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망디의 영웅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독일군 항복문서에 파카 만년필로 서명했다. 맥아더 사령관이
- 일본군 항복문서에 서명할 때 쓴 것도 파카. 소설 ‘셜록 홈스’나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도 파카로 쓰여졌다. 파카는 영국인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속담이 문자 그대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곳이 딱 한군데 있다. 고급 만년필 등 필기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파카(PARKER)가 그곳이다. 현재 파카를 생산 판매 유통하는 회사는 유럽에 본사를 둔 샌포드(SANFORD)그룹이다. 파카는 샌포드에서 생산하는 수많은 필기구 중의 하나.
영국 남동부 뉴헤이번(Newhaven)에 있는 ‘파카 펜 샌포드 유럽’ 본사 건물에 들어서면 지난 1987년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이 냉전체제 종식으로 가는 상징적 조치였던 중거리핵전력협정에 서명한 후 펜을 교환하는 사진이 실린 ‘뉴스위크’가 전시되어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과 함께. 물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손에 각각 들려 있는 펜은 명품 필기구의 상징인 파카 만년필. 세계사적 사건인 군비감축협정서에 서명하는 데 두 정상이 파카 만년필을 사용한 것을 보면 문자 그대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해석도 전혀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파카’를 생산하는 샌포드유럽 본사의 출입문. 파카를 상징하는 화살표 손잡이가 보인다.
아담하고 조용한 공장
이곳에 위치한 파카도 공장 규모로만 따지면 그리 큰 축에 들지 못한다.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기자를 태운 운전기사는 고속도로로 1시간 반 가량 남쪽을 향해 달렸다. 달리는 동안 기자는 내내 파카의 120년 전통을 상징하는 ‘화살 클립’이나 미끈한 머릿돌이 버티고 선 그럴듯한 본사 건물을 상상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어느 시골마을 군부대 면회실 같은 허름한 건물 앞에 기자를 내려놓곤 “안내 데스크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면 된다”는 한마디만 던지고 차를 돌려 떠나버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한 시간이면 거뜬히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공장이며 소박한 분위기의 사무실이 파카의 화려한 명품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였다. 글로벌 톱 브랜드를 생산해내는 심장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검소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기는 ‘철판 잘라서 볼펜 뚜껑 만드는’ 일이 엄청난 설비나 공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120년을 이어온 명품 브랜드라고 해서 공장 또한 ‘명품’일 필요도 없다.
게다가 영국사람의 기질이 드러내고 과시하면서 바꾸기보다는 옛것을 소중히 지켜가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뉴헤이번의 파카 공장은 1941년 이곳으로 옮겨온 뒤로 60년 넘게 별다른 변화 없이 한 자리를 지켜왔다.
기자를 안내한 프로그램 매니저 데이브 루더만(Dave Ruderman)은 올해로 파카에 29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고답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변화’와는 거리가 먼 영국사람의 기질이 파카의 120년 전통을 이어온 밑거름이 된 셈이다.
뉴헤이번의 파카 공장에선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어 있다. 철판을 자르거나 스프링을 만들거나 잉크 카트리지를 만들고 조립하는 일련의 공정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이따금씩 기계가 이상 없이 돌아가는지 점검하는 일뿐이다. 라인 내부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제품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 하나하나 상자에 담는 마지막 공정이다.
이곳에선 50, 60대로 보이는 중년의 여공들이 제작과 사용 테스트를 거친 만년필과 볼펜을 하나하나 육안으로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 검사단계를 거치면 상자에 담아내는 일만 남게 된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마당에 마지막 점검 작업을 굳이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기자가 잠깐 만져보았던 펜 한 자루도 그대로 상자에 담지 않고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지문을 정성스레 닦은 뒤 다시 포장했다. 이렇게 ‘지루하고도 반복적인’ 작업을 계속하는, 어찌 보면 자동화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생산라인의 몇 배나 되는 시간을 들여가며 느릿느릿 일하는 이들이 파카의 명품 이미지를 지켜나가는 숨은 공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장고(archives)를 가보겠냐”고 묻기에 “볼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대답하자 파카 관계자는 열쇠 하나를 꺼내들더니 기자를 안내했다. 기자는 ‘세계적 명품 파카의 120년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파카의 수장고는 얼마나 으리으리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머릿속에는 근사한 필기구 박물관을 그려 보았다.
그러나 정작 이 관계자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건물 1층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허름한 창고 같은 사무실. 서너 평이 될까말까하는 이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먼지 쌓인 책상들과 서랍장 몇 개, 그리고 금고식 캐비닛 하나가 전부였다. ‘명품 12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수장고(收藏庫)라는 감동을 느낄 만한 구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1호는 여왕, 2호는 황태자
게다가 금고식 캐비닛은 디지털 키나 번호입력식 개폐장치도 없어 일일이 비밀번호를 맞춰가며 핸들을 좌우로 돌리는 구식 중의 구식이었다.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다시 왼쪽으로 두 번’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구식 캐비닛 안에서 나온 만년필과 볼펜들은 쉽게 그 값어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1000개 안팎의 소량만 생산해 한정판매한 제품들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일련번호 1952번이 붙어있는 엘리자베스 2세 즉위 기념 만년필의 경우 한정품 1호는 여왕이, 2호는 찰스 황태자가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2003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정도(定都) 300주년을 기념하는 펜이나 프로골프 PGA대회 창설 100주년을 기념하는 펜 등 세계사의 중요 기념일을 맞아 특별제작된 펜들이 종류별로 가득했다.
수장고를 관리하는 파카 관계자는 “파카 창립 이후 만들어진 펜들을 일련번호를 매겨 저장하고 있는데 이미 8000번을 넘었다”고 귀띔한다.
펜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는 기자가 당장 궁금했던 것은 당연히 ‘어떤 게 가장 비쌀까’ 하는 것이었다.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명품을 앞에 두고 무례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가장 비싼 제품을 하나만 골라달라”고 하자, 이 관계자는 나치 문양이 그려진 금색 만년필 하나를 집어들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독일군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나치 문양이 새겨진 파카 제품도 모두 없애버렸으므로 이 만년필은 세계적으로 4~5자루밖에는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기자가 파카 수장고에서 직접 본 것이 두 자루이니 ‘나머지 2~3자루는 누군가가 지니고 있을 터. 그 사람은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카의 역사는 1888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창립자인 조지 새포드 파카(George S. Parker)는 당시 교사로 재직하면서 박봉을 견디던 중 부업 삼아 만년필 대리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고장난 만년필을 들고 찾아오는 학생들로부터 여러 가지 불만을 듣고 그때부터 새로운 펜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됐다. 학생들의 불만은 주로 잉크가 뚜껑 사이로 샌다거나 펜촉 끝에서 잉크가 번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불만사항을 전해듣던 파카는 아예 직접 ‘튼튼하고 실용적인’ 만년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것이 120년 동안 만년필의 상징으로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아온 파카의 탄생 배경이다.
파카는 회사 창립 이듬해인 1889년 첫 번째 특허를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특허를 등록했고 수시로 디자인을 바꿔가며 남성용 명품의 ‘원조’로 인식되어왔다.
무엇보다 파카가 명품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지도자들이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파카 만년필로 역사의 흔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독일군 항복 문서에 서명할 당시 ‘파카 51’ 만년필을 사용했다. ‘파카 51’은 파카 설립자인 조지 파카가 세상을 떠나고 3년 후인 1940년 출시된 제품.
아이젠하워와 함께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이었던 맥아더 사령관 역시 1945년 도쿄만(灣)에 정박중이던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군이 항복 서명한 문서에 마지막으로 서명하면서 파카 만년필을 사용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이 사용한 펜은 ‘파카 오렌지 듀오폴드’. 파카 듀오폴드는 지금도 ‘파카의 정신적 계승자’라고 불릴 정도로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참고로 금장식을 입힌 듀오폴드 만년필은 우리나라에서 100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판매되기도 한다.
영국 황실 납품 시작
파카는 그동안 필기구의 기능을 진보시키는 데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금세기 초에는 ‘럭키 커브(lucky curve)’라고 부르는 잉크 주입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당시만 해도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잉크가 새는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했다. 당시 ‘럭키 커브’는 ‘필기구의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발명으로 받아들여졌다.
‘필기구의 혁명’이라고 불렸던 ‘럭키커브’ 잉크주입시스템이 발명된 1903년 파카의 광고.
파카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최고급품만이 선정되는 영국 황실의 전용품 목록에 파카 만년필이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인 1962년이다. 영국에서는 ‘황실 납품’이라는 명성 하나만으로도 모든 제품의 명예와 공신력을 보장받는다.
지난 세기 마지막 세계대전의 종식을 지켜봤던 파카는 종전 이후 냉전구도가 무너지는 현장도 함께했다. 1990년 6월, 당시 조지 H.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자유무역, 군축 및 과학기술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냉전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중해의 조그만 섬 몰타에서 역사적인 냉전종식 선언이 나온 직후의 일이다. 당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협정서에 서명하는 데 사용한 펜 역시 파카 만년필이다.
지난해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부시 대통령에게 왕실 선물로 다름아닌 파카 만년필을 내놓았다. 조그마한 펜 한 자루가 이라크전쟁을 이끌어가는 대서양동맹의 상징이 된 것이다. 상상해보라. 부시 대통령이 ‘할아버지의 나라’ 영국을 방문해 여왕 할머니로부터 받은 선물이 파카 만년필이라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는 파카 만년필이 이미 영국인이 외국에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대표상품이자 영국인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마치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고려청자를 자국 문화의 상징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100년이 넘는 파카의 연표에 여왕이나 대통령 같은 정치지도자들만이 등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삶의 목적이자 수단으로 삼았던 작가나 문필가 또는 작곡가들로부터 파카가 받아온 사랑도 그에 못지않다.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 독자에게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세계를 열어주었던 ‘셜록 홈스’ 시리즈의 코넌 도일은 1920년대에 “그동안 내가 찾던 펜이 바로 이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파카 만년필을 애용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장중한 선율도 파카의 펜 끝에서 탄생했고 버나드 쇼의 대표희곡 ‘피그말리온’도 파카를 통해 감동을 선사했다.
라 보엠 오페라와 셜록 홈스
파카의 ‘과거’는 이렇게 화려했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광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파카 역시 영미권의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시장논리에 따른 가혹한 인수합병(M&A)의 물결을 거부하지 못했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던 파카는 1993년 면도기로 유명한 질레트(Gillette)에 인수됐고, 7년 뒤인 2000년 질레트는 파카를 포함한 문구사업 분야를 생활용품 전문그룹인 뉴웰 러버메이드(Newell Rubbermaid)에 다시 팔아넘겼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파카는 현재 뉴웰 러버메이드그룹의 계열사로 존재한다. 뉴웰 러버메이드는 한국에서도 완구용품 시장의 톱 브랜드로 알려진 리틀타익스(little tikes), 주방용품으로 주부들의 사랑을 받는 파이렉스(PYREX) 등 20여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생활용품 전문그룹.
여기서 만들어내는 필기구는 파카뿐 아니라 워터맨(WATERMAN), 로트링(rotring), 페이퍼메이트(PAPERMATE) 등 사용자층과 용도에 따라 7개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구성돼 있다. 필기구 분야를 총괄하는 사업부는 샌포드(SANFORD)그룹. 그러니까 파카는 뉴웰 러버메이드의 20여개 브랜드 중 하나이고 샌포드에서 생산하는 7개 필기구 브랜드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파카는 브랜드 가치로만 따지면 다른 어떤 사업부의 수십 년 매출보다도 경제적 가치가 높다. 파카 관계자는 “회사 주인이 몇 번씩 바뀌면서도 파카가 100년 넘게 명품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마케팅이나 브랜드 이미지 관리의 결과가 아니다. 그보다는 영국, 그리고 영국인 스스로가 파카를 하나의 자존심이자 훈장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뉴웰 러버메이드그룹의 필기구 분야를 총괄하는 샌포드그룹 내 고급 만년필 분야에서 파카와 쌍벽을 이루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세계 최초의 만년필’이란 자부심을 과시하는 워터맨이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브랜드 사이에서도 파카는 권위를 강조하고 워터맨은 액세서리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역할 분담이 분명하다.
인수합병의 급물살에 휩쓸리면서 파카도 귀족적인 명품 이미지만 고집해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제품을 영화나 드라마 속 소품으로 등장시켜 간접광고 효과를 노리는 PPL(Product Placement)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파카의 PPL은 최근 대한민국 안방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파리의 연인’이 GM대우자동차의 협찬을 받았다는 이유로 시시때때로 스토리 전개와 관계없이 GM 브랜드를 시청자에게 강요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피어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로 열연한 영화 ‘007 골든아이’(1995). 피어스 브로스넌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공동개발한 첨단무기인 ‘골든아이’를 되찾기 위해 영국과 러시아를 종횡무진 누비는데 이때 사용한 비밀병기가 바로 ‘파카 조터(Jotter)’다.
조터 볼펜이 파카에 의해 선보인 것은 지난 1954년. 올해로 꼭 50년이 되는 셈이다. 볼펜 한 자루가 50년 동안 마니아층을 만들어가며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007영화에 등장한 조터 볼펜의 효과는 입증되는 것이라는 게 파카측의 설명이다. 또 르네 젤웨거가 주연한 ‘브릿지 존스의 일기’에서는 주인공 브릿지 존스가 일기를 쓸 때 젊은 감각의 ‘파카 리플렉스’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007시리즈나 ‘브릿지 존스의 일기’가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지만 세계적으로 히트상품이 된 것처럼 파카 역시 영국에서 생산돼 유럽 지역에 수출되지만 영국 브랜드라기보다는 ‘글로벌 브랜드’의 성격이 강하다. 뉴헤이번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연간 9000만개의 펜 가운데 30%만이 영국내에서 판매되고 나머지 70%는 전세계로 수출된다.
샌포드 유럽의 사장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하고 수출 담당 부사장의 사무실은 영국 뉴헤이번에 있다. 그리고 서유럽 판매담당 부사장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럽내 수출을 진두지휘한다. 파카 사업장의 지역별 구성만 보더라도 금세기 들어 경제적 정치적 통합의 급류를 타고 유럽이 하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볼펜이나 만년필보다 컴퓨터 자판이 훨씬 익숙한 세대에게도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120년을 이어져내려온 파카는 수십 개의 올림픽 금메달과도 바꿀 수 없는 경제적 정신적 가치를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파카는 결코 ‘화려한’ 명품이 아니라 ‘기품 있는’ 명품이다. ‘외화(外華)’보다 ‘내실(內實)’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변이 없는 한 파카는 앞으로 120년도 그렇게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