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김소월과 그의 스승 김억은 늘 담배연기를 검은색으로 묘사했다.
-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담배연기를 ‘자운(紫雲)’으로 묘사한 것과 달리.
- 자운의 담배는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몽상에 빠져들게 하지만, 검은 담배는 피울수록 슬픔과 감상을 깊게 한다.
밥은 한 끼 굶어도 담배는 굶을 수 없다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닌 세상이외다. 우리는 밥만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인 줄 알았더니 이것으로 보면 담배도 또한 인생 생활에 없어서는 아니 될 필수품의 하나임을 알 것이외다. 무럭무럭 허공을 돌다가 자취 없이 스러지는 담배에서 우리는 인생의 끊길 줄 모르는 자극성 요구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것이외다. 그러고 같은 때에 시취(詩趣)로의 제법무상(諸法無常)이라는 가장 감상적 일면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외다.
이 글에서 김억은 담배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를 ‘자극성 추구’에서 찾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극을 요구하기 때문에 담배가 필수품이 됐으며, 담배는 ‘제법무상’이라는 감상적 측면으로 인해 시적 정취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동인이 담배의 유용성을 실용적인 측면에서 논했던 것에 비하면 좀 더 미학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억이 방송에서 말한 구체적 사실은 방송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대강 어떤 내용을 말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밥과 같은 생활필수품
그는 1925년부터 동아일보에 ‘학창산화(學窓散話)’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는데, 이 중에는 담배와 관련된 글이 여럿 있다. ‘연초’ ‘연초의 생산제한’ ‘연초의 시취(詩趣)’ ‘흡연전쟁’ ‘연초의 기원’ 등이 이때 쓴 글이고, 1934년에는 매일신보에 ‘연초의 시상(詩想)’이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필자들의 글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 것을 보면, 김억의 글은 대부분 외국 책에서 옮겨온 것들로 보인다. 그 내용도 문학과 관련된 것은 거의 없고, 있다 해도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1934년 2월 ‘신동아’는 연초세법 반포 25주년을 기념해 담배와 관련된 특집을 마련했는데, 김억의 시가 특집의 맨 첫머리를 차지한다. 김억은 모두 세 편의 작품을 기고했는데, ‘Thus think, then drink tobacco’와 ‘나무 파이프’의 번안물이 두 편이고 한 편만이 김억의 순수 창작물이었다.
열 잔 술로 시름을 모두 버리고
담배 물고 무심히 앉았노라면
무럭무럭 하공을 연기 돌다가
자취 없이 그대로 스러지고 마네.
뜬 시름에 고요히 대를 물으니
연기는 이내 심사 모다 들뜨며
지향 없이 하늘을 덮고 덮거니,
이 시름 무겁고야 바람아 불라.
하도 답답 아닌 밤 대를 물으니
연기만 무럭무럭 천정에 닿고
내도 없이 타는 속 풀 길은 없어
다시금 가슴 치며 대를 놓노라.
이 작품에서 김억이 주목한 것은 담배 연기다. 속절없이 스러지고 마는 담배 연기는 그가 속해 있는 공간을 전부 덮어버리면서 설움을 배가한다.
그는 ‘연초의 시취’라는 글에서 “생의 고난과 생의 피로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를 바라보는 필경에는 인생의 전 광경이 번역될 것이다”라고 썼다.
몽상과 현실의 검은 담배 연기
김억에게 담배 연기는 명상의 도구이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다. 그의 시에서 담배 연기는 현실을 지움으로써 몽상에 빠져들게 하는 동시에, 주위를 뿌옇게 뒤덮어 답답한 현실을 절감케 하는 모순적 존재다.
그래서 그는 담배 연기를 항상 검은색으로 묘사한다. 동양에서 담배 연기는 전통적으로 ‘자운(紫雲)’으로 묘사됐다. 실제로 보라색 연기를 만들어내는 담배는 없지만, 담배 예찬론자들은 담배의 신비한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자운이라는 말을 즐겨 썼고, 이는 보편적으로 통용됐다. 자운 대신 푸른색, 흰색, 노란색 등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검은색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운이나 푸른색을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김동인이 말한 것처럼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몽상에 빠져들게 하는 반면, 김억이 묘사하는 검은 연기는 몽상과 현실을 교차시킨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면 피울수록 슬픔과 감상은 깊어지게 된다.
이는 김억에게서 술과 담배를 배웠다는 김소월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낫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 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붓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어.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김소월, ‘담배’
김소월은 이 작품에서 담배에 관한 오랜 전설을 소개한다.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낫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는 구절은, 당시 세간에 널리 퍼져 있던 담배 관련 속설을 시화한 것이다.
죽은 여인의 춘정
속설에 따르면, 옛날 중국 어느 곳에 인물이 천하절색으로 남보다 다른 뜻을 가지고 세상에 온 기생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이름이 담배였다고 한다. 담배는 살아서 천하의 남자를 다 만나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 소원의 만분의 일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가 묻힌 무덤에서 풀이 자랐고, 그것을 ‘담배’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담배의 전래 과정을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이지만 당시 민간에는 이와 유사한 속설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21년 총독부가 담배 전매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히자 저항이 만만치 않았는데, 전매 반대론자들은 이 속설을 인용해 ‘죽은 여인의 춘정마저 착취하려 한다’며 총독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소월은 그와 같은 속설을 소개하면서 담배를 삶의 괴로움과 쓸쓸함을 함께하는 친구로 그리고 있다.
김억과 마찬가지로 김소월도 담배 연기를 검은색으로 묘사한다. 검은색은 내면의 괴로움과 쓸쓸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전설 속 여인의 서러운 죽음과도 맞물린다. 즉 이 시에서 ‘담배를 태운다’와 ‘무덤 위의 풀을 태운다’는 같은 행위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내면의 슬픔이나 죽음과 대면하는 행위인 동시에 그러한 슬픔을 치유하고 죽음을 무화하려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이 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시간을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화자의 앞에는 권태와 슬픔으로 가득 찬 세계만이 놓여 있다. 그가 할 수 있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행동이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그러한 시간이 “지나가라”라고 말하는 일밖에 없다. 화자의 이러한 모습은 무용한 것들에 탐닉함으로써 예술가적 자의식을 만들어가는 댄디즘의 일면이라고 볼 수 있다.
1909년 촬영된 담배 공장 동아연초 전경.
1940년대 일제강점기 담배공장에서 포장 작업을 하는 광경.
또한 이 작품에서 여인의 죽음과 관련된 담배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리처드 클라인에 따르면, 북미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긴 담뱃대의 깜부기불은 종족이 둥그렇게 둘러서 있는 원과 그들 조상의 영혼들을 결합시킨다. 시간으로부터 도피하고 과거와 미래를 소환하는 힘을 지닌 담배는 인디언과 그들의 죽은 조상들을 연결한다.
김소월은 ‘무덤’이라는 시에서 고구려의 거대한 고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떠올리게 하는 성스러운 사원으로서의 무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작품의 담배 역시 그러한 무덤의 이미지와 연결돼 있다.
이와 같이 김소월은 담배에 김억과 유사한 이미지를 부여하면서도 스승을 넘어선다. 김억이 외국의 시를 번안하거나 번안시를 흉내 내는 데 그친 반면 김소월은 담배에 얽힌 민간의 속설과 자신의 내면을 결합해 담배라는 대상을 자기 식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김억이나 김소월과는 달리 담배의 심미적 측면을 감각적 쾌락에서 찾은 것으로는 경성제대 의학부 박사 출신인 정근양의 ‘담배’라는 글이 있다. 당시에 발표된 담배 예찬론이 대부분 김동인의 글처럼 실용적인 측면을 언급하거나 외국 책을 인용해 기존의 견해를 반복하는 반면, 의학도였던 정근양은 담배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등 감각적 차원에서 논한다.
그는 담배와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 감각으로 시각을 꼽는다. 고요한 방 안에서 상승하는 담배 연기를 보노라면 한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따라서 앞을 볼 수 없다면 담배로 인한 쾌락의 절반은 날아가버린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담배는 그 종류에 따라 독특한 향기로 후각을 자극한다. 따라서 향기만으로도 그 담배가 어떤 종류인지 구별할 수 있다. 또 정근양은 특이하게도 담배로 얻는 청각적 쾌락 또한 지대하다고 주장한다.
담배는 빨면 재가 앉는다. 그 재는 열이 있다. 이것을 물을 넣은 재떨이에 털 때 일어나는 소리, 뜨거운 물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잠복하는 그 소리를 나는 매우 좋아한다. 순간적인 그 소리, 곧 꺼지는 그 소리는 어떠한 영기(靈氣)를 가진 것도 같다. 뉴턴이 시사를 받았다고 하는 떨어지는 능금도 땅에 떨어져 어떠한 소리를 낼 적에 그의 머리 속에는 어떠한 영감이 떠올랐을 것이나 아닐까. 재떨이에는 반드시 물이 들어야 하고 물은 맑아야 한다. 아래로 가라앉아 내려가는 재 줄기를 바라봄도 또한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담뱃불을 죽일 때도 반드시 물 속에 던져야 한다. 화재예방도 되려니와 그윽한 그 소리가 버리기 아깝다.
담배를 물이 든 재떨이에 넣어 끌 때 나는 소리에도 깊은 매혹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정근양은 무척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담배로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쾌락 중에 그가 가장 하위로 꼽은 것은 미각이다. 그는 담배의 맛은 미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등을 통해 일어나는 혼합 상태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미각만으로 담배의 맛을 논한다면 니코틴으로 인해 담배는 항상 쓴맛만을 낼 것이다. 그러나 애연가는 결코 담배가 쓰다고 느끼지 않으며, 이는 담배의 감각적 쾌락 중에 미각이 가장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정근양의 글은 산문이지만 대상이 지닌 감각적 측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어느 담배 예찬론보다 시적이고 미학적이다.
1930년대 후반, 인천의 중국인거리에 들어선 담뱃가게.
민족과 계급의 슬픔을 담은 담배
일제강점기에 담배와 관련해 가장 널리 불리던 노래는 ‘담바고타령’이었다. 이 노래는 근대요로서 전국적인 노래라고 할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구전되던 노래라서 이본이 여럿인데, 그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담백고야 담백고야
동래 울산 물에 올라
이 나라에 건너온 담백고야
너는 어이 사시 따슨 좋은 땅 버리고 이 나라에 왔느냐
팔도강산 유람하러 왔느냐
그렇다면 돈이나 뿌리고 가겠구나
빨리 돈주머니 풀어 금은전을 던져라, 돈은 주지 않고 담배씨만을 던져주는도다
이 풀잎 말려 잘게 썰어놓고
길다란 담뱃대에 채워 한 모금 빨면
오색구름이 연기 끝에 놀고
두 모금 빨면
청룡황룡 뛰어나와 눈앞에 논다 하네
어이구 어이구 이 담백고야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의 담배들.
이 노래는 담배가 박래품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러한 사실을 일본의 식민지 침략에 빗댄다. 특히 이 노래는 일제가 조선인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담배가 이용된다는 점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 노래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토지와 노동력을 정신을 마비시키는 담배와 교환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노래가 널리 유행한 것은 이 노래가 일본의 침략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방편인 탓도 있었다. 경술국치 이전에는 자국의 연초를 조선으로 수출하는 데 집중하던 일본은 1914년에 연초세령을 공포하면서 제조 연초에 대해 소비세를 부과하고 연초 제조지역과 제조공장을 허가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9개 지역 48개 제조공장에만 연초 제조가 허용됐다. 이로 인해 영미 연초회사는 중국으로 물러나고 영세한 조선인 연초 제조업자들도 대거 몰락했다. 이에 맞서 조선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저항을 시도했다. 재배업자, 판매업자, 제조업자 가릴 것 없이 세금 탈루나 탈세 등을 시도했고, 때로는 조세 수탈에 대한 불만과 총독부 정책에 대한 거부를 직접 항거로 나타내기도 했다.
당시 각종 제조공장 가운데 직공 수가 가장 많았던 연초공장의 노동자들은 1910년 단체를 결성하고 민족적 차별대우와 저임금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했다. 1919년 용산 스탠다드무역회사, 동아연초주식회사, 조선연초주식회사의 조선인 연초직공들은 임금인상, 민족적 차별대우 철폐, 8시간 노동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저항을 진압하면서 1921년 7월 연초전매제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연초재배업, 연초제조업, 연초판매업 등 연초업의 모든 부문이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됐다.
저항 의지를 담은 담배
허가 없이 담배를 재배하거나 판매하면 처벌을 받았고, 타인에게 판매하지 않는 ‘자가용(自家用) 연초’의 재배마저 금지했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연초의 사적인 이용을 통제하기 위해 담배쌈지와 연죽(煙竹)을 압수하는 일도 있었다. 당연히 초기에는 전매제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전매 수입은 조선총독부의 재정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일제는 철저한 통제를 통해 저항을 무력화했다.
이처럼 이 시기 연초 관련 산업에는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가 중첩돼 있었다. 당시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섰던 비평가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라는 작품에서 화자의 동생 ‘영남’이는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산다. 임화가 영남이를 하필 연초공장 노동자로 설정했던 것도 연초공장이 당대의 계급 문제를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다룬 또 다른 시로 이순업의 ‘심야의 독백-담배를 피워 물고’란 작품이 있다.
담배연기는 방안에 자욱하다
이번이 네 개째이다.
별안간 어머님은 소스라쳐 깨신다
너를 부르시며 흐느껴 우시는 어머니!
아아 뼈를 깎고 살을 베이는 참을 수 없는 울음이여!
네가 이 세상에 고고의 첫소리를 지르던 그날도
미역 한 줄기 없었다는 집에 태어나 보람 없는 가난살이에서
애꺼웁게 너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잔약한 삶은 여지없이 짓밟히었다마는
나는 숨이 통하는 한 이렇게 울고만 있을 몸이 아니로구나
수만 수억 동무들의 품속에서
무섭고 힘찬 전신과 행동으로 나아갈 몸!
밤은 깊었나 보다
조금 전에 들리어 오던 주정뱅이의 흥타령까지 멈추어졌다
끊임없는 어머니의 애고 소리도 끊치고
온 누리는 오직 고요한 적멸이 흐늑일 뿐이다
담배연기는
천정으로 천정으로 기어 솟건만―
-이순업, ‘심야의 독백-담배를 피워 물고’ 부분
이 시는 강렬한 계급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다분히 임화의 단편서사시를 모방한 이 작품은 ‘우리 오빠와 화로’와 마찬가지로 편지체의 독백 형식을 취한다. 화자는 공장을 나와 어머니의 꾸중을 참아가며 불온한 책을 읽는다. 그 사이 대장간에 일을 나가던 화자의 어린 동생은 늑막염에 걸려 약조차 써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화자는 어렵게 돈을 마련해 숨진 지 나흘이 지나서야 동생의 장례를 치른다. 화자는 피붙이를 잃은 고통을 줄담배로 달래며 계급적 저항의식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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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담배는 계급적 모순으로 인한 화자의 고통을 달래는 동시에 계급적 모순을 타개할 방도를 마련하기 위한 사색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또한 마지막 연에서 깊은 어둠과 고요를 뚫고 솟아오르는 상승의 이미지로 묘사된 담배 연기는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화자의 저항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무섭고 힘찬 전신과 행동으로” 나아가는 “수만 수억 동무들”의 모습처럼 솟구친다. 그러니 작품에는 언급돼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이 담배 연기는 피처럼 붉은빛으로 묘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