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 2002년 대선을 계기로 영향력을 키워온 인터넷언론들이 정치와 이념의 스펙트럼에 따라 어지럽게 분열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친노·비노·반노로 갈라졌고, 보수진영은 ‘중도’를 앞세워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인터넷언론은 과연 주류가 될 수 있을까.
7월25일 ‘대자보’와 ‘시대소리’ 주최로 열린 ‘노무현 정부와 인터넷 참여정치’ 토론회.
2002년 대선을 전후로 정치적 성향의 인터넷언론들이 핵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속보성으로 승부해온 ‘오마이뉴스’와 분석 중심의 ‘프레시안’, 인터넷매체 비평 기능을 강화해 재창간한 ‘대자보’ 등 기존 인터넷언론 외에도 정치와 이념의 스펙트럼에 따라 20여 개 사이트가 새롭게 탄생했다.
참여정부와 인터넷언론의 ‘밀월’
노무현 대통령은 16대 대선 과정에서 꺼져가던 ‘노풍’을 재점화한 ‘인터넷의 힘’을 실감했다. 그리고 스스로 “인터넷 등 지식정보화 시대가 만들어준 21세기 최초의 디지털 대통령”이라 지칭하고 인터넷 정부, 토론공화국을 선언했다. 지난해 12월27일 당선자 신분으로 참석한 ‘인터넷기업인의 밤’에서 노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인터넷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인터넷은 흑색비방보다는 건전하고 쌍방향 정책토론을 이끌어내고, 돈 안 드는 경제선거를 이끈 미디어 선거의 주역이었습니다. 인터넷의 파급효과는 정치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한마당 축제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충분했습니다. 인터넷은 창의성, 개방성, 다양성, 역동성을 요구합니다. 권위주의나 독단적 일방주의와 폐쇄적 집단주의는 철저히 부정합니다. 앞으로 지역주의 타파와 낡은 권위주의 정치를 척결해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 노대통령은 취임 직전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난 (언론의) 영향력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뜻이 맞는 언론과 함께하겠다”며 인터넷언론에 무게를 실어주었고, 청와대 입성 후에는 소식지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국민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9월1일 인터넷 ‘국정브리핑’(www. news.go.kr)을 창간했다.
정치칼럼니스트 김민웅(시대소리 대표필자)씨는 7월25일 ‘대자보’와 ‘시대소리’가 주최한 ‘노무현 정부와 인터넷 참여정치’ 토론회에서 “16대 대선 과정에서 인터넷은 대중의 자발적 논쟁과 참여, 집단적 결속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IT강국전략의 최대 수혜자”라 했다.
인터넷 언론이 노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만큼, 참여정부는 인터넷 언론의 발아와 성장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에 대해 이창은 대자보 편집국장은 대선 직후 오마이뉴스가 ‘대한민국의 주류가 마침내 교체됐다’는 구호를 내건 것을 예로 들며 “인터넷으로 무장한 네티즌이 대통령을 만들었고, 이들이 합세해 영향력이 커진 인터넷 매체는 ‘신주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김민웅씨도 “인터넷 정치의 양상은 정치와 관련한 대중적 담론의 기본틀을 바꾸는 데 상당한 성과를 보였고, 보수언론이 장악했던 의제설정기능과 논쟁의 방향, 내용, 현실인식의 주도권을 적잖이 잠식했다”면서 “인터넷 정치토론의 흐름이 하나의 일상적 현실로 자리잡게 하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6대 대선은 인터넷언론의 위상을 높여주는 한편, 이후 진행된 핵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즉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던 인터넷언론들이 정치적 입장 차에 따라 사분오열하면서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핵분열의 중심에는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8월27일 ‘업코리아’의 창간 발기인 대회. 안병영 대표는 “침묵하던 중도가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무렵 대안언론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논객들의 토론장으로 각광을 받은 곳이 ‘안티조선 우리모두’(neo.urimodu.com)다. 이 사이트를 통해 홍세화, 진중권, 김정란, 노혜경 등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언론개혁을 위한 일종의 동호회 성격을 띠었던 이 사이트는 ‘대선 바람’을 타고 좌·우로 갈린다. 결국 진보진영 내에서도 좌파적 성향의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진보누리’로 옮겨가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서프라이즈’라는 새로운 정치웹진으로 헤쳐 모였다. ‘우리모두’의 대표논객으로 활약했던 진중권씨는 현재 ‘진보누리’에서 ‘빨간 바이러스’라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사실 200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진보진영의 사이버논객들은 새로운 대안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대자보는 기존의 ‘보도’ 중심 사이트로 가되, 칼럼 중심의 새로운 정치웹진을 만들기로 했다. 서프라이즈 창간멤버였던 변희재(‘시대소리’ 운영위원)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선은 전시나 마찬가지였고 우리에게는 승리를 위한 군가가 필요했다. 즉 명쾌한 분석보다 응원가형 칼럼으로 진보진영을 단결하게 해야 했다. 서프라이즈가 바로 그 역할을 했다.”
2002년 10월 창간한 서프라이즈에는 국민일보에서 ‘노변정담’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던 서영석 기자를 중심으로 변희재, 장신기, 공희준, 김동렬, 민경진 등 대자보에서 활약하던 사이버 논객들이 모여들었다. 서프라이즈는 처음부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단일화 논쟁 등 노후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칼럼과 ‘댓글’로 지원사격을 퍼부었다.
노대통령 당선 후에도 서프라이즈는 피투성이 사건(민주당 살생부를 작성한 아이디 ‘피투성이’를 지지하며 수천명의 네티즌들이 ‘나를 고소하라’고 서명운동을 벌인 사건),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 KBS사장 선임, 이라크 파병, 대북 송금 의혹사건 특검수용 논쟁에서 이슈를 선점하며 한때 일일 조회 수 7만에 이르는 등 ‘친노 매체’로서 상종가를 쳤다. 한창 때 서프라이즈에서 활동한 실명, 익명의 논객만도 50여 명에 달했다.
좌우에서 친노·비노·반노로
그러나 대북 송금 사건 특검수용과 민주당 내 신당 추진에 대한 입장 차가 커지면서 지난 5월 서프라이즈는 친노, 비노(비판적 지지), 반노로 갈라섰다. 즉 노대통령의 특검수용과 신당 추진을 비판해온 전통적 민주당 지지세력은 ‘동프라이즈’로 둥지를 옮겼고, 변희재·장신기 등은 당파성을 걷어내고 정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화두로 삼은 ‘시대소리’를 창간했다. 변희재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층 분화와 함께 서프라이즈의 당파성은 효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서프라이즈의 성공은 당파성에 있다. 매일 같은 편끼리 치고 받으며 하나의 방향성을 정하고 강력한 조직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개혁의 상징이 사라진 지금, 그런 결합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파성 하나로 결집하기에 너무나 많은 의견과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안티 서프라이즈’로 출발한 동프라이즈는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사이트개설 3개월 만에 도메인이 폐쇄되고 운영자가 바뀌는 부침을 겪는다. 처음부터 호남정서를 대변해온 동프라이즈 논객들은 민주당 신주류의 신당 추진이 ‘호남소외=영남패권주의’라며 비난해 왔다. 그러자 ‘친민주 노동당계’라고 밝힌 논객들이 동프라이즈에 진출해 ‘호남지역주의=영남역차별론’을 제기했고 사이트의 대문글(톱기사)을 놓고 정치적 논쟁이 이어지면서 영호남 네티즌들이 감정대립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아이디 ‘겨울늑대’가 동프라이즈의 운영권을 포기하고 사이트가 파행 운영되는 사이에 남프라이즈와 씨알소리가 탄생했다. 9월1일 문을 연 남프라이즈는 ‘친민주당’ ‘친김대중’ ‘친햇볕정책’을 표방했다.
남프라이즈보다 한 발 앞서 사이트를 연 ‘씨알소리’는 동프라이즈 논객으로 활약하던 아이디 ‘노짱복음’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동프라이즈의 보완재’ ‘대북 송금 사건 특검반대론자들의 모임’을 자처한 만큼 정치적 성향에서는 남프라이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에서 진보적 성향의 정치웹진들이 급격히 분화하는 현상에 대해 서프라이즈의 공희준 편집장은 “개혁진영의 분열이 아니라 외연의 확장”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합집산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자보의 이창은 편집장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첫 번째 요소는 구성원들의 ‘동질감’이다. 현실세계보다 더 각을 세워 논쟁을 벌이게 만드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정치평론가 손혁재씨는 “사이버상에서 지지자들끼리 낯붉히고 싸우는 것은 인터넷의 속성”이라면서 “선거 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집결했다가 집권 후에 정책 사안에 따라 분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다만 인터넷언론들이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단지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갈라서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는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인터넷언론=노무현’이라는 등식이 자리잡는 과정에서 ‘언론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박대표는 2월24일 프레시안에 띄운 칼럼 ‘노무현 정부와 인터넷언론’에서 “언론은 언론이고 정부는 정부”임을 강조했다.
“개혁을 이루는 과정에서 정부와 언론의 역할은 명백히 다르다. 정부가 개혁의 주체라면 언론의 역할은 감시와 비판이다.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그저 복창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언론이 특정 정치세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부터 언론의 타락은 시작된다.”
박대표는 “이미 모인터넷 언론은 관영, 모 인터넷매체는 반관반민이라는 농담이 돌고 있다”면서 “인터넷언론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보수, 우익, 중도의 인터넷 입성
올 4월2일에 창간한 ‘민족신문’의 발행인 김기백씨는 “진보와 개혁을 앞세운 인터넷언론들이 지역성과 당파성에 매몰돼 억지 논리로 자신들의 지지자나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인터넷언론들이 지역으로 잘게 쪼개지면서 지금은 ‘향우회’ 수준으로 전락했다. 민주당 구주류와 신주류의 싸움을 인터넷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과연 언론의 역할인지 의심스럽다. 인터넷언론은 정치인들의 행태를 미주알고주알 따질 게 아니라 한반도와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고 국민통합의 기능을 해야 한다.”
최근 인터넷언론의 가장 큰 변화는 진보 일색에서 보수·우익의 진출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2002년 7월 자유주의 수호의 기치를 내걸고 창간한 ‘독립신문’의 신혜식 대표는 “독립신문은 오마이뉴스의 대척점에 있다”며 “보수우익 진영도 민주당 지지 논객과 ‘노사모’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독립신문은 인터넷사이트 평가전문회사인 ‘랭키닷컴’에서 인터넷신문 9위를 차지하는 등 대표적인 보수우익 언론으로 자리잡았다.
‘독립신문’과 함께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대변하는 사이트로 ‘사이버뉴스24’(cppc.or.kr)가 있다. 예비역 대령 배성관씨가 지난해 11월1일 창간한 후 ‘우익행동대’ 역할을 해왔으나 대선 패배 후 우익 단체들로부터 보조가 끊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립신문’ ‘사이버뉴스24’ 등이 ‘보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익’ 편향적인 반면, 최근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중심이 돼 ‘중도·보수’ 지향의 인터넷신문을 잇따라 창간했다.
침묵하던 중도, 마침내 입 열다
6월1일 정식으로 문을 연 ‘뉴스앤뉴스’는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이 발행인 겸 대표를 맡고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 박동순 전 필리핀 대사, 현소환 전 연합뉴스 사장, 이문호 전 연합뉴스 전무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홍대표는 창간 취지문에서 “지금 한국 사회는 좌우 대립의 갈등과 혼란을 겪는 ‘해방공간’과 비슷하다. 보수인가 진보인가, 친북인가 반북인가의 양자택일적 대결 양상 속에 극심한 국론 분열상을 바라볼 수만은 없다”며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전후 세대에게 뚜렷한 이념적 좌표를 심어주는 것이 뉴스앤뉴스의 목표”라고 밝혔다.
“침묵하던 중도가 드디어 목소리를 낸다. 한국사회에서는 ‘중도’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업코리아가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8월27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업코리아’ 창간 기념행사에서 안병영 대표(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업코리아의 소명을 강조했다. 업코리아는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 김우식 연세대 총장,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등 한국사회의 지도층 인사 65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해 ‘한국사회 명망가들의 총집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03년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해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한 인사들 사이에서 인터넷신문의 창간 논의가 시작됐다. 서경석 목사는 촛불시위가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촛불 시위가 반미로 흐르는 것을 보며 50~60대가 모여 자책했다. 우리가 젊은이들을 잘못 계도했다고 반성하면서 그들을 찾아가 진솔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문 기고나 강단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니 인터넷신문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사회에는 바른말 하는 합리적 개혁세력이 있어야 한다. 합리적 온건 중도 개혁 세력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언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업코리아가 표방한 ‘중도’가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국민대 윤영오 교수는 “중도를 표방했다 해도 시시비비를 가릴 때는 자칫 갑도 옳고 을도 옳다는 식이 될 수 있다”고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안대표는 “중도균형이 곧 절충주의는 아니다”고 강조한 뒤 “우리 사회는 이념의 거품이 많다. 극좌와 극우는 사라져야 하며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보다 가까이서 만나 제대로 토론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서울대 권오승 교수는 “중도라는 말 자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면서 “누구든지 들어와 이야기하고 그것을 통해 걸러지면 자연스럽게 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꾸 누구를 가르치려 해서는 곤란하다. 경험, 경륜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중도가 되는 것 아닌가. 너무 빨리 중도의 색깔을 내려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업코리아의 등장에 대해 진보적 논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변희재씨는 “이미 신문지면에서 익숙한 논조와 글들을 인터넷으로 옮겨놓는 것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지 않는 인터넷언론은 실패한다”고 말한다. 이창은씨도 “인터넷언론의 이념지향을 보면 7대3 정도로 진보가 많다. 그만큼 오프라인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온라인에 모이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의견 개진 기회가 많은 보수가 인터넷에 진출해서 과연 네티즌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인터넷언론의 판도는 동아닷컴, 디지털조선일보, 조인스닷컴 등 소위 ‘언론사닷컴’들과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탄생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대자보 등 독립형 인터넷신문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특히 2002년 3월 오마이뉴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의 광주지역 경선을 생중계했을 때 하루 조회 수 325만회를 기록했고, 그해 12월 16대 대선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를 발표했을 때는 조회 수 1900만회를 넘었다. 오프라인 신문과 언론사닷컴의 틈새를 발판으로 독립형 인터넷신문이 주류언론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포털 가세로 3파전 양상
한국 외국어대 최영 교수(신문방송학)는 “독립형 인터넷신문들은 시민 기자들을 뉴스 생산의 중심축으로 삼아 양적 팽창에 성공했고, 독자가 자유롭게 의견, 주장,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게시판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디어다음 등 포털 사이트들이 뉴스서비스를 강화하면서 3파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2002 대선 이후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라선 정치웹진들이 포진해 인터넷언론 환경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한다.
랭키닷컴도 이런 환경 변화를 의식해 7월부터 평가 카테고리를 재조정했다. 즉 인터넷뉴스와 정치웹진을 분리해 별도의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9월12일 현재 랭키닷컴의 인터넷뉴스 분야 상위 10개사는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프레시안, 딴지일보, 아이뉴스24, ZD넷코리아, 이데일리, 코리아인터넷닷컴, 독립신문, 진보누리 순. 정치웹진들은 기존 ‘뉴스&미디어’ 카테고리가 아닌 ‘정치·행정·법’ 카테고리 안으로 옮겨와 ‘정치웹진·정치포럼’에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현재 상위 10개사는 서프라이즈, 시대소리, 동프라이즈, 남프라이즈, 국민의 힘, 돼지껍데기, 씨알소리, 개혁광장, 민족신문, 불온이스크라 순이다.
2003년 3월 출범한 포털 사이트 ‘다음’의 미디어본부. 올해 안에 콘텐츠 제휴사를 30여 개로 늘릴 계획이다(위). 2002년 9월28일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창립기념행사(아래).
그러나 ‘미디어다음’의 출현으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랭키닷컴측은 “인터넷 뉴스는 오프라인이 없는 순수 온라인 매체이며, ‘미디어 다음’처럼 포털 사이트 안에 있는 것은 제외했다”면서 “그러나 미디어다음측이 요구하면 인터넷뉴스 분야에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2003년 3월 포털 사이트 다음이 ‘우리가 움직이는 세상’을 모토로 ‘미디어 다음’을 공식 출범시키자 여타 포털 사이트들뿐만 아니라 언론사닷컴, 독립형 인터넷신문들까지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당장 야후, 네이버, 엠파스 등이 뉴스 부문을 강화하고 다른 언론사와의 제휴를 서둘렀다.
인터넷뉴스 분야에서 포털 사이트들의 약진은 각종 조사에서도 입증됐다. 7월 중 한국갤럽이 16~45세 인터넷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뉴스 사이트의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다음, 야후, 네이버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또 인터넷사이트 전문조사업체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8월 첫째주 ‘미디어 다음’의 총 조회 수가 4억2000만회, 1일 평균 5021만회(1일 평균 순방문수 414만)로 ‘뉴스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디어다음은 독립형 인터넷언론사들이 결성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가입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뉴스 서비스를 그야말로 서비스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포털 사이트들이 제 색깔을 드러내기보다 ‘뉴스의 종합전시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는 “포털 사이트들은 자체 뉴스 생산보다 다른 언론이 제공한 뉴스들을 종합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성격이 강하다.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고 전달만 하는 사이트까지 언론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포털사이트도 언론인가
8월21일 한국언론재단과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선거법 개정과 인터넷언론’ 토론회에서는 인터넷언론의 정의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 관한 보도·논평 및 여론 등을 전파할 목적으로 취재·편집·집필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보도·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경영·관리하는 자”라고 다소 포괄적인 정의를 내놓았다. 포털 사이트뿐만 아니라 정치웹진까지 인터넷언론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
이에 대해 자체 콘텐츠 생산과 보도 기능에 무게를 두는 박인규 대표가 반대를 했고, 변희재 시대소리 운영위원은 “주장, 당파성, 기획, 창작을 포함하는 사이트까지 모두 언론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조대기 회장(NGO타임스 대표)은 인터넷언론에 대한 정의는 시대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웹진이나 포털미디어들이 사실상 언론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존의 언론개념으로 보면 기자의 취재행위가 없기 때문에 언론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민기자의 등장과 함께 전통적인 기자 개념은 사라졌다. 누구나 정보를 취합·정리해서 논평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언론행위 아닌가. 앞으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웹진이나 뉴스레터로 바꿀 경우 이것까지 언론으로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공룡미디어의 등장
‘미디어 다음’의 석종훈 본부장은 “자체 생산 기능이 있어야 언론이고, 없으니까 아니다라는 구분은 시대착오”라고 말한다. “현재 다음은 22개 제휴사로부터 하루 5000여 건의 콘텐츠를 제공받고 있다. 자체 콘텐츠를 생산한다며 청와대에 기자 1명을 더 파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보다 분야별 전문 콘텐츠 제공자(CP)를 확보해 독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털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다음이 ‘민중의 소리’와 제휴를 맺은 이유는 그들이 보수적인 기존 매체들이 제공할 수 없는 뉴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콘텐츠의 가치는 시장 판단에 맡겨지며 제공자의 브랜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우리에게는 독자이자 뉴스 생산자인 네티즌들이 있다. 한번은 태풍이 남부 지방을 강타했다는 뉴스가 나갔을 때 각 지역 네티즌들이 지역 기상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적이 있다. ‘미디어 다음’의 ‘100자 의견’이 곧 뉴스가 된 것이다. 인터넷뉴스는 연예계 가십거리나 다뤄서 경박하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8월 첫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이 큰 이슈가 되었을 때 인터넷뉴스사이트의 이용률이 급증했다. 인터넷 독자들은 뉴스보다 이슈를, 이슈보다 뷰스(views)를 원한다.”
석종훈 본부장은 인터넷언론이 1기 언론사닷컴 시대, 2기 온라인전문매체 시대를 거쳐 3기 포털미디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즉 언론사닷컴이 오프라인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역할을 했다면,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으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온라인 전문매체들이 미디어 진입장벽을 무너뜨렸다. 또 이들은 모든 독자를 아우른다는 개념이 아니라 분야(경제, 정보통신)와 이념지향성(진보, 보수, 좌파, 우파)에 따라 세분화된 독자층을 확보하며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이제 포털 미디어들은 세분화된 인터넷언론을 다시 통합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즉 잘게 쪼개졌던 인터넷언론들이 포털미디어를 통해 한자리에 모이고 유통되는 새로운 전파 경로를 찾은 것이다. 미디어다음에 기성언론을 대표하는 ‘동아닷컴’ ‘디지털조선일보’와 ‘민중의 소리’ 뉴스가 나란히 제공되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또 경영면에서 영세할 수밖에 없는 소규모 인터넷언론들이 거대 포털과의 제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면서 ‘생존’의 기반을 닦는 새로운 공생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2004년 총선은 인터넷언론의 판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즉 선거법이 개정되고 인터넷언론들이 자유롭게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 정치적 경향성에 따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총선 자체가 다당제로 치러질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인터넷언론들이 백가쟁명식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전략적인 합종연횡이 필요하므로 기존 인터넷언론들이 쪼개지기보다 연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2004년 인터넷언론의 희망과 절망
NGO타임스 조대기 대표는 “내년 총선은 지역인터넷언론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총선은 지역 정치인을 뽑는 것이다. 지역별 후보자 토론회 개최라든가 이를 생중계하는 것 등 중앙언론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풀뿌리 지역언론을 주장하며 1995년 만들어진 바른지역언론연대(www.bjynews.com)의 경우 이미 28개 회원사가 활동중인데 이들이 인터넷에서 합동으로 선거관련 보도를 할 경우 파급력이 클 것이다. 광주에서는 1998년 결성된 ‘참여자치21’(db21.or.kr)이 지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관여하고 있다. 시민운동단체이지만 사실상 언론 기능을 하고 있는데 개념적으로 언론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물론 더 이상 인터넷언론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며 보수·우익의 등장과 함께 현실 선거판의 이전투구가 그대로 인터넷상에 재현될 가능성도 높다. 대자보 이창은 편집국장은 “대선 패배의 여파로 보수 우익단체의 인터넷 대응력 또한 높아졌다”면서 “친노무현계인 ‘국민의 힘’에서 일부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공개운동을 개시하자, 우파에서 즉각 ‘국민의 함성’ 사이트를 구축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정치인(친노무현 계 정치인)’에 대한 정보공개운동을 하겠다고 나섰듯이 담론의 공간인 인터넷이 우리 사회 헤게모니 싸움의 축소판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변정수씨는 ‘인터넷매체를 통한 참여, 그 허와 실’(당대비평, 2003년 여름호)이라는 글에서 수많은 인터넷매체의 등장이 과연 ‘참여’를 보장해 주었는지 묻는다.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매체의 양방향성은 다양한 의견이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가 아니라 다른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다양한 의견들의 카운터액티브(counter-active)일 뿐이다. 이렇게 왜곡된 양방향 소통은 정작 그러한 ‘참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참여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인터넷언론의 등장이 반가우면서도 한편 우려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