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포함, 조희연 전 교육감 정책 계승
“교권 무너진 게 전교조 탓은 아냐…尹 교육 정책 심판”
학생인권조례로 교권 침해? 직접 연광성은 없어
학부모-학생-교사 간 소통 부재 가장 큰 문제
AI 디지털 교과서 과잉 노출 우려…도입 연기 요청할 것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왜곡된 역사 교육을 바로 잡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밝혔다. [지호영 기자]
10월 16일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 진보 진영 단일후보로 출마한 정근식(67) 서울대 명예교수는 “평생 역사사회학자로 살아온 내가 교육감에 도전한다고 하니 ‘정치하려고 하느냐’고 묻는 이가 많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를 만난 건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하루 전인 10월 2일 오후 8시를 넘어서였다.
정 후보는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했다. 그는 “일부 한국사 교과서가 ‘뉴라이트’ 논란을 빚는 등 역사 왜곡 논쟁이 되풀이되고,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시민 동의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불통 정책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정 후보는 1957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전남대‧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제주 4‧3평화재단 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노무현 정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문재인 정부)으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2019년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정치에 입문하지는 않았다.
서울 민주진보교육감 추진위원회가 9월 26일 그를 단일후보로 추대했지만, 진보진영에서는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최보선 전 서울시 교육의원, 방현석 중앙대 교수, 조기숙 전 이화여대 교수 등이 단독출마를 선언해 5명의 후보가 상황이 빚어질 뻔했다. 이후 진보진영 내부에서 추진한 2차 단일화가 극적 성사돼 정 후보의 선거운동 레이스는 한결 가뿐해졌다. 다음은 정 후보와의 일문일답.
깃발이자 희망으로 인정받아
-선거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싶은 학자로서의 소명과 흐트러진 교육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출마를 결심하게 했다.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한마음이 돼야 한다. 이들 간의 합의를 좀 더 굳건하게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일부 후보가 단독 출마를 선언해 진보진영 단일화가 반쪽에 그칠 거란 전망도 있었는데.
“내가 걸어온 길을 다른 후보들이 인정해준 덕이다. ‘정근식이라면 내가 양보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전임 교육감이던 곽노현 후보는 “당신이 우리의 깃발이자 희망”이라며 기꺼이 지지해줬다. 방현석 교수도 마찬가지다, 조기숙 홍보수석도 ‘당신이기 때문에 우리 승리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인정받았다고 보나.
“시민들은 나를 잘 모르겠지만 학계에서는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긴다. 나는 대학에서 40년간 교육 연구에 매진했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시대적 과제가 있을 때 기꺼이 내 연구에 기초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참여해 왔다. 젊었을 때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했고, 또 친일 반민족 행위 문제가 있을 때는 기꺼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위원으로 참여해 진실 규명에 일조했다. 이런 이력이 다른 후보들과 시민들로부터 (교육감 후보로서) 인정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10월 초 한 여론조사에서는 조전혁 보수진영 단일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나왔는데(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CBS 의뢰로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물은 결과 정근식'이라는 응답은 37.1%, '조전혁'이라는 응답은 32.5%로 나왔다. 조사는 무선 ARS 자동응답 조사(무선 100%·무선 통신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 활용)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넉넉한 차이로 우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슬아슬하다. 강남 3구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고 해서 사실 놀랐다. 그만큼 나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판단한다.”
-초·중등 교육 현장에 대해선 잘 모르는 비전문가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요즘 아주 열심히,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교장선생님들, 교육장님들, 전직 교육감님들로부터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것들을 개선해야 하는지 거의 하루에 하나씩 계속 교육을 받고 있다. 열심히 배워서인지 빠른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많은 분들이 인정한다.”
-평생 과거사 연구에 매진한 학자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의아해하는 시민들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사회학자이고, 우리 사회의 거시적 변동을 다루는 역사사회학자다. 아주 일찍부터 교육 문제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아래 진행된 초등 교육의 문제, 교과서와 관련된 문제, 고등 교육의 문제, 그리고 광복 이후 우리 교육이 성취한 것에 대해 연구했다. 대학에서 참교육과 교육 개혁을 위한 노력을 이어오며 연구에만 매몰되지 않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내도록 현장에서 헌신해왔다. 친일 진상규명위원회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현재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상당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현재의 교육은 형평성, 수월성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에서 보듯이 교육 현장이 심하게 망가지고 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일상적으로 상처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으로 인한 부담이 교육 현장에서 독이 되고 있다. 나는 교육 정책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크고 작은 분쟁으로 상처받은 피해자를 어떻게 치유하고 위로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연구한다. 그런 관점에서 다른 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그건 좀 과도한 얘기”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집 앞에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사흘간 계속 돌면서 (학교 담벼락에 붙은) 선배 선생님들이 젊은 선생님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와 사과의 글을 모두 읽어봤다. 선생님에게 쓴 학생들의 편지도 다 읽어봤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교권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교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교육감 출마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여러 동기 중 하나인 것은 맞다. 이렇게 상처받고 있는 교육 공동체를 다시 살리고 싶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보호를 위한 법률이 만들어졌는데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은 그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사건을 중재해야 하는 교장, 교육감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학생인권을 지나치게 앞세운 게 교권이 무너진 계기라고 보는데.
“그건 좀 과도한 얘기다. 물론 전교조가 갖고 있는 한계가 있지만 균형 있는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전교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 사회 자체가 굉장히 정보화하면서 학생들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전교조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는 크게 변했을 거다. 전교조가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조가 그런 측면에서 과도한 희생양이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의 입김이 세다. 서이초에서도 전교조보다 교사노조에 속한 선생님들이 더 많은 역할과 봉사를 했다.”
-진보진영 후보로서 전교조를 어떻게 평가하나.
“전교조와 입장이 항상 같은 건 아니다. 내가 전교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전교조와 얽혀 있거나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교사 임용에서 배제됐다. 어떻게 보면 헌법적인 권리를 뺏긴 측면이 있어서 전교조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는 그분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떤 국가적인 폭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진실을 규명했다. 전교조에도 공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권위주의적 교육 관행이 무너지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전교조의 원래 출발은 ‘참교육’이었다. 참교육으로 시작했을 때는 국민 대부분이 박수 쳤는데, 노동조합으로 발전하면서 교사들의 경제적 권리를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시각이 늘었다. 또 ‘전교조가 너무 정치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지양하고 교육에 집중하자’는 반성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커지며 그런 생각을 가진 선생님들이 따로 만든 것이 교사노동조합연맹이다. 지금은 교사노동조합이 더 큰 조직이 됐다.”
교육의 재정비가 절실한 때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선생님들은 위축돼 있고, 학생들이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면서 여러 가지 혐오랄지, 상대방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며 교육현장에 우려를 표했다. [지호영 기자]
교권 침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 서울시의회가 폐지를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정 후보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했다는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며 국회에서 입법을 논의하고 있는 ‘학생인권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내년부터 초‧중‧고교에 순차 도입되는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서는 “AI 디지털 활용 역량은 강화해야 하지만 디지털 기기 과잉 노출 같은 우려가 크다”며 “교육부에 도입 연기를 요청할 생각이 있다. 시민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현 교육시스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교육계 내부에서 선생님, 학교, 학생들, 학부모들 간에 소통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 서로 말이 안 통한다. 선생님들은 위축돼 있고, 학생들이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면서 여러 가지 혐오랄지, 상대방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현 정부의 잘못도, 조희연 전 교육감의 혁신교육 탓도 아니다. 교육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변화가 가져온 도전 같은 거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혁신교육을 통해 공교육의 발전에 상당히 기여했는데 그런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을 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과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동안 공교육이 발전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암기식 교육, 권위주의적 교육 행정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 교육계 내부에서 수평적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 소수자들, 특히 장애인 교육이 옛날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선거운동을 하며 갖는 고민은 뭔가.
“시민과의 소통의 문제, 역사 왜곡 문제, 기후 생태와 관련된 문제, AI 기술을 우리 교육 현장에 도입하는 문제가 큰 줄기의 시대적 과제다. 어떻게 학생들이 다시 꿈을 회복할 것인가,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긍지를 되찾을 것인가, 학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학교를 믿고 신뢰할 것인가, 우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교육의 재정비가 절실한 때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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