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가 훌륭해도 국민이 마음 안 열어…“백약이 무효”
“양당 정치는 헌법의 기본 원리, 한쪽 축 무너지면…”
①선승구전(先勝求戰): “이기는 조건 만들고 싸워라”
②금선탈각(金蟬脫殼): “허물을 벗고 거듭나라”
정당은 동지애가 필수, 서로 신뢰하며 문제 헤쳐나가야
탄핵 국민·당원께 묻는 절차와 대국민 사과 필요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4월 8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황우여(79)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4월 8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진행한 ‘신동아’ 인터뷰에서 당의 현실을 이같이 진단했다. 황 상임고문은 국민의힘이 두 차례의 탄핵을 거치며 거듭 분열했고, 국민의 신뢰까지 잃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후보가 아무리 훌륭해도 통하지 않는 백약이 무효한 시기”라며 손자병법·삼십육계의 여러 비책 가운데 선승구전(先勝求戰·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전쟁에 임함)과 금선탈각(金蟬脫殼·허물을 벗고 거듭남)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이 민심을 직시해 선거 전략을 짜고, 후보를 위해 대국민 사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상임고문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당의 쇄신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 화합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당 안팎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끝내 거론하지 않았고, 책임을 지우는 발언도 삼갔다. 대신 “선배 정치인으로서 현 상황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위기 국면마다 원로들이 그 나름의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다음은 황 상임고문과의 일문일답.
“양당 정치는 헌법의 기본 원리,
한쪽 축 무너져 내리면…”
보수정당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모든 것은 우리 선배들의 책임이지, 후배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아, 이때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회한이 밀려온다. 특히 두 번의 탄핵 국면에서 어떻게든 당이 화합하도록 설득했어야 했다. 순식간에 흘러간 일이라 해도,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게 후회된다. 무엇보다 원로들이 여과장치가 돼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당 지도부에 목소리를 전했어야 했다.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지방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보수정당이 수많은 선거를 치러왔지만 이번 지방선거만큼 혹독한 상황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보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조차 걱정할 정도로 위기감이 깊다. 많은 국민이 ‘양당 정치는 우리 헌법의 기본 원리인데, 한쪽 축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뼈아프게 듣고 있다.”
어쩌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됐을까.
“긴 호흡으로 복기하자면 보수정당은 두 차례의 탄핵 국면을 거치며 극심한 진통을 겪어왔다. 탄핵은 보수정당에 있어 복부를 절개하는 대수술과도 같았다. 그런데 탄핵을 주도한 세력과 이에 반대한 세력이 결합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두 번째 탄핵의 찬반을 두고 세력이 나뉘었다. 단순히 정견 차이를 넘어 사실상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둔 형국이다. 쪼개진 당이 다시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대선에서 선관위원장을 맡았는데 당시에도 갈등이 심각했다.
“당을 대표할 대선후보를 선출하면서 ‘과연 단일 후보를 내세워 그를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본래라면 당내 구성원이 원팀을 이룬 뒤 경선에 임했어야 했다. 하지만 일정에 쫓기다 보니 통합보다 경선을 앞세우는 우를 범했다. 물론 시간 여유가 없었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후보 선출 과정에서 소동이 있었다. 당원들이 잘 수습해 준 덕분에 일단락됐지, 그렇지 않았다면 선거도 제대로 치를 수 없었을 것이다.”

2025년 4월 22일 황우여 당시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통령 후보자 선출 2차 경선 진출자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①선승구전, 양당 정치 파괴 우려하는 여론 살펴야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의 후보 교체 소동 말인가.“당헌·당규에 의거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당원과 국민의 투표라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후보를 인위적으로 단일화할 명분이 없다. 당시 당내 단일화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차라리 한 전 총리가 제3당의 후보로 나서 ‘당 대 당’ 형태의 단일화를 추진하는 편이 옳다고 판단했다. 끝내 그런 결단이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현 상황에서 지방선거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은 후보가 아무리 훌륭해도 통하지 않는 백약이 무효한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손자병법의 선승구전 전략을 되새겨야 한다. 싸우면서 승리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이겨놓고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이순신 장군이 주로 사용한 전법이다.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상대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은 근접전을 피하고 화력전으로 승부를 봤다. 상대의 승선을 막기 위해 거북선에 창을 꼽기도 했다. ‘백전백승’했는데, 정확히는 ‘백승백전’한 것이다. 당은 무작정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길 바랄 것이 아니라, 후보가 한결 수월하게 선거에 임하도록 숙고하고 도와야 한다.”
이 대목에서 황 상임고문은 2004년 치른 17대 총선을 언급했다.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겹쳐 보수정당이 열세를 면치 못하던 때였다. 인천 연수구에서 3선에 도전했던 황 상임고문은 개인으로서도 고민이 깊었던 시기다. 황 상임고문은 “하루아침에 당 지지율이 20%포인트나 떨어져 충격이 컸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도 백약이 무효한 시기였다. 어느 날 홍사덕 당시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전화해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국민께 먹히지 않으니 차라리 호소하라’고 조언했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이 일당 국회가 된다’고 국민께 읍소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인천 연수구에 출마했던 나는 지역 주민께 ‘이대로라면 인천에서 야당 의원이 단 한 명도 나오지 못한다. 그래도 야당 의원이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여당을 견제할 수 있도록 저 한 명이라도 뽑아주시라’고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인천에서 3석을 지켜낼 수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다. 아무리 후보 개인의 역량이 훌륭해도 당에 실망한 국민이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선승구전의 지혜가 필요하다. 양당 정치의 기본 틀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우려하는 국민이 상당하다. 후보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먼저 큰 틀에서 국민께 호소하며 판세를 재편해야 한다. ‘지역마저 일당으로 채워지면 균형이 무너져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말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것 자체가 100% 우리 당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일색의 대한민국은 훗날 큰 후회를 낳을 수 있으니 이것만 막아달라’ ‘보수정당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쓸만하다 싶은 후보는 뽑아달라’고 읍소해야 한다.”
17대 총선 때는 영남 중진들이 “당의 상황에 대해 책임지겠다”며 잇달아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근래에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모든 게 합의로 이뤄졌고, ‘선당후사’가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국민이 당의 상황을 문제 삼으면 당은 기꺼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 걸음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당을 살려야 한다는 기치 아래 모든 걸 던졌다. 그렇게 다 죽느냐? 아니다. 내가 던져야 당이 살고, 당이 살아야 결국 나도 사는 법이다. 과거 중진들이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놓은 것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흐름을 만들 수 있으며, 당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없지 않다. 선입견을 갖고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②금선탈각, 옛것을 벗어버리고 ‘알맹이’만 취해 선거 치르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데.“삼십육계 가운데 제21계인 금선탈각이 절실하다.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의미로, 우리 당 역시 과거의 허물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옛것은 버리고 알맹이만 챙겨 선거를 치러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짐을 후보 개인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 당은 허물을 벗는 마음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순신 장군 휘하 병사들이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적함은 추풍낙엽처럼 침몰하는데 아군은 소수의 부상자만 나왔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 병사들은 얼마나 기쁘게 전쟁에 임했겠는가. 국민의힘도 그랬으면 좋겠다.”
국민의힘이 챙겨야 할 알맹이가 무엇인가.
“정당은 본질적으로 따뜻해야 한다. ‘사랑’이 중심이 돼야 한다.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애국자(愛國者)’라고 부르지 ‘충국자(忠國者)’라고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겠는가. 마찬가지로 정당의 구성원끼리는 동지애가 필수적이다. 동지애가 있을 때 비로소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문제도 헤쳐나갈 수 있다. 당이 따뜻해야 사람이 모인다. 온기 속에서 갈등도 녹아내리는 법이다.”
‘집권’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
“물론 정당의 목적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정당’이 돼야 한다. 2012년 새누리당 대표 취임 연설에서 화합과 쇄신을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두 가지를 강조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쇄신의 전제 조건이 화합이다. 단합이 돼야 쇄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분열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다’고 말했다. 당이 무언가를 도모하려면 우선 하나가 돼야 한다.”
“정치적 경륜을 갖춘 인사가 당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과감하게 젊은 리더를 내세워 국면을 전환하곤 했다. 단순히 지도부의 경륜을 탓할 일이 아니다. 당이 안정적일 때는 원로가 전면에서 이끄는 게 순리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는 새로운 얼굴을 내세워 환골탈태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때 선배들은 뒷방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후배들이 역량을 펼치도록 도와야 한다. 그야말로 노소가 어우러져야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경험을 나누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당 원로들이 목소리를 냈지만, 당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측면도 있다.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이 당 원로를 무시하는 발언도 하지 않았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옛날과 달라 불거진 일이다. 생각은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하여간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해가 지면 삼삼오오 모여 식사도 하며 밤늦게까지 얘기했다. 이때 선배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런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맨 앞)가 3월 9일 국회에서 소속 의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 전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요구하는 일체의 주장에 명확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동아DB
탄핵 국민·당원께 묻는 절차와 대국민 사과 필요
장기적 관점에서 당내 분열이 더는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보수정당이 위기에 직면한 근본 원인은 두 차례의 탄핵 국면을 거치며 분열한 데 있다. 국민 사이에는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끝내 지켜내지 못하는 정당’이라는 불신이 자리 잡았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 애당초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둘째는 탄핵 상황이 닥쳤을 때 당이 보여주는 대응의 문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나 개헌 저지에 필요한 100석 이상의 의석을 갖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국가 대사에 대한 결정권을 우리 당이 위임받은 셈이다. 문제는 선거 당시의 민심과 탄핵 국면의 민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간극을 메워야 하나.
“탄핵처럼 당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을 내릴 때는 ‘우리에게 탄핵을 막을 수 있는 의석이 있는데도 우리가 스스로를 잘라내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를 당원과 국민께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 당원과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앞서의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께서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는, 법적으로 말한다면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당원과 국민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절차를 당헌에 넣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재의 대통령제 시스템은 대통령이 탄핵되면 즉각적으로 조기 대선을 치르는 구조다. 야당 입장에선 늘 탄핵의 유혹에 놓이게 된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부통령이 필요하다.”
선거를 앞두고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나.
“당의 안정을 위해서 원로들이 중심이 돼 대국민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탄핵되셨던 대통령(박근혜)께서도 말씀이 있지 않을까. 당의 원로와 지도부가 국민께 깍듯이 이러한 문제가 있었음을 말씀드려야 하고, (탄핵된) 대통령께서도 매듭을 지어주셨으면 한다. 후임 대통령(윤석열)도 탄핵을 당한 상황이지 않은가.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문제의 뿌리를 뽑아내야 당이 하나 될 수 있고, 국민도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지 않을까.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다음은 2028년 총선이다. 긴 눈으로 봐야 한다. 사실 긴 눈도 아니다. 짧은 눈이다. 당의 원로와 지도부는 책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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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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