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특별히 정치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수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다. 그렇게 당연하게, 그리고 자부심을 갖고 국민의힘(그 전신까지 포함해) 당원이 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배신을 밑바탕 삼아 성공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당에서 개혁을 말하는 인물은 한동훈 전 대표다. 그가 개혁의 주체라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국힘 의원들은 제각각 ‘개혁’을 말하지만, 그것은 국회의원 개인의 논리일 뿐이다. 정작 당원들의 뜻과는 무관하다. 당의 근본을 배신하려면 차라리 당을 떠나 ‘개혁신당’으로 가든, ‘신보수당’을 새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
나는 오늘날 보수의 몰락이 김건희 여사의 약속 불이행과 한동훈 전 대표의 법무부 장관 입각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김 여사는 대선 전 “내조에만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전국을 누비며 ‘사적 라인’을 만들었다. 김 여사가 국정 곳곳에 남긴 흔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암 덩어리가 퍼진 정당, 대대적 수술해야
한 전 대표는 ‘파격’이라는 이름 아래 단박에 요직을 차지하며 권력의 ‘황태자’로 부상했다. 그 역시 분명 권력의 혜택을 입은 인물이다. 대통령 권력 앞에서 한 치의 거리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당을 분열시킨 ‘당원게시판 논란’에 대해선 “위법은 아니다”는 식이다. 적어도 정치인이라면 소상하게 실체를 밝히고 사과를 하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지 ‘물타기’만 한다면 당은 더 큰 분열과 갈등만 거듭하게 된다.초선의원으로 1년도 안 돼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상욱 의원의 공천 과정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선 비대위원장이던 한 전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정식 해명해야 한다. 위법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2024년 9월 22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2박 4일간의 체코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한 김건희 여사 뒤로 마중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서 있다. 동아DB
요즘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경선을 지켜보며 더 큰 분노를 느낀다. 후보로 나선 박찬대·정청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과 하나임을 외치지만 당정 분리나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등 정당의 역할에 대해 따지는 국힘 의원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당 내부를 향해선 반대만 부르짖는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보수는 명분과 원칙의 정치를 해야 한다. 6·3대선을 앞두고 국힘 김문수 후보를 교체하려 했던 권영세·권성동 의원의 시도는 명분도, 원칙도 없었다. 물론 경선 때 미묘하게 말이 바뀐 김 후보 역시 비판받을 여지가 있지만 한밤중의 극비 교체 시도는 보수정당의 금도를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그런 시도에 당원이 동조할 것이라 생각한 것 자체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회의원들은 당원들도 자신들처럼 권력욕에 당비를 내고 있는 줄 착각하지만 당원은 다르다. 당원들은 오직 보수의 원칙과 가치에 공감해 당에 헌신한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당원이 공감하고 지지하지 않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민주당은 진성당원만 250만 명에 달하는데, 우리는 책임당원이 70만~80만 명에 불과한 이유다. 그 수도 점차 줄어든다. 당원이 주인이 아니라면 당원이 떠나는 게 당을 깨우는 유일한 길일까. 정치에 관심 없던 아내도 나와 함께 살아가며 보수주의자가 됐다. 60년 지기 친구는 정치적 견해가 달라 잘 만나지도 않는다. 이처럼 당원들은 애끓는 마음으로 당을 지키고 있다. 그런 당원들의 고통과 분열을 정치인들은 알고 있는가. 누구 말마따나 이제 국힘은 온 몸에 암 덩어리가 퍼져 있다. 대대적 수술을 해야 한다.
- 60대 후반, 서울 거주, 당원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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