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흑자전환 이루고 떠나는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경영과 정치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 CEO 거친 정치인이 제도 개선도 잘한다”

  •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11-05-20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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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간 지역구 가지 않고 회사에 모든 걸 바쳤다
    • 세계 28개국 진출로 새로운 수익원 창출
    • 남보다 1초라도 빠르게 서비스 제공하는 ‘1초 경영’
    • CEO로서 마지막 공약은 한국전기안전공사법 마련
    • 비인기 종목 스포츠단 만들지 못해 아쉬워
    • 총선 출마? 운에 맡기고 최선을 다할 뿐…
    흑자전환 이루고 떠나는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정치권 출신의 공기업 사장 선임에 대해서는 복합적인 시선이 공존한다. 이들의 마음이 기업 경영보다 ‘콩밭’에 가 있는 게 문제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외부인으로서 기업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결국 정치인 출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성패는 경영 성과로 판가름 나야 할 것이다.

    임인배(57)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Korea Electrical Safety Corporation) 사장은 대표적인 정치인 출신 공기업 CEO다. 그는 1996년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3선을 한 한나라당 유력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뒤 2008년 10월 ‘잠시 있다가 떠나는 철새’라는 눈총을 받으며 KESCO 사장에 임명됐다. 12년간 정치 무대에서만 활동한 그는 전기와 경영에 문외한이었다. 그를 둘러싼 비판을 잠재운 것은 1년 만에 만성적자의 회사를 흑자로 전환한 리더십이었다.

    뜻한 바 모두 이뤄 떠나

    5월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국전기안전공사 집무실에서 임인배 사장을 만났다. 임기를 5개월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그에게서 그간의 소회를 듣기 위해서였다. 민감한 질문에도 그는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정치인이나 리더가 되는 순간 누구나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쿨한 지론이다. 넥타이를 푼 채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그에게 가식은 없었다.

    ▼ 지난주 사의를 표명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물러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사의를 표시해도 후임자를 물색하는 데 두 달 걸립니다. 그러면 석 달 정도 임기를 못 채우는 셈이죠. 저는 처음 부임하면서 뜻한 것을 다 이뤘고 회사는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자리를 비워주는 게 조직의 활성화나 새로운 변화를 위해 좋다고 판단했죠. 개인적으로도 저는 ‘영원한 정치인’이니까 할 거 다 했는데 월급 받기 위해 회사에 있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 자신을 ‘영원한 정치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공기업 CEO를 경력관리를 위해 거쳐 가는 자리로 여기는 것을 비판합니다.

    “양면성이 있어요. 정치인은 장관이나 공기업 CEO를 거치면서 부처나 공기업의 어려운 점을 알게 됩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제도적으로 뭘 바꿔야 하는지 감을 잡게 되는 거죠. 저는 정치인으로 있을 때보다 공기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공기업이 이렇게 가서는 선진국이 안 됩니다. 그걸 정치인들이 모르죠.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공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데, 기업에서는 나쁜 걸 절대 안 보내줍니다. 저는 (공기업에) 어떤 문제가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피부로 느끼고 떠납니다. 국회의원이 공기업에 오는 것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대통령께 공기업을 경영하며 느낀 점을 건의하고 싶어도 직접적인 소통 루트가 없어 답답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어 MB정부의 아쉬운 점으로 ‘소통 부족’과 ‘타이밍을 놓친 대처’를 꼽았다. 평범한 공기업 CEO라면 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저는 느끼는 대로 바른 소리 다 하는 스타일입니다.” 정치 현안에 대한 그의 소신 발언이 이어졌다.

    “이번 4·27 재보선의 교훈은 ‘한나라당, 까불지 말라’는 겁니다. 분당 주민은 무조건 한나라당을 찍고, 봉하마을 주민은 꼭 민주당을 찍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정치를 잘못하면 민심이 변할 수 있다는 걸, 강남도 날아갈 수 있다는 걸 한나라당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의식이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앞으로 친이(親李), 친박(親朴) 간 싸움이 없어지는 것도 보여줘야 합니다.”

    ▼ 정치인과 CEO의 삶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사장에 취임하면서 3년간 지역구에 가지 말고, KESCO에 모든 걸 바치자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에게 잘하자’는 다짐도 했고요. CEO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어 좋더군요. 국회의원을 하면서는 미운 사람한테도 90도로 절하고, ‘잘못했다’고 해야 했습니다. 지역구에 매주 내려가 얼굴이 검어지도록 악수했고요. 저는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오래 준비했어요. 판·검사나 유명 앵커, 교수 출신도 아니고, 인간미와 의리로 잘된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겠습니까. ‘국회의원이 먹고 논다’고들 하지만, 정말 바쁜 직업이에요. 부르는 곳도 많고 남을 위해 매일 돌아다녀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죠. 사실 공천이 취소된 후 아버지께서 쇼크를 받아 쓰러져 돌아가셨어요. 정치를 하면서 아버지 손 한 번 못 잡아드렸는데, 누워 계실 땐 제가 매일 병원에 들러 함께 잤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못했던 것을 다 해드려서 후회는 없어요. 공천 한 번 못 받는 것도 좋은 거예요. 2,3선을 내리 하다 보면 정치에 대한 열망도 식고 에너지도 소진되거든요. 제게는 쇄신의 계기가 된 거죠.”

    세계 최초 무정전 검사 도입

    이쯤 해서 경영인으로서 임 사장의 성과를 조망해보자. 그는 취임 후 1년 만에 600억원의 적자를 내던 KESCO를 흑자로 전환했다. 공사 창립 후 최초의 흑자전환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세계 최초로 무정전 검사를 도입해 연간 5340억원의 경제적 손실도 막았다. 초짜 경영인치고는 괜찮은 성적표다.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제 기본 원칙은 적자가 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회사를 흑자로 돌리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느리고 일 안 하는 공기업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1초 경영입니다. 뭐든지 빨리만 하자는 게 아니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빨리 적응해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남보다 1초라도 시장에 빨리 내놓자는 거죠. 1초 경영으로 느긋하던 직원들은 1초를 아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50가구 시설을 점검하던 직원이 70가구를 점검할 수 있는 거죠. 성과가 좋은 직원은 승진시켰어요. 흑자 경영을 위한 방법론으로 삼은 것이 1초 경영이죠.”

    ▼ 1초 경영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12년 정치만 하던 제가 경영은 잘 모르잖아요. 그래도 발이 넓으니까 경영학 교수들을 만나서 폭넓게 자문했죠. 결국 모든 게 사람 아닙니까. 저는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계속 물어봅니다. ‘정치인 출신이 더 잘한다’는 얘길 들으려고 애썼어요. 조직문화를 빠르게 바꾸는 전략을 브랜드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전기 고장과 안전 문제를 책임지는 회사다. 전기가 안 들어올 때 달려오는 사람이 바로 KESCO 직원이다. 반복되는 점검 업무를 하는 회사의 특성상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는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큰 공장이나 기업이 정전되면 수백억 원의 손실이 납니다. 그래서 저희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인천국제공항 등 1200여 개 회사와 협약을 맺고 상시 안전점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콜이라고 불리는 이 24시간 긴급 출동 서비스를 통해 매년 400억~500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죠. 공격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해외 시장으로도 눈을 돌렸습니다. 중동, 아프리카, 스페인 등 세계 28개국에 전기안전 인프라를 구축했어요.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나 현지 기업들의 시설을 점검해주며 수익을 올리는 거죠. 외국 기업이 하던 일을 우리가 대신하는 셈입니다. 한국보다 기술 수준이 못한 나라에는 점검기술을 교육하고 전수하는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 KESCO만의 차별화된 글로벌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준 높은 기술력이겠죠. 예를 들어, 한 대기업에서 지난해 전기사고가 발생했는데 그쪽 엔지니어들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돼 저희 쪽에 연락이 왔습니다. 파견된 우리 직원들이 1시간 만에 문제를 해결했죠. 대규모 전기시설이 들어가 있는 대형선박 전기안전 검사의 경우 최근까지 외국업체가 도맡아 해온 것이 현실입니다. 국내 기술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이 역시 지금은 우리 회사가 담당할 만큼 대외적인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다른 공기업은 해외 진출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저희가 눈을 뜨고 그 기회를 빨리 포착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죠. 다른 공기업들도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야 합니다.”

    “강자가 약자한테 손해 보는 게 낫다”

    ▼ 2009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북한 진출을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북한 가야죠. 북한이 침범 안 한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북한에 기본 SOC(사회간접자본)를 구축해줘야 합니다. 의원 시절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의 전기설비나 도로 수준이 모두 엉망이었어요. 산에 나무도 없고요. 우리가 다 새로 해줘야 합니다. 정부와 북한 사이에 분위기가 안 좋은데, 서로 왕래해야 생각할 수 있는 문제죠. 저는 개인적으로 강자가 약자한테 손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한나라당 당론과 다른 생각 아닙니까.

    “당론이 있지만, 개인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죠. 자라온 과정이 모두 다르니까. 저는 민주당 스타일에 더 가까워요. 아버지는 농부고 가난하게 살아오셨습니다. 제 생각도 중소기업이나 서민 중심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흑자전환 이루고 떠나는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임인배 사장은 수준 높은 기술력을 KESCO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꼽았다.

    ▼ 그러면서 왜 한나라당에 입당하셨습니까.

    “한국 정치라는 게 경상도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하면 국회의원 되기 어렵잖아요. 한국이 잘되려면 광주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나오고, 대구·경북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이 당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공헌 사업도 약자를 배려하는 철학에서 나온 건가요?

    “흑자가 나서 기부도 더 할 수 있었습니다. 재래시장 개선사업을 벌였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상 점검 서비스를 실시했어요. 쥐가 전선을 갉아먹으면 위험한데, 돈이 없어 수리하지 못하는 독거노인 분이 많거든요. 저희가 다 교체해드렸어요.”

    ▼ 공기업 경영과 관련해 상을 많이 받으셨더군요.

    “세어보니 총 26개를 받았더군요. 그 중에서도 국가생산성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뛰어난 성과만큼 그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2009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그는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가 속한 대구·경북지역 방송사에 광고비 2억원을 준 것으로 드러나 비판의 화살을 맞았다. 야당은 “기업 홍보를 구실로 자신을 위한 정치활동을 한 게 아니냐”고 공격했다. 이에 대한 그의 반박은 솔직하다.

    “처음엔 서울의 두 방송사에만 광고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방 언론사들이 ‘어렵다’며 광고비를 달라고 요청해온 거죠.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대구에 많은데, ‘도와달라’는 이분들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반대로 다른 지역 분들은 저를 모르니까 부탁을 안 하신 거고요. 제가 먼저 나서서 대구·경북 지역 방송사에 광고를 몰아준 건 아닙니다. 공인이 그러면 안 되는데, 제 마음이 약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국감이 끝난 후, 두 지방방송사에 매월 2000만원씩 집행하던 광고비를 중단했죠.”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등장한 이유

    대중이 임 사장을 기억하는 이미지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공익 캠페인 광고 속 모습이다. “1초만 더 생각해주세요”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광고 속에서 임 사장은 오케스트라단의 지휘자로 등장했다. 이는 CEO의 PI(President Identity)를 부각하는 전형적 광고다. 광고가 지나치게 CEO 이미지 홍보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닐까.

    “광고 기획 당시,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국민을 즐겁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민 화합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를 등장시킨 거고요. 제가 문화 예술을 워낙 좋아해서 한국 문화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간직해왔습니다. 그 때문에 광고를 통해 예술적인 CEO의 모습을 부각하려고 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광고는 한 언론사가 주관하는 광고대상에서 TV 부문 공익캠페인 대상을 받았어요. 광고는 비용을 많이 쓴다고 잘하는 게 아닙니다. 전임 사장께서 1년에 광고비로 75억원을 썼는데, 저는 광고비를 20억원 줄였어요. 광고 효과가 더 중요한 거죠. 제가 오고 나서 회사 이미지도 많이 좋아졌어요. 다만 좋은 취지에서 광고를 만들어도, 제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일부 부정적인 여론이 나온 것 같습니다. 사기업 CEO의 뛰어난 PI 전략은 좋아하지만, 정치인 출신 공기업 CEO의 PI 전략은 삐딱하게 보는 거죠. 뭐, 웃고 넘어가야지요.”

    임 사장은 홍보나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매학기 ‘선거와 정치학’을 강의하는데, 1분 만에 강의 신청이 마감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는 9번 선거를 치러본 경험을 바탕으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친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라’는 것이다.

    “일단 ‘후보자’라는 상품이 좋아야 소비자인 유권자가 찍어주죠. 그러려면 상품을 고급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학을 다녀오거나 박사 학위를 받아 상품의 퀄리티를 높여야죠. 그 외에도 선거에 이기는 7가지 방법으로 ‘포지션을 지켜라’ ‘유권자 트렌드를 알라’ 등이 있습니다.”

    그가 한국전기안전공사를 이끈 2년여를 돌아보면, 여러 순간 ‘정면돌파형 리더십’이 빛났다.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정원의 10%를 감축하고, 지사를 축소하는 공격적인 정책은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히기 마련. 하지만 그는 소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다.

    “각 지사를 방문해 직원들의 불만을 듣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정치인이 설득하는 데는 앞섭니다. 저는 결재판을 던지거나 직원들에게 반말을 한 적도 없어요. 인간미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직원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자가 사옥도 많이 지었습니다. 취임 초 자가 사옥 보유율이 32%이었는데, 2년 만에 50%대로 끌어올려 목표를 초과 달성했죠. 현재 노조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편입니다. 직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 출신 CEO가 유리한 점

    KESCO는 올해 111명을 신규 채용한다. 신입 직원의 연봉을 14% 줄이고, 간부 직원의 성과상여금 일부를 돌려 채용 규모를 늘린 것이다. 정부가 강도 높게 추진하는 ‘일자리 나누기’와 ‘경영효율화’ 정책에 따른 조치다.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한 쓴 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게 이율배반적이죠.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효율화를 위해) 인원은 줄여야 하는 거잖아요. 저희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능력 없는 직원 3%를 밀어내고, 신입사원을 많이 뽑았어요. 1급인 실장을 한 명 밀어내면 신입사원 3명을 뽑을 수 있거든요. 다른 곳에서는 거의 뽑지 않았는데, 우리는 3년간 180여 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했어요. 그런데 경영평가단은 ‘왜 신입사원을 뽑았냐’고 하더군요.”

    ▼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말씀하시는 거죠? 당시 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으셨던데….

    “그때 평가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게, 개혁하다 보니 초기에 돈을 많이 썼어요. 회사도 깨끗하게 만들고 자가 사옥도 더 지었으니까요. 기업 경영에서 투자를 하다 보면 2~3년 지나야 성과가 나타납니다. 처음 왔을 때 허위검사, 부실점검 사례도 눈에 띄었습니다. 전부 적발해 해당 직원들을 물러나게 했는데 이게 안 좋게 보였죠. 과거에는 허위 보고한 검사원들에게 징계를 주었는데, 저는 엄중하게 문책했어요. 이후 허위검사와 부실점검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멀리 보고 한 일입니다. 해외 진출로 수익을 올리고, 계량지표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좋아진 만큼 올해는 평가가 괜찮을 겁니다.”

    ▼ 정치인 출신 CEO로서 공격도 받았지만, 유리한 부분도 있었죠?

    “우리 회사의 단점이 한국전기안전공사법이 없다는 겁니다. 다른 공기업은 한국도로공사법, 한국전력공사법 등을 기반으로 세워졌는데, 우리 회사는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 있어요. 사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우리 회사 직원의 3분의 1을 각 시군 지자체에 공무원으로 보내는 일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 인원이 1000명이나 줄어들 뻔했는데, 제가 맹형규 장관에게 전화해서 이걸 막았습니다. 정치인 출신이 문제를 해결하고 큰 방향을 잡는 데 유리하죠. CEO로서 제 마지막 공약은 한국전기안전공사법을 만드는 거예요. 현재 법 마련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 2년 넘게 사장으로 재임하시면서 아쉬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한국이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4만달러 국가로 성장하려면 국가 브랜드 이미지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기업이 관심 갖지 않는 비인기 스포츠를 공기업이 육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년에 10억원가량 투자하면 되는데, 처음 와보니 회사 재무 구조가 나빠서 스포츠단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직원들도 반기지 않는 것 같았고요. 사이클이나 금메달을 따지 못한 종목을 키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정치인 아버지 VS CEO 아버지

    그는 2005년부터 4년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을 지냈다. 공기업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회장직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스포츠에 애착이 많다. 문화·예술 마니아답게 영남오페라와 글로리아오페라단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때 그의 꿈은 영화배우나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12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건설교통위원회 간사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을 거쳤습니다. 초선, 재선 때는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4선이 되면 한국 문화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었어요. 현재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영화나 공연을 마음껏 만들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감독들이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 만든다고 하더군요. 자동차나 배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도 좋지만, 창조적인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 문화예술계에서는 어떤 분들과 친하신가요.

    “신영균 형님을 제가 많이 따랐죠.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님이라고 하고,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신 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연기도 좋고, 마음 씀씀이도 크고, 덕을 갖춘 예술인이시죠. 신 회장님을 가장 존경하고 좋아해요. ‘저분이 머지않아 자기 재산을 기부하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감이 딱 맞더라고요.”

    ▼ 최근 감명 깊게 보신 영화는 무엇인가요?

    “가장 근래에 본 것이 마사회가 제작에 협조한 ‘그랑프리’라는 영화였어요. 최근 바빠서 극장에 갈 시간조차 없었네요. 집에 필름이 1000편 정도 있어서 옛날 영화를 다시 돌려보곤 합니다. ‘벤허’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폭넓은 인맥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2004년부터 4년간 연세대 행정대학원 총동창회장을 지냈고, 현재 재경김천향우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은 무엇일까.

    “관상 공부도 하고 심리학책도 많이 읽었어요. 돈보다는 사람을 택했죠. 제가 부탁해서 안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겁니다. 제게 많은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걸 다 들어주면 나라가 망합니다. 제 원칙은 ‘남에게 베풀되 합리적으로 될 만한 것만 들어준다’는 거예요. 그만큼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해야죠.”

    가족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그에게는 딸만 둘이 있다. 스물일곱 살인 첫째는 현재 SK텔레콤에서 근무하고 있다. 열일곱 살인 둘째는 영화배우를 꿈꾸는 여고생이다. 두 딸 얘기를 하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국회의원과 공기업 사장 중 딸들은 어떤 직업을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국회의원”이라고 답했다.

    “첫째가 저를 닮아서 성격이 활발해요. 학생회장선거에도 출마하고 서클활동도 열심이었죠. 경영학을 전공한 큰딸은 제 연설문도 써줄 만큼 글을 잘 써요. 제가 결혼하라고 하면, ‘아버지가 국회의원 된 후 시집가겠다’고 말할 정도예요. 큰딸은 국회의원실 세 군데에서 인턴을 하면서 의원들을 개인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국회의원을 실제로 만나보면, 공부를 잘하건 말을 잘하건 인간성이 좋건, 어느 하나가 걸출하게 뛰어나거든요. 곁에서 지켜보면서 국회의원의 매력을 느낀 거죠.”

    “밖에서 느낀 민심 전할 것”

    ▼ 사장에서 물러나신 후 어떤 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제일 급한 건 쓰고 있는 책을 완성하는 일이에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찾아봐야죠. 공기업 사장이 되어 여의도에 기웃거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현역 의원들을 일부러 만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요. 이제 홀가분하게 옛날 동지들을 만나며 밖에서 느낀 민심을 전해줄 겁니다.”

    ▼ 어떤 CEO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KESCO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장으로, 일을 사랑하고 직원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CEO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 내년 총선에 출마하실 거죠?

    “그거야 운에 달린 일이죠. 제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운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이걸로 끝날 수도 있는 거예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제 생활신조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기다릴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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