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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바라는 것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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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선생을 그만두고 나는 강연을 하며 살고 있다. 나도 강연을 이렇게 많이 할 줄을 몰랐다. 내가 선생이 될 줄을 몰랐듯이, 내가 시인이 될 줄을 몰랐듯이, 나는 강연을 이렇게 많이 하며 세상을 돌아다닐 줄을 몰랐다.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좋아해서 평생 영화를 보며 살았다. 나는 또 그림을 좋아해서 평생 그림을 보며 살아왔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영화에도 출연을 했다.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에 시 강사로 출연했더랬다. 영화에 대한 책도 냈다. 그림에 대한 책도 낼 생각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것이 내 일이 되어서 그 일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는 세세한 일상이 내 글이 되었다. 따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내 글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일이 글이 되어주어서 나는 글을 쓰려고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나와 아이들과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 속에 자연이 내 원고지 위로 걸어 들어와주었던 것이다.

세상 사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나라고 인생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살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가난했다. 내게도 희망이 세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돈을 생각하지 않고 담배를 사 피우는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담배를 외상으로 사 피웠다. 한 달간 외상 담배를 피우다가 월급을 타면 담배 외상값을 갚았다. 오래전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를 우연히 끊었다. 그 꿈은 자동 소멸되었다. 또 한 가지 소원은 돈을 생각하지 않고 책을 사보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책에 너무 목말랐다. 오랫동안 나는 전주의 한 책방에서 책도 외상으로 사 보았다. 월급날이 되면 책방으로 달려가 외상값을 조금 갚고, 외상으로 보고 싶은 책을 몇 권씩 사왔다. 나는 책에 ‘허천병’(기가 쇠약한 병인 虛喘에서 온 말로 기갈증의 뜻으로 쓰이는 전라도 사투리)이 나 있었다. 1995년에 나는 책 외상값을 다 갚았다. 지금은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사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희망도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내 어릴 적 희망 중의 하나가 도시락 반찬으로 멸치볶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 이루어졌다. 나는 지금도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반찬을 아주 좋아한다. 나에게 또 하나의 희망은 영화를 마음껏 보는 일이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다 이룬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내 분수에 맞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희망이나 소망이 성가신 것임을 일찍 알았다. 나는 지금 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다. 희망이 없는 삶은 얼마나 홀가분하고 나와 남을 괴롭히지 않는 삶인가.

나는 가난한 그 옛날이 참 좋았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던 그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 밤을 새워 책을 읽고 밤을 뒤척이며 시를 쓰던 그 가난한 시절이 좋았다. 고통도 괴로움도 나는 버리기 싫었다. 그것들이 다 내 삶이었다. 내 삶을 힘으로 삼았다. 그러나 나는 또 지금이 좋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나는 아직 나만큼 잘 산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늘 지금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지금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이 좋은 삶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바라는 바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 살다가 보면 내게 새로 오는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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