실은, 역으로 그 말들이 그런 용례로 널리 사용되는 말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계명구락부는 민족 계몽과 학술 연구라는 목적을 내세운 단체였다. 문일평, 박승빈, 오세창, 윤치호, 이능화, 최남선 등이 주도해 만들어졌으며, 변호사, 사업가, 의사, 은행원 등 식민지 상류층 인사들이 회원이었다.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재력가의 모임이었다. 그래서 ‘부르주아들의 친목 단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들은 말과 글, 예의, 의식주 등 일상생활의 개선을 통해 민족 계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씨’와 ‘당신’을 사용하자는 그들의 결의 또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사상을 수용하려는 계몽주의의 일환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계급주의 시대에는 언어 또한 계급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왔다고 비판하면서, 평등제도를 이상으로 하는 시대에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용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영어의 ‘미스터(Mr)’, 일본어의 ‘상(箱)’에 해당하는 말로 ‘씨’를 사용하고, 경어로는 ‘당신’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당대의 사교적 결함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근대화로 맞닥뜨린 낯선 경험과 관련되어 있었다.

신분에 구속되고 소규모 공동체에 고립되어 있던 전근대와 달리, 근대 문물이 도입되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낯선 사람과 대면할 일이 늘었다. 근대인들은 종래의 신분제도에서 벗어나 국민 혹은 인간이라는 평등한 대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서로를 호칭할 마땅한 말이 없었다. 경어법이 없는 영어의 경우에는 신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you’라는 호칭을 쓰면 되지만, 경어법이 발달한 우리의 경우 ‘너, 그대, 자네’와 같이 하대하는 말을 처음 만나는 대상에게 쓰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볼 때 ‘씨’와 ‘당신’은 도시화와 평등주의라는 근대의 경험 속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은 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평등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 낯선 사람과 만나는 데서 생기는 사교상 불편을 해소하는 동시에, 한국어의 특성인 경어법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속에서 ‘씨’와 ‘당신’이 ‘발견’됐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계명구락부의 바람이 현실에서 완벽하게 실현된 장소는 근대적 연애와 연애편지뿐이었다. 낭만적 사랑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연애는 낯선 타인과 처음 만나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이때 상대방의 계급적 지위나 연령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감정적 유대뿐이다. 또한 연애는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부르기 위한 호칭이나 2인칭 대명사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우리의 관습상 처음 만나는 상대를 하대할 수 없고, 낭만적 사랑은 상대에 대한 헌신과 숭배를 수반하기 마련이므로, 연애에 필요한 호칭이나 2인칭 대명사는 존칭의 자질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에 응답한 것이 바로 ‘씨’와 ‘당신’이었다.

2/3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목록 닫기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