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위기에 빠진 클래식 음악계

“투자 축소, 기획 실종… 이래선 미래 없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4-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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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산업 커지는데 클래식만 제자리

    • 청탁금지법 시행 후 기업 후원 감소 본격화

    • 인기스타 쏠림, ‘티켓파워’ 없으면 공공 공연장 서기도 어려워

    • ‘블루오션’ 동남아, 클래식 한류 수출의 꿈

    1월 28일 ‘순수 예술 시장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열린 영아티스트 포럼 현장. [YAFF홈페이지]

    1월 28일 ‘순수 예술 시장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열린 영아티스트 포럼 현장. [YAFF홈페이지]

    [신동아=송화선 기자]지난해 한국 공연 시장은 호황이었다. 국내 최대 공연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집계 결과 연간 공연티켓 판매액이 5441억 원에 달했다. 전년(4411억 원)보다 23%포인트 늘어난 액수다. 뮤지컬(29%포인트), 무용/전통예술(23%포인트), 콘서트(22%포인트) 등 여러 장르 매출이 동반 상승했다. 반면 클래식/오페라 분야 티켓 판매액 증가율은 0.8%포인트에 그쳤다. 

    클래식계에 화제의 공연이 없던 건 아니다. 주빈 메타가 지휘봉을 잡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이 티켓 판매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아이돌급 인기’를 얻은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판매 2위를 차지했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조성진, 조수미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뮤지션은 이름값을 했다. 하지만 몇몇 유명 공연에만 관객이 몰리고 클래식 저변은 확대되지 않아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업 후원 6년 만에 감소

    공연계 사람들은 2016년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클래식 공연 시장 위축의 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공연기획사 봄아트프로젝트 윤보미 대표는 “우리나라 주요 공공 공연장은 대관 위주로 성장했다. 그 안에 콘텐츠를 채우는 건 민간 공연기획사 몫이었다. 기획자들이 기업 후원을 받아 제작비를 충당하며 클래식 시장을 성장, 발전시켰다. 그런데 최근 기업 후원이 줄어 좋은 공연을 기획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유명 연주자의 공연 스케줄은 보통 3~4년 전부터 정해진다. 앞으로가 청탁금지법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시기”라는 게 윤 대표 얘기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 자료를 봐도 클래식 업계에 들어오는 후원금이 줄어든 게 나타난다. 2017년 우리나라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전년 대비 4.15%(82억6900만 원) 감소했다. 기업이 문화예술 지원을 줄인 건 6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지난해 국내 주요 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27%가 청탁금지법이 문화예술 협력 활동을 위축·감소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청탁금지법의 선물 상한가액이 상향된다면 문화접대 등 관련 지출을 늘리겠느냐”는 질문에는 43%가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현재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선물가액 한도는 5만 원이다. 김영호 한국메세나협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해 “일반 선물은 5만 원 범위에서 가능하지만 공연 관람권은 그 가격에 좋은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 청탁금지법에 예외 조항을 둬서라도 문화예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클래식계에서 기업의 문화 관련 투자 축소를 우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수준 높은 외국 예술가 초청 공연을 기획하기 어려워진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클래식 연주자가 설 자리도 좁아진다. 공연장 및 기획사들이 흥행 실패 위험이 적은 스타 위주로 스케줄을 짜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실력 있는 클래식 연주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콩쿠르 입상 실적도 이를 증명한다. 1957년 유네스코 산하에 ‘국제 콩쿠르 세계 연맹’이 생겼다. 이 기구가 공인한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횟수가 60년간 148회다. 상위 입상 기록은 훨씬 더 많다. 특히 2010년 이후 젊은 연주자의 해외 주요 콩쿠르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 연주자에 닥친 위기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클래식계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롯데콘서트홀 제공]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클래식계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 음악 시장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콩쿠르 입상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국제 무대에 진출할 거의 유일한 기회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많은 연주자가 일찍부터 콩쿠르에 도전하고, 그중 일부는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최고의 티켓 파워를 얻은 조성진처럼 성공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임동혁 등도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정상급 연주자로 발돋움했다. 

    반면 빼어난 연주 실력을 갖추고도 대중의 관심을 얻는 데 실패하는 사례도 적잖다.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송파갑)은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어디 나갔다 하면 다 콩쿠르에서 1등을 하는데 마케팅이 안 되는 것 같다. 세계적인 음악학교 나오고 세계에서 1등을 하는데 무직이다. 세계적인 탤런트를 가진 사람들이 이것을 보여줄 기회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콩쿠르 입상이 드문 시절이라면 큰 화제를 모았을 법한 성과도 최근엔 잘 알려지지 않고 묻힌다는 게 공연계 관계자들 얘기다. 이들 아티스트가 이름을 알리려면 무대에 꾸준히 서서 관객과 만나야 하는데, 정작 국내 공연계에는 지명도 낮은 사람이 설 무대가 적다. 결국 재능 있는 예술가가 일찍 좌절을 겪고 그 결과 클래식 저변이 좁아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문화접대비 사용 활성화 추진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공연에서 예브게니 키신(왼쪽)과 주빈 메타가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 협연을 마친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공연에서 예브게니 키신(왼쪽)과 주빈 메타가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 협연을 마친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1월 28일 ‘순수예술시장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YAFF) 정례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2017년 9월 YAFF가 “아직 유명하지는 않지만 뛰어난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위한 네트워크가 되겠다”며 출범한 것 자체가 현재 클래식계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다. 

    이날 포럼에서 한 참석자는 “전국에 공연장으로 정식 등록된 공간이 216개다. 대학 강당 등 연주회를 열 수 있는 곳까지 포함하면 300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공간 대부분이 티켓 판매가 보장된 유명 연주자와 유명 작품만 유치해 신인 연주자는 자기 음악을 소개하고 팬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최소한 공공 예술기관은 표 판매보다 공공성을 먼저 생각해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창일 ‘사단법인 찾아가는박물관’ 이사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이 ‘질적 성과’보다 ‘양적 결과’를 우선하게 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라며 “정부가 그 무렵 재정자립도를 높이도록 주문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문화예술기관이 정치 외풍에 시달리는 점도 미래를 내다보는 공연 기획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공연장 대표 중 상당수는 문화 분야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 관계자다. 지방선거가 치러지면 적잖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이 임기와 무관하게 자리를 떠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렇다 보니 다들 단기 성과를 내려고 객석점유율 등에 집착하고 스타 연주자 섭외에 쏠림 현상이 심화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경기 양주시가 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 해체를 결정하고 단원 60명을 해촉해 클래식계엔 불안감이 더욱 확산됐다. 2014년에는 목포시가 관내 예술단 예산을 삭감하고 단원 상당수를 정리해고한 일이 있다. 기업에 이어 지방자치단체들도 클래식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현상이 본격화하면 관련 기반 자체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창주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장(공연기획사 빈체로 대표)은 1월 28일YAFF 포럼 발제에서 “2019년 현재 클래식을 중심으로 한 순수예술 시장은 예술 진흥보다 엔터테인먼트와 흥행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또 정부의 시민 예술 우선 지원으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혼재돼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불거지는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부적절한 인사, 주 52시간 근로에 따른 공공 공연장과 민간단체 및 기획사 등의 운영난 등으로 순수예술이 점차 위축되고 민간 기획자와 전문 예술가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클래식 한류 가능할까

    3월 7일 내한공연을 한 영국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빈체로 제공]

    3월 7일 내한공연을 한 영국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빈체로 제공]

    최근 클래식계에서는 동남아 등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움직임도 싹트고 있다. 윤보미 봄아트프로젝트 대표는 “아직 클래식 음악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경우 우리 연주자가 진출해 활동하기에 매우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아티스트는 실력 면에서 서구 연주자에 뒤지지 않고, 외모와 역사문화적으로는 유사해 더욱 친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연주자들을 위해 이 시장을 개척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윤 대표가 바라는 것은 공공부문의 지원이다. 그는 “클래식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지원대상 프로그램에서 배제돼 있다. 클래식을 이해하고 재해석해 공연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예술가인데, 발상지가 서양이라는 이유로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라며 “한국 클래식은 해외에서 케이팝처럼 인기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한국 음악교육 프로그램도 경쟁력이 있다. 한국 출신의 뛰어난 예술가가 국내시장에서만 경쟁하지 않고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로 눈을 돌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국악/양악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넘어서는 넓은 안목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기업이 문화접대비 제도를 활용하면 문화예술 저변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2007년 우리나라는 기업의 건전한 접대 문화를 유도하고 문화예술 분야 신규 수요를 창출한다는 목적으로 문화접대비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의 접대비가 한도를 초과할 때 문화접대비로 지출한 금액의 20%까지 비용으로 추가 인정해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는 특례 조항이다. 그러나 제도 도입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활용률이 매우 낮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기업의 문화접대비 신고금액은 총 75억 원으로 전체 접대비(10조8952억 원)의 0.07%에 그쳤다. 이충관 한국메세나협회 사무처장은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접대는 품위 있고 감성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또 문화예술 소비를 통해 간접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효과도 있다. 우리 기업이 이러한 가치에 눈을 떠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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