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이태원 참사는 세 갈래 ‘기습’… 마음의 눈 없으면 매뉴얼 無쓸모

  •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입력2022-12-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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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소적으로, 방법적으로, 시간적으로 기습당해

    • 안일함, 무관심, 무책임 반성하는 게 먼저

    • 예측 못 하면 대비 못 하고, 대비 않으면 사고 일어나

    • ‘결과 신고’에 반응 빠른 경찰, ‘예측 신고’에 한계 드러내

    • 책임자 처벌 후 ‘우리’들의 죄의식 없어져선 안 돼

    2022년 11월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쪽지와 추모꽃이 놓여 있다. [뉴스원]

    2022년 11월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쪽지와 추모꽃이 놓여 있다. [뉴스원]

    세상사를 미리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핼러윈은 젊은이들이 갖가지 분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노마스크 정책이 시행되는 핼러윈 축제 관련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핼러윈을 기다렸다. 기대는 곧 악몽으로 변했다. 핼러윈 시즌 첫날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해 사망자 158명을 포함, 총 35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후 전문가들이 나와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분명한 것은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까지 그런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그 순간에 무엇이 잘못된 게 아냐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커다란 일이 발생할 때, 그것은 단지 그 순간에 무엇이 잘못돼 나온 결과는 아니다. 여러 가지 일이 뒤엉켜 있다가 사소한 계기를 통해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예측하지 못하면 대비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으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기습은 시공간의 확률론적 관점에서 장소적·방법적·시간적 기습으로 나뉜다. 서울 이태원에서 사람에 밀려 상상할 수 없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줄 누군들 생각이라도 했을까. 장소적 기습을 당한 것이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매뉴얼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주최자 없는 인파 관리라는 개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도심에서 대규모 압사라는 방법적 기습을 당한 것이다.

    경찰은 대규모 시위 집회에 최적화한 조직이다. 큰 경기나 대규모 공연이 있을 때는 혼잡 경비 개념을 적용해 대비한다. 그런데 주최자 없는 행사라고 생각했기에 도심에서 축제를 즐기려던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대규모 참사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참사 며칠 전 지자체, 경찰, 소방, 서울교통공사, 상인연합회 등이 참석한 대책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서 차 없는 거리 지정, 인근 전철역 무정차 통과 등의 주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대규모 집회·시위가 있었던 광화문 지역에서의 기동대 배치, 전철의 무정차 통과 등의 조치와 대비되는 점이다. 당시 이태원상인연합회는 경찰기동대 배치 자제를 요구했고, 구청의 최대 관심사는 쓰레기 처리 문제였다. 앞서 이태원에서 개최된 지구촌 축제는 용산구청 주최로 진행된 반면 핼러윈 축제는 관련 기관들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로 인식했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인파 관리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덜 가진 결과 참사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본다. 주최자가 없는 상황에서 인파 관리라는 명시된 과업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기 때문에 추정된 과업의 도출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경찰은 범죄 발생이나 112신고를 받으면 통상 5분 이내에 출동한다.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거나 발생했다는 진행, 결과 신고에는 반응 속도가 빠른 조직이다. 그러나 향후 발생할 것에 대비해 조치를 바라는 예측 성격의 신고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점차 상황이 엉켜갈 무렵 112신고에 경찰이 대응 포인트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압사가 우려된다며 경찰 출동을 요청하는 여러 번의 신고를 초를 다투는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징후가 감지됐지만 밀려드는 인파를 뻔히 보면서 내린 조치라곤 연속적인 코드 발령뿐이었다. 112 상황실은 근무시간에 정위치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치안상황관리관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하지 않다가 사태가 터진 뒤에야 보고했다. 경찰 상황 계통에서 필요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사이 사고 임계점을 넘긴 것이다. 지속적 경고, 징후가 드러난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친 결과 눈뜬 채로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시간적 기습을 당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찰 수뇌부가 대통령, 행정안전부 장관보다 참사 상황을 늦게 보고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소방·경찰 공무원들이 필사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였지만 조직적 대처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고 발생 전 정보 공유 등 기관별 통합 대처는 없었고 책임을 둘러싼 기관 간 갈등이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 발생 전 신고를 받고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소방에서는 구급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했다. 결국 참사 발생 3분이 경과한 뒤에야 소방 당국은 경찰에 현장 지원을 요청했다. 이외에도 사고 발생 전파 후 필요 조치 없이 퇴근한 용산구청 안전 책임자, 경찰의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요청 묵살, 관할 경찰서장의 미흡하고도 무책임한 현장 지휘 조치 등 사건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는 정부, 지자체, 경찰, 소방, 시민의 안전의식 소홀 등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이태원 참사는 많은 생명이 순식간에 희생된 어처구니없는 사건임과 동시에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인파 관리라는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우리 사회에 각인한 사건이다.

    매뉴얼대로 적극 대처했다면…

    사고 이후 정치권, 정부, 경찰을 중심으로 수많은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제시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 발의안 16개 중 대형 인파 재난 예방 내용을 담은 개정안만 13개에 이른다. 범정부 차원에서는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TF가 구성돼 지자체장 중심의 재난 관리 체계 확립을 비롯한 여러 대책이 제시됐다. 경찰청은 경찰 대혁신 TF를 구성하고 9대 즉시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인파 관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이 신속하게 마련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영국·일본 등 각국에서 시행 중인 인파 관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입,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CCTV 시스템과 결합해 운용하면 향후 인파 관리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참사가 쏟아지는 새로운 규정, 방침, 매뉴얼이 없어서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서도 기관별 매뉴얼은 엄연히 존재했다. 사고 발생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해 급조된 경찰청 특수본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면 더욱 명백하다. 인파 사고를 예측했던 경찰 정보 보고가 있었고, 관련 규정에 따라 서울교통공사 계통으로 전철의 무정차 통과 지시가 사전에 하달됐지만 중간 과정에서 묵살됐다. 뒤엉킨 일들을 풀 기회를 상실하자 일순간에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린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기존의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고, 상식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사법 당국에 의한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책임을 질 사람들은 져야겠지만 몇 사람을 처벌한다고 해서 우리들의 죄의식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험지역에 대한 인파 관리가 이루어지고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안일함, 무관심, 무책임을 반성하고 기존의 매뉴얼이 정상적으로 지켜지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아무리 매뉴얼이 많아도 마음의 눈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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