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0월 사하라 사막에서 인간 윤승철의 진정한 도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그곳은 상상만 했던 사막과 다른 장소였다. 알고 있던 것들도 더욱 절박하게 다가왔다. 세계 각지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200여 명이 참가했다. 각자 낮에는 뛰거나 걷고 밤에는 열 명 단위로 천막에 모여 잤다. 남은 모르는,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인지라 언어가 달라도 마음이 통했다.
사막에서 만난 지독한 외로움
“태양이 뜨겁고 다리가 아픈 것은 기본이에요.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기량은 200명이 천차만별이고요. 서로 동행하며 걷고 뛸 수가 없습니다. 체력이 비슷한 사람끼리도 매일의 컨디션이 다르고요.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잠시 발을 멈추면, 방금 전 지나쳤던 사람이 저 멀리 까만 점으로 보여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해가 중천에 뜨기 전 바짝 뛰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한참을 걷다가, 다시 기온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뛰어가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뛰고 걸어 캠프에 들어서면 거기 사람이 존재하고 있고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사방이 모래인 사막에서는 원근감이 없어요. 멀리 점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걷고 있으니까 30분을 걸어가도 같은 풍경이지요.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때마다 앞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너무 소중했어요. 레이스 중간 중간에는 기록을 점검하고 물을 보충하는 ‘체크포인트’마다 검은 천막이 서 있습니다. 한번은 천막이 보여서 기쁜 마음에 남은 물을 싹 마시고 달려갔는데, 달려도 달려도 가까워지지를 않아서 결국 1시간 40분을 달려야 했어요.”
주최 측이 응급 장비를 제공하고, 지원 요원들도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특히 윤 씨 같은 초보 참가자에게는 사막 마라톤이 환경과의 싸움인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으로 다가온다.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에 걷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멀리서 누가 손을 흔들기에 인사를 하나보다 싶어서 저도 손을 흔들었어요. 인사하고 다시 걸어가려니까 상대가 계속 소리를 지르고 팔로 X자 모양을 만들고 해서 정신을 차렸죠. 제가 깃발이 꽂혀 있는 공식 코스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사막에는 사진에서만 보던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동물의 뼈가 진짜로 널려 있었다. 윤 씨는 한번 길이 어긋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생한 절박함에 압도됐다. 일교차도 엄청났다. 낮에 뜨겁게 달구어진 사막이 얼마나 추워지랴 싶었지만, 사막의 밤은 예상을 뛰어넘어 시리게 다가왔다. 방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던 초보 마라토너는 밤마다 떨었다.
두 번째 아타카마 레이스는 올해 3월 열렸다. 첫 번째보다 단단히 준비했지만 열기와 피로는 여전했다. 자연이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리기라도 한 듯 2000만 년 동안 연간 강수량이 몇 밀리미터가 되지 않았던 아타카마 사막에 비가 내렸다.
“사막에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요. 비가 와서 배낭이 축축 처지고, 신발에 물이 차서 발에는 물집이 잡혔어요. 내가 사막에 왜 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지요.”
윤씨는 레이스에 참가할 때마다 점점 또렷해지는 감각이 있지만 고비 사막과 남극까지 다녀와야 자신이 사막에 왜 다녀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섣부르지만 자신 있게 추천하는 한 가지는 사막의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다.
한번은 벗어나서 도전해보기
“뭔가 특별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사막에 간 건 아니에요. 평발로 태어나, 다리를 다친 적이 있고, 책만 읽고 글만 쓰던 학생도 마음을 먹으면 사막 마라톤을 뛸 수 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무어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의 노력이 가상했던 터라 두 번째 아타카마 레이스는 동국대학교에서 후원을 해줬다. 요새 그는 고비 사막과 남극 레이스의 후원자를 구하기 위해 열심이다.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붙어서 이번에도 잘 풀리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20대의 윤 씨가 지금 단계에서 원하는 것은 좀 더 많은 경험이다.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는 ‘나야, 사막이야?’라는 농담으로 그의 도전정신을 살짝 나무라는 모양이다. 그가 남극 마라톤을 떠나면 자신도 혼자 여행을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평생 추억할 마라톤을 떠나고, 그렇게 세상과 부딪쳐보는 것을 청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는 남극 마라톤을 끝내면 아프리카로 교환학생을 떠날 계획도 세워뒀다. 미지의 대륙, 그만큼 오해도 많았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다. 그는 졸업 후 더 먼 미래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목표가 있으면 몸이 절로 움직이더라는 말로 장래희망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