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스마트폰이 삶의 문법을 바꾼다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x@naver.com|

    입력2010-06-03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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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듯 휴대전화 화면을 넘기고 있는가. ‘스마트폰’이 국내에서도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름 그대로 이 통신기기는 영리하고 다재다능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은 사람과 사람 간의 의사소통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스마트폰은 삶의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서곡이다.
    스마트폰이 삶의 문법을 바꾼다
    지난해 11월 애플의 아이폰이 뒤늦게 한국에 들어왔다. 무선통신업계에선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적당히 파이를 나누어 먹는 데에 안주하고 있던 국내 통신회사들과 휴대전화기기 제조사들은 놀라자빠졌다.

    아이폰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박용만 두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여러 유명 인사가 아이폰 예찬론자가 됐다. 아이폰은 순식간에 스마트폰의 대변자가 되었고 스마트폰에 대한 온갖 논의가 쏟아졌다.

    그러나 사실 스마트폰 보급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호들갑이 과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SKT는 지난 4월까지 스마트폰을 100만대 개통했고 KT는 아이폰을 60만대 개통했다고 한다. 둘을 합쳐 160만대, 즉 국내에서 사용되는 휴대전화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 상황만 보다가는 앞으로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 현재 각 휴대전화기기 제조사들은 앞 다투어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다. 2014년이면 스마트폰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50%를 넘어설 것이라는 추정치도 나와 있다.

    질식사하던 무선 부활하다

    스마트폰은 ‘질식사’하기 직전의 무선 인터넷 시장을 부활시켰다. 통신사들은 폐쇄되어 있던 망을 개방하고 있다. 무료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지역도 늘리고 대규모 투자도 새로 계획하고 있다. 스마트폰 콘텐츠를 사고파는 시장을 ‘앱스토어’라고 하는데, 여기도 점점 더 활기를 띠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폰 활성화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스마트폰 보급을 확대하고 2년 내에 스마트폰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 1만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는 더 이상 음성 통화 위주의 기기가 아니다. 음성 이외 데이터를 주고받거나 활용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통화뿐 아니라 전자우편, 일정 관리, 음악, 동영상, 인터넷서핑, 검색, 뉴스, 정보, 게임, 업무, 교육, 의료, 교통, 모임 등 온갖 용도로 활용된다. 새로운 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어디까지 이어지게 될까.

    얼마 전 필자는 멀리 있는 친구를 모처럼 만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속장소로 오는 버스를 탈 정류장을 못 찾아 헤맸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그가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자 합석한 다른 동료가 핀잔을 줬다. “너, 휴대전화가 아이폰 맞지? 아이폰으로 찾으면 되지 왜 헤매고 그래?” 친구는 멋쩍어서 한참을 헤매다 뒤늦게야 아이폰의 길 찾기가 생각나서 아이폰으로 정류장을 알아냈다고 실토했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구입은 했지만 정작 필요할 때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폰 앱스토어에는 7만5000개의 앱, 즉 ‘응용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현 기술수준으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능이 손만 뻗치면 닿을 곳에 이미 와 있는 셈이다. 인터넷과 무선 통신의 결합인 스마트폰에서 주로 사용되는 응용 프로그램은, 인터넷 망에 연결된 PC에서 주로 사용되는 인터넷 검색, 전자우편, 인스턴트 메신저, 일정 관리 같은 것이다.

    PC를 모방했고 PC를 넘어섰다

    그러나 기기의 성능이 향상되고 무선 통신망 비용이 낮아지면서 휴대용 기기만의 특성을 활용한 응용 프로그램들이 속속 개발되었다. 그중 활용도가 높은 것이 이른바 ‘위치 기반’ 프로그램이다. 즉 사용자가 현재 있는 위치를 파악하여 거기에 맞는 정보를 제공한다. 주변의 버스 정류장에 어떤 행선지의 버스가 언제 오는지, 현 지점의 날씨가 어떠할 것인지, 가까운 은행이 어디에 있는지, 어떠한 맛집이 있는지 알려준다. 운전을 하는 동안에는 교통의 흐름을 이야기해준다. 주변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는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길거리도 진화할 것이다. 행인이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으로부터 그의 연령, 취향, 소비성향과 같은 정보를 받아서 그가 지나갈 때 맞춤광고를 내보내는 광고판도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으로 주위를 비추면 상호와 전화번호 같은 것들이 겹쳐 떠오르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한꺼번에 비추어주는 것을 증강현실 또는 혼합현실이라고 한다. 현재의 증강현실 기술로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약간의 부가 정보가 제공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된다면,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이 안 되는 3차원 영상이 구현될 것이다. 즉 텅 비어 있는 땅에 건축물을 세워볼 수도 있고 주춧돌만 남은 유적지에 복원된 옛 모습을 겹치게 할 수도 있다. 휴대전화로 교과서를 비추면 관련 자료와 영상이 떠오르고 몸을 비추면 건강 정보와 의료 기록이 겹치도록 할 수도 있다. 게임광이라면 실제의 거리를 걸으면서 스마트폰 화면상에서 외계 괴물과 시가전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무선 통신을 이용한 휴대용 기기는 다시 현실의 세계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이는 PC와 인터넷의 보급이 일으킨 효과와는 정반대를 지향한다. PC와 인터넷은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사이버공간으로 사람을 집어넣는다. 사람들은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다. 웹 속의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까지 나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학기술이 현란한 미래상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게 하기도 했다. 성능 좋은 컴퓨터와 인터넷망은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경이로울 정도로 단축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현실을 밋밋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모니터 속의 풍경이 실제의 세계보다 더 실감 나고 화려하다.

    PC와 인터넷이 지정된 장소에서만 이용 가능한 통신과 인터넷의 결합이라면 새롭게 등장한 스마트폰은 이동하면서도 이용 가능한 통신과 인터넷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점이 바로 PC에 의해 소외되었던 현실을 제자리로, 그것도 더 강력한 현실로 되돌려놓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손 안의 인터넷을 넘어 현실과 가상현실을 결합할 수 있다는 데에 더 주목해야 한다.

    1991년 마크 와이저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내놓았다. 이 말은 자동차, 냉장고, 텔레비전, 카메라 등 일상용품이 컴퓨터와 비슷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는 컴퓨터 환경의 변화를 3세대로 나누었다. 하나의 대형 컴퓨터를 다수가 이용하는 것이 1세대, 사람이 컴퓨터와 1대 1로 접하는 것이 2세대다. 컴퓨터가 일상용품 속에 숨어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것이 3세대다. 크기, 모양, 기능이 저마다 다른 수많은 컴퓨터가 물품 속에 들어가서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자기들끼리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동안 3세대 개념을 구현해보고자 많은 노력이 이뤄졌다. 이런 영리한 일상용품들을 거대한 통신망으로 엮어 유비쿼터스 도시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보다는 규모가 작게 학교나 건물을 대상으로 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 교통 시스템 같은 몇몇 분야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현재로는 실감할 만한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만물의 인터넷’을 아나요

    당신은 ‘만물의 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모든 물품에 인터넷 주소를 부여해 무선망으로 통신하게 만든다는 개념이다. 바코드를 대신하는 전자태그를 붙인 상품도 있고, 세탁기처럼 마이크로 칩을 내장한 기기도 있다. 간단하든 복잡하든 컴퓨터의 기능을 일부 지니고 있고 리모컨 등 무선 통신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런 물품들이 현재의 ‘물체’상태를 뛰어넘어 ‘살아 있는 존재’처럼 ‘생각’을 한다면?

    뛰어난 기능을 가진 물체에 대해 우리는 ‘스마트하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스마트 전력망, 스마트 자동차 등 스마트라는 용어가 붙은 기기는 알게 모르게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지능을 지녔다’고 하지는 않는다. 지능이란 무생물과 생물을 구분 짓는 경계 너머 생물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만물의 인터넷’의 단계에선 스마트한 기기들이 지능을 갖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가정된다. 스마트한 기기들은 무선 통신망을 통해 하나의 지능적 세계로 연결된다.

    이 세계에서 스마트한 기기들은 사람이 알든 모르든 끊임없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상황과 맥락에 맞게 적절한 행동을 취한다. 예를 들어 노인이 마루에 쓰러져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면 텔레비전, 전등 등에 설치된 센서들은 노인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위급한 상태라는 점을 감지하고 노인에게 경고를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노인이 응답을 하지 않으면 그 정보를 전화기나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에 전달하고 전화기나 인터넷은 이를 가족, 구급대, 병원에 알리게 된다. 마트에서 구입한 냉동식품에 붙어 있는 전자태그는 스마트한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자신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알려주어 굳이 사람이 조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최적으로 요리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이 원하는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해주는 자동화된 주택, 공장, 건물이 수 년 내 실용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수십 년 전부터 되풀이되어왔다. 시간이 지난 뒤 속았음을 깨닫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스마트폰의 등장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훨씬 손쉽게 유비쿼터스 세계를 구현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스마트한 기기는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인공 지능 컴퓨터부터 로봇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기가 여럿 등장해 실제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내장된 프로그램에 의해 구동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긴 해도 로봇 청소기나 첨단 세탁기처럼 상황에 맞게 알아서 작동하는 그런 기기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지능적 세계의 기기들도 마찬가지다. 과자 봉지에 붙은 작은 전자태그에 복잡한 계산을 하는 기능을 담기는 힘들며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상품에 관한 일반 사항에다가 인터넷 주소, 무선 통신 기능이 추가되는 정도일 것이다. 스마트라는 말을 붙이기 어색할 정도로 단순한 사안이다.

    노 웨이 아웃(No Way Out)

    그러나 이 과자 봉지의 전자태그가 다른 상품들의 전자태그, 공장의 기계, 손수레, 트럭, 자동차 그리고 스마트폰에 있는 정보처리장치와 의사소통을 하면 새로운 상황이 연출된다. 과자가 언제 어디에서 생산되어 어떤 운송 수단을 통해 어떠한 경로로 상점에 진열되고 언제 누구에게 판매되어 어느 집으로 가서 언제 개봉되었으며 어떠한 경로로 재활용되거나 소각되는지 다 드러난다. 모든 사물이 정보의 생산자이자 메신저이자 수신자가 되는 상황이다. 이때 당신의 몸에 항상 붙어 다닐 스마트폰은 당신이 어디를 가든 세계의 만물과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선 영화 제목인 ‘노 웨이 아웃(No Way Out)’처럼 숨는 것도,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심어둔 통신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한 말이다. 당신이 훼손하는 즉시 천장의 CC-TV가 당신을 촬영하거나 당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가 전해져 소행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의사소통의 다른 이름은 감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떠오르는 상황인데 조지 오웰은 시민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기껏 카메라와 도청기만을 상정했을 뿐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가 감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회는 상상도 못했다. 사생활 보호 문제는 지능적 세계를 구축하기 전에 논의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사물, 거대한 구조물, 동물, 식물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 생물, 무생물이 얽힌 복잡한 상호 작용은 새로운 형태의 지능을 낳을 수 있다. 지구라는 무생물이 가이아라는 자기 조절 체계를 낳았듯 영리해진 사물들이 집합체를 이루면 이 집합체가 스스로를 조절하는 세계가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스마트폰이 던지는 존재론적 물음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다음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될까. 개미와 벌 같은 사회성 곤충은 아주 영리하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그들은 매우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고 애벌레를 키우고 알을 돌보고 적과 싸우고 집을 짓고 인간보다 뛰어난 방향감각으로 목적지를 찾아내고 심지어 폭우가 쏟아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잘 대처한다.

    그러나 개미와 벌은 단지 우리 눈에 겨우 보일 만한 크기의 보잘것없는 뇌를 갖고 있을 뿐이다. 페로몬으로 땅에 원을 그리면 개미들은 지쳐서 죽을 때까지 그 원을 빙빙 돌기만 한다. 그들은 방향을 틀어 벗어날 생각을 절대로 하지 못한다. 원을 따라 돌면서 자신도 페로몬을 분비하고 서로가 분비하는 페로몬이 인도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가기만 한다. 즉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예정된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처럼 전혀 영리하지 않다.

    다만 개미들이 모여서 군집을 이루면 그 ‘군집 자체’가 지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개미는 단지 옆에 있는 개미의 행동에 영향을 줄 뿐이지만 그런 영향이 모여 전체는 조화를 형성하고 온갖 지적인 작업을 척척 해낸다. 군집 속에서 개미들의 행동은 문제해결을 위한 자기 조직화, 분산이 이뤄진다. 여왕개미가 나서서 중앙집권적으로 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에선 이렇게 단순 동작만 하는 개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군체 전체가 지능을 갖게 될 때 이를 ‘무리 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지능이 거의 없는 하찮은 부분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됨으로써 원래는 존재하지 않던 고차원적 기능이 출현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사회성 동물의 지성 발현 방식은 인간사회의 많은 분야에서도 응용된다. 전화망과 전력망의 부하 조절 등이 대표적 사례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대규모 군대의 움직임은 무리를 지어 나는 새들에게서 나타나는 창발적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각 개체가 주위의 일부 개체에게만 영향을 끼치도록 했음에도 개별적인 행동이 모여 조직적인 군대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상의 논의에 따르면 ‘지능적 세계의 아주 미약한 영리함만을 부여받은 사물들의 군집에서도 창발적 지성이 출현할 수 있다’는 가설이 배척되지 않는다. 이때 사람은 그러한 지성을 완전히 통제하는 게 불가능할지 모른다. 나아가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존재론(存在論)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삶의 문법’‘나라는 존재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일 수 있다. ‘전체와 모든 것을 공유하는 나’는 많은 편리함, 유용한 정보, 부(富), 쾌락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위치 정보를 공유한다면 우리는 만나기로 한 친구가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집에서 아내는 남편이 퇴근 후 어디에 들러 무엇을 하는지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은 그 형태에서도 진화를 거듭할 여력을 갖고 있다. 본질적인 것은 만인과 만인이, 만인과 전세계가 연결된다는 점이지 이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전자기기 자체가 아니다. 이러한 연결기능은 기기의 형태가 아니라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일부 과학자는 사람의 유전자에 통신 기능을 심는 문제를 상정했다. 마크 와이저는 그 전(前) 단계로 스마트폰이 안경 속으로 들어가 증강현실을 보다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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