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어 다가가지 못해”
그는 다른 손님들 테이블에 음식과 술을 분주하게 서빙했다. 다른 테이블에도 앉아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잘 알려진 방송인이 술을 마시고 나가면서 출입구에서 넘어지는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조 전 비서관은 달려가 “괜찮으냐”면서 일으켜 세웠다. 얼마 뒤 그는 우리 일행 테이블로 다시 와 앉았다. 이어지는 그와의 대화다.
▼ 지난 공판에서 검찰이 징역 2년형을 구형할 때 조 비서관이 “정윤회 문건 사건 때문에 인생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는데….
“네.”
▼ 지금은 안색도 좋고 괜찮아 보이는데요.
“엉망이 됐다는 말이…. 제가 이런 술집을 할 생각이나 했겠어요? 축구로 치면 저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같은 골게터가 돼서 잘해보려 했는데 졸지에 암표상으로 몰리니까요. 인생이 이상하게 꼬인 거지. 엉망이 된 거지. 그러나 암표상이 될 순 없고 운동장 근처(그의 가게가 있는 서교동은 상암월드컵경기장과 가깝다)에서 밥 팔고 술 파는 거죠. 그런데 이 술집이라도 안 했으면 난 돌아버렸을걸.”
▼ 술집 하는 게 힐링이 된다?
“이젠 제가 나비가 되어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해요. 저도 염치가 있죠. 생각해보세요. 에볼라 바이러스 있다고 하는 놈(대통령과 청와대에 찍혀서 내침을 당한 자신을 이렇게 비유)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겁나서 만나주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제가 술집을 차려 손님을 기다리는 건, 제가 꽃이 되어서 나비와 벌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그래도 저를 찾아주는 나비와 벌 때문에 위안을 얻는 거죠.”
▼ 음식이 맛있네요. 전어회는 가을 전어답게 고소하고, 가격 대비 양도 많고. 공직에 오래 몸담았는데 공무원 손님들은….
“그러니까 공직사회 내에서 ‘정보기관 직원들이 교대로 조응천 가게에 와서 누가 출입하는지 감시한다’는 소문이 돌았대요. 공무원들은 아무도 안 와요. 장사가 안되는 것도 그 영향이 크죠.”
▼ 우리나라 인구 5000만 중에 공무원은 100만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제가 공무원 생활 오래해봐서 아는데, 공무원이 안 오는 밥집 중에 잘되는 밥집 못 봤어요. 그런 것치고 저희 가게는 이 정도 손님이라도 오니 괜찮은 편이죠.”
그는 다시 일어나 잠시 홀 서빙을 하더니 통문어 튀김을 들고 우리 일행 테이블로 와 앉았다. 문어를 데친 뒤 겉만 튀긴 요리였다. 얇은 튀김옷 안에 문어 몸통 살과 다리 살이 두툼하게 차 있었다. 겨자냉채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겉의 바삭한 맛과 속의 육즙 많은 쫀득한 맛이 잘 어우러졌다. 기자 일행은 “정말 맛있네” “대박” “소주는 물론 와인 안주로도 그만이겠네”라고 칭찬을 늘어놨다.
“죽으라면 죽어야지”
▼ 양도 많은데, 우리한테 특별히 많이 준 거 아닌가요.
“저희 가게 정량이에요.”
그는 식당 밖에 나가서 같이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권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그는 “나는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다”고 말했다.
▼ 정윤회 문건 보도한 기자들은 상(한국기자상) 받고, 문건 만든 사람들은 벌 받고?
“아니, 그럼에도 죽으라면 죽어야지. 그렇지만 이건 죽을 일이 아냐. 그러나 입고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돼요(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 일행 사이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된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우 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민정비서관으로서 청와대 내부 감찰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에게 “자백하면 기소하지 않겠다”고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후 우 비서관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는데 일부 언론은 이를 ‘거꾸로 쇄신 인사’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측은 10월 5일 “박종준 경호실 차장, 민경욱 대변인 외에 추가적으로 거취를 표명하는 사람은 청와대에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진의 내년 총선 대구·경북 대거 출마설에 선긋기를 한 것이다. 우 수석은 경북 봉화 출신이다. 조 전 비서관은 담배를 피우면서 “우 수석은 결국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한다. 배지 안 달고 방탄 안 하고 다음 정권에서 어떻게…”라고 말했다.
“조 비서관 같은 내부고발자를 처벌하는 건 민주주의의 후퇴 아니냐”는 한 일행의 말에 조 전 비서관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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