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비道’(내버려 두라는 뜻임)
나는 소유하고 독점하는 불협화음으로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관계가 감옥처럼 지겨워져 헤어지는 일을 반복해왔다. 혼자 사는 것은 외롭지만 관계 맺는 것은 괴로웠다. 괴로움보다는 외로움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앞으로 혼자 살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저산은 분교에서 나를 맞았다. 먹물을 들인 면바지와 소매를 찢어버린 낡은 셔츠 차림의 그는 울진에서 봤을 때보다 인상이 더 강렬했다….
그가 앉아 있는 뒷벽에 ‘내비道’ 라고 쓰인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저산이라는 낙관도 찍혀 있었다. 폐교 입구에도 페인트로 ‘Bean Powder Family’ (콩가루 가족)라고 쓰여 있었다. 폐교나 집의 분위기나 저산의 옷차림 같은 것들과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었다.
“아 이거? 우리가 믿는 교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내비도야. 우리 사회가 혼란한 건 잘못된 종교 때문이거든. 기독교인은 예수를 죽여야 하고, 불자는 부처를 죽여야 해. 요즘 시대의 진정한 종교는 내비도여야 해.”
저산이 내 이름을 생각하기 위한 것인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빔이 어떨까? 비운다는 뜻의 빔도 되고, 영어로 하면 빛이란 뜻이 되기도 하고, 참 기둥의 뜻도 있군.”
“괜찮은데요.”
내가 동의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물결이 갑작스럽게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사는 것이 어떨까?” .
“우리가 공동생활에 성공하면 새로운 가정형태의 모델이 될 수가 있어. 부부 중심의 가정하고는 다른 형태의 삶이기도 하고, 예술을 삶으로 끌어들인, 즉 삶 속에서 예술을 영위하는 가족형태라고도 할 수 있지.”
“겨울에 보일러 기름 값도 만만찮게 들 텐데 같이 살면 경제적이고 좋지 않겠어?”
우리는 혼자 사는 것보다 세 배 이상 풍요롭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일단 그해 겨울을 같이 보내는 데 합의했다. 평소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타인과의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공동체 이름으로 풀포기 가족이 어때?”
저산의 말을 물결이 반대했다.
“쓰던 대로 빈 파우더(콩가루) 패밀리가 좋아.”
“바보야. 풀뿌리의 풀이 아니라 영어의 ‘풀(full)’을 말하는 거야. 풀포기는 전부 포기한다는 뜻이야. 에고를 죽이지 않고는 공동생활을 할 수가 없어.”
“좋아! 풀포기 패밀리 접수한다.”
곧 닥쳐올 겨울을 혼자 산속에서 날 것이 걱정스러웠던 나도 흔쾌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