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14억 분의 1의 남자’ 둘러싼 추측과 억측 大해부

[Focus] 시진핑 실각설의 전모

  • 최창근 경제사회연구원 미래센터 위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5-08-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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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 갈등설로 피어오른 시진핑 권력 이상설

    • 권력 약화 증후 있으나 실각은 억측

    • 핵심 인물은 군부 2인자 장유샤(張又俠)

    • 체제 반감+희망이 만든 설에 불과

    • 중국공산당 체제 불투명성 산물

    • 9월 전승절 열병식 시진핑 참석이 관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7월 7일 산시(山西)성 양취안(陽泉)에 있는 밸브 업체를 방문해 생산 작업장과 제품 전시실을 둘러본 뒤 현장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화통신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7월 7일 산시(山西)성 양취안(陽泉)에 있는 밸브 업체를 방문해 생산 작업장과 제품 전시실을 둘러본 뒤 현장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화통신 

    ‘한 남자’의 거취를 두고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한편에서 “그는 이미 실각했다”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라고 일축한다. 건강 이상설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나간다. 그의 지위와 영향력에 비례해 파장은 일파만파다. 그는 ‘14억 분의 1의 남자’라는 별칭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2024년 기준 중국 인구는 14억828만 명, 중국공산당 당원 수는 1억2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7.1%를 차지한다.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대표는 2300명, 당 중추인 중앙위원은 205명, 중앙후보위원은 171명이다. 상설 의사결정기구 정치국 위원은 24명이고 그중 상무위원 7명이 선출되며 대표 1인은 총서기다. 시진핑의 당직은 중국공산당 총서기다. 

    인구 기준 전 세계 2위 국가, 당원 1억 명을 보유한 전 세계 최대 정당 수장을 겸하는 시진핑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시진핑의 거취를 두고 근거 없는 소문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점이다. 시진핑 실각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장기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한 시진핑은 실정(失政)으로 민심 이반이 발생했으며, 권력 기반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유력한 근거로 군부와 갈등설이 제기됐다. 군부 쿠데타설도 있다.

    “정치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槍杆子裏面出政權).” 1938년 국공내전과 중국공산당 내 반발이 일던 외우내환의 시기 마오쩌둥이 한 말이다.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갖춰야 함을 강조했다. 마오쩌둥은 “우리 원칙은 당이 총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다. 결코 총이 당을 지도하게 할 수는 없다(我們的原則是黨指揮槍,而決不容許槍指揮黨)”라고도 했다. 중국을 지배하는 근원적 힘은 군부에서 나오며, 중국공산당이 군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이다. 

    군 갈등설에서 비롯한 시진핑 권력 이상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59년 국가주석을 사임했지만 중국공산당 주석(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켰다.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쥐고 ‘실질적 최고지도자’로서 중국을 통치했다. 덩샤오핑은 1989년 6·4 톈안먼사건으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실각한 후 후임자로 발탁한 장쩌민(江澤民)에게 “일주일에 서너 번은 꼭 장성들과 밥을 먹으라”고 권했다.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시진핑이 권력 기반을 상실했다”는 관측의 핵심에 선 인물은 장유샤(張又俠)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이다. 2012년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됐을 때부터 최측근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친위대장’ 별칭도 붙었다. 

    장유샤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3월 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AP/뉴시스

    장유샤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3월 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AP/뉴시스

    시진핑과 세 살 터울인 장유샤는 선대부터 시진핑과 인연이 있다. 아버지 장쭝쉰(張宗遜)은 황푸군관학교 출신으로 홍군(인민해방군)에 투신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1955년 10인의 개국 원수, 10인의 개국 대장에 이은 개국 상장(上將·3성장군)으로 임명됐다. 장쭝쉰은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국무원 부총리와 국공내전 서북야전군(제1야전군)에서 함께 싸운 전우다. 시진핑과 장유샤도 어린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왔다.

    장유샤는 18세에 병사로 입대해 군 최고 계급 상장에 오른 역전의 용사다. 1976년 윈난(雲南)성 주둔 제14집단군 중대장으로 1978년 중국-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최일선 주력부대를 지휘해 선전했다. 1984년 연대장으로 진급했고, 그해 중국-베트남 분쟁(1979~1991) 핵심 작전인 라오산(老山)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장성으로 진급해 베이징(北京)군구, 선양(瀋陽)군구 부사령원을 거쳐 2012년 인민해방군 총장비부장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 돼 군부 핵심에 진입했다. 2017년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2018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올라 군부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시진핑과 장유샤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은 2022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해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총서기 3연임을 결정하면서 종신 집권의 길로 들어섰다. 권력의 핵심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장유샤의 퇴진이 필요했다. ‘67세 이상이면 유임 가능하지만 68세 이상이면 퇴임해야 한다’는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 원칙에 따라 시진핑은 장유샤에게 용퇴를 권했다. 1950년 7월생으로 당시 72세였다. 1953년 6월생 시진핑도 69세로 원칙에 따르면 사임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진핑이 “당신은 나보다 세 살이나 더 많은데 왜 남아 있으냐?”고 지적했고, 시진핑이 칠상팔하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자 장유샤도 같은 핑계로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2023년부터 시진핑과 군부 갈등설은 지속됐다. 연이은 고위 장성 실각이 이를 뒷받침했다. 시진핑이 육성한 로켓군이 주 타깃이 됐다.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 사령관을 필두로 류광빈(劉光斌) 부사령관, 장전중(張振中) 전 부사령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기율감찰위원회 조사 대상이 됐다. 우궈화(吳國華) 전 부사령관은 급사했다. 중국 매체는 사인을 병사로 보도했지만 대만 매체는 자살로 보도했다. 리상푸(李尙福) 국무원 국방부장, 장위린(張育林) 국방과학기술대학 교장, 라오원민(饒文敏) 장비발전부 부부장 등 고위 장성 실각이 줄을 이었다. 이후에도 웨이펑허(魏鳳和) 전 국방부장, 먀오화(苗華)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에 이어 군부 서열 3위 허웨이둥(何衛東) 중앙군사위원회 제2부주석까지 실각했다. 

    군 고위 장성 실각의 명목상 원인은 부패 혐의다. 시진핑이 2012년 집권 후 줄곧 강조해 온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는 군부 내 파워 게임이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중국 군부는 이른바 월전방(越戰帮)과 대해방(臺海幇)으로 양분돼 있다. 전자는 1979년 중국-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파벌이다. 장유샤 부주석이 핵심으로 공군, 미사일 부대가 중추다. 장유샤의 고향을 따서 산시방(陕西帮)이라고도 한다. 후자는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에 근무했던 장성 출신 모임이다. 파벌 수장은 허웨이둥, 2인자는 먀오화다. 허웨이둥의 고향에서 유래한 푸젠방(福建幇)이라는 별칭도 있다. 

    2012년 이후 두 파벌의 경쟁 관계가 지속됐다. 시진핑은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원칙에 따라 두 세력을 양손에 쥐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권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공군, 로켓군 등이 현대전의 총아로 부상하면서 월전방 세력이 성장했다. 2023년 3월 국방부장에 임명됐다가 5개월 만에 낙마한 리상푸 전 국방부장이 대표적이다. 시진핑이 월전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을 숙청했으나 장유샤 등의 반격을 받아 대해방 세력의 수장 허웨이둥 부주석이 실각하는 등 대가를 치렀다. 결과적으로 시진핑의 용인술은 군부 내 권력투쟁 격화를 불렀고, 장유샤와 갈등을 첨예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장유샤가 군권을 장악했으며 시진핑은 사실상 실각했다”는 소문의 근거가 됐다. 

    핵심 인물은 군부 2인자 장유샤

    ‘결정적 장면’은 2025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장유샤가 퇴장하는 시진핑에게 대놓고 등을 돌린 장면이 포착된 것을 든다. ‘의도된 결례’로서 시진핑에 대한 공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동시에 장유샤의 위상을 방증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중국공산당 당내 인사를 두고서도 시진핑 권력 이상설은 증폭됐다. 2025년 4월 1억 중국공산당 당원 인사를 책임지는 리간제(李幹傑) 중앙조직부장과 대만·홍콩·민영기업·종교·민족 업무를 총괄하는 스타이펑(石泰峰) 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이 서로 직무를 맞바꾸는 인사가 단행됐다. 7월에는 ‘민감 지역’ 신장위구르자치구 당서기에 천샤오장(陳曉江) 중앙통일전선공작부 상무(常務)부부장이 임명됐다. 이들 직위 모두 24인으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원이다. 정치국원은 중대한 인사상 문제가 없는 한 보직 임기를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이변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이밖에 6월 11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방문 당시 시진핑이 통상적인 외국 귀빈 접견 장소인 인민대회당이 아닌 최고 지도부 관저가 있는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접견한 점, 7월 6~7일 브라질에서 개최된 브릭스(BRICS) 연례 정상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불참한 점, 6월 30일 국가 주요 사무 결정·집행권을 가진 중국공산당 중앙 의사결정 협조기구가 신설됐다는 보도가 인민일보를 통해 나오는 등 추측과 억측은 계속되고 있다. 

    딩쉐샹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중국공산당 서열 6위)가 6월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8회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본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신화통신

    딩쉐샹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중국공산당 서열 6위)가 6월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8회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본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신화통신

    시진핑은 지난해 유럽(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 남미(페루·브라질), 아프리카(모로코) 등 다양한 지역을 방문했으나 올해는 동남아(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의 순방 일정만 수행하고 있다. 외교 무대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동남아 등 주변 우호국으로 제한되고, 원거리 국가 외교는 ‘2인자’인 리창 국무원 총리를 보내는 등 점차 활동을 줄여나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내적 요인’에 더해 실각설에 불을 붙이는 것은 ‘외적 요인’이다. 서구 연구자, 매체의 분석이나 보도가 대표적이다. 주버뮤다 미국대사를 지낸 그레고리 슬레이튼(Gregory Slayton)은 ‘뉴욕포스트’ 기고문에서 “시진핑의 건강이 악화돼 2025년 8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임하거나 의례적 직위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슬레이튼은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등 베이징 사정에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역 중장으로 2012∼2014년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은 6월 27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중국에서 명확한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딩쉐샹(丁薛祥) 국무원 부총리(중국공산당 서열 6위)와 장유샤 부주석 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를 두고서 “차기 당권은 딩쉐샹, 군권은 장유샤로 정리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해외에 거주하는 반중(反中) 성향의 화교도 시진핑 실각설의 유력한 ‘소스’다. 이들은 시진핑 체제와 중국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근거로 희망 섞인 보도를 하며 시진핑 실각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한다. 보도는 중국 권력 핵심인 군 인사가 급작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2022년에도 “시진핑이 실각해 가택 연금됐으며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확산했다.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근원지는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는 미국 거주 반체제 인사로 밝혀졌다. 익명의 한 중국정치 전문가는 “해외 반체제 인사들이 중국공산당 체제에 대한 원한 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중국공산당 붕괴설, 특정 인물 실각설, 쿠데타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 정치 시스템을 이해한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폐쇄적인 중국 정치 내부 사정을 마치 눈으로 본 듯이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해외 반중 인사의 보도는 국내외 유튜브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일부 유튜버는 시진핑 실각 후 중국은 군벌(軍閥)이 할거하던 1900년대 초반 상태가 될 것이며, 내전이 발생해 5대 군구(軍區)와 대만을 비롯한 소수민족자치구가 독립해 내전 상태에 접어들 것이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대만 일간지 ‘자유시보(自由時報)’도 유력 소스다. 신문은 “시진핑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명목상일 뿐”이라며 “시진핑이 반대파와 협상해 본인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가 총서기, 후진타오 전 주석의 지지를 받는 천지닝(陳吉寧) 상하이시 서기가 국무원 총리, 장유샤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아 집단지도체제를 복원하는 데 합의했다”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시보’의 성향과 정파성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대만 1위 일간지로서 반중국, 친민주진보당 성향이 뚜렷하다. 

    9월 전승절 열병식에 시진핑 나서면 의혹 사그라들 것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시진핑 실각설은 루머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시진핑은 최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 중앙재경위원회, 중앙정치국 집체학습 등 당정 주요 회의·행사를 직접 주재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시진핑과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대체할 인물이 부재한다는 것도 주요 근거다. 루머가 발생한 근거로는 △군부 고위직 숙청 △중국공산당 내 집단지도(集體領導)체제 요구 △경제 침체 불만 증폭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중국대사관 육군무관,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 무관을 역임한 조현규 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은 시진핑 실각설에 대해 “서방 언론이나 대만 매체에서 제기하는 관측 수준이며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확인된 사실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2022년 중국공산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하며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졌으며 당과 군 장악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엘리트 정치 연구 권위자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의견도 다르지 않다. 그는 시진핑 권력 이상설의 핵심인 군부 쿠데타설에 대해 “인민해방군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는다. 조직 구조상 무혈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시진핑 실각설은 신빙성이 없는 낭설이며 외부에서 중국이 내부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는 메시지를 퍼뜨리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시진핑 권력 이상설의 원인으로 서방 등 외부 세계의 희망 사항이 투영된 것과 중국 내부의 시진핑 독주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정의했다. 강 교수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불만이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사람(장유샤)에게 몰린 형국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민해방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중국공산당과 국가를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내놨다. 

    요약하자면 실각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이나 익명의 제보를 조합해 반중 진영 입맛에 맞게 각색했다는 점에서 신뢰하기 힘들다는 게 전반적 시각이다. 한 전문가는 “중국 정치체제의 폐쇄성과 외부의 중국 혐오 정서가 결합해 이를 증폭한다”라고 지적한다. 

    시진핑의 권력 입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올해 가을 개최될 중국공산당 4중전회와 9월 3일 항일전쟁승리기념일(전승절) 제80주년 열병식 행사다. 4중전회에서는 당·정·군 주요 인사가 결정되는 것이 관례다. 이를 통해 향후 정국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전승절 기념식에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행정수반을 초청했다. 실제 참석자 수는 알 수 없으나 대규모 국제행사에서 시진핑이 주빈으로서 각국 정상을 만나 행사를 치르면 의혹도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주지할 점은 시진핑의 1인 독주 체제가 지속되고 정치체제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설에서 유래한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 같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이다. 

    최창근
    ●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 한국외대 대학원 박사 과정
    ● ‘대만 :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타이베이: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가희 덩리쥔: 아시아의 밤을 노래하다’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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