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 술집에서 일주일간이라도 근무해본다. 술은 오랫동안 나의 친구였다. 술의 특성이 그러한 까닭도 있겠지만 가까이 한 기간이 오래된 만큼 희로애락의 기복이 어찌 만만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는 “알코올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코올로부터 얻었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입장에 서고 싶다. 사실 그간 단순히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을 떠나 술에 관한 많은 글을 쓰고 책까지 출간했다. 앞으로도 한두 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다. 이런 나로서는 술집에서 직접 한번 바텐더로 근무해보는 것은 하나의 낭만이다. 물론 직업으로서의 바텐더는 자신도 없고 나의 영역도 아니다. 다만 언젠가 어떤 형식으로든 짧게라도 꿈을 이룰 것이다. 술집 벽은 모아둔 미니어처 술병으로 장식하고 스코틀랜드식 남성용 치마(타탄으로 만든 킬트)라도 앞에 두르고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나를 설레게 한다. 손님들과의 이야기는 천일야화같이 은근해도 좋고 간혹 인생철학을 담은 고담준론이라도 무방할 것이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여행을 할 것이다. 이 항목은 실제 영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은 잭 니콜슨이 쓴 리스트에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라는 항목을 보고 비웃으며 묻는다. “이런 소녀를 어떻게 만난다는 것이냐?” 그러자 잭 니콜슨은 무도회에서 프러포즈하겠다고 말한다. 일견 무모한 계획처럼 보였던 이 소원은 영화 종반부에서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예쁜 어린 손녀와 입맞춤을 하는 장면으로 아름답게 이루어진다. 나는 한걸음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녀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바닷가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손녀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예쁜 조개를 손에 잡고 나에게 달려오는 손녀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손자와의 여행도 이에 못지않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앞의 4가지 항목과는 달리 마지막 소원은 영화에서처럼 1년 내의 기간으로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은 두 아들을 둔 입장에서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손자, 손녀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형국이 아니겠는가. 버킷 리스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실 것을 하늘에 빌며 일상을 겸허하게 대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