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치매인구 2024년 100만 명 돌파 전망
‘치매 공포’ 중장년 노리는 뇌기능개선제 시장 급성장
해외서는 ‘인지능력 개선 효과’ 광고 못 하는 성분
“임상에서는 효과 있다” VS “건강기능식품으로 전환해야”
[GettyImage]
치매는 이처럼 흔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병이다. 발생 원인이 불분명하고, 변변한 치료제도 없다. 치매에 걸리면 뇌기능 손상으로 인지와 판단, 행동 능력 등을 잃는다. 이후 다시는 과거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불가역성 때문에 상당수 중장년이 ‘치매 예방’을 간절히 원한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치매가 두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30대 27%, 40대 35%, 50대 40%, 60대 43%로 나이가 들수록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최근 뇌기능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제제(전문의약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관련 약품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건 2000년,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가 개발한 ‘글리아티린’의 국내 판매가 허용되면서부터다. 이후 여러 제약사에서 잇따라 복제약(제네릭)을 내놨고,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국내 처방의약품(전문의약품) 시장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제품으로 급부상했다.
콜린알포세레이트, 넌 누구냐
종근당 글리아티린.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 통계에서도 관련 제품의 약진이 뚜렷이 확인된다. 상반기 콜린알포세레이트 상위 10개 품목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1.3% 늘었다. 셀트리온제약 ‘글리세이트’가 92.0%, 제일약품 ‘글리틴’이 42.3% 매출 성장을 기록하는 등 매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대체 이 약이 ‘뇌기능 개선’에 어떤 효능을 발휘하기에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까. 식약처가 인정한 효능·효과를 살펴봤다. 크게 세 가지다. 1)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2) 감정 및 행동 변화 3) 노인성 가우울증.
1)에는 기억력 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장애, 집중력 감소 등이 포함된다. 2)는 정서불안, 자극과민성, 주위 무관심 등을 뜻한다. 3)은 집중력 및 자발성이 떨어지는 우울 상태를 가리킨다. 읽어보면 중장년 이후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에 거의 모두 적용할 수 있을 듯 보인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체내에서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 합성에 관여한다.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을 정상화해 뇌기능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달걀, 콩, 두부 등에 많이 들어 있는 레시틴이 바로 아세틸콜린의 원료다. 그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특정 병증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뇌기능개선제’라는 이름처럼 인지기능 감소 등을 개선하고자 장기간 꾸준히 복용하는 게 보통”이라고 밝혔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중장년 사이에서 ‘치매예방제’ 혹은 ‘뇌영양제’ 같은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약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한 약사는 “요즘 보면 온갖 병원에서 이 약을 처방한다. 치매 관련 진료를 주로 보는 신경과뿐 아니라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에서도 콜린알포세레이트 처방전을 받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8년 누적 청구액 1조1773억
서울 마포구 창전데이케어센터에서 작업치료사가 치매 환자들에게 종이 시계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창전데이케어센터 제공]
이동근 건약 정책팀장(약사)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치매 예방은커녕 뇌기능 개선 효능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건보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 약에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팀장에 따르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원개발국 이탈리아와 베트남, 알바니아, 우크라이나 등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리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심지어 이 제품 판매사가 ‘인지능력 개선 효과’ 등의 문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단속까지 한다. 지난 2월 일제 조사를 벌여 해당 내용으로 광고한 회사들에 제재조치를 내렸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건보 지출에서 약제비 비중이 높은 편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국내 약제비 비중이 21.3%로 OECD 평균(16.1%)을 상회한다. 금액도 2016년 15조4287억 원, 2017년 16조2000억 원, 2018년 17조8669억 원 등으로 계속 늘어나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국민 보건을 위해 최소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같은 곳에 돈이 줄줄 새나가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이 팀장 얘기다. 보건복지부 또한 이 문제를 모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뇌대사개선제로 임상적 유용성이 크지 않고 약품비 비중이 높다”며 “급여기준 설정 필요성 여부 등에 대해 검토할 것”을 요청한 일이 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2017년 국정감사에서 심평원을 상대로 같은 질의를 했다. 권 의원이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한 글리아티린 같은 약제에 대한 약제비 절감 대책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심평원은 “향후 본 약제의 외국 허가 현황 및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관련 자료 등을 보다 더 면밀히 검토해 약제비가 낭비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급여 기준을 설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달라진 점은 없다.
“환자들이 원한다”
이에 대해 ‘글리아타민’을 판매하는 제약사 대웅바이오 관계자는 “이 약은 효능에 대한 임상자료 등을 제출해 전문의약품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부작용 없이 장기간 처방되고 있다”고 했다. ‘글리아티린’을 판매하는 제약사 종근당 관계자도 “마땅한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이 약품이 가진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현재 뇌기능에 문제를 느끼는 환자들은 이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의 약이 있다면 처방받고 싶어 한다. 이 제품이 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면 환자 부담이 늘어난다.”
종근당 관계자 얘기다. 임상 현장에서 관련 약물을 처방하고 있는 의사들 또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한 신경과 개업의 의견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 감소, 무기력, 어눌함 등을 느끼는 환자에게 이 약을 처방한다. 그 과정에서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잖다. 증상 완화 내지 조절을 목적으로 할 경우 분명히 임상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현재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공포, 자녀의 죄책감을 자극해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존재”라고 공격하고, 다른 편에서는 “적절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치매 질환 분야에서, 그나마 환자들의 뇌 건강을 지켜주는 존재”라고 감싼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노인신경의학회는 12월 7일 이 문제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기로 했다. 박건우 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서울 강북구 치매지원센터장)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효능 등에 대한 생각이 의사들 사이에서도 제각각이다. 이번에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생활습관 교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는 ‘하기를 권하는’ 3권(운동, 읽고 쓰기, 생선과 채소 먹기), ‘하면 안 되는’ 3금(술, 담배, 외상), ‘반드시 해야 할’ 3행(정기검진, 가족과 소통하기, 치매 조기검진)을 강조한다. 대한치매학회에서는 치매 예방을 위한 ‘진인사대천명+고(Go)!’ 수칙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①진땀나게 운동하자, ②인정사정 없이 담배를 끊자, ③사회활동 열심히 하자, ④대뇌활동 열심히 하자, ⑤천박하게 술 많이 마시지 말자, ⑥명(命)을 연장하는 식사를 하자, ⑥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을 조절하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