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권두언

한호 수교 50주년…상호 존중과 협력, 우정의 역사

  • 리처드 앨런

    입력2011-10-25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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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두언
    1991년이었으니까, 정확하게 20년 전이다. 나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무려 17시간 동안 운전해 시드니로 돌아왔다. 애들레이드 문학행사에 참석한 다음 1374㎞를 달려온 것이다.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한호 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 낭송 순서 진행을 맡았다. 한국 시인들의 시조 낭송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노래였고, 배경음악으로 연주된 해금산조는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국 예술과 사랑에 빠졌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국인 시인과 교유하면서 한국 예술을 호주 주류사회에 열심히 퍼 날랐다.

    20년 전 나는 시드니현대무용단에 소속돼 주로 미국과 중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그러나 마음은 늘 한국에 닿아 있었고, 내 친구들은 내가 한국인을 닮아간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참 행복했다. 언젠가는 해금산조에 맞춰서 한국 시조를 낭송할 날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예술은 20년 동안 내 연인

    권두언
    내가 호주에서 한국 예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우연히 동료 시인을 따라가서 ‘한국 문학의 밤’에 참석하면서 한국 문인들과 교유하기 시작했다. 호주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 예술을 호주 주류사회에 꾸준히 소개했다. 내가 호주에서 만난 한국 예술가의 숫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그중에는 돌아가신 서정주, 이성선, 김영무 시인도 포함된다. 그리고 고은, 정호승, 김영태, 박철 시인 등과 소설가 박완서, 이문열, 김인숙 등을 만나서 한국과 호주 문학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호주 문인들은 일본이나 중국 문학은 잘 몰라도 한국 문학은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드니 항구에 배를 띄워놓고 ‘한국 시 낭송의 밤’을 열었는데, 그때는 내가 전체 진행을 맡는 영광을 가졌다. 호주 주요 언론사 논객들과 대학교수, 그리고 여러 분야의 호주 예술가들이 참석한 황홀한 밤이었다. 호주 주류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사였다.

    예술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내가 시인이고 문화행정가이니까 너그럽게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나 역시 수교 50주년을 맞는 ‘공식적’ 감회 또한 없지 않다. 한국과 호주의 수교 50주년은 양국 관계에 큰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이를 기리는 ‘신동아’ 특집에 참여하게 된 것은 나에게 더없는 영광이며 특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20년 동안 한국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상식을 기초로 격식에 맞는 권두언(Foreword)을 이어가겠다.

    한호 양국은 60년 전 6·25전쟁 이래 상호 존중과 협력, 우정의 오랜 역사를 함께해왔다. 이러한 양국 간의 우정은 군사적인 협력을 넘어서 사업과 무역, 기술과 혁신, 교육과 예술, 그리고 관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대됐다.

    우리는 국제 상황과 관련한 다양한 토픽에 대하여 유사한 견해를 견지해 왔고, 수많은 사건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지지해왔다. 가장 가까운 무역파트너로서, 한호 양국은 국제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양국의 번영을 위해 서로 돕고, 서로 보완하면서 굳건한 경제협력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우리 깊은 인연(Celebrating Mateship)’

    조만간 마무리될 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두 나라의 경제적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해줄 것이다. 우리가 함께 미래로 나아가고, 양국의 공통적인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해 서로 공유하고 함께 노력한다면 한호 양국은 번영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 사이에서도 협력관계가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두 나라의 문화가 다를지라도 공정성,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동료애와 같은 원칙들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한국이 호주국민의 중요한 관광 목적지가 된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민과 호주국민 간의 교류를 증가시켜왔다.

    그뿐 아니라 매년 2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호주를 방문하고 있고, 약 3만명의 교환학생과 홀리데이 비자 학생들이 호주에 머물고 있다. 호주에서 한국인 영주권자의 수는 10만명 가까이 되고, 이러한 호주 내의 한인 사회는 호주의 다문화 사회에서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부분이 되었다.

    올해 초 한호 양국 정부는 국교 수립 50주년이라는 양국 간의 역사적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호주 우정의 해’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했다. 여러 가지 행사는 경제 및 외교 분야에서 다져온 관계를 강조할 뿐 아니라 예술, 문화, 교육 분야에서 한호 양국의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4월의 한국문화원 설립과 10월의 ‘한국 주간’ 행사와 더불어 한호 양국은 이러한 훌륭한 경사를 함께 치러내면서 양국 관계를 한층 깊게 하고 강화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권두언
    ‘나는 절반의 한국인’

    나는 시드니 타운홀에서 열린 한호 수교 50주년 기념 개막공연 ‘우리 깊은 인연(Celebrating Mateship)’을 한국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면서 내가 ‘절반의 한국인(half-Korean)’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년 전에 들었던 해금산조의 충격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니었다. 그 소리는 그동안 내 영혼 속에 내면화됐고 내게 아주 자연스럽게 들렸다. 특히 꽃단장하는 ‘왕비의 아침’을 보는 순간 한국 예술의 독창성을 만끽했다. 그걸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서 호주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른다. 안숙선 명창의 ‘사랑가’도 그동안 들었던 것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더 이상 외국음악이 아니라 내 연인의 음성으로 들려온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렇다. 한국 예술은 나의 진정한 연인이 됐다. 지난 50년 동안 이어온 한국과 호주의‘우리 깊은 인연’이 앞으로 영원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리처드 앨런 시인, 문학박사, PTC-TV CEO

    권두언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51) 박사는 문학과 무용, 그리고 영상예술까지 아우르는 예술인으로 호주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목요일의 허구(Thursday′s fictions)’ 등 4권의 시집을 포함해 9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다양한 수상기록을 보유한 호주 정상급 인문학자다. 시드니현대무용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아내 카렌 펄먼 박사는 현재 호주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PTC-TV는 문학과 무용을 아우르는 영상예술 전문방송이다. 앨런·펄먼 박사는 호주의 대표적인 ‘한국 문화 전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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