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위장 고용’이 뚫은 실업급여, 줄줄 샜다

[Focus] 마을 주민 38명 위장 취업시켜 실업급여 1억 ‘꿀꺽’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5-11-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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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류 한 장으로 만들어진 유령 일자리

    • 신청만 하면 통과되는 실업급여 제도

    • 가짜 근로자, 허위 서류, 회전문 수급

    • 형벌은 강화하고 안전망은 유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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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해남군과 구례군에서 각각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대표 A씨는 두 법인 명의로 고용보험 일용직 신고서를 허위로 제출했다. 그는 “서류상 근무만 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마을 주민 38명의 통장과 신분증을 모아 실제로는 일한 적 없는 주민들을 일용직 근로자로 꾸몄다. 그 과정에서 B씨는 주민 모집, 서류 작성, 급여 이체 조작 등을 도왔다. 실제 공사 현장에 나간 적이 없는 주민들이 서류상으로는 근무 후 권고사직 처리된 실직자로 기록됐다. 회사 계좌를 거쳐 돈이 돌고 도는 ‘자금 순환’ 구조 덕분에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된 것처럼 위장된 것이다. 그 결과 노동청은 총 39차례에 걸쳐 1억3965만8760원의 실업급여(구직급여)를 잘못 지급했다. 

    지방 중소업체, 마을 단위로 실업급여 사기 벌여

    이 사건의 핵심은 ‘자금 순환’이다. A씨는 회사 계좌에서 유령 근로자 개인 계좌로 임금을 송금한 뒤 곧바로 그 돈을 회수했다. 급여 이체 흔적만 남겨 정상 근로로 위장하고 근로자들이 퇴사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실업급여를 받아낸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내부 신고로 수사가 착수되면서 전모가 드러났고, A씨와 B씨는 고용보험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두 법인은 각각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최근 급증하는 ‘위장 고용형 실업급여 사기’의 전형이다. 일하지 않은 사람을 서류상 근로자로 꾸미거나 실제로는 퇴사하지 않은 이들을 권고사직 처리해 수급 자격을 만드는 방식이다. 사건 담당 수사관은 “공적 자금을 조직적으로 편취해 고용보험 재정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크다”며 “지방의 중소업체나 마을 단위로 이런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더는 일부의 일탈이 아니다. 위장 고용, 허위 구직활동, 반복 수급, 자금 순환형 급여 조작 등 각종 수법이 난무하면서 실업급여는 ‘일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선의의 실직자들마저 의심받는다. 

    고용노동부가 10월 15일 발표한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지급된 실업급여는 1조67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9%(1048억 원) 증가했다. 올해 2월부터 9월까지 8개월 연속 지급액이 1조 원을 넘겼으며 누적액은 9조6303억 원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가 심화했던 2021년 2월~8월(약 1조 원대) 이후 최장 기록이다. 



    실업급여 지급액 급증은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로 직결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업급여 재원인 고용보험 적립금(실업급여 계정)은 2024년 기준 3조5941억 원에 불과하다.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6년 말이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적자 상태이며 현재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7조7000억 원을 빌려 연명하고 있다.

    내년에는 실업급여 재정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실업급여의 최소 지급액(하한액)이 최대 지급액(상한액)을 뛰어넘는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10월 1일부터 상한액을 하루 6만8100원으로 인상했다. 여기에 더해 프리랜서나 초단기 근로자까지 실업급여 지원 대상을 넓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25년 실업급여 지출은 전체 고용보험기금 예산 15조 원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금의 건전성은 악화되고 있다. 법정 기준상으로는 한 해 지출의 1.5~2배를 적립해야 하지만, 실제 적립률은 이의 0.24배에 그친다. 장부상으로는 3조5000억 원이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차입금이 포함된 수치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4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3회 이상 수급자, 전체의 3분의 1

    실업급여 제도의 비용 구조도 불안정하다. 정부는 2019년부터 실업급여 지급률을 평균임금의 60%로 높이고, 지급 기간도 기존보다 늘려 120일에서 최장 270일까지 지급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실업급여 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구직급여의 최소 지급액(하한액)도 함께 올라 부담이 더 커졌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구직급여의 하한선은 ‘해당 연도 최저임금의 80%(8시간 기준)’으로 정한다. 이를 2025년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 193만 원 수준으로, 세후 실수령 기준 최저임금(약 187만 원)을 웃돈다. 즉 일을 하지 않아도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한국의 실업급여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아, 평균임금 대비 41.9%에 이른다. 이런 점 때문에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게 낫다’는 왜곡된 인식이 퍼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수급 요건 역시 느슨하다. 최근 18개월 중 180일(약 7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자격이 주어진다. OECD 주요국보다 훨씬 완화된 수준이다. 제도는 2000년 이후 구조 개편 없이 급여율과 지급 기간만 상향돼 왔다. 이로 인해 현재 수급자격 인정률은 99.7%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최후의 안전망’으로 설계된 실업급여 제도가 점차 ‘보편적 급여’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형식적 구직활동만으로 수급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고, 국세청·건강보험료·국민연금 데이터의 실시간 대조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 대표 C씨는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하자 고용유지지원금을 노렸다. 직원들이 실제로는 근무 중이거나 이미 퇴사했음에도 허위 휴직확인서와 급여 이체 내역서를 만들어 제출해 2020년 9월부터 석 달 동안 1억6000만 원이 넘게 받아냈다. C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가짜 직원’을 만들어 권고사직 처리하고 이들을 퇴사자로 꾸며 실업급여까지 신청하게 했다. 3명의 허위 근로자가 여섯 차례에 걸쳐 2100만 원이 넘는 실업급여를 챙겼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회사와 근로자 계좌 사이 자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다. 조사 담당자는 “한정된 재원을 악용해 진짜 실직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빼앗은 셈”이라며 “그러나 C씨와 공모자들의 처벌은 실형 1년, 벌금 50만~150만 원에 그쳤다”고 말했다.

    느슨한 심사 구조 속에서 ‘신청만 하면 통과되는 제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실업급여 설명회를 듣는 모습. 뉴스1

    느슨한 심사 구조 속에서 ‘신청만 하면 통과되는 제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실업급여 설명회를 듣는 모습. 뉴스1

    동일 사업장에서 21회 걸쳐 총 1억400만 원 수급도…

    단기 근무와 실업급여 수급을 반복하는 ‘회전문형 수급자’도 급증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7월 기준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 130만3000명 중 2회 이상 수급자는 37만1000명, 3회 이상 수급자는 8만4000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동일 사업장에서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도 늘었다. 2019년 9000명 수준이던 동일 사업장 3회 이상 수급자는 2024년 2만2000명으로 2.4배 증가했다. 2025년 7월까지 이미 1만5000명을 넘어섰다. 

    누적 수급액 상위 10명 중 한 근로자는 동일 사업장에서 21회에 걸쳐 총 1억400만 원의 실업급여를 수령했다. 사실상 국가가 기업이 부담해야 할 임금을 대신 내주는 구조다. 이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 간 유착 가능성이 높아 각별한 관리가 요구된다. 

    고용노동부는 실업급여 제도의 반복 수급을 막기 위해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최근 5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의 급여액을 단계적으로 감액하고, 대기 기간을 최장 4주까지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감액률은 수급 3회차 10%, 4회차 25%, 5회차 40%, 6회 이상 50%로 설정됐다. 다만 법안은 국회 심의가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걸리기 전까지는 이익” 인식 팽배 

    가족이나 지인 명의 사업체에서 형식상 근로계약을 맺고 단기 근무 후 권고사직 처리로 실업급여를 타내는 방식도 흔하다. 온라인 서류 대행 브로커가 대신 서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공모해 ‘가짜 이직’ 서류를 꾸미거나 허위 급여 이체 내역을 제출하는 수법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부실 구직활동 적발 건수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1272건이던 적발 건수는 2023년 7만1000여 건, 2024년 9만8000여 건으로 급증했다. 2025년 상반기에도 이미 5만2000여 건이 적발됐다. 

    대표적인 수법은 ‘서류상 구직활동’이다. 구직 사이트에 같은 이력서를 복사해 붙여넣기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업체에 지원서를 보낸 뒤 스크린샷만 남겨 ‘구직활동 인증’을 받는다. 일부는 수급 중 재취업 사실을 숨기고 아르바이트나 용역으로 수입을 얻는다. 현금으로 지급받거나 타인 계좌를 이용해 근로 흔적을 지운다. 

    국세청 자료와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DB)의 교차 검증은 수개월이 지나야 이뤄진다. “걸리기 전까지는 이익”이라는 인식이 퍼진 이유다. 폐업 신고를 하지 않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경영상 해고 스토리를 꾸미는 수법도 여전하다. 이런 회사를 전문적으로 세팅해 주는 브로커 조직까지 생겨났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명백한 범죄다. 현행 고용보험법 제116조에 따르면 사업주와 공모해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실업급여를 받은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부정수급자는 지급받은 금액의 5배를 추가 징수당할 수 있으며 사업주 역시 연대책임을 진다. 

    “행정처벌이 아니라 형사처벌 형량 높여야” 

    수법은 나날이 정교해지지만 관리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다. 고용노동부는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출입국관리소 등 5개 기관의 데이터를 고용보험 시스템과 상시 대조하지만 형식적인 수급 심사로는 허위 고용을 걸러내기 어렵다. 2024년 기준 실업급여 수급자격 인정률은 99.7%로, 사실상 ‘신청만 하면 인정’ 수준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9월 25일 발표한 ‘고용보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최저임금 연동을 해제하고 급여는 평균임금의 60%에서 산정하되 상·하한을 재정 여력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기준기간을 24개월, 기여기간을 12개월로 조정해 단기 근무, 수급 반복을 어렵게 만들고 반복 수급자에게는 급여율과 일수를 단계적으로 감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수급 요건 강화를 무작정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하거나 비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 정도는 아직 합리적 범위 안에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최저임금보다 실업급여 하한이 높은 구조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 정책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김 교수는 “제도 설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애초부터 범죄를 계획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행정처벌이 아니라 형사처벌 수준으로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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