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 자료용 사진이 없을까 염려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겨울여자’의 스틸을 빠른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마음 씀씀이는 이제까지 다른 어떤 남자배우로부터도 발견할 수 없던 남다른 면이었다(그런데 이 자상한 남자가 혼자 산다니). 비슷한 남성적 매력을 풍기며 많은 여배우와 공연했던 이대근이 ‘자기 자신’을 연기했다면, 김추련에게 연기라는 것은 언제나 강한 남성의 갑옷으로 재무장하는 ‘가면 놀이’나 다름없었으리라.
그럼에도 우리의 뇌리에서 김추련은 늘 늠름하고 씩씩하고 건강하고 강인하다. 말론 브랜도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영화 ‘야시’에서 난폭한 방식으로 여자에게 애정을 표현할 때나 권투선수로 분한 ‘밤의 찬가’에서 운동실력을 마음껏 뽐낼 때 그는 항상 여자들을 리드하고 세상을 리드하는 듯 보였다. 흡사 2004년의 권상우가 그러하듯 1970년대의 그는 운동으로 단련된 육체 그 자체로 여성들의 눈길을 끌어 잡아당기는 배우였다.
뭐니뭐니 해도 배우 김추련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세상에 각인시킨 배역은 ‘겨울여자’의 우석기였다. 아직도 배우 김추련을 ‘겨울남자’로 회상하게 하는 이 작품에서 우석기는 터프한 외모와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닌, 70년대 여성들의 판타지를 모아놓은 것 같은 인물이었다.
또 다른 70년대 배우인 ‘바보들의 행진’의 하재영이 꿈도 희망도 없이 세상을 부유하는 청춘의 그늘 쪽에 선 일종의 꿈꾸는 식물이라면, ‘겨울여자’의 김추련은 소박하지만 낙관적이며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하고 현실을 개조하려는 동물적인 남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강렬한 눈빛으로 버스에 달려와서 데이트 신청을 하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대학생의 이미지는, 아마도 요즈음의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여성을 리드하는 멋있는 남자’의 원형과도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후 김추련의 행적은 바로 1970~80년대 한국영화의 비틀리는 궤도와 매우 닮아있다. 멜로, 액션, 코미디, 토속 에로물 등 ‘겨울남자’의 틀을 벗고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지만 결국은 작품의 선택과 배우로서의 변신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 ‘성적으로 능동적인 남자’라는 그의 이미지는 여성을 유린하거나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악역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런 악역을 소화하기에 김추련은 왠지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자신이 세상에 악인으로 비치는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하명중과 함께 한국영화의 암흑기인 1970년대를 관통한 대표적인 남자 배우라는 사실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 봐도 그 시절 김추련의 사진에서는 70년대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질박한, 그러면서도 한 마리의 늑대 같은 외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텁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인 그의 얼굴에는 한마디로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날것’이라는 이미지, 한국 영화배우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체취가 배어나온다.
길들여진 야생?
이제 그는 부산에서 노래를 하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 흐르는 물처럼 사는 것이 정말 편하다는 이 남자는 젊은 시절 그렇게 좋아했다는 음악을 이제야 하면서 한 마리 양같이 순한 중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누가 야생의 김추련을 길들인 것일까. 한국영화의 굴곡인가, 세월인가, 혹은 그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여성성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앞으로도, 사랑을 얻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머리를 들이밀며 버스로 달려들던 그 남자 김추련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단지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이던 시대에 대한 향수, 요즈음 말로 하면 ‘시대적 퇴행증상’일지라도, 김추련이라는 배우는 그런 퇴행을 부추기기에 충분할 만큼 추억을 가득 안고 있는 남자다.
-인상이 좀 변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박력 있는 모습이었는데,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나이가 있으니까요. 힘도 많이 빠졌어요.”
-기록에 따르면 1973년에 처음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뜨거운 영광’과 ‘악인의 계곡’이었죠.
“개인적으로는 1974년 작품 ‘빵간에 산다’를 데뷔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전에 했던 작품은 얼굴을 내밀기는 했어도 연습이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따지면 1971년 무렵에 조문진 감독님이 만드신 ‘두 딸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죠. 그때가 윤정희-문희-남정임씨 트로이카 시절이었는데, 제 역할이 윤정희씨 남자친구였어요. 잠깐 등장하죠. 그게 가장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옛날에 잘 못했던 것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초년시절에 멋모르고 나갔던 영화니까요. 그래서 제 스스로는 ‘빵간에 산다’를 데뷔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조문진 감독님이 방송에 나오셔서 ‘내가 ‘두 딸의 어머니’에서 널 데뷔시켰는데 왜 데뷔작을 바꾸냐’고 꾸지람하시더군요.”
-‘빵간에 산다’에서는 모범수를 연기했습니다. 작고한 여배우 우연정씨가 소매치기 역할이었고요.
“모범수와 소매치기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죠. 남자주인공이 굉장히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 지도반장이었는데,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교도소에서 일주일간 귀휴를 보내줍니다. 모범수에게 주는 특별휴가죠. 여자는 소매치기가 일종의 버릇이 되어서 몇 번씩이나 잡혀오는데 이 남자가 사랑으로 감싸준다는 줄거리의 러브스토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