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병리학자 서정욱 “조국 장관, ‘학자’라면 이래선 안 된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9-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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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욱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이자 과학자다. 오랫동안 심장병리, 혈관병리 분야를 연구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 논문이 대한병리학회지에 게재될 당시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해당 논문은 연구 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취소된 게 마땅하다”며 “조 장관 부부는 학자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일반인은 제목도 이해하기 힘든 의학 논문 한 편이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2009년 대한병리학회지에 실린 ‘eNOS Gene Polymorphisms in Perinatal Hypoxic-Ischemic Encephalopathy’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출산 전후 저산소성-허혈성 뇌병증에서 eNOS 유전자의 다형성’이다. 이렇게 풀어놓고 봐도 이해가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은 고교생이던 2007년 단국대 의대 장영표 교수 연구실에서 2주간 인턴 생활을 했다. 이후 2009년 앞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대한병리학회지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였다. 조 장관 임명을 앞두고 이런 사실이 드러나며 해당 논문의 수준, 제1저자 자격 등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9월 5일 대한병리학회가 해당 논문을 직권 취소하며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서정욱 서울대 의대 교수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논문 완결성을 둘러싼, 지극히 학술적 이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처 입은 젊은이들

    조 장관 딸 논문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막 시작되던 시기, 서 교수는 이 사건과 다소 거리를 뒀다. 학계 원로로서 이미 대한병리학회 실무에서 손을 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술의 장에 정치적 주장이 끼어들고, 그 과정에서 후배들이 고통당하는 걸 보며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하루는 나와 서른 살 넘게 차이 나는 젊은 병리과 의사가 내 연구실을 찾아왔다. 동료들 모두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정치 이슈에 휘말릴까봐 아무 얘기도 못 하고 있다고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더라.” 

    서 교수는 이날 “저들의 아픈 마음을 나라도 세상에 전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유다. 서 교수는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교수 임용, 승진 등으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젊은 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가분한 처지다. 그와 함께 이번 논란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문제가 된 논문이 어떤 내용인지, 일부에서 주장하듯 ‘2주 인턴 한 고교생’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수준인지, 조 장관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게 어떤 의미인지, 논문이 취소된 지금 책임질 사람은 누구인지 등에 대해 묻고 답을 들었다. 첫 질문은 서 교수가 언급한 ‘젊은이의 상처’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이 논문을 둘러싼 논란 초기, 세상의 관심은 온통 조 장관 딸 대학입시에 쏠렸다. ‘SCI 제1저자 스펙’이 그의 명문대 합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다들 궁금해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언급한 ‘상처받은 젊은이’는 대입 준비생이 아닌 젊은 의사다. 그와 동료들은 이번 사건을 겪으며 왜 마음을 다쳤나. 

    “그들 또한 매 순간 경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에 합격하고, 의사가 돼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도 낙오하는 사람이 생긴다. ‘집안 빽’으로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흥분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병리과에 있으니 병리과 의사 얘기를 했을 뿐, 대학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번 일에 놀라고 분노했을 것이다. 

    학계에는 연구에 인생을 건 사람이 많다. 그들의 삶은 처절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급여는 겨우 용돈 수준이다. 그런 일자리조차 연구비가 끊기면 하루아침에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그들은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실험을 하고, 또 한다. 그들에게 ‘SCI 논문 제1저자’는 삶의 목표와도 같다. 그런 실적이 나와야 정규직 연구원이 될 수 있고, 교수직에 지원해볼 수도 있다. 또래 젊은이의 ‘제1저자 무임승차’ 사건을 보는 그들 심정이 오죽하겠나.” 

    -일각에서는 “대한병리학회지 수준이 매우 낮다. 전문 연구자가 논문을 발표하려고 애쓸 만한 저널이 아니다”라고 하던데. 

    “이 또한 젊은 학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얘기다. 대한병리학회지는 2008년 5월 SCIE에 등재됐다. 당시 국내 의학·생명과학 분야 학술지 가운데 SCI급은 12개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병리학 전공자뿐 아니라 다른 분야 학자들까지 이 저널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논문 책임저자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그렇게 여러 전공 논문이 접수되고, 해외 학자 투고도 이어졌다. 학술 분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저널을 ‘수준 낮다’고 깎아내리기 어렵다. 그런데 대학교수를 지낸 현직 교육감이 SCI급 저널에 실린 논문을 ‘에세이’ 또는 ‘고등학생 실습 보고서’라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며 많이 놀랐다.”

    논문을 슬쩍 보니?

    조국 장관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대한병리학회지 2009년 발표 논문. 해당 논문은 최근 연구윤리 위반 등의 문제로 직권 취소됐다.

    조국 장관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대한병리학회지 2009년 발표 논문. 해당 논문은 최근 연구윤리 위반 등의 문제로 직권 취소됐다.

    서 교수는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8월 24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논문을 슬쩍 보니 참고문헌 빼고 본문은 글자 수도 많지 않은 3페이지 정도고 분석방법은 딱 한 문단이다. (중략) 고등학생이 윈도 컴퓨터로 통계 돌려 간단히 결과 낸 내용 같다.” 

    서 교수는 “이 글을 접하고 어처구니 없었다”고 했다. 내용을 떠나 “논문을 슬쩍 보니”라는 부분부터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명색이 학자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분야 논문을 어떻게 ‘슬쩍’ 보고서 평가할 수 있느냐”고 말하다 서 교수는 그냥 웃어버렸다. 그는 “논문 분량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우 교수 글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국내 저널에 내는 큰 의미 없는 논문, 더군다나 인턴이 참가해서 내놓은 분석 결과로 쓴 논문이라면 지도교수가 1저자, 책임저자를 다 하기는 껄끄러웠을 수도 있다. (중략) 무슨 메이저급 논문도 아니고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실험노트 정리 수준의 논문이라면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1저자를 주자고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주장이 우 교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만 게시된 게 아니다. 조 장관은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딸 논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공유했다. 조 장관이 공유한 건 또 있다. 한 누리꾼이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쓴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수집된 자료를 가지고 몇 분이면 끝날 간단한 통계 분석을 한 것이 이 논문에 담긴 연구의 전부이다. 이 정도면 성실한 고등학생이 2주간 실험실 생활을 열심히 하고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쓸 수 있을 간단한 내용일 뿐이다.” 

    이런 주장은 조 장관 페이스북을 타고 온라인 세상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대한병리학회지와 해당 논문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근거로 널리 인용됐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논문은 혈관 질환에 대한 것으로 혈관병리를 전공한 그의 연구 분야와 관련이 깊다. 그야말로 ‘슬쩍’ 봐도 내용을 알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이 논문에 대해 발언하기에 앞서 관련 내용 전체를 자세히 주의 깊게 읽었다고 한다. 

    - 많은 사람이 문제의 논문에 대해 얘기하지만, 정작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일단 제목부터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제목 맨 앞에 나오는 eNOS는 ‘endothelial Nitric Oxide Synthase(내피세포 산화질소 합성효소)’를 뜻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NO(산화질소)다. 1990년대 과학자들이 NO가 체내에서 혈관확장물질로 작용하는 걸 확인했다.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고혈압, 동맥경화 등 각종 심혈관 질환이 생긴다. NO가 이를 개선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발견으로 여러 질병 예방과 치료에 전기가 마련됐다. 이를 입증한 과학자는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NO에 대한 기존 논문이 의학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논문을 쓴 과학자들이 왜 노벨상을 받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이 논문을 읽어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알파벳을 해독할 줄 안다고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그럼 이 논문에 나오는 eNOS는 뭔가. 

    “체내에서 NO를 합성하는 효소다. 이 논문 연구진은 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신생아 혈액에서 eNOS 유전자 변이 정도를 조사했다. 그것을 통해 해당 질환과의 연관성을 규명하려 했다. ‘주산기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HIE)’은 연구 대상 신생아들이 앓고 있는 병 이름이다. 이런 연구가 성인 대상으로는 이미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eNOS 유전자 변이와 뇌질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어린아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까’ 하는 궁금증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주 인턴만 해서는 절대 못 쓸 논문”

    -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나. 

    “특정 유전자 변이와 HIE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당장 이 논문이 ‘의미 있다’고 평하기엔 이르다. 유전자 변이가 질병을 일으키는 과정 등이 규명되지 않아서다. 향후 보완과 검증이 필요하다. 아직은 ‘진행 과정’에 있는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후속 연구 결과에 따라 이 논문 내용이 ‘정말 임팩트 있는 발견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수 있다. 아니면 ‘다시 실험해보니 틀렸더라’ 같은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된다.” 

    - 고등학생이 학교 숙제로 제출할 만한 ‘에세이’는 아니라는 것인가. 

    “물론이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 주제가 의미 있고, 새로운 발견도 했다. 2009년 당시 대한병리학회지 편집위원들은 추가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 논문 게재를 승인했을 것이다.” 

    - 그런 논문 제1저자가 고등학생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논문 저자의 학력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 활동에 참여하면, 고등학생이라도 얼마든지 논문 작성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관련 분야 문외한이 2주간의 실험실 인턴 활동만으로 이런 논문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7년 이상 계속된 연구

    장세진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사진)이 9월 5일 서울 종로구 
대한병리학회 사무실 앞에서 
조국 장관 딸 논문 직권 취소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대한병리학회지는 이후 해당 논문에 취소(RETRACTED) 사실을 표시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장세진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사진)이 9월 5일 서울 종로구 대한병리학회 사무실 앞에서 조국 장관 딸 논문 직권 취소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대한병리학회지는 이후 해당 논문에 취소(RETRACTED) 사실을 표시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2013년 발행된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 개정판’에 따르면 논문 저자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학술적 개념과 계획 혹은 자료의 수집이나 분석 혹은 해석을 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공헌을 하고, 2)논문을 작성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수정하며, 3)출간될 원고를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이 모두를 다 충족한 사람만 논문 저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여럿일 경우 그중 ‘연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제1저자가 된다. 서 교수는 “이 내용은 해당 논문이 발표된 2009년 이전에도 학계에서 상식으로 통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서 교수는 제1저자를 둘러싼 논란을 접하고 처음엔 “조 장관 딸이 인턴 활동을 하기 전부터 관련 연구에 틈틈이 참여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책임저자인 장영표 단국대 의대 교수가 그를 제1저자로 삼았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물론, 당시 미성년자였던 제1저자의 보호자 조 장관 또한 “딸이 ‘2주 인턴’ 기간의 기여로, 특히 논문 영작 과정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한 공로로 논문 제1저자가 됐다”고 해명했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 “학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얘기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 조 장관은 임명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엔 1저자, 2저자 판단 기준이 지금과 달랐다. 조금 느슨하고 책임교수의 재량에 많이 달려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 장관이 교수 시절 그렇게 행동했다는 건가. 만약 그랬다면 그는 학자로서 자질이 없다고 비판받았을 것이다.” 

    서 교수에 따르면 해당 논문에는 연구 기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연구진이 2002년부터 HIE 신생아의 혈액을 수집했다는 부분이다. 2009년 논문이 출판되기까지 적어도 7년간 연구가 이어졌다는 얘기다. 

    - 그렇게 오래 진행된 연구에 단 2주 동안 참여한 사람이 제1저자가 되는 건 더 말이 안 된다는 뜻인가. 

    “그런 사람이 제1저자가 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짧은 기간만 일했더라도 기존 연구를 뒤엎을 만큼 획기적인 기여를 했으면 된다. 조 장관 딸 저자 자격을 놓고 하도 시끄러워서, 내가 한 번 직접 이것을 확인해봤다. 관련 자료를 뒤졌고, 조 장관 딸이 제1저자가 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학자들은 보통 주기적으로 열리는 전공 분야 학술대회에 참석해 진행 중인 연구 내용을 공개한다. 여기서 동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이후 연구를 보완, 발전시켜 학술지에 논문 형태로 투고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논문의 책임저자 또한 대한병리학회지에 논문을 내기 전, 자신의 전공 학회인 대한소아과학회 학술대회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한소아과학회 사무실을 방문해 그 내용을 찾아봤다.” 

    서 교수에 따르면 학술대회 발표문은 논문과 차이가 있다. 논문은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지만 구두발표 자료는 그렇지 않다. 대한소아과학회 사무실에는 다행히 과거 학술대회 초록집이 보관돼 있었다. 서 교수는 “병리학자인데 관련 분야 논문 중 찾고 싶은 게 있다”고 설명하고 직원 협조를 얻어 자료를 하나하나 열람했다. 옛날 자료를 뒤지다 지쳐 거의 포기하려던 즈음, 2005년 10월 대한소아과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문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산기 저산소성-허혈성 뇌증과 eNOS 유전자 다형태의 연관에 관한 연구.’ 한글로 쓰여 있을 뿐, 2009년 대한병리학회지에 실린 논문 제목과 내용상 동일했다. 

    - 원하던 자료를 찾은 건가. 

    “그렇다. 연구 목적, 연구 대상 또한 2009년 논문과 대동소이했다. 다만 당시엔 eNOS 유전자 변이와 HIE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하지 못했다. 당시 저자들은 결론에서 ‘보다 많은 환아를 대상으로 한 확대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이후 4년간 연구진이 그 일을 했다. 2005년 당시 연구 대상은 HIE 환자 34명, 정상 신생아 33명이었다. 2009년 논문의 경우 환자 수가 37명, 대조군은 54명으로 각각 늘었다. 연구 방법도 추가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도 변경됐다.” 

    서 교수가 확보한 2005년 발표문을 보면 저자가 장영표 교수를 포함해 3명으로 적혀 있다. 2009년에는 장 교수 포함 6명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조 장관 딸이 추가됐다. 서 교수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연구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만 연구 목적과 설계, 주요 내용 등이 수년간 동일한 상태로 이어졌다면, 나중에 참여한 사람이 연구에 주도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아 대상 연구를 입시용으로 쓰다니”

    - 최근 진행된 대한병리학회 조사에서 장영표 교수도 “해당 논문은 사실상 혼자 썼다”고 시인했다. 결국 조 장관 딸 대학입시용 ‘스펙’을 만들어주려고 ‘제1저자’를 선물했다는 얘기가 된다. 일부에서는 “당시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나. 

    “그런 주장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다. 자녀를 미성년자 때부터 연구윤리 위반 행위에 가담시킨다? 그것은 자녀의 미래를 더럽히는 행위다. 이런 일을 ‘당시 관행’이라고 치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조 장관 딸 외에 이런 사례가 더 있을 수는 있다. 그들이 적발되지 않고 계속 이익을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잘못이 드러난 걸 억울하게 여기면 안 된다. 차후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연구윤리 위반이 밝혀지는 순간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 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생각에 공감할 거다.” 

    -조 장관은 청문회 당시 “우리 딸은 인턴만 했다. 연구윤리에 대해서는 몰랐다”며 논문 취소를 책임교수 탓으로 돌렸다. 

    “딸은 몰랐을 수 있다. 당시 미성년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가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호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부모조차 모른 채 자녀 이름이 멋대로 해당 논문 제1저자 자리에 들어갔다면, 장영표 교수를 ‘명의 도용’ 혐의로 고소라도 해야 할 거다. 벌써 그 문제 때문에 아이 앞날에 큰 장애가 생기지 않았나. 

    조 장관 부부는 둘 다 학자다. 논문 제1저자가 되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동시에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인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면서 그의 주장대로라면, 연구윤리가 뭔지도 모르는 딸 이름이 제1저자 자리에 들어가는 걸 방치했다. 그래놓고 지금 책임을 장 교수에게 돌리겠다고? 이건 심각한 문제다.” 

    - 장 교수와 조 장관 부부, 양쪽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부모가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특히 이 논문은 신생아 환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3kg 안팎의 작은 아이에게서 피를 뽑았다. 연구 초기, 아마도 의대 대학원생이었을 연구자는 아픈 환자를 둔 부모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구 목적을 밝히고, 혈액 채취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부모들은 이 연구가 다른 아이들을 질병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것을 기대하며, 괴로움을 억누르고 기꺼이 연구에 동의했을 것이다. 의학 논문 상당수가 그렇게 쓰인다. 그런데 그 논문을 대학입시용 ‘스펙’으로 사용하는 게 말이 되나.”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잠시 울컥했다. 신생아 심장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병리학자로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가 말했다. 

    “내가 일찍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연구했다. 1990년대에 한 연구 중에는 아이의 심장병 유발 유전자가 엄마로부터 오는지 아빠로부터 오는지 조사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 결과가 확인되면 부모는 이혼을 할 수도 있다. 나는 학자로서 연구하지만, 개인으로 보면 큰 죄를 짓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병의 원인을 규명하려면,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또 그런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면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구를 할 때는 참여자 모두 작은 일에도 더 많이 신경 쓰고 부모와 아이에게 상처가 남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한다. 학계가 규정한 연구윤리 프로세스를 지키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서 교수는 심장병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심장도 오랫동안 연구했다. 연구와 의사 교육을 위해 그동안 500명 이상의 어린이 심장을 제공받았다고 했다. 

    “그 심장 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겠나. 그런 아픔이 쌓여 의학이 발전한다. 그래서 의학 연구를 하는 사람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고등학생 아이가 논문을 쓴다면, 특히 의학 실험에 참여한다면 부모와 교육자는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부터 가르쳐줘야 한다. 논문 한 편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바탕으로 완성되는 것인지 배우게 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영어 잘해서 제1저자 시켜줬다’고 말하는 학자가 존재하는 걸 보면서 슬펐다.” 

    서 교수는 이 얘기를 하며 여러 번 “조 장관은 학자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얘기를 했다.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이다.” 

    8월 1일 조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한 부분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일하던 조 장관은 2017년 5월 대통령민정수석에 발탁됐다. 2년여간 학교를 휴직하고 청와대에 근무했다. 7월 26일 사임하고는 보름 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사이 ‘폴리페서’ 논란이 일자 앞 글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앙가주망은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조 장관은 당시 글에서 “검찰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법무부 혁신, 공정한 형사사법체제 구성 등은 나의 평생 연구 작업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도 나의 선택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훨씬 풍부해진 실무 경험을 갖추고 연구와 강의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공직을 마치면 다시 대학 강단에 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조 장관은 과거 자신이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학자라는 점에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5년 2월 페이스북에 “이번 글은 매우매우 강력한 자랑질임을 미리 알린다”며 “내가 한국연구재단이 통계 내는 논문 인용지수에서 2015년 2월 16일 현재, 법학분야 ‘총 피인용지수’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어느 순간에도 겸손 겸양해야 하는데, 워낙 학외(學外)에서 ‘공부 안 하고 정치질’이라고 비방해서 밝히는 것”이라고도 썼다.

    “학자가 그러면 안 된다”

    서정욱 교수는 학자의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서정욱 교수는 학자의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조 장관은 만 26세이던 1992년, 당시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울산대 교수가 됐다. 생의 절반 이상을 학자이자 교육자로 살았다. 9월 15일 현재 조 장관 페이스북 자기소개란에는 “학문과 앙가주망의 변증법”이라고 쓰여 있다. 장관이 된 지금도 그의 주된 정체성은 학자인 것으로 보인다. 서 교수는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다만 조 장관이 학자, 교육자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서 교수에 따르면 논문 취소는 학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다. 조 장관 딸은 아직 학문의 길에 제대로 들어서기 전 이런 일을 겪었다. 서 교수는 이 사건이 그 젊은이에게 너무 큰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잘못이 있다면 모두 책임교수와 부모 몫이다. 미성년자 시절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부정에 휘말린 그 청년만큼은, 어른이자 선배로서 어떻게든 감싸주고 싶다. 관련 제도와 법이 누구에게까지 책임을 물을지 나는 잘 모른다. 만약 조 장관 딸이 이 사건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거기서 좌절하거나 상처받지 말고 그것을 새 출발의 계기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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