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셜 미디어 출처가 뭐죠?”
‘근수저’이자 ‘100% 프랑스인’
투박하고 거친 인종주의 행태
아주 편리한 ‘도덕적 알리바이’
대한민국도 이미 다인종 국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 [AP뉴시스]
킬리언 음바페의 아버지 윌프레드 음바페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음바페는 현지시각으로 12월 18일 오후 6시에 시작해 장장 3시간 넘는 혈투 끝에 막을 내린 2022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프랑스의 공격수. 그런 그가 실은 카메룬 국가대표가 될 뻔 했으나 카메룬에 만연해 있는 비리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번 월드컵 기간 내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돌았던 이 이야기는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음바페의 아버지 윌프레드의 출신국 카메룬뿐 아니라, 어머니의 고향인 알제리 축구협회 역시 음바페에게 ‘프랑스 대신 네 부모의 나라 대표가 되라’며 접근한 사실 자체가 없다. 고작 19세의 음바페가 프랑스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월드컵 우승을 견인한 것만 떠올려 보더라도, 저 소문이 얼마나 허황한지 알 수 있다.
이는 2020년 12월 26일, 카타르 언론 ‘비인 스포츠(Bein Sports)’와의 인터뷰에서 음바페 본인이 해명한 내용이다. 음바페는 해당 루머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래요, SNS를 통해 그런 화제를 접했고 놀랐습니다. 모나코에서 프로 선수로 첫 경기를 뛰었을 때부터 제가 알기로 다른 나라 축구협회가 저나 우리 가족에게 접근할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알제리도 아니고, 카메룬도 아니고. 저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아주 빨리 들어갔어요.”
그리고 음바페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 소셜 미디어 소문의 출처가 뭐죠?”
인터넷 헛소문을 언론이 덥석 물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킬리안 음바페가 12월 18일(현지시각)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을 마친 뒤 골든부트(최다득점)를 수상했다. 이날 해트트릭에도 대회 2연패에 실패한 그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화뉴시스]
지금 이 순간에도 SNS에 떠돌고 있는 여러 이야기는 대체로 화면을 캡처한 ‘짤방’ 형태거나, 게시자 스스로도 출처를 밝히지 않는 ‘펌글’일 때가 많다. ‘어디서 듣기로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 뿐이다.
시간 순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카메룬 콩코드 뉴스(Cameroon Concord News)’라는 인터넷 언론에 2018년 7월 20일 게시된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카메룬 부패로 인해 킬리안 음바페를 프랑스에 빼앗기다’(Cameroon Lost Kylian Mbappe To France Due To Corruption)라는 제목의 기사에, 이번 ‘뷰파인더’ 칼럼을 시작하며 인용한 문장이 등장한다.
‘카메룬 콩코드 뉴스’는 어떤 곳일까.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카메룬 콩코드 뉴스 그룹 산하 인터넷 언론이다. 카메룬에서 독일로 망명한 언론인 소터 타르 아그바우-에바이(Soter Tarh Agbaw-Ebai)가 독일의 에센 시에서 2000년 창간한 언론으로, 그는 여전히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기사가 ‘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의 최초 출처일까. 그것을 온전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카메룬 콩코드 뉴스’의 기사 역시 “널리 알려진 발표에 따르면”(In a widely circulated statement)이라고 표현하며 음바페의 아버지가 카메룬 축구협회로부터 모종의 제안 및 뇌물 요구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 해당 발표가 무엇인지 전문을 게시하거나 그 출처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룬 콩코드 뉴스’의 보도는 반향을 얻었다. 우크라이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인터넷 스포츠 뉴스인 ‘스포츠 브리프(Sports Brief)’는 2022년 12월 2일, 문제의 ‘카메룬 콩코드 뉴스’의 기사를 인용해 ‘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를 뉴스의 형식으로 실었다. 필자가 검색하지 못한 또 다른 ‘뉴스 보도’가 또 있을 테지만, 그 모든 내용이 결국 동일한 문장을 되풀이하고 있으리라는 점은 분명히 예상 가능하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는 가짜뉴스다.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을 어떤 언론이 덥석 물었고, 그게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은 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진실을 믿지 않는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음바페는 아버지가 축구 코치이며 어머니는 전직 핸드볼 선수인, 말하자면 ‘근수저’다. 이른 나이부터 재능을 보였고 두각을 나타냈다. 마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아버지는 흑인, 어머니는 백인인 흑백혼혈이며, 아버지는 카메룬, 어머니는 알제리 출신인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프랑스에 귀화한 상태에서 태어났기에 국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프랑스인이다.이주민 2세대 자녀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국적 대신 부모의 출신국을 따라 국적을 정하는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런 일은 적지 않은 경우 정체성의 갈등 내지는 종교 문제와 맞물려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음바페는 어린 시절 가톨릭 계열의 사립학교에 다녔고 지금도 종교 활동을 하는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나라지만, 가톨릭이 그러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음바페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100퍼센트 프랑스인’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 같은 가짜뉴스가 이토록 널리 퍼져 있을까. 심지어 2년 전 본인이 직접 해명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결승전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온라인 공간에 그 가짜뉴스가 휘몰아쳤던 것일까.
“사람은 진실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한 말이다. 애석하게도 이 사안에서 여지없이 들어맞는 진실이다. ‘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라는 가짜뉴스가 그토록 쉽게 퍼져나갔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킬리언 음바페라는 선수를 바라보는 프랑스와 유럽, 더 나아가 세계인 전체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음바페는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을 한 차례 견인했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결승전에서 혼자 세 골을 넣으며 팀을 우승 직전까지 이끌었다. 프랑스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언제나 1위를 기록하는 부동의 스포츠 스타이자 국민 영웅이다. 그런 음바페조차도 여전히 인종차별의 시선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룬 부패·비리 개탄하는 형식 취하다
오늘날은 서구 언론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인권 감수성 역시 훨씬 나아졌다. 인종차별이 문제라는 인식 하에 해당 사안에 대한 언급을 피한다. 하지만 조금만 눈길을 ‘비공식’의 영역으로 돌려보면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인종 구성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현을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글에도 프랑스 국가대표팀을 ‘진정한 프랑스 대표팀’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식의 인종차별적인 댓글이 달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투박하고 거친 인종주의다.‘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의 구조를 따져보자. 일단 루머를 만든 사람은 음바페가 이민자의 자녀라는 점을 부각했다. ‘순수한’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루머에 따르면 음바페 혹은 그의 아버지는 카메룬의 제의를 받고 긍정적인 검토를 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대한 음바페의 애국심 내지는 충성심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루머를 만든 사람이 악랄한 가짜뉴스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따로 있다. 카메룬 축구협회의 누군가가 뇌물을 요구했기에 음바페는 프랑스 대표팀이 됐다는 ‘반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루머꾼은 마치 이 루머가 음바페에 대한 인종차별이 아니라, 카메룬과 아프리카 국가 전반에 만연한 부패를 고발하는 것처럼 포장한다.
내심으로는 흑인인 음바페가 프랑스 국가대표라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 점을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음바페 카메룬 국대 루머’는 아주 편리한 ‘도덕적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카메룬의 부패와 비리를 개탄하는 형식을 빌려, 결국은 음바페와 그 가족을 향해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있는 셈이다. (‘카메룬 콩코드 뉴스’의 오보를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카메룬에서 쫓겨나 독일에 망명 중인 언론인이 창간한 매체인 만큼, 카메룬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카메룬 콩코드 뉴스’가 이 가짜뉴스의 확산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점, 그 가짜뉴스가 인종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0.1초라도 더 빨리 달리려면
한국 육상의 희망으로 불리는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 [동아DB]
문제는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이다. 아예 논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라, ‘초보적’이라는 말을 할 수조차 없다.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인종국가로의 변화는 더욱 확연하다. 하지만 언론에서 그러한 현실을 다루면, 적어도 댓글을 통해 확인되는 반응은 천편일률적이다. 마치 음바페와 가족을 향한 것처럼,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성마른 손가락질, 혹은 지면에 옮길 수 없는 비속어와 욕설이 가득하다.
현실을 개선하는 첫 단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다인종 국가라고 봐야 한다. 농업과 제조업에 의존하는 지역 경제 현장뿐 아니라 스포츠의 영역에서도 이민 2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콩고 출신 부모를 두고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중학교 3학년 때 귀화한 육상선수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단일민족 신화를 극복하고 다인종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평탄할 리 없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비웨사를 비롯한 ‘새로운 우리’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0.1초라도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이나믹 코리아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싶은가.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듯, 우리는 컬러풀 코리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