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시작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재판 지연’ 유족 항의…‘서해 공무원 피살’
검찰 증거만 8만 페이지…‘통계 조작 의혹’
재판만 51번째,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김정은에 건넨 ‘3급 기밀’ USB
2022년 2월 10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집권 시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수사” 발언에 대해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2년 2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를 진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들어서도 전 정권의 적폐청산 수사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전격적으로 진행한 적폐 수사와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문 전 대통령 집권 초기, 검찰은 ‘세월호 보고서 조작’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의혹’ 등 전격적으로 적폐 수사에 나섰고, 윤 대통령은 당시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이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전 정부의 권력형 비리나 의혹 해소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원책 변호사는 ‘신동아’ 8월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무슨 이유에선지 지난 정권 적폐 청산은 손도 대지 않았다…문재인 정권 때의 수많은 ‘적폐’를 윤 대통령은 왜 감싸는 것일까.”
그의 말처럼 전 정권의 대표적인 적폐 사건으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사건 △탈북어민 강제 북송 및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 등이 꼽힌다. 이제는 잊힌 일이 된 이들 사건의 수사 및 재판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추적했다.
‘재수사’ 시작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랜 지기로 알려진 송철호 전 울산시장. [동아DB]
사건 개요는 이렇다. 울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울산경찰청(당시 청장은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송 후보 경쟁자였던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의원) 비위 수사에 착수한다. 김 시장의 최측근인 비서실장과 동생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레미콘 납품 등과 관련해 특혜를 주거나 불법 계약에 관여했다는 의혹과 김 시장이 국회의원 시절 쪼개기 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다.
이 의혹은 송 후보 측 인사가 울산경찰청에 전달한 내용이었다. 해당 인사는 이 비위 의혹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도 알렸다. 이후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당시 김 시장에 대한 수사 과정을 보고받았다는 내용이 확인돼 “청와대가 선거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울산경찰청의 울산시청 압수수색 장면이 실시간 보도되면서 김 시장의 지지도는 급락했고, 송철호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9년 11월 검찰은 당시 경찰이 대통령민정수석실 지시를 받고 김 시장 수사에 착수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피고인 송철호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대통령비서실이 나서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독려하거나 표적 수사가 진행되면 김기현 시장의 적폐 이미지가 부각되어 선거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였다…민정비서관실 소속 파견 공무원에게 김기현 시장 관련된 비위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사건은 검찰 수사가 진행된 지 4년 만인 지난해 11월 첫 판결이 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3부(재판장 김미경)는 송 전 시장, 황운하 의원 등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백원우 전 대통령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대통령반부패비서관에게는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검찰과 송 전 시장, 황 의원이 모두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 판결문에는 형량을 선고받은 이들 외에도 문 전 대통령과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이름이 올라 있다. 판결문에는 “현직 지방자치단체장(김기현)에 대한 비위 정보를 대통령비서실을 통해 경찰 수사가 진행되도록 하고, 이를 선거에 악용하려는 전략은 송철호와 대통령 사이의 친분, 조국 전 민정수석이 과거 송철호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던 사이였던 점 등 송철호의 개인적인 영향력이 없었다면 쉽게 생각해 볼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검찰은 문 전 대통령과 조국 대표는 기소하지 못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2020년은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법무부 장관을 맡던 시절이어서 전 정권 청와대까지 수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추 의원은 법무부 장관 임기 초인 2020년 2월 검찰 공소장을 비공개 처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20년 1월에는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청와대의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해 말에는 검찰이 이진석 국정상황실장을 추가 기소하려고 했으나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이성윤 민주당 의원이 기소를 지연시켰다는 논란도 일었다.
1심 재판이 끝난 올해 1월 검찰은 해당 사건 재수사를 시작하면서 조 대표는 물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조민우)는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해 울산경찰청 소속 경찰과 울산 지역 민주당 관계자 등 7~8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법조계에서는 재수사를 해도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신동아’와 전화통화에서 “전직 대통령이나 청와대 핵심 인사를 기소하고 처벌하려면 결정적인 핵심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데 6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재수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필요한 절차였다”며 “실체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항소심 재판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 지연’ 유족 항의…‘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탈북어민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선상 살인을 자백한 탈북 남성 2명이 귀순 의사를 표명했으나 정부가 이를 묵살하고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한 사건이다. 김은한 당시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들은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자 2022년 6월 정부는 해당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이 사건과 관련해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2일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졌다. 당시 어업지도를 하던 해양수산부 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대준 씨가 실종 후 북방한계선 이북 해안에서 북한의 총격에 숨진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이씨가 “자진 월북했고, 이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박지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이 4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동아DB]
법조계 관계자는 “북한이나 군 관련 재판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재판에 출석한 증인이 국가 기밀, 혹은 비밀이라는 이유로 증언을 거부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숨진 이 씨의 형 이래진 씨는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며 “사건 발생 후 4년이 지났는데 1심도 끝나지 않았다”며 ‘재판 지연’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 증거만 8만 페이지…‘통계 조작 의혹’ 사건
2023년 10월 6일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수사팀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위해 정부대전청사 통계청 감사담당관실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DB]
이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올해 3월 13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김수현·김상조 전 대통령정책실장 등 11명을 ‘직권남용 및 통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대통령비서실과 국토부 관계자들이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총 125차례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을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가 조작한 통계는 한국부동산원이 발행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이었다. 감사 결과 청와대는 국토부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의 집값 변동률을 발표하기 전에 ‘주중치’(3일간 조사한 집값 변동률)와 ‘속보치’(7일간 조사 직후 집값 변동률)를 보고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를 통계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통계법 제27조2의 2항은 “누구든지 통계작성기관에서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전에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감사원은 문재인 청와대가 주중치와 속보치를 보고받으면서 통계 발표 전 최종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검찰은 고용, 소득 등 다양한 통계 수치 조작 정황도 확인된다며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이 제시한 관련 증거 목록만 A4용지로 약 1000페이지에 달한다. 증거 기록을 전부 합치면 8만 페이지를 넘는다. 5월 22일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병만) 공판 준비 기일에 참석한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출한 기록이 방대해 아직 정리도 못 한 상황”이라며 “공판 시작 전에 기록 검토에만 두 달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증거 검토 시간을 달라는 것은 변호인단의 재판 지연 수단일 수 있다”며 “재판부가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재판은 장기화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판만 51번째,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재판이 장기화되는 것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2020년 10월 감사원 폭로로 시작됐다. 감사원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산업부가 원전 조기 폐쇄를 사전에 결정해 놓고 이후 경제성 평가가 이뤄지자 그 숫자를 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진행된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원전의 경제성은 15분의 1로 줄어들었다. 감사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이 자료를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2021년 1월 산업부 자료를 삭제한 공무원 3명을 ‘감사 방해 및 증거 인멸 혐의’로 기소했다. 1심에서는 징역형이 선고됐으나,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올해 5월 9일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상고심 판결 전 감사원은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자료를 대량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으나 소용없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디지털포렌식이 적법하게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감사방해죄가 성립하려면 감사 절차가 적법해야 하는데,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감사에서는 적법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므로 감사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월성 1호기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동아DB]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을 최초 제보한 강창호(52) 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 새울1발전소 노조위원장은 “지금까지 열린 공판 횟수만 51회인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산업부가 자료 제출을 늦추는 모습을 보면 정부는 적폐 청산 대상인 원전 경제성 조작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밝혔다.
김정은에 건넨 ‘3급 기밀’ USB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USB 하나를 건넸다. [동아DB]
통일부도 “201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며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내용을 담은 USB를 제작해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문 전 대통령이) 북한에 전달한 USB가 그것과 같은 내용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자유통일당 대변인인 구주와 변호사는 지난해 4월 통일부에 해당 USB 내용을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통일부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통일,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안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며 USB 정보 비공개를 통지했다. 구 변호사는 이에 불복해 같은 해 5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통일부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 정보(USB에 담긴 정보)는 국가기밀 중 3급 비밀인 ‘국가안전보장, 국방, 통일,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안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며 “정보가 공개되면 국가안전보장, 국방, 통일, 외교관계 등에 관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구 변호사는 “3급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북한에 넘겼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으며 이 사실이 사법부에 의해 인정됐다”면서 “USB 내부 내용 확인을 위해 이미 항소를 해 둔 상태”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3급 기밀 유출은 간첩죄나 이적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신동아 9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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