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지음/ 바다출판사/ 432쪽/ 1만5000원
이 점에서 북한전문가인 손광주 위원의 ‘김정일 리포트’(바다출판사)는 시의적절하고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역작이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 간의 기자생활을 통해 북한의 지도층과 탈북자들에 대한 심층취재를 한 바 있다. 퇴직 후에는 북한 관련 전문연구기관인 통일정책연구소에서 북한의 통치이념과 사상, 그리고 김일성·김정일 연구, 이를 토대로 한 ‘현장감이 짙게 배어 있는’ 통일전략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저자가 방대한 양의 북한문헌자료를 활용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황장엽 선생을 비롯해 북한 당·군·정의 고위급 망명자와 탈북자들을 오랜 시간 접촉하여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청취하고 또 분석된 정보들의 타당성을 입체적으로 검증하는 노력과 성과가 저서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10대 원칙’이 김정일 수령 독재체제의 골조
저자는 북한체제를 이해하려면 1974년 4월에 발표된 ‘10대 원칙’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10대 원칙’이 북한을 다스리는 실질적 법률이란 사실을 알게 된 지가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사실 그동안 남한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데 지침으로 삼은 자료는 주로 노동당 규약과 사회주의 헌법, 김일성 관련 저작물과 주체사상 총서, 그리고 관영 언론매체 등이었다. 1980년대 들어 김정일 명의의 주체사상 관련 논문들이 연구대상에 첨가됐지만, 김정일 관련자료가 북한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였다. 즉 김일성이 사망한 후 비로소 김정일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는 ‘남한식 관점’이 잘못 투영된 결과였다.
망명자나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에서는 북한의 헌법이나 형법은 몰라도 되나 ‘10대 원칙’을 모르면 살아갈 수 없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선포했고, 그해 4월 실천적 지침이자 최고 지상법인 ‘10대 원칙’을 발표했다. 김정일은 ‘10대 원칙’을 통해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를 강조하면서, 이는 오로지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에 의해 구현됨을 강조했다. ‘당 중앙’은 물론 김정일 자신을 지칭한다. 이미 1974년 김정일의 나이 서른셋에 자신이 김일성의 뒤를 이을 확고부동한 2인자임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우리의 관심거리였던 후계구도 논란은 북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또 김일성과 김정일 자신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든 ‘공신’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특히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위해 기울인 노력, 그의 강한 권력지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김정일의 출생설 조작도 한 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1942년 백두산 밀영에서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941년 러시아 연해주의 브야츠크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이 출생연도를 바꿔 발표한 것은 김일성의 생일(1912년)과 ‘꺾이는 해(정주년)’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이 70회 생일을 맞으면 자신은 40회가 되는 식이다.
이처럼 김정일이 굳이 백두산 출생설을 조작하고 아버지 김일성의 생일과 맞춰야 하는 까닭은 오직 김정일만이 절실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해한다. 또 김정일이 1959년 17세에 소련 유학을 거절한 배경에 대해서도 당시 중·소 이념분쟁의 와중에 ‘주체’를 내세우며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김일성의 뜻’을 김정일이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사소한 것 같지만 북한현대사 이해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면에서 저자의 분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상당한 자료와 증언을 분석하여 독재자로서 김정일의 자질을 평가했다. 하지만 논리력과 수리력이 결여되어 있고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이 부족하여 정상적 국가지도자로서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남한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는 김정일의 군부 장악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지금도 북한군부의 강경파·온건파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먼저 김일성이 사망한 시기에 김정일은 ‘확실히’ 군부를 틀어쥐고 있었으며 지금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북한에서 군은 곧 ‘당의 군대’다. 군은 전적으로 당의 지도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실제로 군의 최고정치기구인 총정치국은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당의 조직지도부는 군인들의 진급과 보직을 포함한 군 인사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군에 대한 검열권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1973년 당의 조직지도부장이 된 후 군을 상당 부분 장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또 1980년에는 김정일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는데, 이것은 북한의 군 관련기구 중 핵심적이고 중요한 지위다. 당 중앙군사위는 당 중앙위 산하가 아닌 독립된 기관으로, 당의 군사정책·군수산업·군대지휘 등 군과 관련한 가장 핵심적인 사업을 하는 곳이다. 이같은 사실로 볼 때 저자는 김정일의 군 장악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은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임명된 시기라고 주장한다.
1991년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인민군 최고사령관 자리를 넘겨주었다. 다음해인 1992년에는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여 1993년 4월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게 된다. 국방위원회는 인민군뿐만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도 지휘 통제하도록 개편됨으로써, 명실공히 국방위원장인 김정일이 군통수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이로써 김정일은 북한의 전체 무장력과 모든 정보기관을 장악하게 되었다. 1994년이면 김정일이 조직지도부장이 된 지 20년이고 당 중앙군사위 위원이 된 지도 14년이 흐른 시점으로, 김정일의 군부 완전장악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군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존재 및 그들간 갈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군 내부동향은 김정일이 당내 기구를 통해 알 수 있고, 특히 반김정일이라는 ‘사상문제’에 걸려들면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북한군에는 오로지 ‘김정일파’만이 존재한다는 논지다. 남북협상 과정에서 북한당국이 간혹 군부 강경파를 들먹이는 것은 김정일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면서 남한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한다.
김정일에게 ‘안녕히’라는 인사조차 못하는 심정
저자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김정일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다음 두 가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김정일이 과연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중국식 개혁·개방의 체제로 나아갈 것인가. 다른 하나는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국제사회의 힘에 의해 체제전환 또는 붕괴될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김정일이 대량살상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을 선택할 만큼 배짱도 없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반면 김정일 스스로 북한체제를 개혁 개방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매우 낮은 편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체제를 스스로 허물고 완전히 뜯어고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대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김정일에게 기대할 것이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의 대답은 명쾌하다. 남한을 비롯하여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김정일 체제를 중국식 개혁·개방체제로 갈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원론적이고 점잖은 답이다. 그렇지만 ‘김정일 비서에게’라는 편지형식의 서문을 읽어보면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당신(김정일)이 만들어놓은 체제가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는 현재의 중국처럼 되거나, 아니면 더 진보된 체제로 전환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라며 강한 암시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통상 편지 말미에 쓰는 ‘안녕히’라는 의례적인 인사조차 못함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김정일을 ‘위로’하고 있다.
‘김정일 리포트’를 읽으면서 최근 미국과 중국 등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북한의 ‘regime change’란 말이 강하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