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정운찬의 이름값

  • 입력2009-10-09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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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1년 광해군은 과거시험인 별시(別試) 책문(策問)에서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선비 임숙영은 궁궐 안의 기강을 바로잡아 청탁을 물리치고 소인배들의 발호를 막을 것, 언로를 열어 군주와 신하가 허심탄회하게 정치를 논하고 간언을 받아들일 것, 외척세력의 발호를 막고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고 직무에 힘써 국력을 신장시킬 것, 이 모든 개혁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군주가 자기수양을 해나가면서 자만하지 말 것 등을 조목조목 열거한 뒤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고 질타했다.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다는, 그야말로 죽기를 무릅쓴 직언(直言)이었다.

    진노한 광해군은 병과에 합격한 임숙영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 등이 나서 그 부당함을 주장했고, 광해군은 4개월이나 지나서야 명을 철회하라는 주청을 받아들였다.(‘책문’, 도서출판 ‘소나무’ 펴냄)

    정운찬씨가 총리 자리에 오르면 대통령에게 이런 직언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 당신의 생각을 바꿔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자리를 걸고 말할 수 있을까? 총리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도 나도 경쟁을 촉진하되 뒤처진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 문제에서 시각 차이가 크게 없다”고 말했다. 함께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기야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인물이 그만한 판단도 없이 총리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겠는가. 민주당에서는 “연애는 우리 쪽과 하고 결혼은 그쪽과 하느냐”며 ‘변절자’라고 아우성인 모양이지만 정씨가 영혼을 팔아 비단옷을 탐낼 인물이 아니라면 하품 나는 소리이기 십상이다.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이후 리더십의 공백을 맞은 민주당이 그런 식상한 소리나 하고, 청문회에서 정씨에 대한 흠집 잡기에나 열중한다면 오히려 제 살 깎기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만큼 ‘국무총리 정운찬’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크다. 정씨는 총리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나라에 밸런스(균형)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우편향인 이명박 정부를 조금 왼쪽으로 옮겨 중심을 잡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얘기다. 이 또한 표면적으로 보면 큰 문제는 없을 듯싶다. 대통령이 친(親)서민 중도실용을 내세워 한창 지지율을 높이고 있는 판에, 또 그런 흐름 속에서 중도개혁 성향의 정씨를 총리후보자로 지명한 터에, 내심 못마땅한 우파세력인들 당장 그에게 대놓고 삿대질이야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과연 ‘정운찬 총리’에게 밸런스를 잡을 만한 힘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말로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하지만 실상 국무총리는 별 힘이 없는 자리다. 힘을 발휘하려면 목줄(인사권)과 돈줄(예산권), 아니면 둘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법적으로야 비상시 최고 권력의 승계자로 내각을 통할하고, 국무위원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을 갖는다고 돼 있지만 그런 법적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었던 총리는 건국 이래 찾아보기 어렵다. 역대 39명의 총리 중 대다수가 ‘의전 총리’ ‘방탄 총리’ ‘대독 총리’였다. DJP 정부에서의 김종필 총리, 노무현 정부에서의 이해찬 총리가 ‘실세 총리’였다지만 그들 또한 ‘대통령의 명을 받고 보필하는’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곧이곧대로 법적 권한을 내세워 대통령에게 대들었다가는 단박에 잘린다. 김영삼 정부에서의 이회창 총리가 그 예다.



    학자 출신인 ‘정운찬 총리’는 어떨까?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학자적 소신과 정치 현실을 조화시키는 일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학자적 양심이나 소신을 앞세우다가는 부러질 위험이 크고,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운신하다가는 ‘정운찬’이 죽을 것이다. 여기서 ‘정운찬’이라고 표기한 것은 그 이름이 갖는 값을 상징한다. 이름값을 하는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태에서 ‘정운찬’이란 이름의 값어치는 소중하다. 어쩌면 그 이름값을 지킬 수 있느냐가 국무총리란 벼슬의 높이보다 귀할 수 있다. ‘정운찬 총리’에 대한 기대만큼 우려 또한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장 두 개의 문제가 그를 시험대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하나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4대 강 문제다. 이 두 문제는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와 함께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한 잣대였다는 해석도 있다. 정씨의 ‘정치적 멘토’라는 김종인 전 의원은 인터넷언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9월4일)에서 총리내정자로 발표되기 전날인 9월2일 아침, 자신을 찾아온 정씨에게 “대통령이 4대 강 사업과 세종시 축소 추진에 집착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겠다면 같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정씨가 김 전 의원의 조언을 따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것 같다고 추측할 수는 있다. 정씨는 9월3일 총리 내정 발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비판적이던 4대 강 사업에 대해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동시에 4대 강 주변에 쾌적한 중소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세종시 건설에 대해서는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원안대로 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원안보다는 수정안으로 가지 않을까 본다”고 했다. 정씨는 세종시 발언에 대한 논란이 폭발하자 개인 생각일 뿐이라고 했지만 김 전 의원이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 내용에 비춰보면 청와대와의 사전조율하에 총대를 메기로 한 게 아니냐는 야권의 의심도 억측이라고 하기만은 어려워 보인다.

    문제의 본질은 정씨의 발언이 총리 내정의 조건이었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총리 내정자의 발언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나는 세종시 관련 발언은 옳고, 4대 강 관련 발언은 옳지 않다고 본다.

    세종시의 경우 ‘서울 대통령, 충청 총리’의 현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재의 원안대로 사실상 수도를 분할한다면 행정의 비효율과 낭비, 국민의 불편과 고통은 물론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가치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가치는 이상일지언정 목표에 부합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의 안(案)대로 진행된다면 충청지역이 수도권에 편입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가 한층 심화될 것이란 지적(‘1200인 선언’)은 균형발전의 목표마저 허구일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는 결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는 찬성, 진보는 반대’란 이분구도가 성립될 수 없는 생활의 문제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원안대로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총리 내정자의 발언은 그동안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된 세종시 문제를 바로잡는 가이드라인이 될 만하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인 문제가 된 세종시 문제를 총리의 힘만으로 바로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당장 전면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선거 때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고 하더라도 대통령 자신이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으니 말이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또한 우군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충청표가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말이다. 결국 청와대와의 사전조율 여부를 떠나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문제의 총대를 메는 일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단 짐을 지기로 한 이상 쉽사리 내려놓아선 안 된다. “충청도 분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운찬’의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총리 내정자는 “4대 강 사업은 수질개선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문제에 관해 충분히 검토할 기회가 없었으리란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다. 4대 강 사업의 핵심적인 논란은 그것이 ‘4대 강 살리기’가 아닌 ‘4대 강 죽이기’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강에 보(洑)를 쌓아 강물을 가두면 물이 썩어 오히려 수질이 악화되리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맑은 물이 넘실대는 홍보용 그림만 보여줄 뿐 수질이 어떻게 개선된다는 과학적 근거 및 구체적 수치를 국민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만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생략하고, 환경영향평가는 약식으로 해치울 태세다. 국민 세금이 22조원 넘게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을 초스피드로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감사원이 계획과 설계, 사업자 선정, 시공 등 사업 전 분야를 감사하기로 했다지만,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이 대통령의 역점사업을 엄정하게 감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총리 내정자가 진정 국정의 밸런스를 잡을 생각이라면 ‘4대 강 올인’의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뜻대로 4대 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되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고언(苦言)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라고 직언해야 한다. 수자원공사에 8조원의 사업비를 떠넘기면서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는 것인지 직접 검토해보아야 한다. 4대 강 사업 등 토목공사 위주의 경기부양책을 비판해왔던 학자적 소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면 사업 전반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대통령에게 개진해야 한다. 과거의 이회창 총리처럼 요란할 필요는 없다. 조용하게 균형을 잡으면 된다. 사회통합을 이루고 경제를 살리는 일도 이런 노력의 진정성을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김종인 전 의원은 “4대 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자기 명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리 내정자는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인지도 모른다. 뛰어내려야 할 때 스스로 뛰어내리지 못한다면 호랑이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호랑이의 운명이란 대체로 비극으로 끝난다. ‘정운찬’이 이름값을 하기 바란다. 그의 성공적인 출사(出仕)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를 위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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