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생산라인 볼모로 제왕 노릇 7개 파벌 내분에 자제력 잃어

‘연례 파업’ 현대차 노조의 속살

  • 김창덕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입력2013-09-24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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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도 파업을 했다. 75개 요구안을 들고 나왔다. 노조원 평균 연봉은 9000만 원이 넘는다. 외부에서 ‘귀족 노조’라고 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한국 경제의 심장인 ‘현대차 컨베이어벨트’를 볼모로 잡은 이상 거칠 게 없다는 듯하다.
    생산라인 볼모로 제왕 노릇 7개 파벌 내분에 자제력 잃어

    지난해 7월 13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노조원들이 부분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파업이 걱정이냐고요? 그건 1년 365일 하는 걱정입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현대차 노조)가 ‘파업 찬반 투표’를 하던 8월 13일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관리부서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조합원들은 파업으로 인한 임금 손실에는 부담을 느끼지만 노조의 단체행동을 거스르기 어려워하는 눈치”라며 “늘 있던 일이라 이젠 특별할 것도 없다”고 했다.

    이날 전체 조합원의 88.7%인 4만837명이 투표에 참여해 압도적인 찬성률(80.4%)로 파업을 가결했다. 지난해에 이어 또 파업을 협상 카드로 꺼내 든 것이다. 법적인 안전장치가 확보된 8월 20일 현대차 노조는 망설임 없이 부분파업을 단행했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5월 28일 첫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에 들어갔다. 처음의 두 차례 교섭에선 회사 측이 경영 상황을 설명했고, 3차 교섭부터는 노조의 임단협 요구안에 대한 설명 및 회독이 이어졌다. 문용문 지부장을 비롯한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역대 가장 많은 75개 사항(세부사항 포함하면 180개)을 요구했다.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이를 한 번씩 읽는 데에만 14차례의 교섭이 필요했다.

    7월 말~8월 초의 꿀맛 같은 휴가를 다녀온 노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임단협 결렬 선언’(8월 6일)이었다.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7일)을 낸 데 이어 임시대의원회의(9일)를 열어 ‘쟁의발생 결의’를 의결했다. 그리고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13일)를 진행했다. 일사천리로 파업 수순을 밟은 것이다.



    울산공장 들어가 보니…

    1987년 출범한 현대차 노조는 1994년과 2009~2011년을 제외하곤 매년 파업을 벌였다. 지난해에도 7월 중순부터 8월 말 사이 28일에 걸쳐 부분파업을 하거나 특근을 거부했다.

    자동차회사의 생산라인은 보통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바로 이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는 속도가 생산 속도다. 파업으로 한동안 생산라인이 멈추면 만회할 길이 없다. 파업 후 생산 속도를 높여 파업 전 생산 차질을 빚은 물량을 더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파업으로 회사가 만들지 못한 자동차는 8만2000여 대. 금액으로 따지면 1조7000억 원이 넘는다.

    현대차는 임단협이 시작되기도 전인 올 상반기(1~6월)에 노사 갈등으로 이미 큰 홍역을 치렀다. 3월 주간 2교대제 시행 이후 휴일특근 근무조건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면서 노조가 휴일특근 자체를 거부해버린 것이다. 일부 공장은 5월 말 휴일 특근을 재개했지만 일부는 7월 초까지 버텼다. 휴일특근 거부 때문에 현대차가 빚은 생산손실은 지난해 파업 때와 비슷한 8만3000여 대, 1조7000억 원에 달했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 도중 파업한 것은 어쩌면 모두가 예상한 대로였다. 다만 파업 강도가 높을지, 기간이 길지에 대해서만 의견이 분분했다. 현 집행부의 임기가 9월 말 끝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추석 이전에 결론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차기 지부장 선거를 앞두고 표심(票心) 관리 차원에서라도 지난해보다 더 강도 높게 투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돌발행동 절대 하지 마세요”

    결과적으로 현대차 노조는 8월 20일부터 9월 5일까지 10차례 부분파업(36시간)을 했고 5차례 잔업(5시간) 및 2차례 휴일특근(17시간)을 거부했다. 지난해보다는 파업 기간이 짧았다. 그러나 회사로서는 5만 대의 자동차를 만들지 못해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현대차 노사가 마련한 잠정 합의안은 임금 9만7000원 인상, 성과급 350%+ 500만 원 지급, 목표달성 장려금 300만 원 지급, 주간 2교대제 정착 특별합의 명목으로 통상급의 100% 지급, 품질향상 성과 장려금으로 통상급의 50%+50만 원 지급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합의안은 9월 9일 노조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55.13%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로써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분을 제외하고도 올해 1인당 2000만 원 안팎의 추가소득을 챙기게 됐다.

    현대차 생산 공장에는 외부 사람이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보안을 위해서도 아니고 위험한 장비가 많아서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 휴일특근 재개 여부에 대한 취재를 하러 울산공장에 갔을 때 기자는 현대차 직원 유니폼을 빌려 입고서야 공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기자와 동행한 한 직원은 거듭 당부했다.

    “돌발적인 행동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노조 사람들이 꼬투리 잡아 생산라인을 세우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거든요.”

    현대차 직원이라고 공장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사, 총무, 기획 등 관리부서 직원들은 생산라인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회사의 현황을 외부에 알리는 업무를 담당하는 홍보팀도 노조와 미리 협의를 해야 사진을 찍거나 생산직 근로자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차라는 한 지붕 아래 ‘사측 직원’과 ‘노조 조합원’은 그만큼 사이가 멀어졌다. 언뜻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아무리 생산직과 비생산직의 업무 차이가 있다지만 결국은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닌가.

    애매한 사람들도 있다. 사실 관리직 중에도 사원이나 대리급은 대부분 노조 조합원이다. 이들은 노조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작 노조 내 동료들로부터 경계의 눈초리를 받는 얄궂은 신세다. 노조가 파업을 할 때면 과장급이나 차장급 선배들은 사원이나 대리에게 “어서 사무실을 나가라”고 종용하기 바쁘다. 일손이 달린다고 괜히 이들을 붙잡아뒀다간 ‘합법적 쟁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노조로부터 더 크게 시달림을 당할 수 있어서다.

    현대차에선 대리급 직원이 과장 진급을 영구 거부하는 일들도 벌어진다. 진급을 포기하면 임금에서 다소 손해가 있어도 노조의 보호막 속에서 정년(60세)까지 마음 편히 회사를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늘고 길게’ 회사에 다니고 싶은 이들에게 노조만큼 확실한 ‘안전가옥’은 없는 셈이다.

    물고물리는 파벌 싸움

    한 울타리에서 살아가지만 현대차 노조원과 비노조원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사이가 멀다. 이들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동료가 아니고,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회사는 ‘골칫덩이’인 노조를 점점 멀리했고, 노조는 그들만의 ‘철옹성’을 더 높이 쌓아갔다.

    현대차 노조는 단일 회사 노조로는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게다가 상징성도 크다. 삼성전자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는 국내 다른 기업 노조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현대차 노조는 이제 스스로를 제어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상위단체인 금속노조, 그보다 한 단계 위인 민주노총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가장 강성이었던 현대중공업 노조가 금속노조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뒤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 사업장이 됐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대차라는 1개 회사가 금속노조 전체를 상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차 노조에는 7개의 주요 파벌이 존재한다. 노동운동 단체들이 현대차를 거점으로 삼기 위해 양성한 파벌도 있고, 현대차 내부에서 스스로 성장한 파벌도 있다. 이들은 2년 주기의 지부장 선거 때마다 합종연횡과 결별을 거듭한다.

    ‘금속연대’ ‘민주현장’ ‘민투위’는 강성으로 분류된다. ‘현민노’ ‘들불’ ‘소통과 연대’는 중도좌파 쪽이고, ‘현장노동자’(올 2월 ‘현장혁신연대’와 ‘전현노’가 통합)는 실리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

    문용문 지부장이 속한 ‘민주현장’은 2011년 선거 당시 김홍규 수석 부지부장의 ‘금속연대’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두 조직은 갈등을 끊임없이 겪었고 지금은 거의 결별이 기정사실화한 상황이다. 집권을 위해 경쟁 세력끼리 손을 잡았지만, 결국 내부에서의 알력 다툼으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다.

    사실 휴일특근을 둘러싼 노사 갈등의 이면엔 ‘노노(勞勞)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회사와의 합의안을 마련한 집행부를 흠집 내기 위해 다른 계파에 속한 이들이 근무조건 등을 문제 삼아 휴일특근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부 강성 노조원들의 파벌 싸움에 일반 조합원들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5월 초 울산공장에서 만난 한 생산직 근로자는 “조합원들은 일하고 싶어 한다”며 “자기들끼리 싸운다고 일까지 못하게 하니까 가끔은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올해 임·단협이 최종 마무리되면서 이제 신임 지부장 선거에 모든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문 지부장은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아직까지 표면적으로 떠오른 인물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상대적 보수세력’과 금속연대를 필두로 한 ‘성골 진보세력’ 간 싸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보수세력은 2년 전 패배에 대해 이를 갈고 있다. 2011년 당시 1차 투표에서 보수세력 후보가 1위를 했지만 과반을 넘기진 못했다. 결국 2차 투표까지 가서 진보세력의 재빠른 결집에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현대차 노조 조합원은 4만5000명에 달한다. 노조 내에는 전임자 111명(유급 19명, 무급 92명)이 활동하고 있다. 교육위원, 선거관리위원회, 지역감사 등 한정적 전임자도 28명이나 된다. 이들이 쓰는 조합비는 연간 200억 원이 넘는다. 이밖에 대의원 490여 명이 있다. 공장별로 이들 대의원을 대표하는 사업부대표가 있다.

    현대차 노조의 역대 집행부 중 상당수는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울산의 시의원 선거나 구의원 선거는 물론 총선에 출마한 사람들도 있다.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노조 본연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20명만 손 놔도 공장 올스톱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에서 가장 노조가 강한 산업 중 하나가 자동차였다. 미국 자동차 3사가 한때 위기에 내몰린 요인으로 강성 노조가 가장 많이 거론될 정도였다. 사실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노조의 힘이 셀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생산 시스템에 그 이유가 있다. 자동차 공장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20여 명만 손을 놔도 4000명이 일하는 공장 전체가 올스톱할 수밖에 없다. 강성 노조원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배경이다.

    또한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속도가 늘 일정하기 때문에 생산 중단은 곧 그 기간만큼의 매출 손실을 뜻한다. 여기에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선 워낙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어 출고 날짜가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딜러들이 더 이상 주문을 넣지 않는다는 것도 회사로서는 큰 부담이다.

    현대차 사측이 노조에 비해 협상력이 떨어졌던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그전까지는 오직 ‘성장’ 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노조와 갈등을 빚다가 자칫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해외 고객들의 주문 취소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노사 협상 테이블의 추는 언제나 노조 쪽으로 기울었고 현대차 노조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가속페달을 밟아왔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현대차는 품질 개선, 환율 효과, 경영환경 개선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회사로서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너무 크다고 여겼기 때문에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도 모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 현대차 노조가 강성이 된 데는 회사가 인사권 등을 너무 일찍 포기한 탓이 크다”고 했다.

    이런 현대차가 반전의 기회를 잡긴 했다. 해외 생산량 확대라는 ‘확실한 카드’를 손에 쥔 덕분이다. 현대차는 2000년부터 권역별 해외 생산거점을 구축해왔다. 지난해 브라질 공장이 완공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올해도 터키 공장 증설, 중국 3공장 증설 등으로 해외 생산 능력이 확대됐다. 9월 기준으로 현대차의 해외 생산 능력은 연간 379만 대로 국내 생산 능력인 연간 351만 대를 앞질렀다. 현대차는 중국 서북부 지역에 4공장을 짓기로 하고 부지 선정 작업을 하고 있다.

    경영진은 “파업을 하면 해외로 물량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노조를 압박했다. 실제 올 상반기 현대차가 판매한 차량 중 61%가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노조도 국내 공장 생산물량이 줄어들면 당장 특근수당 등이 줄고 결국 일자리 안전성도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勞使 방정식’ 나올까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쪽에 쏠려 있던 저울추가 그나마 이제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단 올해 파업이 지난해보다 기간이 길지 않았고 강도도 약했다는 점에서 향후 노사관계 개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이들도 있다. 사측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고수해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떤 이는 “노조 조합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점차 길어지는 만큼 보수화 성향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외형 성장을 위해 노사관계 재정립을 미뤄왔던 사측. 출범 후 26년간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그들만의 정공법을 고집했던 노조. 이들이 풀어갈 새로운 ‘현대차 노사 방정식’에 많은 이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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