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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은 母子 탈북시킨 김용화 “北여성 4만 명 中서 창녀 취급 받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굶어 죽은 母子 탈북시킨 김용화 “北여성 4만 명 中서 창녀 취급 받아”

  • ●“개도 이렇게 죽지는 않는다”
    ●사람 장사꾼들에게 북한 여성은 ‘돈’
    ●외모, 나이에 따라 ‘값’ 결정돼
    ●“사람이 먼저라더니 북한 난민 보호 노력 안 해”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마흔두 살 여성과 여섯 살 어린이가 서울에서 굶어 죽었다. 뇌전증(epilepsy·간질)을 앓던 아들은 집에 뼈만 앙상한 사람을 그린 그림을 남겨놓고는 하늘나라로 갔다. 두 사람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43㎡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보증금 547만 원, 월세 9만 원. 냉장고에 먹을거라곤 고춧가루만 남았다. 요금 장기 미납으로 식수도 나오지 않았다. 

한성옥, 김동진 두 사람은 5월 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7월 31일 주검이 발견됐다. 목숨을 잃은 지 두 달쯤 지난 7월 31일 수도 검침원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관리사무소에 알리면서 시신이 발견됐다. 모자(母子)는 탈북민이다.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으로 이주했다가 아사(餓死)했다.


“잘 살아보겠다고 왔는데 서울에서 굶어 죽었다”

8월 30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 마련된 ‘탈북 모자 故 한성옥, 김동진 추모 분향소’ 앞에서 ‘탈북 모자 아사시킨 문재인 정권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8월 30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 마련된 ‘탈북 모자 故 한성옥, 김동진 추모 분향소’ 앞에서 ‘탈북 모자 아사시킨 문재인 정권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한성옥 씨는 사망하기 전 수개월 동안 월세와 관리비를 연체했다. 5월 이후 도시가스 검침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은 5월 13일 은행에서 3853원을 인출해 잔액을 0원으로 만든 것이다. 경찰은 현금을 인출한 지 보름 후 모자(母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9월 6일 서울지하철 광화문역 4번 출구 앞에서 외국인들이 현수막에 영어로 적은 문장을 읽는다. ‘Commemoration service for North Korean refugees : mother Han soungok- her son starvation victims in Seoul·서울에서 굶어 죽은 북한 난민 한성옥과 그의 아들 추모 장소)’라고 써 있다. 



탈북민 두 명이 ‘굶어 죽은 탈북모자 고(故) 한성옥, 김동진 추모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비각(碑閣·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 방향으로 각계에서 보낸 조화(弔花)가 늘어서 있다. 여권 인사들이 보낸 조화는 없다. 분향소를 지키던 탈북민 남성은 “사람이 먼저라더니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탈북민 단체들이 연합해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었다. 2000명 넘는 탈북민이 순식간에 모였다. “이것도 나라냐” “개도 이렇게 죽지는 않는다”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기관) 해체하라” “뭉쳐서 정부에 본때를 보여주자” 카톡방은 자정을 넘은 시각까지 성토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한성옥, 김동진 모자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김용화(66)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는 한씨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온 인물이다. 한씨가 죽기 전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기도 하다. 탈북민 수천 명을 중국에서 구출해 한국에 정착시킨 그는 “잘 살아보겠다고 왔는데 서울에서 굶어 죽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광화문 분향소에 가지 못했어요. 무슨 낯짝으로 내가 거길 갑니까. 사람들이 그럽디다. 뭣 하러 데려와서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성옥이 성격이 내성적이에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전화 통화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 아마도 나일 겁니다. 성옥이가 함흥 출신입니다. 북한에서 내 마지막 근무지가 함흥이었거든요. 한국 사람도 똑같잖아요. 수원 출신이면 수원내기들과 아무래도 대화가 잘 통하죠. 내성적인 성옥이가 이따금 소통한 게 나였어요. 도와달라는데 도와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성옥이는 누울 집이라도 있었죠. 성옥이와 처지가 비슷하거나 살기가 더 막막한 탈북자를 여럿 돌봅니다. 성옥이네 같은 비극이 또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제2, 제3의 비극

그는 한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때를 올 1월로 기억한다.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성옥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중국 조선족인 남편과 이혼했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많이 아프다고도 했고요. 관할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부터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한씨는 아동수당 10만 원과 양육수당 10만 원을 국가로부터 보조받았다. 올해 3월 아들이 6세가 되면서 아동수당은 끊겼다.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일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소득이 0원이었는데도 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받지 못했다. 

“탈북자 중 부정 수급자도 있겠으나 성옥이가 보호대상자에서 누락된 것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혼 확인서가 없어서 수급자가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성옥이가 나한테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법대로 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더군요. 사람이 있어야 법도 있는 게 아니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성옥이가 보기에는 우리 단체가 힘이 있는 곳입니다. 힘 있는 단체의 삼촌에게 부탁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해결을 못 해주니 다 포기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한씨는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아동수당이 끊긴 후 요금을 내지 못해 휴대전화도 정지됐다. 한씨 모자가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고립감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것을 관할 경찰서 신변보호관은 알지 못했다. 

“성옥이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적어도 두 달 동안 전화 한 번 안 했다는 얘기입니다. 탈북자가 하나원에서 나오면 보안계 경찰이 신변보호관으로 지정됩니다. 경찰 1명이 탈북자 40~50명을 담당합니다. 1명이 100명을 담당하는 곳도 있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잘 챙겨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탈북자를 잘 돌보는 경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요. 성옥이가 신변보호관과 함께 주민센터에 찾아가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큰 힘이 됐겠죠.”


고립감, 배고픔

그가 한성옥 씨를 처음 본 건 2009년이다. 

“성옥이 남편 쪽에서 아내의 한국행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부부는 옌볜(延邊)에 살았는데 (내가) 성옥이를 데리고 선양(瀋陽)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북한 보위부가 탈북자로 위장해 공작을 할 수도 있기에 조심할 때예요. 조선족 남편을 만나 애까지 낳고 살았으니 스파이는 아닌 거죠. 남편 얼굴이 까맣고 땟국이 흘렀습니다. 중국에서 성옥이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탈북자들이 태국이나 라오스로 넘어가면 그쪽 도우미들한테 ‘무사히 도착했으니 안심하라’는 전화가 옵니다. 탈북시킨 뒤 6~7개월 후 브로커들이 나한테 전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원에서 나온 탈북자가 브로커 비용을 안 준다고 항의하는 전화죠. 성옥이 때는 그런 전화가 안 왔기에 잘 도착해 정착했구나 생각했죠.” 

한씨의 한국 생활은 고단했으나 순탄한 듯 보였다. 하나원을 나와 곧바로 일자리를 구했다. 2012년 중국에서 낳은 큰아이와 남편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한국에서 남편과 혼인신고를 했다. 동진이도 임신했다.


사람 장사 전문으로 하는 치들

“한동안 우리 단체 행사에도 잘 나왔어요. 어느 날 경남 통영에 내려간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통영의 조선소에 취업했거든요. 중국에서 결혼한 남편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 잘 사는 경우가 드문데 잘 사는구나 싶었죠. 성옥이가 어느 날 중국 술, 중국 담배를 선물로 사 오기도 했습니다. 술, 담배를 즐기다보니 선물 받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론 그때도 성옥이네는 어렵게 살았어요. 중국에 큰아들, 시부모가 남아 있었거든요. 남편이 혼자 벌어서 두 살림을 했습니다.” 

조선업 불황으로 남편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한국에서 여보란 듯 살아보겠다는 꿈이 산산조각 났다. 한씨 가족은 2017년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한씨는 한국 국적을 가진 채 중국에서 불법 체류했다. 남편과 이혼하면서 한씨는 둘째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2018년 9월의 일이다. 8개월 후 아들과 함께 저세상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문제는 제2, 제3의 한성옥이 계속 나온다는 거예요. 지금 구조로는 막을 수가 없어요. 비극의 시작은 중국으로 팔려가는 인신매매예요.” 

그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 경로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탈북한 사람이 한국에서 브로커 비용을 대주고 데려오는 경우에는 인신매매당할 이유가 없죠. 북한과 중국에 사람 장사를 전문으로 하는 치들이 있어요. 조선족과 중국인이 인신매매를 합니다. 돈을 주고 북한에서 여성을 삽니다. 그 사람들에게 북한 여성은 ‘돈’입니다. 매매혼은 그나마 나은데 악독한 놈을 만나면 탈출하기도 어려운 유흥업소에 팔려요. 

중국에서 1년만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고 북한 여성을 꾀기도 합니다. 자의로 국경을 넘은 경우도 문제가 생겨요. 중국에 막상 도착하면 오갈 데도 의지할 데도 없습니다.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겁니다. 성옥이는 팔린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갔어요. 두만강에서 장사했는데 잘 안 되니 중국으로 넘어간 겁니다. 그나마 유흥업소에 팔리지 않고 만난 게 조선족 남편이에요.”


인신매매, 강제결혼, 유흥업소

2014년 12월 3일 중국 지린성 옌지 유흥가. [박연수 동아일보 기자]

2014년 12월 3일 중국 지린성 옌지 유흥가. [박연수 동아일보 기자]

영국 소재 비영리기구 코리아 미래 계획(Korea Future Initiative)이 5월 발표한 ‘성 노예―중국 내 북한 여성, 소녀들의 매춘과 사이버 섹스, 강제 결혼’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북한 여성을 사고파는 중국 내 범죄 네트워크가 연간 1억500만 달러(약 1264억 원)를 벌어들인다고 밝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여성의 60%가량이 브로커를 통해 성매매 시장으로 보내진다. 북한 여성은 최소 1000위안(16만8000원)에 중국인의 아내로 팔려가거나 최소 30위안(5000원)을 받고 성매매를 한다. 과거에는 중국인과 강제 결혼을 하는 예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인신매매를 거친 성매매가 더 많다.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여성 다수가 팔려온 것이다. 외모나 나이에 따라 여성의 값이 결정된다. 15~25세 여성이 가장 많다. 20대뿐 아니라 10대 여성도 중국에서 성매매를 당하면서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닌다. 매매혼은 저소득층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는 남성과 이뤄지곤 한다. 원치 않는 아이도 출산하게 마련이다. 보고서는 “비난만으로는 부족하다. 명백한 행동만이 중국의 성매매 피해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서 “한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북한 난민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도 비슷하다. 

“10대 후반부터 인신매매가 됩니다. 20대는 한국 돈 250만 원, 30대는 200만 원에 팔려갑니다. 4만 명 넘는 북한 여성이 중국에서 창녀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요. 성매매를 하거나 발가벗고 웹캠을 찍습니다. 정부가 80년이 다 돼가는 위안부 문제에 민감한 것 반만이라도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반일(反日)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면서도 중국에 대고는 끽소리도 못해요. 도대체 왜 그럽니까. 한국 정부한테 그 사람들을 탈출시켜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으로 오겠다는 것을 막지나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전 정권들은 오고 싶은 사람은 받을 테니 오라는 정책이었거든요”


“억류된 국민 외면하는 나라”

김용화 씨는 “제2,3 한성옥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김용화 씨는 “제2,3 한성옥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정은에게 뭐 잘 보일 게 있다고 말 한마디를 못 해요. 중국에는 사대(事大)하는 겁니까. 우리가 무슨 중국 식민지예요. 유엔이나 미국도 중국에 압력을 넣는데 한국은 왜 말을 못하느냐는 겁니다.” 

그 역시 1995년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이다. 북·중 국경에서 탈북민을 구출하는 일을 해왔다. 북한에 6년째 억류 중인 한국인 김정욱 선교사와도 9년간 함께 일했다. 김 선교사는 북한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기소돼 사형 바로 아래 중형인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김정욱 선교사는 단둥에서 국수 공장을 하면서 탈북자를 도왔습니다. 훌륭한 사람이에요. 북한 보위부가 그를 유인, 납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그렇게 만나면서도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을 못 데려오는 이유는 뭡니까. 억류된 국민을 외면하는 국가가 나라입니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못 챙기는 국가원수가 탈북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챙길까요. 탈북 모자가 굶어 죽은 것에 눈이나 껌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먼저라더니 탈북자는 왜 나 몰라라 하는 건가요.” 

한국인 6인이 아직도 북한에 억류돼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렸으나 6인이 한국으로 되돌아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한국의 가족은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는 당장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한국 대통령이 쇼 하면서 이룬 건 김정은 위상 높여준 것밖에 없어요. 현재 중국의 구류장과 간수소에 탈북자 39명이 억류돼 있습니다. 한국행을 희망한 사람들이기에 북한으로 압송되면 정치범이 될 겁니다. 중국에 억류된 탈북자는 한국 정부가 유엔이나 중국과 논의해 해결해야 해요.” 

“개, 고양이는 저렇게 행복한데….”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2, 제3 한성옥이 머지않았어요. 성옥이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이 많아요. 아이 딸린 아픈 엄마, 남성에게 착취당하는 여성, 호구하기도 쉽지 않은 미혼모….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한국에 사는 동물을 보고 부러워하는 탈북자가 많습니다. 탈북자들이 보기에는 개나 고양이는 저렇게 행복한데 우리는 왜 이렇게 비참할까 싶은 겁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쪽은 성옥이 분향소에 아무도 안 왔다고 하대요. 이번 정권이 들어선 후 탈북자들의 소외감과 고립감이 더욱 커집니다. 김정은 눈치 보는 게 국민 챙기는 것보다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게 싫다고 선언해버리든지요.”




신동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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