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한국은 껍데기만 근대화된 불완전한 근대화 상태

왜 新동학인가 - 김지하 생명사상과 신동학

  •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장·신동학 수행자

    입력2023-01-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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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운동가에서 생명사상가로 진화 모색한 시인 김지하

    • ‘3·1독립선언문’, 새로운 문명사적 비전의 중요한 씨앗

    • 중도회통 사상 21세기 구현 신동학 ‘한국의 길’ 열어줄 것

    동학 창시자 최제우(왼쪽). 동학 3대 교주이자 3·1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손병희. [동아DB]

    동학 창시자 최제우(왼쪽). 동학 3대 교주이자 3·1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손병희. [동아DB]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 김지하 시인이 2022년 5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듬해인 2023년 우리는 새로운 사상사의 여정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운동 이후 1980년대부터 김지하는 생명사상을 제기하며 민주화운동가에서 생명사상가로 진화를 모색했다. 천생 시인 김지하의 인생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 사상을 모색한 구도자적 삶을 추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을 잘 드러낸 것은 2005년 10월 ‘여성동아’ 인터뷰였다. 그는 “19세기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인 동학은 남녀평등의 세상을 희망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전쟁, 테러, 환경파괴 등으로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문명을 실현하는 것은 다급한 과제입니다”라고 했다. 김지하는 세계의 만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동학의 경천(敬天), 경지(敬地), 경인(敬人), 경물(敬物) 사상을 지하와 그늘 속에서 생명과 흰빛을 찾고자 했던 자신의 치열한 인생 경험과 결합해 생명사상으로 명명한 것이다. 그는 태극기의 원리에 대해 양이 음을 음이 양을 이끌어 가는데 전체를 보면 양과 음은 하나로, 구별이 아닌 통합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통합의 철학을 밑바탕으로 이른바 보수 우파와 진보좌파, 정착 문화와 유목 문화,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 등을 넘어서서 사상적으로 중도회통(中道會通)의 철학을 추구했다.

    동양사상의 핵심인 중도(中道) 사상은 무슨 중간의 길이 아니라 진공묘유(眞空妙有) 즉 없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 잡힌 이해가 중요하다. 정치적 중도와는 차원이 다른 철학사상적 중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김지하의 사상은 그의 유작 시집이 된 ‘흰 그늘’이라는 표현에 함축돼 있다. 흰빛과 그늘, 생명과 지하를 분리가 아닌 중도회통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단했던 개인사뿐만 아니라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그늘이 드리워진 음지에서 흰빛과 생명을 찾아내고자 분투했다. 이는 중도회통의 철학이며,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그의 사상을 집약한 ‘동경대전’에서 ‘천도(天道)는 여무형이유적(如無刑而有迹·진리는 형체가 없는 것 같으나 뚜렷한 흔적이 있다)’이라고 했던 중도 사상의 핵심과 연결돼 있다.

    김지하는 이처럼 민족문학, 민족사상의 진수를 추구하다 패거리문화가 휩쓸면서 가짜 껍데기가 진짜로 둔갑하고, 패거리 내부의 입맛에 맞는 것만 세상의 빛을 보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신새벽 뒷골목’에서 외롭게 스러져 간 것이다. 김지하는 또한 자기연원(自己淵源) 즉 ‘자기 속의 샘물, 자신 안에 스승이 있음을 찾아내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19세기 말 이래로 100여 년 동안 한국의 보수 우파는 친미 사대주의적 편향에 빠져 있고, 진보좌파는 친중 사대주의적 편향에 빠져 있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중요한 경종이 될 것이다.

    21세기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변동되면서 새로운 문명사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에 김지하의 자기연원 즉 ‘자기 안의 스승’을 찾으라는 것은 선지자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안의 스승’의 핵심은 김지하가 생명사상에서 모색하고자 했던 ‘동학의 현대적 구현’ 즉 ‘신동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학’의 출발점은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는 ‘3·1독립선언문’이다.



    생명사상을 제기한 고 김지하 시인. [동아DB]

    생명사상을 제기한 고 김지하 시인. [동아DB]

    신동학 출발점, 3·1독립선언문

    3·1독립운동은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의 지도로 천도교, 불교, 기독교 등 종교 간 대(大)연대와 평화적 시위를 통해 당시 1500만 명 정도의 인구 중에서 100만여 명이 참여함으로써 제3세계 독립운동사에서 길이 빛날 역사적 사건이 됐다. 그런데 ‘3·1독립선언문’은 지금까지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검토해 보면 세계사 속에서 근대국가 문명으로 전환하는 데 역사적인 중요한 문서로 평가돼 온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미국독립선언문’은 1688년 영국 명예혁명의 사상적 지도자였던 존 로크의 인간의 자유권, 생명권, 재산권, 저항권 등을 반영하면서 중세 봉건체제를 종식해나가는 근대국가 문명의 본격적 시작을 알렸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신은 그들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부여했다. 여기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가 포함된다. (…) 정부가 이런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언제든지 이를 변혁 (…) 우리는 신의 가호에 의지하여 서로의 면전에서 우리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바치기로 약속하노라”고 선언했다. 이는 존 로크, 자본주의 시장경제론의 설계사 애덤 스미스, 미국 독립선언문 작성자 토머스 제퍼슨, ‘프랑스혁명성찰’을 통해 인간·국가·혁명에 대한 근대적 이론을 세운 에드먼드 버크 등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 사상가들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독립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함과 함께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저항권, 견제와 균형의 원리, 법치주의 등 근대국가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우파적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은 19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반발로 마르크스와 레닌 등에 의해 만들어진 좌파적 사회주의 근대국가 문명에 대한 시도와 경쟁하게 된다. 그리고 서양 선발 근대국가들과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닫는 세계정세의 변화를 반영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반도에서는 1919년 역사적인 3·1독립운동이 시작했다. ‘3·1독립선언문’은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가 전체 방향을 제시했고,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불교계의 한용운이 보완했다.

    그 내용은 “吾等(우리)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 인류평등의 대의를 (…) 吾人(나)의 조선독립은 동양평화의 중요한 일부로서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에 필요한 수단이 되게 하는 것이다. (…)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 我(나)의 고유(固有)한 자유권을 온전하게 지켜서 (…) 眞理(진리)가 我(나)와 함께하는 도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제3세계 식민지의 근대국가 문명 건설의 철학을 담아 세계사적 차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미국·유럽 등 선발 근대국가들의 근대국가 문명 정신을 보여준 것이라면, 우리의 ‘3·1독립선언문’은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과 근대국가 문명 건설의 핵심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3·1독립선언문’은 1948년 건국된 한국의 헌법전문과 비교하더라도 근대국가 문명에 대한 이해가 더 깊다.

    ‘3·1독립선언문’은 첫째, 독립의 주체를 우리와 함께 ‘나’ 즉 개인의 주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은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의지에 대한 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이는 근대국가 문명의 핵심 철학인 독립된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빈곤을 반영한다.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 사상가들이 개인의 자유의지가 중요함을 설파하면서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의 프로테스탄트들가 역할이 근대국가문명 태동에 크게 작용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1000년 동안 지속된 유럽 봉건통치 체제의 교황, 왕,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신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각 개인의 소명을 찾아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개인의 소명과 근대국가 문명 사상가들이 설파한 개인 자유의지의 중요성이 결합돼 근대국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고, 그 대표 국가가 미국이고 그 정신을 집약한 것이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이러한 근대국가 문명에 대한 한국의 불철저한 이해는 한국 현대 화폐 속 인물들을 조선시대 봉건왕조 통치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이황, 이이, 신사임당 등으로 채우는 철학적 빈곤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21세기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돼 경제적·물질문명 측면으로는 선진국이 됐으나 철학사상·정치 차원에서는 개인이 갖는 자유의지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근대화가 덜 된, 껍데기만 근대화된 불완전한 근대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3·1독립선언문’은 평화에 대한 철학을 높은 수준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독립운동이 조선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양 평화,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철학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비전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평화에 관한 철학은 1910년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계승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 헌법전문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추상적 언급과 비교하더라도 더 깊이가 있다.

    독립선언문. [동아DB]

    독립선언문. [동아DB]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新동학 정신

    또한 선언문은 셋째로 “진리가 나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해 정치적 주장을 넘어 철학적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의 헌법 전문은 그러지 못했다. 여기에서 ‘진리’란 한민족 건국 철학인 ‘홍익인간, 재세이화(在世理化·현존하는 세상에서 진리를 실현함)’, ‘재세이화’의 이치를 구체화한 최치원의 ‘천부경’, 최제우의 ‘동경대전’ 등의 내용과 역사적으로 연결돼 있다. 나아가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는 동학사상에 기초하면서도 근대국가 문명의 흐름 즉 자유, 평등, 평화의 내용을 포용해 ‘3·1독립선언문’을 만들었다. 이러한 ‘3·1독립선언문’은 ‘신동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21세기 새로운 문명사적 비전의 중요한 씨앗이 될 것이다.

    막스 베버는 1905년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은 직업에 대해서도 신의 소명을 받드는 것으로 이해해 이윤 추구 활동에 청교도의 윤리를 결합해 자본주의의 건강한 지속적 발전 동력을 만들어낸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처럼 근대국가 문명을 이끈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되다 1990년대 탈냉전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된 이후에는 심각한 수준으로 쇠락했다고 보인다. 나아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문명은 오만에 빠져 자기중심적인 수직적 질서를 강요하면서 21세기에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은 실패를 반복했다. 이러한 문제점의 근본 원인은 영국, 미국 등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약화와 리더십의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식민지로 전락해 가던 한반도에서는 1861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했다. 그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인내천(人乃天), 유불도(儒佛道) 통합 등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여성 노비 두 명을 해방시켜 한 명은 며느리로 또 한 명은 수양딸로 삼는 혁명적 실천을 했다. ‘3·1독립운동’은 이러한 동학사상과 실천을 계승하면서도 근대국가 문명의 중요한 철학인 자유, 평등, 평화의 내용을 포용하는 진보적 발전을 보여주었다. 이는 3·1독립운동 지도자 손병희의 사상적 발전과 연관이 있다. 손병희의 사상적 발전은 동학농민혁명운동 실패 이후 일본식 개화운동의 고민을 드러낸 1903년 ‘삼전론’,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철학을 보여주는 1906년 ‘천도태원경’, 최제우의 ‘무극대도’를 진화시킨 1909년 ‘무체법경’ 등을 통해 확인된다. 그 같은 내용을 집약한 것이 ‘3·1독립선언문’이다.

    따라서 ‘3·1독립선언문’의 철학을 발전시켜 동학과 현대국가 문명의 깊은 수준의 융합을 통해 ‘신동학’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신동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 사상계, 종교계에 대한 큰 성찰이 필요하다. 우선 큰 성찰을 위해서는 김지하가 강조했던 자기연원 즉 자기 안의 스승을 찾기는커녕 우리의 사상은 폄하하면서 보수 우파는 친미 사대주의, 진보 좌파는 친중 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현실부터 혁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대주의와 분파 투쟁의 뿌리는 좌파, 우파 공히 조선왕조 500년을 지배한 주자성리학의 독선과 파벌 투쟁의 행태다. 공자의 중용 철학, 맹자의 역성혁명론이 없어진 채 봉건왕조 체제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락돼 태극 중심의 수직적 질서만 강조해 온 주자성리학의 병폐를 정확히 이해하고 극복하는 철학사상적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의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독선, 탐욕, 부패로부터 벗어나서 한국의 대표적 기독교 사상가인 유영모의 철학, 즉 누구보다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살면서도 중도회통의 시각에서 기독교와 동양사상과의 대화를 실천했던 정신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불교, 도교는 동아시아 선불교의 핵심 철학인 임제선사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의미부터 정확히 새겨야 할 것이다. 이는 부처와 조사의 말과 글에 속박되지 말고 현재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리를 찾고 중생제도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불교, 도교의 현실은 먼 옛날 부처, 조사, 도인들의 말과 글을 앞세우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로 잠깐의 위안을 주거나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근대국가 문명을 연 프로테스탄트 정신 즉 중세시대의 교황 등 모든 권위를 부정하면서 신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자신의 소명을 찾고자 했던 것이 임제선사의 가르침과 본질적으로 일치함을 깨닫고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체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죽은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 프로테스탄트들의 소명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시절 인연’에 따른 자기의 ‘본분지사(本分之事)’를 잘 찾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동학’은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의 중도회통에서 나아가 사회주의사상까지도 중도회통사상의 관점에서 포용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와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동학의 1, 2, 3대 교주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다. 최제우, 최시형의 인즉천(人卽天) 사상에 입각한 근본적인 인간 평등사상, 3·1독립운동 때 천도교·기독교·불교 등 종교 간 대(大)연대를 실현한 손병희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 발전과정에서 평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주의 근대국가 문명을 추진한 흐름까지 포용하는 철학으로 발전돼야 한다. 평등을 앞세운 사회주의 근대국가 문명은 자유를 앞세운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지만 보완재로 포용돼야 한다. 또한 독립된 개인의 자유와 함께 인간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사랑과 자비가 조화돼야 한다. 그래야만 21세기 신문명은 평화롭게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신동학’은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사회주의 즉 5도를 회통하는 철학으로 발전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1세기 ‘신동학’은 종교운동 차원이 아닌 철학 사상 차원에서 모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국 사상계, 종교계의 성찰과 혁신에 기초해 ‘동도서기(東道西器)론’에서 동도의 본질적 핵심인 중도회통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서양 근대문명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서양 근대국가 문명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융합해야 ‘신동학’의 형성과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중도사상의 현대적 구현으로서 新동학

    애덤 스미스는 인간 행복의 조건에 대해 육체적 건강, 최소한의 경제적 부, 정신적 걸림돌이 없는 상태 세 가지를 말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 사상가들은 독립된 개인이 갖는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 근대국가 문명 건설을 통해 인류 문명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 인류의 평균소득이 21세기 가격 기준으로 기원전 1000년 약 150달러, 1750년 산업혁명 직전 약 180달러로 거의 3000년 동안 변화가 크지 않았던 것이 2000년 기준 약 6600달러로 크게 성장한 것이다. 이들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상은 중도 즉 진공묘유(眞空妙有) 중 특히 묘유(妙有)에 대한 구체적 통찰에 따라 중도를 근대 시대에 맞게 구현한 것이다. 중도 사상은 그것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말과 글이 끊어진 선(仙)적인 세계에서 진짜 알맹이를 찾아내는 통찰력이 중요하다. 동학 등 한국 선(仙)사상에서는 자유를 사무애(四無礙)를 실현한 상태, 즉 육체적·정신적·경제적·정치적 걸림돌이 없어진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행복의 세 가지 조건과 존 로크 등이 말한 저항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서양의 사상을 중도회통적으로 이해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한국 선사상의 기본 경전인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사상,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다. 이는 모든 인간은 그 안에 천지를 하나로 포함하고 있어 소우주(小宇宙)로 이해하고, 모든 국가는 중간 규모의 우주이며 전체 인류는 큰 규모의 우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우주는 크기와 모양새가 다를 뿐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철학이다. 이는 에드먼드 버크의 ‘인간과 국가는 신의 자선(Providence)에 의한 창조물’이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한국의 선(仙)사상은 중도 즉 진공묘유에서 특히 진공(眞空)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이 같은 이해에 기초해 21세기 미·중 신냉전시대에 근대국가 문명의 위기에 빠진 미국과 유교사회주의와 중화민족 패권주의를 앞세운 중국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중국은 평천하(平天下) 즉 태극 중심의 수직적 질서를 강요하는 낡은 행태를 버려야 하며 근대국가 문명으로 전환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독립된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은 독선, 오만과 함께 부패화, 기득권 세력화, 관성화 문제가 결합돼 통찰력의 빈곤과 판단의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의 지성을 대표한다는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17년 ‘다보스포럼’에서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그릇된 주장을 했다. 중국이 2010년 중국공산당 기관지에서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중화민족 패권주의를 드러냈음에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과 수년 뒤인 지금 그 같은 주장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중도사상은 진공묘유 중 묘유(妙有)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임을 밝혀왔다. 21세기 세계는 20세기와는 다르다. 21세기 미·중 신냉전시대는 미국과 중국의 체제 경쟁이 진행됨과 동시에 인도, 러시아 등이 함께 경쟁하는 다극 질서가 공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북한이 2018년 이후 핵무장국가로 전환해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군사적·외교적으로 한국에 대해 우위로 전환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 2018년 이후 한반도 정세는 북한이 주도하고 있다는 현실도 냉철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 미래 비전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중도 즉 진공묘유에서 진공(眞空) 즉 근본 진리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지만, 묘유(妙有)의 세계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에 대한 통찰이 중요하다. 이러한 구체적인 통찰력을 통해 인간, 국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해야 한다, 진단과 처방(Prescription)이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문제 해결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한국은 ‘신동학’의 중도회통 사상에 기초해 진공(眞空)과 묘유(妙有), 무극(無極)의 철학과 태극(太極)의 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통해 동서양 문명의 융합을 실현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중도의 근대 시대 구현이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 문명사상이었다면, 중도사상의 21세기 현대적 구현이 ‘신동학’이다. ‘신동학’은 미국의 길도 중국의 길도 아닌 한국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길’은 중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해 미국과 21세기 신문명의 비전에 대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 ‘밴 클라이번’에서 우승한 임윤찬은 한국 음악 성인 우륵에 대한 삼국유사의 ‘애이불비(哀而不悲·애잔함이 있으나 슬프지 않다)라는 표현을 “어떤 깊은 슬픔을 토해낸 뒤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라고 해석해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22년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는 “자기 자신한테 친절하라”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들의 통찰은 ‘신동학’의 무극대도, 중도회통 사상, 인중천지일 사상과 깊이 연관돼 있다. 2023년 이후 우리가 임윤찬·허준이가 음악 세계, 수학 세계에서 이뤄낸 성취를 철학 사상의 세계에서 실현해 ‘신동학’의 내용을 잘 채워낸다면, 21세기 문명사적 새로운 비전 제시도 가능할 것이다.

    구해우
    ● 고려대 법대 졸업, 고려대 대학원 법학박사
    ● 민화협 청년위원장
    ●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
    ●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
    ●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 국정원 북한담당기획관(1급)
    ● 現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 저서 : ‘김정은 체제와 북한의 개혁개방’ '남북한 체제 경쟁 성찰‘ ’미완의 평화혁명가 손병희‘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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